스님의하루

2022.5.19 정토불교대학 천일결사 기도 맛보기
“이것을 알면 모든 괴로움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서울 정토회관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스님은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어제 코로나 백신 4차 접종을 해서 그런지 아침부터 몸살 기운이 있었습니다.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여 오전 9시부터 손님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오전 내내 연이어 미팅을 한 후 점심 식사를 하고 1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해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3시간 30분 동안 달려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본 후 저녁 8시에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오늘은 정토불교대학 생방송 수업을 하는 날입니다. 지난 시간까지 실천적 불교사상 과목에 대한 12번의 강의를 모두 끝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배운 내용을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 ‘천일결사 수행’에 대한 스님의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천일결사 수행을 어떻게 하는지, 왜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직접 정토회의 수행 프로그램을 체험해보는 시간입니다. 수행(修行)은 ‘마음을 닦는다’, ‘행을 닦는다’ 하는 뜻입니다. 즉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수행입니다. 명상을 한다든지, 절을 한다든지, 경전을 외운다든지 하는 특별한 어떤 형식이 수행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늘 일상에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려서 화, 짜증, 미움, 원망, 초조, 불안, 근심, 걱정이 일어나지 않도록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정토회에서는 한 시간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매일 수행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이런 수행을 100일 동안 하면, ‘내가 고집이 세구나’, ‘내가 성격이 급하구나’ 이렇게 자기를 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수행을 1000일 동안 하면 자기 변화가 좀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도 ‘너 요즘 화 많이 줄었다’, ‘너 요즘 고집이 많이 줄었다’, ‘너 요즘 겸손해졌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조금 변화가 오는 거예요. 그러려면 적어도 3년은 꾸준히 수행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대부분 어릴 때부터 형성된 습관대로 살아갑니다. 내 습관이 어떻다는 것을 좀 안다고 해서 그 습관이 쉽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꾸준히 연습을 해야 조금 변화가 옵니다.

그런데 혼자서 정진을 하면 작심삼일이 되기 쉽기 때문에 정토회에서는 다 함께 약속을 해서 ‘천일 동안 매일 아침 일어나서 빠지지 말고 정진하자’ 이렇게 서로 결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백일마다 한 번씩 만나서 지난 백일을 돌아보고 평가를 한 후 다시 또 새롭게 마음을 다져서 다음 백일정진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백일정진을 열 번 하면 천일 정진이 되는데, 이것을 정토회에서는 ‘천일결사’라고 합니다.

삼귀의

천일결사 기도를 시작할 때는 먼저 내가 수행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됩니다. ‘나는 수행자입니다’ 하고 선언을 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삼귀의입니다.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합니다. 부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

부처님 법 만난 것을 기뻐합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

부처님 제자 됨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땅에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이 되겠습니다.

삼귀의를 좀 더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면 이런 뜻입니다.

‘부처가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사실에 깨어있겠습니다. 그러려면 꾸준히 연습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후 수행문을 함께 읽습니다.

수행문

수행문은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괴로움이 없도록 하는 글귀입니다. 이 글귀를 읽고 수행의 관점을 잡는 겁니다. 그동안 불교대학에서 배운 것을 요점 정리한 글이라고 볼 수 있어요. 수행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잘 살펴보면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얽매임이 없는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이죠. 이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을 잘 살펴보면 다 내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요? ‘당신 때문에 화가 난다’, ‘당신이 그러니까 내가 이러지’ 이렇게 남 탓을 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괴로움과 얽매임이 밖으로부터 오는 줄 착각하고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절,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행복과 자유를 구하지만 끝내 얻지 못한다.

예를 들어 농부가 비가 너무 와서 괴롭거나, 비가 안 와서 괴롭다면, 그 이유는 농부가 괴로움의 원인이 마치 비 탓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실망이나 분노도 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비가 많이 오면 둑을 쌓고, 비가 적게 오면 샘을 파면됩니다. 화내고 짜증내고 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에요. 비가 많이 오거나 적게 오는 것은 신이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옛날 사람들이 생각했듯이 왕이 부인을 두고 젊은 여자와 놀아났다고 비가 오는 것도 아니에요. 비가 오는 것은 그냥 자연 현상입니다.

어떤 환경에 처했을 때 ‘내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게 수행이에요.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괴로움과 얽매임이 밖으로부터 오는 줄 착각하고 남을 탓하면서 이 문제를 풀려고 부처님이나 하나님을 부르고, 산신을 부르고, 도와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것이 이 종교 저 종교를 찾는 거예요. ‘여기 가면 영험이 있을까’, ‘저기 가면 영험이 있을까’ 하면서 헤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같은 불교 안에서도 ‘이 산에 있는 절에 가면 더 잘 될까’, ‘저 산에 있는 절에 가면 더 잘 될까’, ‘갓바위에 가서 기도하면 더 잘 될까’, ‘남해 보리암에 가서 기도하면 더 복이 있을까’ 이렇게 영험이 있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이것이 이 절 저 절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이 스님한테 가면 내 어려움을 해결해줄까’, ‘저 스님한테 가면 내 어려움을 해결해줄까’ 하는 것은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 저 목사님, 이 신부님 저 신부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안심입명의 도는 밖으로 찾아서는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심(安心)’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입명(立命)’은 일상에서 누가 욕을 해도 빙긋이 웃듯이 흔들림 없이 중심이 딱 잡혀 있는 것을 말합니다. ‘명’이라는 것은 생활이란 뜻이에요. 안심입명의 도는 밖으로 찾아서는 결코 얻을 수 없다는 말은 누구한테 부탁하거나 밖에서 찾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언제 어디에서 일어난 어떤 괴로움일 지라도 안으로 살펴보면 그 모든 괴로움의 뿌리가 다 마음 가운데 있고

괴로움이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일어났더라도 안으로 살펴보면 그 괴로움의 뿌리가 다 나의 마음에서 일어난 겁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등 육근의 작용에서 생겨난 것인데, 이것은 다 오류이고 허상입니다.

그 마음의 실체가 본래 공한 줄 알면 모든 괴로움은 저절로 사라진다.

‘공(空)’은 ‘실체가 없다’ 하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자다가 꿈속에서 강도를 만났다고 합시다. 그래서 ‘살려줘요’ 하고 도움을 청하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숨겨줬어요. 그래서 ‘나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했어요. 그러다 눈을 딱 뜨게 되면 강도가 없습니다. 꿈이었던 거예요. 강도가 없으니까 두려워할 일도 없고 도망갈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도움을 청할 것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필요 없어요. 이게 다 꿈이라고 하는 정신 작용에 불과한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꿈속에서 강도를 만났을 때처럼 진짜 강도가 있는 줄 알고 두려워하여 도망을 가고, 관세음보살이 진짜 나를 도와준 줄 알고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이게 다 꿈속의 얘기예요. 잠에서 깨버리면 다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갖고 ‘공하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일으킨 한 생각에 사로잡혀 옳다 그르다 모양 짓고 그 모양에 집착해서 온갖 괴로움을 스스로 만든다.

사람들은 자신이 일으킨 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강도다’, ‘관세음보살이다’ 하면서 괴로움을 스스로 만듭니다. ‘나쁜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다’,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이러면서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미워하고 원망을 하고 난리를 피웁니다.

한 생각 돌이켜서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즉시 사라진다.

‘한 생각 돌이켜서’라는 것은 ‘눈을 번쩍 떠서’ 이런 뜻입니다. 눈을 번쩍 떠서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즉시 사라집니다. 괴로움이 있다고 하니까 괴로움이 사라진다고 표현을 하는 것이지, 늘 깨어있으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요를 펴고 이불을 덥고 편안하게 자고 있으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악몽을 꾸면 괴로워요. 그럼 누가 괴롭혀서 괴로운 거예요? 아니에요. 생각에 사로잡혀서 괴로운 거예요.

그럼 이 괴로움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호랑이 꿈을 꾸면 호랑이를 잡아야 되고, 뱀 꿈을 꾸면 뱀을 잡아야 되고, 강도 꿈을 꾸면 강도를 잡아야 되나요? 아닙니다. 눈만 뜨면 돼요.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이 말은 꿈에서 깬다는 뜻입니다. 꿈에서 깨어나 눈을 번쩍 뜨면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괴로울 일이 없어져요.

수행자는 이런 관점을 항상 유지해야 합니다. 관점을 놓치더라도 ‘내가 놓쳤구나’, ‘내가 허상에 사로잡혔구나’ 하고 놓친 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렇게 수행문을 읽고 수행의 관점을 잡은 다음에는 참회를 합니다.

참회

화나고, 짜증 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이 모든 것은 밖으로 살피면 상대가 잘못해서 생긴 괴로움인 것 같지만, 안으로 살피면 ‘내가 옳다’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일어난 것이므로 모든 법에는 본래 옳고 그름이 없음을 깨달아 ‘내가 옳다’는 한 생각을 내려놓을 때 모든 괴로움은 사라지고 온갖 업장은 녹아나는 것이다.

설령 욕망이 일어나거나 성질이 올라오더라도 그것을 따라가서 말하거나 행동하면 큰 손실이 발생한다면 멈춰야 됩니다. 이것을 ‘계를 지킨다'라고 해요. 그런데 멈추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계를 어겼다면 어긴 줄 알고 참회를 해야 합니다.

‘내가 놓쳤구나’
‘내가 잘못했구나’
‘내가 깜박 고집했구나’
‘나도 모르게 화를 냈구나’

이렇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각하는 것이 참회예요.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는 것이 참회가 아닙니다. 이렇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수행적 관점을 가진 다음 108번 절을 하면서 어제 하루 동안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고 참회를 하는 거예요.

명상

그 다음에는 명상을 합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한 상태에서 아무 할 일이 없는 한가한 마음으로 합니다. 애를 쓰고 각오하고 결심하는 것이 아니에요. 마음을 편안히 한 상태에서 눈을 딱 감고 마음을 콧구멍 끝에 집중하면 내가 호흡하는 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오직 호흡만 알아차립니다. 숨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줄 알고, 숨이 나가면 나가는 줄 압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아무 동작도 하지 말고, 호흡만 알아차립니다. 아무 할 일 없이 편안하게 앉아 있어도 몸은 호흡을 하니까 ‘호흡하는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그게 명상이에요. 명상은 애를 쓰고 하는 게 아닙니다.

경전 독송

그다음에는 경전 독송을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읽고 지혜를 닦는 방법이 경전 독송이예요. 수행자는 계정혜 삼학을 닦아야 합니다. 108배를 하면서 참회하는 것은 계율을 지키는 수행이고, 명상을 하는 것은 선정을 닦는 수행이고, 경전을 독송하는 것은 지혜를 닦는 수행입니다. 매일 이렇게 하면 기본적인 수행인 계정혜 삼학을 조금씩 닦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정토행자의 서원과 천일결사의 목표, 보왕삼매론을 읽고, 사홍서원을 합니다. ‘정토행자의 서원’에는 ‘정토행자는 어떤 원을 갖고 살아가느냐’ 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가지 큰 원인 사홍서원을 발원하고 정진을 마치게 됩니다.

이렇게 삼귀의부터 사홍서원까지 정진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첫째, 매일 아침 5시에 눈을 뜨자마자 정진을 시작해서 45분 정도 수행을 합니다. 둘째, 하루 천 원 이상 보시를 합니다. 아직도 인류 사회에는 하루에 천 원이 없어서 못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매일 천 원 이상 보시를 합니다. 셋째,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 봉사를 하거나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좋은 일을 합니다. 수행, 보시, 봉사, 이것이 정토행자의 수행법입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다음 주부터는 2600여 년 전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의 삶을 통해서 그분이 어떻게 자유로워졌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수업을 마쳤습니다.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다 함께 천일결사 기도를 직접 해보고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한 후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고, 오후에는 온라인 불사위원회와 화상으로 회의를 하고, 전국 법사 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해서 즉문즉설을 한 후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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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천결기도문에 대한 설명을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2023-04-10 08:23:37

김정은

정진하겠습니다.

2022-11-11 09:29:15

송금숙

가랑비에 옷 젖듯이
꾸준히 수행하겠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2022-10-12 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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