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5.18 수행법회, 손병희 순국 100주년 토론회, 차별금지법 단식농성장 방문
“아이의 아토피가 심해서 늘 불안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서울 공동체 대중과 함께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식사를 마친 후 대중들은 스승의날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엊그제가 스승의날이었는데 스님이 두북 수련원에 있는 관계로 서울 공동체 대중들은 스님에게 직접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3일이 지나긴 했지만 오늘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 항상 좋은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입 실무자 교육을 받고 있는 행자님이 대중을 대표해 꽃다발을 스님에게 전했습니다.

이어서 대중이 스님에게 삼배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꽃다발을 받은 스님은 대중을 위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제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간절한 바람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스승으로서 여러분에 대한 저의 간절한 바람은...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는 정토회가 만일결사를 시작한 지 30년째인 만일이 되는 해입니다.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가 운명을 개선하는 것을 포기해 버린다면 모순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단점을 스스로 자각해서 개선을 해나가든지, 그것이 어려우면 수행을 지도하는 법사님들에게 문의를 해봐야 합니다.

‘법사님이 보기에 저의 어떤 문제가 한계라고 생각하십니까?’

개선을 안 해도 괜찮지만 만약 더 개선해야 한다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의를 해서 자발적으로 수행을 해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타인에 의해 지적을 받으면 반발 심리가 생겨서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게 돼요. 본인이 적극적으로 자자를 청하듯이 물어서 개선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여러분에 대한 저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볼 때마다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초심자라면 지적을 해주면 되지만, 여러분은 공동체에 들어와서 수행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본인이 자발적으로 하지 않고 외부에서 누군가 얘기해서 해결될 수 있는 시간을 이미 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본인이 정말로 개선을 원하는가’ 이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된 상황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저를 스승이라고 부르니까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자신의 문제를 파악해서 정토회가 지향하는 바와 어떤 점이 충돌하는지 알아서 본인이 적극적으로 개선을 하든지, 정토회가 지향하는 바를 다시 분명히 하든지 했으면 합니다. 원을 세우고 수행자가 된 사람이 개인의 취향을 자꾸 움켜쥐려고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래서 만일이 끝나가는 이 마지막 시점에 일단 자신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개선할 수 있는 데까지 한 번 더 개선하는 일에 집중해 봤으면 합니다. 아난존자가 부처님을 25년 간 시봉을 했지만 아라한과를 증득하지 못해서 오백 명의 아라한이 참여하는 경전 결집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분심을 일으켜서 일주일 간 용맹정진한 끝에 깨달음을 얻고 경전 결집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잖습니까. 그런 것처럼 만일결사의 마지막 하루라도 제대로 정진을 하면 관념의 꺼풀이 벗겨질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 자신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정진 해나가 보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이것이 잘 안 된다면 전문의사의 상담을 받아서 심리 치료를 좀 받아보면 좋겠어요. 그렇게 해봤는데도 도저히 안 된다면 그 사람의 심리 상태에 맞게끔 생활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년, 2년도 아니고 20년, 30년을 봉사하며 산 사람들인데, 한 사람도 빠짐없어 모두가 아울러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면 좋겠어요. 이렇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은 정토회의 책임이지만, 어떻게 발심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은 여러분 개개인의 책임입니다. 오늘 이런 자리를 빌어서 여러분께 드리고 싶었던 말을 꺼냈습니다. 감사합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8시부터 상임 천일준비위원회 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2차 만일결사 중 제1차 천일결사를 준비하고 있는 천일준비위원회에서는 정토회의 미래 방향과 관련해서 다양한 쟁점들을 준비해 와서 스님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10시에는 1층 법당에 마련된 방송실에서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주간반 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하는 날입니다. 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오늘은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날입니다. 법문을 하기 에 앞서 스님은 5.18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분들을 비롯하여 나라의 민족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기렸습니다.

“오늘은 광주 민주화 항쟁이 일어난 날인 5월 18일입니다. 1980년 신군부가 군대를 동원해서 광주 시민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비극이 일어난 날입니다. 또한 이를 계기로 광주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신군부의 압제에 저항하여 광주 민주화 운동의 출발이 된 날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3.1 운동을 비롯해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서 싸운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있었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민주화 운동을 이어간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자유롭고 번영하는 대한민국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 때 희생된 분들을 비롯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한 순국선열들을 기리는 묵념의 시간을 잠시 갖고 법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묵념.”

잠시 묵념을 한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즉석에서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아이가 아토피가 심한 것 때문에 힘들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아이의 아토피가 심해서 늘 불안합니다

“딸아이가 지금 9살인데 태어난 지 한 달 뒤부터 아토피가 심했습니다. 임신 8개월일 때 피부 습진이 심해서 약을 먹었는데 그 부작용으로 아토피가 생긴 것 같아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빨리 낫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아토피에 좋다는 이것저것을 하다 보니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게 되고, 치료가 끝나면 다시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있습니다. 아토피가 좋아지면 제 기분도 좋아지고, 아토피가 심해지면 거기에 사로잡혀 우울해집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옛날에는 뼈가 부러지거나 팔다리가 잘려나간 경우가 치료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수술이나 접골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게 되었어요. 심장 문제도 예전에는 손쓸 방법이 없었지만, 지금은 심장에 관을 넣는 시술이나 심장 이식 등 옛날에는 상상도 못 했던 방법이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질문한 아토피 같은 것은 아직도 분명한 처방이 없어요. 아토피는 일종의 선천성 알레르기이기 때문입니다.

고추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매운 걸 먹으면 머리에서 땀이 납니다. 이건 당장 생활에 불편이 없고, 정 불편하면 고추를 안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걸 치료하려 든다면 별 뾰족한 방법이 없어요. 또 겨울에 바깥에 있다가 따뜻한 실내에 들어오면 두드러기가 일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냉기에 대한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나이가 들수록 면역력이 떨어지니까 겨울만 되면 피부를 긁어서 피가 날 정도로 심해지기도 합니다. 이것도 굳이 치료하려면 치료할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위장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여름이 되어 장화를 신고 일하면 무좀이 생기기도 하죠. 무좀약을 바른다고 근본적으로 낫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약을 먹어야 해요. 그런데 이런 것도 간단한 것 같지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위가 약한 사람은 약을 안 먹어도 위가 약해서 늘 문제가 있는데, 약을 먹게 되면 피부병은 나을지 몰라도 위를 버리게 되거든요. 게다가 이런 약은 몇 달씩 장기간 복용해야 효과가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피부병은 증상이 심하면 치료를 하고, 안 그러면 일정한 병증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아토피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치료를 해야겠죠. 둘째, 치료가 잘 안 되면 조미료나 나쁜 공기 같은 여러 가지 자극 요인을 최대한 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토피도 일종의 알레르기 같은 것이니까요. 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이사를 가서 삶은 고구마나 옥수수처럼 최대한 자연 상태에 가깝고 단순하게 조리한 것을 먹으면서 생활하면 아토피가 훨씬 좋아집니다. 100퍼센트 낫는다는 건 아니지만 막 긁어서 피가 날 정도는 막을 수 있게 돼요. 도시에 살거나 조미료가 든 인스턴트식품을 먹으면 피부에 진물이 나는 등 증상이 심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증상이 심해지지 않도록 하려면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선택의 문제예요.

다만 ‘이러저러하게 하면 완치된다’ 이런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아토피와 같은 질환은 현재 약이 개발되어 있지도 않고, 설령 약이 효과가 있다 해도 다른 부작용 때문에 몸의 다른 부분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질문자의 말처럼 임신 중 먹은 약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볼 때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90퍼센트예요. 아토피의 경우 어떤 유전적인 체질 문제가 더 큽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임신 때 뭘 잘못 복용하거나 정신적으로 너무 민감하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건 맞지만, 전적으로 그것 때문에 아토피가 생겼다고 하는 것은 질문자가 너무 단정적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죄의식이 있다 보니까 문제를 해결하려고 너무 과하게 행동해서 오히려 괴로움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중에는 눈이 안 보이는 사람도 있고, 귀가 안 들리는 사람도 있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수행자의 관점이에요. 그걸 낫게 한다거나 정상인과 비교해서 똑같이 만들려고 하는 건 수행자의 관점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는 아토피가 없어야 한다.’

이건 수행이 아닙니다.

‘아토피가 있는 우리 아이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수행자라면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해요. 현대 의학이 개발해 놓은 약물이 있으면 그걸 갖고 지속적으로 치료를 하면 됩니다. 그러나 알레르기 같은 건 딱히 치료법이 없어요. 게다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체질이 민감한 편이어서 약을 매일 먹거나 너무 자주 먹으면 위를 버리기 쉬워요. 그래서 심할 때는 약을 먹되, 안 심하면 그냥 견디며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다음으로는 공기가 맑은 곳으로 가고, 음식도 조미료 등 특별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조심하는 게 좋겠죠. 어떤 걸 먹었을 때 특별히 반응하는지를 1년 내지 3년 정도 꾸준히 조사해서 그런 음식은 가능하면 먹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대응하면 되지 이걸 두고 괴로워하면 안 돼요. ‘완치를 하겠다’ 이런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그런 생각에 집착하다 보면 아이는 아이대로 고생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고생하고, 마음은 마음대로 괴로워지는 문제가 발생하게 돼요. 아토피는 기도한다고 낫는 게 아닙니다. 이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것에 대한 대응을 지혜롭게 하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네, 아토피가 있든 없든 아이도 행복하고 저도 행복할 수 있도록 수행을 꾸준히 해나가겠습니다.”

“요즘은 병원 치료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될 만큼 아토피가 아주 심한 경우에는 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귀촌해서 생활하는 사람도 가끔 있습니다. 특히 인스턴트식품과 여러 가지 화학조미료는 알레르기가 심한 사람에게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해요. 물론 자연 속에서 산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시골에 오면 오히려 증상이 심해지기도 해요. 봄이 되면 꽃가루가 많이 날리고, 또 산에 옻나무도 있습니다. 자연 속에도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거든요.

옻나무에 손만 대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이 있고, 옻나무 진을 채취해서 손등에 발라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꼭 어떤 물질이 특정한 반응을 일으킨다기보다는 각각의 체질에 따라 달라진다고 봐야 해요. 우리 몸이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기 체질을 잘 알아서 다른 사람은 해도 된다 하더라도 내 체질에 안 맞는 건 안 하는 식으로 대처를 해야지, 뭐든지 다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위험해요. ‘저 사람은 괜찮은데 왜 나만 문제냐!’ 이런 사고방식이 오히려 우리를 괴롭게 만듭니다. 그래 놓고는 그게 하늘의 벌이라고 하든지, 전생의 죄라고 하든지, 사주팔자라고 하는 건 옳지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유전자의 어떤 문제로 인한 각양각색의 문제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맞게 대응을 하면 됩니다. 또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를 해야 돼요. 그것이 괴로울 요인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회원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인근 병원을 방문하여 코로나 백신 4차 접종을 한 후 평화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평화재단 주최로 열린 ‘의암 손병희 선생 순국 100주년 기념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내일 19일은 손병희 선생이 순국하신 지 100년이 되는 날입니다.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평화재단에서는 손병희 선생이 남긴 업적과 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하고 그로부터 시사점을 얻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을 시작하자 5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해 토론회의 내용을 경청했습니다. 먼저 오늘 기념 토론회를 주최한 평화재단 이사장인 스님이 개회사를 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의암(義菴) 손병희 선생님의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평화재단에서는 손병희 선생님의 근대국가 혁명 정신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의암 손병희 선생님은 한국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민중의 힘이 분출한 사건이었던 동학혁명의 실질적인 지도자, 통령(統領)이었습니다. 또 한국을 근대국가화 하는 운동을 벌여 대단위 단발령을 시행하는 등 근대 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빼앗긴 뒤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본인은 물론 천도교 교단 차원에서 전 교도가 3.1 독립운동을 준비하고 진행했습니다. 손병희 선생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게 한 주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게 한 주역

1919년 3월에 3.1 운동이 일어났는데 곧바로 한 달 뒤인 4월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이는 3.1 운동 당시에 이미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져 있었다는 뜻입니다. 독립운동이란 빼앗긴 나라를 되찾자는 운동인데, 그때 우리가 빼앗긴 나라는 대한제국(大韓帝國)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한제국을 부흥시키자는 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세우자는 운동을 한 거예요.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는 민(民)이 주인 되는 새로운 나라를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는 뜻을 담아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정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한 것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제각기 자기 나라의 국부(國父)가 있지만, 대한민국은 국부가 없습니다. 굳이 우리가 국부를 추앙한다면 가장 합당한 분이 의암 손병희 선생님이 아닐까 할 정도로 의암 선생님은 중요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의 순국 100주년이라면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크게 추도 행사를 해야 해요.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의 민족의식과 역사의식 부족으로 인해 순국 100주년을 이렇게 정부의 공식 행사 없이 보내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정부가 하지 않으면 천도교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해야겠지만, 3.1 독립운동 때 천도교는 교단 차원에서 전심전력을 다해 참여했기 때문에 교단 전체가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교단이 해산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물론 불교하고 기독교도 참여했지만 개별적으로 참여를 했기 때문에 참여한 개인들이 피해를 입는 데서 그쳤어요. 또 남북이 분단되면서 천도교의 교단이 둘로 나뉘면서 오늘날 천도교는 교세가 미미한 소수 종교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오늘 손병희 선생님의 순국 100주년 기념행사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안타까움이 있지만, 저희 평화재단에서는 미완의 혁명가 손병희 선생님의 업적을 새롭게 재조명한 구해우 박사님을 모시고 순국 100주년을 기해서 발표와 토론의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손병희 선생님의 업적을 재평가하고, 또 근대 국가를 이루기 위한 손병희 선생님의 혁명 정신을 앞으로 어떻게 살려 나갈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부족하지만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서 그 정신과 업적을 우리가 다 함께 기렸으면 합니다.”

이어서 조민 박사님의 사회로 토론회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미래전략연구원장 구해우 박사님이 ‘미완의 평화 혁명가 손병희’라는 제목으로 손병희 선생의 업적을 재조명한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박사님은 종적으로 횡적으로 손병희 선생을 재조명했습니다. 종적으로는 프랑스혁명에 버금가는 동학혁명의 실질적 지도자로서의 활동, 진보회를 조직하고 단발령을 내리는 등 개화운동에 앞장선 활동, 3.1 운동을 준비해서 중도회통사상으로 민족 전체를 아우른 활동에 대해 높이 평가했습니다. 횡적으로는 중국의 손문,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와 비교하며 근대문명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손병희 선생의 노력이 제대로 된 평가조차 받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며 새롭게 재조명을 했습니다.

구해우 박사님의 발표가 끝나고 패널들의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이문기 세종대 국제학부 교수님과 임형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님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손병희 선생의 업적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이야기했습니다.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스님도 토론에 참석하여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토론 과정에서 손병희 선생님의 중도회통사상은 오늘날 남북 분단과 좌우 대립, 양극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를 해나갔습니다.

토론을 마치고 나서 마지막으로 사회자가 스님에게 마무리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창조성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며 손병희 선생의 업적을 다시 한번 높이 평가했습니다.

“문명은 보통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 문명입니다. 유럽 사람들은 자기 문명 속에 살고 있죠. 두 번째, 남의 문명 속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대부분 다 식민지를 거치면서 외부로부터 이식된 남의 문명을 모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가 융합 문명입니다. 자기 문명이 있으면서 또 남의 문명도 받아들여서 그 둘이 융합이 되어 창조성을 발휘하는 문명이에요.

대한민국이 창조성을 발휘하는 이유

그렇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도 발전하고 또 문화적으로도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데, 이것은 모방 문명에서 과연 가능할까요? 모방 문명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 이것은 우리만의 문명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바로 융합 문명입니다. 우리 본연의 문명과 밖에서 온 문명이 융합을 해서 새로운 문명을 지금 만들어내고 있어요. 그래서 많은 창조성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지나치게 서구 문명의 영향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우리의 문명은 저급하고, 서구의 고급 문명이 이식되어서 우리나라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이렇게 역사를 봅니다. 이런 시각은 현재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 현상이나 대한민국의 발전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외부 문명이 흘러들어 간 사례는 전 세계에 많은데 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도움을 받던 나라가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발전한 사례는 대한민국 하나뿐인지를 설명할 길이 없어요.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문명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명만 강조하자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문명에 대해서 좀 진지한 탐구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에는 소위 옛날 환웅단군 시대에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앞선 문명의 뿌리를 갖고 있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해요. 최근에 밝혀지고 있는 요하강 유역의 홍산 문명은 우리 민족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데, 세계 5대 문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그 이후 중국과 교류하면서 중국의 문명을 많이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것도 우리의 문명을 유지하는 가운데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우리의 뿌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서구 문명이 들어오면서는 그걸 일시적이나마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은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역사의 유실은 옛날 과거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지금의 근현대사에도 있는데, 우리는 특히 후자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모두 이루어낸 것을 두고 서양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사례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이 곧 하늘인 세상을 꿈꾼 분

이러한 독특함은 오늘 우리가 손병희 선생과 관련하여 토론한 동학사상에서도 드러납니다. 동학사상에서는 선천시대(先天時代)와 후천시대(後天時代)를 구분하여 논했습니다. 선천 시대는 하늘의 아들이라고 말해지는 천자(天子), 즉 왕이 주인인 세상입니다. 그분만 하늘의 아들이지 백성은 하늘의 아들이 아니었어요. 이것을 뛰어넘었다고 하는 다른 종교에서도 ‘우리도 하늘의 아들이다’ 이 정도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동학사상에서 말하는 후천시대는 사람이 곧 하늘인 세상입니다. 하늘의 아들인 정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것이 동학사상입니다.

사람이 하늘이니까 나라의 주인도 백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왕이 나라의 주인인 시대, 즉 그 나라의 모든 영토와 인민과 재산이 다 왕의 소유인 시대가 선천시대이자 지난 5천 년의 역사라면, 민(民)이 주인이 된 시대가 후천시대입니다. 이런 사상이 서구 문명이 들어오기 전인 조선조 말엽에 이미 일어났고, 최제우 선생이 그것을 공개적으로 제시했어요. 민이 주인인 시대라는 사상을 왕조 시대에 내걸었으니까 역적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처형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이 하나의 운동으로 일어난 것이 동학혁명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이것이 외세에 맞선 민족 자주와 결합했습니다. 특히 3.1 운동은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에 외세에 대한 저항이 좀 강조됐을 뿐이지, 그저 외세에 맞서 독립하자는 뜻만 담은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독립만 하려면 대한제국 부흥 운동을 해야지, 왜 새로운 나라인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했겠어요? 이런 예는 역사에 없습니다. 고구려 부흥 운동, 백제 부흥 운동도 다 기존의 국가를 되살리려는 운동이었어요. 그러나 3.1 운동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자주독립만이 아니라 민(民)이 주인 되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는 뜻까지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립이 되자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은 이루어졌지만, 민(民)이 주인이 되는 나라는 지금도 계속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것이 3.1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의 정신이고, 민(民)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계속 만들어 가는 과정이 4.19 혁명과 그 이후의 여러 민주화운동들이라고 헌법 전문에도 나와 있어요.

이러한 정신과 운동이 우리 자체적으로 일어났다는 겁니다. 서구 문명이 들어와 그것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왜 다른 나라는 안 되느냐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문명과 서구 문명, 이 두 가지가 융합한 결과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주 면에서나 민주 면에서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지금도 이런 융합을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우리의 것에 좀 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꾸 서양 사상만 치우쳐서 거론하고 있어요. 외국 것을 무시하고 우리 것만 하자는 게 아니에요. 그동안 우리의 것이 너무 안 알려져 있었으니까 좀 더 관심을 갖자는 이야기입니다.

미래 100년을 향한 중도 통합 정신

특히 손병희 선생님은 민중의 혁명을 시작하신 분이고, 근대 국가론을 제기한 분이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을 이끄신 분입니다. 독립운동 역시 우리의 전통에 의거하여 다른 많은 사람들과 협력해서 동과 서의 중도 통합으로 진행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여야와 진보 보수 간의 분열이 극심합니다. 그런 면에서 손병희 선생의 중도 통합 정신은 국민통합의 기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이것은 분단된 남과 북을 통합하는 기초가 되고, 분열된 동아시아에 평화를 만들어가는 기초가 되고, 미중을 비롯한 세계적 분열에도 화합의 기초가 되고, 사람과 자연의 갈등을 융합해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뭐든지 남의 것을 배워서 따라 하는 모방이 아니라 이제는 그것을 우리 고유의 것과 융합하여 새로운 창조를 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과제를 우리가 해결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손병희 선생의 동학사상과 중도 통합 정신은 훌륭한 기반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손병희 선생님 순국 100주년을 기해서 미래의 100년은 이것이 좀 더 자라고 꽃을 피울 수 있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지식인 여러분이 이런 일에 같이 참여하고 앞장 서주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끝으로 손병희 선생 순국 100주년 기념 토론회 생방송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발표자 분들을 현관까지 배웅하며 바쁜 시간을 내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정토회 저녁반 회원들을 위한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오전 법회처럼 다양한 질문을 받고 대화를 나눈 후 9시에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수행법회를 마치고 스님은 바로 국회로 향했습니다. 국회 앞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한 단식 투쟁이 38일째 지속되고 있습니다.


국회 앞에는 조그마한 천막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 38일째 단식 중인 인권활동가 미류님을 만났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고 있는 국회의원들도 동석했습니다.

먼저 방명록을 남겼습니다.

‘자연에는 차이만 있지 차별은 없다. 차별에서 평등으로...’

이어서 차별금지법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와서 미안해요. 오늘 하루 종일 일정이 꽉 짜여있어서 이제야 올 수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차별을 금지하자는 거예요?”

“장애, 성별, 나이, 학력, 성적 지향, 종교 등 우리가 이미 차별이라고 알고 있는 차별은 적어도 공공 영역에서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별을 하지 말자고 하는데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요?”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대한 반대가 큽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진 성적 지향인 걸 어떡해요. 스스로 선택하는 것도 아닌데요.”

“고등학생 중에 동성애를 가진 아이들이 자살을 많이 하고 있어요. 교육 공간에서는 아직까지 문제의식 자체가 없습니다. 선생님들 중에서도 차별적인 얘기를 막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소수자들이 너무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법이 만들어진다고 당장 차별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모두 동등한 시민이라는 걸 국가에서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스님은 활동가들과 국회의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실을 파악하고 어떠한 길이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많이 여윈 미류님에게 직접 단식한 경험을 나누며 조심해야 할 점과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알려주었습니다.

“한꺼번에 바꾸려고 하면 고통이 따르고 어려움이 따라요. 투쟁을 하더라도 반대하는 사람들의 제기도 어느 정도 수용을 하면서 풀어나가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너무 애를 쓰면 건강을 해쳐요. 저도 단식을 70일까지 해봤어요.”

“아니 왜요, 스님?”

“2008년에 북한 동포가 굶어 죽는데 내가 어떻게 밥을 먹을 수가 있냐 싶어서 단식을 시작했어요. 50일이 넘어가니까 기력이 거의 소진되어서 문경으로 내려가서 명상을 하면서 70일까지 했어요. 부처님은 98일까지 단식을 하면서 정진을 하셨다고 합니다. 저도 98일까지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백일 채우고 내가 죽든지 세상을 바꾸든지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 여기서 멈춰야 한다고 말렸어요. 너무 오래 하면 대중이 오히려 의심을 한다는 거예요. 스님은 정진을 하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는 건데도 남이 볼 때는 ‘저 스님이 몰래 뭔가 먹고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오히려 의심을 해서 반감이 생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멈췄어요.

단식을 해보면 말하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요. 활동가님도 말을 안 해야 돼요. 저는 처음에 그걸 몰라서 오십일까지는 막 강연도 하고 다녔는데 목이 먼저 나갔어요. 나중에는 완전히 탈진이 됐어요. 그때는 북한에서 사람들이 추풍낙엽처럼 죽어나가고 있었거든요.

이런 투쟁은 주체적으로 할 수밖에 없어요. 하는 만큼 하고 물러났다가 또 하고 물러났다가 또 하고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제가 볼 때 우리 인류에게 남은 불평등의 가장 마지막 장벽이 이 성의 문제 아닌가 싶어요. 아직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제일 어려운 부분인 건 사실이에요.”

“스님, 저는 상황실장입니다. 가셔야 하는데 하나만 부탁드리고 싶어요. 지금 여기까지 이목을 끌고 온 것은 차별받는 시민들이었습니다. 사실 저희는 지금 퇴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님께서 즉문즉설에서 성소수자나 장애인 차별 문제를 말씀 언급해 주셨을 때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는 걸 보았습니다. 같이 힘을 모을 수 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장애인 운동도 하고 있는데 지하철에서 매일 기고 있는 동료들과 38일 동안 굶고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면서 정말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그의 목소리에 간절함과 분함이 함께 묻어있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독립운동을 할 때도 나라가 독립이 되든 안 되든 투쟁을 하고 죽을 때 죽더라도 행복하게 싸워야 해요.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갔더라도 한을 품으면 안 돼요. 한을 품어봐야 나만 손해예요. 어떤 것도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3.1 독립운동이 일어나고도 26년이 지나서 나라가 독립되었고 4.19 혁명이 일어나고 민주화가 되는 데도 삼십 년이 걸렸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정의가 다른 게 아니에요. 차별에서 평등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게 정의예요. 자연 상태는 차별이 없잖아요. 개가 무슨 검은 개, 흰 개를 차별하나요? 암수를 차별해요? 사람만 이런단 말이에요. 이건 정신적 오류인데 이 오류를 시정해가는 과정이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에요. 목표는 분명히 해야 하지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요. 제도만 바꾼다고 다 되는 일도 아닙니다. 인도에서도 계급 차별을 1947년에 법적으로 금지했는데 아직까지도 관습적으로 차별이 남아 있어요. 이런 관습까지 바꾸는 데는 시간이 아주 걸려요.

그러니 투쟁을 하되 자기를 해쳐가면서 하면 안 돼요. 그럼 오래 못 싸워요. 지쳐서 하다가 결국 그만둔단 말이에요. 끝까지 되도록 해야 하잖아요. 그러나 꾸준히 해야 합니다.”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눈 후 성금을 전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너무 애쓰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시원하게 해결을 못 해줘서 미안해요. 제가 할 역할이 있으면 다시 올게요. 너무 애를 쓰지는 마세요”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됐습니다.”


활동가들에게 다시 39일째를 살아갈, 차별이 철폐될 더 먼 미래까지 운동을 지속할 힘이 되었길 바라며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착하니 11시가 가까웠습니다.

“스님, 오늘 4차 백신도 맞으셨는데 괜찮으세요?”

“하루 종일 바빠서 안 괜찮을 여가가 없네요.”(웃음)

긴 하루가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손님들이 평화재단으로 찾아와 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가 정토불교대학 강의를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4

0/200

박선미

지혜가 뭔지를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 감사합니다. 종일 바쁜 스님의 하루를 보았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22-06-11 17:53:08

큰바다

투쟁을 하되 자기를 해쳐가면서 하면 안 돼요. 그럼 오래 못 싸워요. 지쳐서 하다가 결국 그만둔단 말이에요. 끝까지 되도록 해야 하잖아요...
고맙습니다.

2022-05-26 19:50:21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2-05-23 17:22:22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