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0.19 농사일
“남편에게 집착하는 시어머니와 같이 사는 게 힘들어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발우공양을 마친 후 해가 뜨자마자 작업복을 입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비닐하우스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가 매일 쏟아지고 있습니다.

농사팀 행자님들은 모두 고추 수확을 하고, 스님은 비닐하우스 측면에 심어둔 들깨를 베는 일을 했습니다.

“아이고, 이미 늦었어요. 벌써 깨가 땅에 떨어져서 하얗잖아요.”

스님은 땅에 떨어진 깨를 아까워하며 서둘러 들깨를 낫으로 베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낫으로 들깨를 베면 행자님이 바닥에 천을 깔고 베어낸 들깨를 눕혔습니다. 깨가 조금이라도 땅에 떨어질까 봐 조심히 움직였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 햇살이 비치자 움직일 때마다 땀이 많이 났습니다.

“정말 덥네요. 땀을 흘려서 벌써 옷이 다 젖었어요.”

들깨를 올려놓은 천을 손으로 들어서 조심히 비닐하우스 밖으로 꺼냈습니다.


햇살이 좋아서 비닐하우스 앞에 들깨를 말린 후 다시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전에 곰보배추 모종을 비닐하우스 측면에 나란히 심었는데, 며칠 사이에 모종이 쑥쑥 자라 있었습니다. 그리고 토마토를 정리한 자리에는 김장할 때 사용할 갓을 심었는데 갓도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야채에 물을 좀 흠뻑 주고 갑시다.”

스님은 양손에 물뿌리개를 들고 한 번에 두 줄에 심어진 곰보배추와 갓에 물을 주었습니다.

작년부터 스님이 맡아서 관리하겠다고 한 비닐하우스 측면이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물뿌리개를 들고 비닐하우스 안팎을 여러 차례 왔다 갔다 하면서 물을 주었습니다.

그사이 농사팀 행자님들은 비닐하우스 3동에서 빨간 고추를 모두 수확하고 꼭지를 따는 일까지 마쳤습니다.


묘당 법사님은 비닐하우스 4동에서 쌈배추와 잎채소를 수확했습니다. 다행히 비닐하우스에 심은 배추는 무름병이 오지 않고 아주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울력을 마칠 시간이 되어 행자님들은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가고, 스님은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물을 비닐하우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파이프 연결을 보완하는 일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파이프 연결을 마무리하고 갈게요.”

산에서 내려와 저수지에 고인 물은 윗 논으로 흘러내려가고, 다시 아랫 논으로 흘러내려간 후, 마지막으로 비닐하우스까지 흘러가도록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지하수를 사용하려면 전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가능한 전기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스님이 고안해낸 방법입니다.

“이 부분에 연결을 다시 보완합시다.”

파이프와 호스는 모두 동네에서 주워 온 것들이어서 서로 크기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연결 부위가 약합니다. 케이블 타이로 꽁꽁 묶어서 최대한 연결부위에서 물이 새지 않도록 다시 연결을 했습니다.

“됐어요. 이 정도면 물이 잘 흘러내려갈 거예요.”

파이프 연결을 마무리하자 비닐하우스 옆에 세워 둔 물통에 물이 금방 찼습니다.

물뿌리개에 물을 담아서 비닐하우스 측면에 심어 둔 잎채소에 물을 주었습니다.


흙이 묻은 호스를 물로 깨끗이 씻어서 잘 감아 놓은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호스의 길이가 길어서 정말 무겁네요.”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오자 독일에서 온 이상호 거사님 부부가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상호 거사님은 1965년 33살의 젊은 나이에 광부로 독일에 갔습니다. 독일 교민의 역사에서 가장 초창기에 간 사람으로서 ‘독일 광부 30년사’를 직접 책으로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부인도 남편을 따라 1966년에 간호사로 갔는데, 두 분은 독일에서 무려 56년을 산 셈입니다. 독일에 정토회가 생기고 나서 정토회 활동도 오랫동안 해오셨는데, 얼마 전 독일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귀국하여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한국에 오니 독일보다 좋아요?”

“아직은 한국이 더 좋은지 모르겠어요.” (웃음)

스님은 두북 수련원의 구석구석을 설명하고 구경시켜 준 후 점심 식사 한 끼를 함께 했습니다.

저녁에는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본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산 아랫밭에 액비를 뿌리는 일을 하고, 하루 종일 공동체 법사단과 정토대전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5일 금요 즉문즉설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남편에게 집착하는 시어머니와 같이 살기 힘들어요

“저는 결혼한 지 25년이 되었고, 결혼과 동시에 시어머니를 25년째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결혼 당시 시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셔서 안 계셨고, 시어머니께서 4남 2녀와 1, 2층 나누어서 살고 있는 주택에 들어가서 대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시어머니와 남편, 아이들 세 명 이렇게 여섯 식구가 같이 살고 있습니다.

현재 제 마음 상태는 시어머니와 대화를 하거나 식사를 할 때 마음에 부담이 될 정도로 편하지가 않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제가 직업상 밖에서 시간도 많이 보냈고, 시어머니도 활동적이어서 부딪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힘들진 않았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제가 일이 끊기고 시어머니도 집에만 계시다 보니 주로 둘이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더 힘들어졌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장남인 제 남편에게 집착을 많이 하고 계시고, 남편과 손자인 제 아들이 먹는 것에 대해서도 병적이라고 할 만큼 집착을 많이 하십니다. 특히 제 아들 같은 경우에는 어릴 때부터 시어머니께서 억지로 먹으라고 권하는 바람에 트라우마가 생겼고, 할머니의 간섭이 싫기 때문에 집에서 나가고 싶다고 해서 대학교 2학년 때 1년 동안 나가서 살다가 군대에 갔고 며칠 후면 제대를 하게 됩니다.

시어머니가 음식에 집착을 하셔서 남편과 아들, 그리고 역차별이라고 느끼는 딸들 모두 불편해하고 있는데, 시어머니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고민이 됩니다. 시어머니는 남편과 아들이 어떤 일을 해도 무조건 편을 드시고, 잘못한 건 며느리인 제 탓을 하십니다.

앞으로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제가 같이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제 마음속에는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저랑 대화도 하고 가까이 있기를 원하시는데, 저는 특별히 시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픈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법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어머니께서 혼자 계시더라도 질문자가 살림을 줄이고 아파트 평수가 작은 곳으로 이사를 가서 따로 사는 게 좋습니다. 질문자는 20평짜리로 이사를 가더라도 시어머니는 25평 정도 되는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집을 얻어드리고 따로 사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와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서로 다른 가족이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질문자 혼자서 결정을 하면 안 되고, 남편과 대화를 해봐야 합니다.

지금 이렇게 같이 살면 질문자 입장에서 희망이라는 건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길밖에 없어요. 질문자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진 않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 세계에서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이 자꾸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다가 실제로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질문자 스스로 죄책감이 많이 들게 됩니다. 마치 질문자가 등 떠밀어서 돌아가시게 된 것처럼 죄의식이 일어나게 돼요. 그런 죄의식을 미리 방지하려면 한 가족이 아니라 이웃으로 사는 게 좋습니다.

원래 결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면 이제는 한 가족이 아니라 이웃입니다. 한 집에서 같이 살게 되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시어머니와 따로 사는 것에 대해 남편과 한 번 이야기해보면 어떨까요?”

“이야기를 한 번 해보긴 했어요. 남편에게는 누나도 있는데, 누님은 형편이 되는데 안 모시겠다는 입장이고, 남편은 어머님이 82세라서 이제 따로 살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족들 모두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같이 사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예요.”

“기정사실이라고 할 만한 건 없습니다. 시어머니가 82세면, 아직 특별한 질병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10년은 더 사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남편한테 이야기를 해보세요. 아이들도 다 컸는데, 질문자도 이제 독립된 어른으로 살아봐야죠. 안 모시겠다는 것도 아니고, 바로 이웃에 집을 얻어서 청소도 해드리고, 밥도 해드리는 겁니다. 설령 집에서 밥을 같이 먹더라도 잠은 따로 자는 게 질문자의 마음이 더 편해진다는 거예요.

실제로는 하루 종일 같이 지낸다고 하더라도 이웃집에서 놀러 와서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는 것과 아예 한집에 같이 사는 것은 다릅니다. 한집에서 같이 살게 되면 한집의 안주인이 두 사람인 꼴이에요. 그러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일단 시어머니를 이웃집으로 모시게 되면 질문자의 집에서는 질문자가 안주인이 되고, 시어머니는 이제 손님으로 오시는 거예요. 시어머니께 옛날보다 더 잘해준다고 하더라도 손님으로서 잘해주는 것과 안주인이 두 사람이라서 보이지 않게 시비하고 경쟁하는 것은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그러니 형편이 아주 나쁜 경우가 아니라면 시어머니를 따로 모시는 게 좋습니다.

만약 지금 사는 집이 35평이나 40평 정도가 된다면 질문자가 평수 작은 집으로 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두 집을 합하면 아무래도 넓은 공간에서 물질적으로 여유롭게 살 수가 있는데, 따로 살게 되면 시어머니의 생활비를 따로 드려야 하니까 물질적으로는 지금보다 어렵게 살게 되겠죠. 지금처럼 물질적으로 조금 여유롭게 살 것인지, 아니면 좁은 공간으로 가서 물질적으로는 조금 어렵게 살더라도 정신적으로 편안하게 살 것인지의 문제예요. 이걸 불효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따로 살고자 하는 건 질문자 입장에서 정당한 권리에 해당합니다. 다만 내 권리를 찾고자 시어머니를 내팽개치면 안 되겠죠. 시어머니는 남편 없이 평생 아들에게 의지를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시어머니에게는 아들인 동시에 심리적으로는 남편과 같은 존재입니다. 과거 호주제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남편이 있을 때는 호주가 남편으로 되어 있지만, 남편이 죽으면 호주가 아들이 됩니다. 남편은 아내의 주인이면서도 시어머니의 주인이기도 해요.

그러니 따로 모시는 걸 불효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런 인간의 도리를 생각하면서 남편과 대화를 나눠보세요. 대신 질문자는 그로 인한 불편함을 조금 감수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시어머니와 집을 따로 구하게 되면 반드시 질문자가 작은 집을 갖고 시어머니께서 큰 집을 갖도록 해 드려야 시어머니의 불만이 없어집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물질적인 부족을 감수하고 정신적인 안정을 누릴 것인지, 정신적인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물질적인 풍요를 누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시어머니께 큰 집을 드리고 질문자가 작은 집에서 살게 되면 나중에 아들이나 딸 중에 한 명이 할머니 집에 있는 남는 방에서 살겠다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볼 때는 특별히 수행을 하거나 마음을 고쳐먹지 않더라도 이렇게 살림을 분리하면 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질문자는 어떻게 생각해요?”

“제가 살림을 따로 하자는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꺼낸 적은 없는데, 한 번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아들은 5일 후에 제대를 하는데, 또다시 집을 나가서 살려고 할까 봐 걱정입니다.”

“아들은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까 집에서 나가서 살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질문자가 아들이 집에서 지내는 게 좋다고 생각을 하면 ‘아, 시어머니도 이런 심정이겠구나’ 하고 이해를 해야 합니다. 질문자가 아들에게 ‘너는 이제 스무 살이 넘었으니 나가서 살아라’ 하고 정을 끊을 수 있으면, 시어머니를 이웃으로 삼아도 됩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아들을 끼고 살면서 시어머니는 그렇게 못하게 하면 그건 아주 이기주의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들도 제대를 하고 오면 3일 정도만 집에 머물게 하고 바로 내보내야 합니다. 만약 시어머니를 따로 분리하고 우리 가족끼리는 같이 살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주 잘못된 생각이에요.

키울 때는 같이 사는 게 맞지만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었으면 나가서 살도록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면 질문자 부부만 살 집이 필요하니까 그에 맞게 살림을 줄이겠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자연의 원리에 맞춰서 살림을 줄여야 해요. 옛날 사람인 시어머니는 아들과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질문자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만약 아들을 내보내지 못한다면 질문자도 시어머니를 내보내면 안 됩니다.”

“아들은 들어와서 살 생각이 없고, 할머니 간섭 때문에 나가서 살았거든요.”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든 이번에 제대해서 나오면 아들은 나가서 사는 게 정상입니다. 이건 할머니 때문에 나가는 게 아니라 설령 집에 할머니가 안 계셔도 아들은 나가서 사는 게 정상이라는 거예요. 아들은 할머니와 관계없이 나가서 사는 게 맞습니다.

질문자가 아들을 걱정하듯이 시어머니도 자기 아들이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걱정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내가 아들을 걱정하듯이 시어머니도 남편에 대해 정당한 걱정을 한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들이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챙기고, 손자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를 챙기는 건 80세 노인의 유일한 관심사입니다. 그런 시어머니한테 관심을 갖지 말라고 한다거나 ‘우리가 알아서 먹습니다’ 하고 생각하는 건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그게 할머니의 유일한 관심사이기 때문에 할머니의 정당한 권리로 인정해야 합니다.”

“맞아요. 그게 시어머니의 유일한 관심사예요.”

“그러니 그걸 인정해야죠. 시어머니가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돼요. 만약 그게 싫으면 아이가 집을 나가서 사는 게 맞지, 그것에 관심을 두는 할머니가 잘못된 건 아닙니다.”

“그런데 딸들한테는 차별을 하시거든요.”

“질문자가 자꾸 그런 생각을 하니까 시어머니와 같이 살기 힘든 거예요. 시어머니는 나와 같은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평생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에요. 그런 시어머니한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거예요. 만약 스무 살 넘은 딸이 할머니가 그렇게 하는 게 싫으면 딸이 나가서 살아야죠. 그러니 그때 아이들 편을 들면 안 됩니다. 지금 질문자는 자기도 모르게 자식들 편을 들고 있어요. 그래서 시어머니를 미워하고 있는 거예요.

만약 시어머니가 아들과 며느리 사이에서 좀 공평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질문자 자신도 할머니와 내 자식들 사이에서 공평해야죠. 지금처럼 아이들 편만 드는 것 자체가 잘못된 자세예요.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꾸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겁니다. 시어머니의 행동은 그 시대에 태어나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더구나 남편 없이 살아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걸 바꾸라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불효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질문자는 죽을 때까지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시어머니와 집을 따로 사는 건 남편과 의논을 해봐야 하는데, 여기서 시누이의 의견을 많이 고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시누이가 지나치게 간섭을 하면 ‘그러면 당신이 모십시오’하면 됩니다. 시누이에게도 이렇게 떳떳하게 말해야 합니다.

‘시어머님이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제가 25년을 모셨고 지금 제 아들도 성년이 다 되었는데, 시어머님이 꼭 나쁘게 해서가 아니라 어른을 모시고 사는 일이 불편한 게 사실이지 않습니까. 저도 이제 조금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자기 집에서는 조금 편하게 누워 있고 싶은데, 시어머니가 들어오면 아무래도 마음 편히 못 누워 있잖아요. 그러니 이런 자신의 권리를 말하는 걸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사람이 갖는 정당한 권리예요.

물론 질문자가 ‘시어머니를 모시면 내가 배우는 것이 많아서 좋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권리를 포기하는 건 괜찮지만, 의무적으로 권리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시어머니를 방치해선 안 되겠죠. 시어머니가 나보다 더 좋은 조건에서 사실 수 있도록 대우를 해드리면서 내 권리를 찾는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식을 끼고 살면서 시어머니는 그러지 못하게 하면 안 됩니다. 또 할머니와 손자 사이에서 질문자가 자식편을 들게 되면 그때는 ‘내 마음이 이런 것처럼 어머님도 늘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자기 아들인 남편 편을 들겠구나 ’하고 시어머니를 이해해야 합니다. 80세 넘은 노인이 지금까지 남편 없이 아들에게 의지하고 살았는데 아들편을 드는 게 당연하지, 그걸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오히려 시어머니가 남편편을 안 들면 ‘어머니, 아들편을 들어야죠. 어머니가 남편편을 안 들면 남편이 섭섭해 해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럴 정도로 마음을 탁 내야 질문자가 괴롭지가 않습니다.”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게 아니라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편을 들 수밖에 없는 것이 진리라는 거예요. 시어머니의 권리만 인정해주면 되는데 무슨 노력이 필요해요? 원래 시어머니 소유인 것을 시어머니 소유라고 인정하는 건데 무슨 노력이 필요해요?

‘사실을 알고 보니 아무 할 일 없네. 본인 아들 간섭하고 본인 손자 간섭하는데 간섭하든지 말든지 시어머니 권리니까 놔두면 되겠네. 아무 할 일 없네. 오히려 내가 쓸데없이 이 일 저 일에 신경 써서 머리 아프게 살았구나.’

이렇게 간단명료해져야 일이 쉽게 풀리지 잘못 생각해서 각오하고 결심하면 작심삼일로 끝나요.” (웃음)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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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

저도 글쓴이와 사정이 똑같은 사정인데 남편은 삼남삼녀중 막내인데 22년을 같이살고있네요~~ㅠㅠ 한번은 따로 살려고 했는데 남편이 싫다해서 못했지요ㅠㅠ 저의 해방은 언제일지~~

2021-11-10 19:59:06

ㅎㅎ

권리만 인정하면 되는구나.. 감사합니다

2021-11-01 17:15:53

고미소

저는 나이들어서 안저래야지 싶네요

2021-10-28 08:5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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