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0.14 예초 작업, 도문 큰스님 인사
“수업 중에 학생이 저에게 욕설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스님은 작업복을 입고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서 저수지 경사면에 예초기를 돌리는 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안면보호구를 착용하고, 앞치마를 두르고, 예초기를 들고 저수지에 올랐습니다. 지난여름에 깨끗하게 예초 작업을 했지만 두 달 만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어제는 감나무 아래 경사면만 예초를 했는데, 오늘은 어제 작업한 곳에 이어서 경사면 전체를 예초했습니다.

경사면에 서서 이동하면서 예초기를 돌려야 하다 보니 조금만 중심을 잃으면 몸이 휘청 하면서 넘어질 뻔했습니다. 평소보다 더 많은 힘이 들었습니다.

“땀이 정말 많이 나네요.”

땀을 콩죽처럼 흘리면서 경사면 위와 아래를 오가며 예초를 해나갔습니다.

한 시간 동안 작업을 한 끝에 경사면 전체에 난 풀을 깨끗하게 벨 수 있었습니다.

“이제 좀 시원해졌네요.”

예초기의 시동을 끄고 시계를 보니 벌써 8시가 넘었습니다.

“아이고, 9시에는 출발해야 해요. 어서 내려갑시다.”

저수지에서 내려가는 길에도 군데군데 자란 풀들을 계속 베면서 내려갔습니다.

오늘은 은사 스님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을 찾아뵙기로 한 날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큰스님을 만나는 것을 가능한 조심을 해왔는데, 오랜만에 수확한 농산물을 챙겨서 큰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방금 수확한 상추와 잎채소, 호박, 땅콩과 밤을 챙겨서 차에 싣고 고속도로 위를 달렸습니다.

부산 중생사에 도착해 도문 큰스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오전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시 차로 달려 오후 2시에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후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본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하고, 하루 종일 정토대전 성전팀 법사님들과 함께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8일 금요 즉문즉설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수업 중에 학생이 저에게 욕설을 했습니다

“저는 교직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수업 중에 학생이 저에게 욕설을 했습니다. 그 충격으로 학교에는 병가를 냈습니다. 3개월 정도 상담과 치료에 집중한 후 복직하려고 했으나, 막상 복직이 임박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이 되어서 복직을 한 달 더 연장하였습니다. 이제는 병가를 더 연장하지 않고 한번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학교에 복직하기로 하였으나, 그 학생과 그 반 학생들의 얼굴을 보고 수업을 할 자신이 없습니다. 또한 그 학생을 대면했을 때 비슷한 상황이 다시 재연되어 제 마음이 더 힘들어져 휴직까지 하게 되는 결과가 오게 될까 두렵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학생이 교사에게 욕설한 것은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질문자에게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그 일 때문에 병가를 내고 다시 학교에 복직하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다면 질문자는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매우 나약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욕설한 그 학생을 문제라고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학생으로 인해서 내가 정신적으로 매우 약한 성향이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즉문즉설을 해보면 ‘학교 선생님이 자기 아이를 야단쳐서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다’, ‘자기 아이가 친구와 싸우고 나서 학교 부적응자가 되었다’ 이렇게 하소연하는 학부모님들이 가끔 있는데, 그것은 맞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신적인 질병이 잠재되어 있다가 그 사건을 계기로 해서 발병을 했다고 봐야 합니다.

첫째, 질문자의 현재 상태가 그렇다면 치료를 더 해야 합니다. 사실 그 아이를 보느냐 안 보느냐는 핵심이 아니에요. 만약 이런 환경에서는 치료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교직을 그만둬야 합니다.

둘째, 학교에 사정을 얘기하고 담임을 그 반이 아닌 다른 반으로 배정받거나, 그 반의 수업을 들어가지 않도록 요청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 학생 때문이 아니라 질문자에게 상처가 재발하는 나약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맞춰서 생활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셋째, 만약 질문자의 정신이 건강하다면 조금 떨리기는 하겠지만 하루만 견디면 됩니다. 방금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에 실시간 댓글창에 ‘처음에는 불안하고 서먹서먹했는데 막상 해보니 괜찮았어요’ 하고 올렸던 것처럼 지나 놓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니에요. 질문자가 만일 정신적으로 비교적 건강한데 일시적인 트라우마로 지금 이런 고통을 겪고 있다면, 무조건 수업에 들어가면 됩니다. 얼굴 보기 전까지만 이렇게 두렵지, 막상 수업에 들어가 버리면 끝이에요. 아침에 일어날 때 ‘일어나야지’ 하고 결심하는 건 일어나기 전에 결심을 합니까? 일어난 후에도 결심을 합니까?”

“일어나기 전에 결심을 합니다.”

“그렇죠. ‘일어나야지’ 하는 것은 아직 안 일어났다는 반증입니다. 그 말은 누워서 하는 말이에요. ‘일어나야지’ 하고 있지 말고 벌떡 일어나야 합니다. 벌떡 일어나버리면 ‘일어나야지’ 하는 결심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딱 일어나버리면 끝이에요.

그런데 질문자는 안 일어난 상태에서 계속 ‘일어나야지’ 하고 있는 겁니다. 어디에 가야 할 일이 있는데도 ‘가야 하는데’ 하고 되뇌는 것은 안 갔을 때 하는 말이에요. 출발했으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일어나야지’ 하고 있는 것은 일어나고 싶은 게 아니라 일어나기 싫은 겁니다. ‘가야지’ 하고 있는 것은 가고 싶은 게 아니라 가기 싫은 거예요. ‘줘야지’ 하고 있는 것은 주고 싶은 게 아니라 주기 싫다는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겁니다. 이것은 결심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입니다.

질문자가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라면, 욕설한 학생을 어떻게 만날지 고민하는 것은 만나기 전의 문제이지 막상 얼굴을 보면 그 고민은 온 데 간 데 없어집니다. 그냥 눈 딱 감고 학교에 출근해서 하루만 지나면 사라질 고민이에요. 그런데 그 반에 들어가서 하루가 지났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이 된다면 질문자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나약한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일단 질문자가 그 반에 들어가서 학생들을 만나보는 것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니까 우선 학교에 출근을 해보세요. 그 반에 들어가서 첫째 날도 수업을 해보고, 둘째 날도 수업을 해보고, 셋째 날도 수업을 해보니까 별거 아니라는 마음이 들면, 질문자는 교사로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첫째 날 보는 것보다 둘째 날 보는 것이 더 힘들고, 셋째 날 보는 것도 더 힘들다면, 질문자는 장기 병가를 내고 치료를 받거나 휴직을 해야 합니다.

욕설을 한 아이의 문제는 아니에요. 아이가 나에게 욕설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이런 일이 생긴 겁니다. 그러니 그 아이를 미워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학생이 앞으로 또 그런 문제행동을 일으킨다면 교장 선생님께 얘기해서 그 학생이 반을 옮기게 하든지 전학을 가게 하든지 해야지 선생님이 도망을 가는 것은 선생님 자격이 좀 부족하다고 자인하는 것이 아닐까요? 일단 자기 상태를 점검한다고 생각하고 학교를 가보세요.”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 그 상황을 바라봤을 때 제 마음이 많이 약해진 상태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이 더 충격으로 와닿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님 말씀처럼 제가 학생을 교화시켜야 할 입장인데, 제가 학생으로 인해 더 힘들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마음을 좀 강하게 다잡고 교실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교실에 들어가 봐서 도저히 안 되면 그때는 병원에 한 번 가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전체댓글 45

0/200

조정민

마음과 정신건강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1-10-20 00:18:44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1-10-19 16:11:20

한미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ㆍ

2021-10-19 14: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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