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7.17 천일결사기도, 경전대학과 불교대학 즉문즉설, 행복학교 특강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 후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혀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새벽 4시 30분부터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맑은 종소리가 랜선을 타고 전국의 정토행자들에게 울려 퍼졌습니다.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

5시 정각에 정토행자 만일결사 중 제10차 천일결사, 제5차 백일기도 중 90일째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독송 순서로 천일결사 기도를 잘 마쳤습니다.

스님은 오늘 읽은 법구경 구절이 뜻하는 바에 대해 30분 간 법문을 한 후 내일 있을 제6차 백일기도 입재식을 안내했습니다.

“내일은 정토회 만일결사, 열 번째 천일결사 중 마지막인 제10차 천일결사, 그 중 6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있는 날입니다. 오늘로써 제10차 천일결사의 절반이 지나게 되고, 내일부터는 나머지 절반이 시작됩니다. 내일 아침 기도까지 잘해서 10차 천일결사 전반부를 잘 마무리하시고, 입재식에 한 분도 빠지지 말고 참석해서 후반부를 힘차게 시작합시다.”

생방송을 마치고 스님은 작업복을 입고 산 아랫 밭으로 향했습니다. 행자님 한 명이 스님과 함께 예초기를 메고 뒤를 따랐습니다.

“오늘은 산아랫밭에 풀을 맵시다. 강의하기 전까지 한 시간 정도는 예초기를 돌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가을배추를 심을 준비를 하나씩 해 나갑니다. 감자를 캐고 빈 밭에는 어느새 풀이 수북이 자라 있었습니다. 예초기로 밭에 풀을 벴습니다. 베어진 풀잎들은 흙과 갈아 거름으로 쓰기 위해 그냥 뒀습니다.


비탈이 심한 경사면에도 풀이 많이 자라 있었습니다. 밭에 난 풀을 다 베고 스님은 사면으로 갔습니다.

그냥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사면이 가팔랐습니다. 스님은 중심을 잡아가며 예초기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니 힘드네요. 반대편으로 가야겠어요.”

반대편으로 가서 예초기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초기를 한참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9시부터 강연을 해야 해서 시간이 넉넉지 않았습니다. 비를 맞으며 비탈진 경사면에 있는 풀을 깨끗이 베어냈습니다.

소나기가 그치자 울력을 마쳤습니다.

“아이고, 힘드네요. 예초기로 풀을 베는 게 힘든 게 아니라 경사면에서 균형을 잡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스님의 작업복은 온통 땀으로 젖었습니다. 힘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지 스님의 목에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경전대학 반야심경 즉문즉설

서둘러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9시부터 경전대학 학생들과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경전대학 학생들은 얼마 전 반야심경 수업을 마쳤습니다. 그동안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마음 나누기를 하며 궁금했던 점이 많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솔직하게 묻고, 의문점을 해소하는 시간입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받은 결과 7명이 최종 선택되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하여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는데 걱정과 불안에 자꾸 사로잡힌다며 어떻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 후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혀요

“코로나 확진자 접촉으로 14일간 자가격리를 하면서 정토회가 온라인 체제로 운영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반야심경에서 ‘오온개공 도일체고액(五蘊皆空 度一切苦厄)’에 대해 배우고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코로나 확진자와 식사를 해서 감염 확률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함께 식사했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열이 오르는 것 같고, 목에 통증이 있는 느낌이 들고, 걱정과 불안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이때 ‘오온개공’을 떠올리며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계속 생각과 감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제가 겪었던 코로나 자가격리 상황에서 어떻게 ‘오온개공’의 가르침을 저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질문자는 ‘오온개공(五蘊皆空)’을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 제법이 공한 도리를 체험한 것은 아닙니다. ‘고집멸도’라는 용어를 알고 그걸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지, 사성제를 증득한 게 아닌 겁니다. 또한 ‘중도’라는 용어를 알고 있을 뿐이지, 자기 삶이 중도적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이는 마치 자전거를 타는 방법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자전거를 타보려고 하면 현실에서는 넘어지는 거죠. 자동차에 대해 가격, 성능, 운전법 등을 잘 알고 있지만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 본 경험이 없으면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막상 자동차를 타고 보면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가 다릅니다.

이처럼 지식은 지식일 뿐입니다. 설령 지혜에 대한 지식이라고 해도 그건 지식일 뿐이지 지혜가 아닙니다. 그런 지식은 실전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자동차에 대해 열심히 공부를 한 다음 자동차를 실제로 타봤더니 사고가 난 것과 같아요. 그래서 ‘아는 것과 실전은 다르구나’ 하고 알게 된 겁니다. 실전에 들어가면 이렇게 사고가 나고, 저렇게 사고가 나고 하면서 점차 배워나가는 거예요.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하고 격리 생활을 해야 하는 일이 막상 나에게 닥치니까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는 운전을 안 하겠다고 할 게 아니라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는 게 아니라 이럴 때는 왼쪽으로 꺾는 것이구나’ 하고 깨닫는 경험을 통해 점점 운전을 잘하게 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불안감 때문에 몸에 열이 나면 우선 ‘내가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코로나에 걸렸다면 의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되지 괴로워할 필요가 없어요. 만약 체온계로 몸의 온도를 쟀는데 온도가 높다면 몸에 뭔가 이상이 있다는 걸 알 수 있고,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열감이 느껴진다면 코로나에 걸렸을까 봐 무의식에서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상태를 점검하고 자각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질문자는 ‘오온개공’을 지식으로 알고 있지 실제로 삶에 적용을 못하고 있는 겁니다. 지식으로 안다고 해서 해탈을 할 수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이 다 해탈할 수 있었을 거예요. 대학교에서 불교 전공을 하고 박사학위를 따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님도 부부 사이에 싸울까요, 안 싸울까요?”

“싸웁니다.”

“그런 교수님도 자식이 공부 안 하고 말 안 들으면 성질이 날까요, 안 날까요?”

“성질이 납니다.”

“이렇게 보면 지식과 수행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질문자도 ‘오온개공’이라는 원리가 있다는 걸 배우긴 했는데, 아직 그걸 체험하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대신 이런 경험을 통해 ‘아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다르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이를 두고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고 표현합니다. 믿고, 이해하고, 실천하고, 증득하는 네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질문자는 이제 겨우 이런 원리가 있는 걸 이해한 단계입니다. 앞으로는 이 원리를 일상에서 경험을 해야 합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이론적으로 배운 다음 실제로 자전거를 타보면 수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됩니다. 일상에 배움을 적용한다는 건 이와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안 되는 과정을 계속 겪어가면서 ‘이번에는 여기에 집착했구나’, ‘이번에는 저기에 집착했구나’, 이렇게 계속 안 되는 걸 찾아서 점검하면서 조금씩 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토회에서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하루를 점검하고 정진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막상 적용하려고 하면 처음에는 잘 안 되죠. 반야심경 공부를 하면서 ‘나라고 할 것이 없다’ 하고 배우는데 일상생활에서는 늘 ‘나’라는 것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잘 살펴보면 우리의 의식이 ‘나’라는 것을 만들고 있을 뿐 ‘나’라고 하는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막연히 그런 것이 잡히고 있을 뿐이죠.

요즘 자동차에는 경보기가 달려서 다른 사람이 자동차를 건드리면 경고음이 울립니다. 이때 자동차에 누가 있어서 그런 경고음을 내는 게 아니라, 자동차에 그런 프로그램이 깔려있는 거예요. 그런 것처럼 우리에게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라는 다섯 가지 작용이 일어납니다.

‘색(色)’이란 눈으로 보고 알고, 귀로 듣고 알고, 코로 냄새를 맡고 알고, 맛을 보고 알고, 감촉을 통해 알고, 생각을 통해 아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작용에 따라 기분 좋고 기분 나쁨이 일어나는 것이 ‘수(受)’입니다. 아는 것을 분류하고, 저장하고, 기억하고, 재생하는 작용이 ‘상(想)’이고, 그로 인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와 의지가 일어나는 작용이 ‘행(行)’이고, 그것이 습관화되어 분별하는 작용이 ‘식(識)’입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의 작용이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에게는 이 다섯 가지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말도 하고, 듣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질문하기도 하고, 답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이 작용의 주체라고 할 어떤 특정한 존재가 있습니까? 앞으로 자율주행차가 나오면 자동으로 움직일 텐데, 여기에 어떤 주체가 있습니까? 주체는 없습니다. 그렇게 작동되도록 하는 프로그램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 것처럼 인간에게도 이 다섯 가지의 작용이 있을 뿐입니다.

몸에서 열이 날 때 다만 ‘지금 열이 나네’ 하고 알고, 불안할 때 다만 ‘지금 불안한 마음이 일어나네’ 하고 알면, 괴롭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런 작용이 있을 뿐이니까요.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나면 보는 작용이 있고, 따뜻한 게 느껴지면 좋아하는 작용이 있을 뿐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나는 어머니도 아니고, 딸고 아니고, 아내도 아닙니다. 그냥 인연이 맺어지면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하고, 딸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아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나에게는 어머니라는 특성도 없고, 딸이라는 특성도 없고, 아내라는 특성도 없습니다. 그냥 그 조건에서 인연이 맺어지면 그렇게 작용할 뿐입니다. 이때는 어머니 역할을 하고, 이때는 딸 역할을 하고, 이때는 아내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조건에 따라 다르게 역할을 할 뿐이지 나에게 어머니라고 할 만한 본질적인 속성, 딸이라고 할 만한 본질적인 속성, 아내라고 할 만한 본질적인 속성은 없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질문자는 아내의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아내가 아닙니다. 내가 그런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만약 코로나에 걸렸으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격리가 필요하면 격리를 하면 됩니다. 그런 것에 대해 어떠한 집착도 없으면 비록 육체적 통증이 있거나 움직임에 제한이 생기지만 괴롭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나에 대해 집착하고 있어요. 집착이 있으니까 두려움이 있고, 두려움이 있으니까 열이 나는 것 같고, 여러 가지 불안한 심리현상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 걸 보면서 ‘나에 대한 집착이 있구나’ 하고 자각하면 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야심경을 공부하고 나서 궁금한 점에 대해 7명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하여 자가 격리를 하고 있다는 분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 제가 불법(佛法)을 지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실천하고 증득하기 위해 수행 정진을 꾸준히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에 대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경전대학 학생들은 다음 주부터 반야심경 공부를 마치고 선불교의 핵심이 담긴 육조단경을 공부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일상이 바로 수행임을 강조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일상이 바로 수행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처해 봄으로 인해 부모를 이해하기도 하고, 타인을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일부러 어려움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어려움을 굳이 피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은 인생에 큰 공부가 됩니다. 앉아서 참선하고 염불하는 것만 수행이 아니라 온갖 삶의 난관들이 다 공부입니다. 화를 벌컥 내면서도 ‘내가 이런 것에 걸리는구나’, ‘이 문제를 건드리면 내가 발끈하는구나’, ‘여기에 내 상처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도 ‘여기에 돌뿌리가 있구나, 다른 사람들도 넘어질 수 있으니 캐내야겠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일상사가 바로 수행입니다. 그렇게 공부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손을 흔들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다음 시간을 기약했습니다.

생방송이 끝나자 아도 모례원에서 오늘 아침에 봉사자들이 수확한 옥수수가 트럭 가득히 실려서 도착했습니다. 대구경북지부 봉사자들이 정성껏 옥수수를 수확해서 두북 수련원으로 보내왔습니다.

스님은 그중 옥수수 400개를 차에 싣고 자재요양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요양병원에 도착해 식당 앞에 차를 주차하고 옥수수 200개를 내렸습니다. 박스로는 총 4개의 박스였습니다.

“오늘 아침에 수확한 옥수수예요.”

원장인 능행스님이 소식을 듣고 달려 나왔습니다.

“아이고, 스님. 또 가져오셨어요? 감사합니다.”

능행스님은 박스를 뜯어서 옥수수 껍질을 까서 직접 확인을 해보았습니다.

“정말 잘 익었네요. 이 옥수수는 잘 삶아서 환자분들이 맛볼 수 있게 하겠습니다.”

다음 강연 시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인사만 하고 곧바로 요양병원을 나왔습니다. 차에는 200개의 옥수수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이건 거제 애광원에 가져다 주세요. 수박도 10개 사다 주세요. 저는 강연이 있어서 돌아가야 하니까 법사님이 대신 좀 다녀와 주세요.”

향존 법사님과 봉사자 한 분이 스님을 대신해서 거제 애광원까지 옥수수 배달을 다녀왔습니다.

행복학교 특강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온 스님은 오후 2시부터 행복학교 특강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간은 행복학교 참가자들이 수업 과정에서 생긴 궁금증을 해소하고 관계편과 심화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게 안내하기 위해 마련된 시간입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요즘 코로나 확산으로 외출도 쉽지가 않죠. 주말에도 마음껏 움직일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학교의 모토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놓여도, 그러한 조건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 조건 속에서 내가 행복하게 살 것인가, 괴롭게 살 것인가는 나의 선택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대화를 하면서 ‘지금까지는 이렇게 봤는데 다르게 볼 수 있구나’ 하는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화상으로 5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회사에서 상사와의 갈등, 욕심, 질투, 양극화 문제, 환경 문제로 인한 갈등 해결 방안 등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은 행복학교의 비전을 강조했습니다.

“요즘은 한류라고 해서 외국인들도 한국의 K팝을 따라 배우잖아요.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환경실천도 우리가 모델을 만들고, 민주주의도 우리가 모델을 만들고, 경제 평등도 우리가 모델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이런 의기가 있으면 좋겠어요. 늘 따라 배우기, 모방하기 교육만 받고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이제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행복학교를 세계적인 명품으로

앞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에 가서 행복학교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공부해서 자기 나라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 이렇게 창조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행복학교는 앞으로 전 세계적인 명품이 될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 전 세계 사람들이 행복학교 프로그램을 배우고 벤치마킹해서 자기 나라 국민들에게 맞게끔 적용하는 시대가 올 거예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또 업그레이드를 해나가게 될 겁니다. 이렇게 우리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수출하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우리는 세계 문명의 선도자, 앞서가는 사람의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한 시민이었다면, 이제 여러분들은 우리나라를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고,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행복학교라는 좋은 모델을 만들게 되면, 전 세계가 이런 방향의 마음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 스스로 ‘한 발 앞서가는 사람이다’ 하고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그에 비해 가방을 뭘 들었는지, 화장품은 뭘 쓰는지, 귀걸이는 뭘 걸었는지, 옷은 뭘 입었는지, 이런 건 별로 안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스님에게는 옷을 뭘 입었는지, 음식을 뭘 먹었는지가 별로 안 중요합니다. 그것보다 이런 행복학교를 창조하고 세상에 확산시키고, 또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혜택을 입는 것에 더 중요한 의미를 둡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생각을 한번 바꿔보면 어떨까요? 행복학교 마음편을 공부한 사람은 관계편으로 넘어가고, 관계편을 공부한 사람은 심화과정으로 넘어가고, 심화과정을 공부한 사람은 행복시민이 되고, 행복시민이 된 사람은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더 발전하고, 평화가 더 정착될 수 있게 적극적으로 실천을 해보면 어떨까요? 이런 제안을 드리면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세계적인 명품이 될 수 있는 행복학교를 만들어갈 것을 다짐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옥수수 선물 포장을 하고 있는 창고로 가 보았습니다. 행자님들이 아도 모례원에서 아침에 수확해 온 옥수수를 박스마다 정성스럽게 포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물 포장을 다 했어요?”

“정토 옥수수라고 스티커도 붙였습니다.” (웃음)

“선물로 보내는 것이니까 잘 포장해 주세요.”

택배 발송비가 많이 나오는 것이 염려가 되었지만 그래도 도움 주시는 분들에게 이렇게라도 정성을 표시하기로 했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스님은 옥수수를 삶아서 논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오후에는 마산에서 거사님 두 분이 와서 논둑에 풀을 베어 주기로 했습니다. 날이 뜨거워서 목이 많이 마를 것 같아 얼음물도 함께 챙겼습니다.

“아이고, 예초기 돌리는 솜씨가 굉장하네요. 우리 행자들보다 훨씬 빨라요.”

거사님들은 이미 논 네 필지를 다 끝내고 다섯 번째 논에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같이 해야 하는데 오늘 강의가 하루 종일 있어요. 더운데 고생이 많습니다. 대신에 참을 챙겨 왔어요. 옥수수 맛있게 삶아 왔으니까 작업 마치고 드세요.”

“감사합니다.”

논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논 주변에 풀이 아주 깔끔하게 베어져 있었습니다.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오후 5시부터는 2차 만일결사 준비위원회와 화상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9월 25일 온라인 정토회 정식 출범을 앞두고 여러 가지 쟁점 사항에 대해 함께 검토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불교대학 근본불교 즉문즉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불교대학 학생들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온라인 불교대학 학생들 12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학생들이 한 달 뒤에 불교대학을 졸업하게 되기 때문에 스님은 졸업의 기준이 무엇인지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한 달 후면 여러분들 모두 불교대학을 졸업하게 됩니다. 입학할 때를 돌이켜보면서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얼마나 좋아졌는지의 기준은 돈을 더 많이 벌었는지, 지위가 더 높아졌는지, 더 건강해졌는지가 아니에요. 얼마나 괴로움이 없어졌는지, 시비분별이 없어졌는지, 슬픔이 없어졌는지, 화와 짜증이 줄어들었는지 여부입니다.

물론 불교대학은 강의를 듣고, 수업에 참가하고, 출석일수를 채우면 형식적인 졸업이 이루어집니다. 그렇지만 진짜 졸업의 기준은 내가 입학할 때보다 괴로움이 줄어들었느냐 여부입니다. 삶의 기운이 더 생겼다면 그것이 진정한 졸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경험을 해오고 있다면 다행이고, 그런 경험을 아직도 못하고 입학할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인생이 괴롭다는 분들은 한 달 남은 기간 동안 마음을 다잡아서 바짝 공부를 하시기 바랍니다.”

불교대학 학생들은 얼마 전 근본불교 과정 수업을 마쳤습니다. 불교 교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불교 교리는 어렵고 복잡한 내용들이 많아서 질문도 많았습니다. 7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참나가 없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 그렇다면 불성도 없는 것 아니냐며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말한 ‘무아’와 ‘불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참나가 없다면 불성도 없는 것 아닌가요?

“지금은 비록 어리석어서 괴로움에 빠져 있지만 미혹과 무명을 타파하고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불성(佛性)이 있어서 그걸 발견하면 부처가 되고, 그런 불성은 영롱한 무언가라고 생각하면 이는 힌두교 사상이 됩니다.

모든 사물에는 작용만 있을 뿐입니다. 가령, 자동차는 움직이기도 하고, 불도 밝히고, 소리도 냅니다. 그런 자동차를 보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동차에 어떠한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차를 분해하고 나면 자동차에는 어떠한 실체도 없습니다.

그런데 부품을 다 모아서 정교하게 조립한 자동차는 움직이기도 하고, 불도 밝히고, 소리도 냅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마치 그런 작용을 하는 주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데, 그것이 무지(無智)입니다. 그렇게 착각해서 이 차는 A차, 저 차는 B차 이렇게 실체가 있는 것처럼 분류하지만, 실제로 분해해 보면 거기에는 아무런 실체가 없습니다. 다만 부품들이 정교하게 조립되어서 거기에 움직이는 작용, 불을 밝히는 작용, 소리를 내는 작용이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무아(無我)는 ‘자동차가 없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자동차는 존재합니다. 그런 것처럼 나에게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하는 작용이 있습니다. 이때 실체가 없으니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단견(斷見)이고, 작용이 있으니까 여기에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견(常見)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단견도 아니고 상견도 아닌, 다만 작용이 있고 신의 분신인 ‘아’라는 작용의 주체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확연히 깨달으면 괴로워할 일이 없습니다.

교리는 부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후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주석을 달고 원리를 풀어놓은 것입니다. 부처님의 설명은 주로 대화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로 언어를 고정화시키고, 언어로 표현된 것에 실체가 있다는 방식으로 사고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불법(佛法)을 제대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 어떻게 부처가 되는가? 불성을 발견하면 된다.’

이렇게 표현을 하면 마치 우리의 마음속에 ‘불성(佛性)’이라고 하는 어떤 불변적 실체 같은 게 있다는 방향으로 사고가 흘러가버립니다. 지금의 나는 허상이고 진짜 나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힌두교 방식의 믿음입니다.

‘불성’에 대한 질문자의 생각이 잘못된 건 아니에요.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로서의 불교에서는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고, 이 역시 하나의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인간 붓다의 근본 가르침에는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불성이 있다’ 하는 말을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견주어서 해석하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 하는 뜻입니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열반과 해탈에 이르는 것입니다. 열반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뜻하고, 해탈은 자유로운 상태를 뜻합니다. 누구나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은 한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미국 사람도, 팔이 하나 없는 사람도, 어릴 때 성추행 당한 사람도, 어릴 때 가난하게 자란 사람도 지금, 여기, 사실에 깨어 있으면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다 보니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오늘은 강연과 화상회의가 총 다섯 번이나 연달아 있었습니다. 아주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정토회 만일결사, 10차 천일결사 중 6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입재식을 한 후 오후에는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0

0/200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1-08-18 19:35:23

김병윤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끝이 나지 않는 일정을 보며 놀랐습니다. 강연과 화상회의가 하루에 총 다섯번이라니...중간에 농사일도 하시고, 걱정도 되면서 찡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2021-07-30 12:05:57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1-07-28 06:26:11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