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7.6. 결사행자 회의
“갑질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엊그제부터 장마가 시작되어 연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3일 간 스님은 하루 종일 새 책 출간을 위해 원고 교정 업무를 보기로 했습니다. 아침부터 원고를 보기 시작해 밤늦게까지 교정을 보았습니다.

중간에 오후 1시부터 3시 30분까지는 온라인으로 결사행자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결사행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먼저 스님이 오늘 결사행자 회의를 소집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짓기 전부터 건물 관리를 자원봉사 시스템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 여러 번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담당자들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고, 법적인 조건 역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참여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해서 결국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원봉사 시스템으로는 도저히 어렵고 전문가를 고용해야 한다는 문제가 다시 제기된 상황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가 건물 관리 노하우를 배워서 자체 관리를 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 방법이 최선이겠죠. 그래서 전문 회사가 우리를 컨설팅해주는 방식으로 건물 관리를 하는 방안도 제안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났을 때 긴급대응은 어렵다는 겁니다.

만약 전문 회사에 위탁 관리를 맡기는 걸로 결정이 된다면, 정토회가 공식적인 행사는 그 건물에서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고용해서 살지 않는다는 것이 수행자가 지켜야 할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개원 기념 백일 법문은 취소를 하거나 연기되어야 하며 두북 수련원에서 온라인으로 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이런 상황이니까 오늘 결사행자 여러분들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모아 주시고, 그 결과를 지부장 회의에 올리고, 최종적으로는 전체 회원들의 결정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니 장단점에 대해 충분히 토론을 하셔서 의견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불사위원회로부터 현황과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 자세한 보고를 받은 후 본격적으로 토론을 해보았습니다.

전문회사의 직원을 고용하여 위탁 관리를 2년 간 받는 방안, 공동체 상주 대중이 전문 회사의 컨설팅을 받아서 건물 관리를 하는 방안 등 다양한 방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발언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표결을 통해 결사행자 전체의 의사를 확인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표결을 지켜본 후 스님의 닫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일단 결사행자들의 의견이 모아졌으니까 지부장 회의를 비롯해 전체 회원들의 의사도 신속하게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사홍서원으로 회의를 마쳤습니다.

창밖에는 계속 비가 내렸습니다. 이후에도 스님은 밤늦게까지 새책 원고 교정 업무를 계속 보았습니다.

내일은 백중 날을 49일 앞두고 백중기도 입재식이 온라인 생방송으로 진행됩니다. 그 외 시간에는 새 책 원고 교정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일 금요 즉문즉설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갑질을 당했다고 느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할 때 상대방을 어디까지 배려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예전에 잠깐 일하던 곳에서 저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분과 불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저를 무시한다고 느꼈고, 그분도 제가 본인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그분에게는 개인적으로 불만이 많았지만 제 입장만 고수할 수 없어서 그분 요구를 들어주다 보니 그분보다 직책이 낮았던 저는 감정적인 갑질을 당했다고 느꼈고, 지금까지 몇 년이 지났지만 그 기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스님께서는 타인의 반응에 집착하지 말고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과부하도 감당해야 할 때가 있다고 하시는데, 제가 보기에 이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배경과도 연결된 것 같습니다. 제 행복을 찾는 것과 제 사회적 신념을 고수하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건 딱히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도입니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 요인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바로 자연이었습니다. 초원에서는 야수의 습격이 인간에게 큰 위협이 되고, 때로는 비가 많이 오는 것이 위협이 되고, 때로는 비가 너무 안 오는 것이 위협이 됩니다. 산이 가로막고 있다, 바다가 가로막고 있다, 날씨가 덥다, 날씨가 춥다 등 자연조건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였습니다.

이런 자연을 내가 사는 데 맞게끔 바꾸는 것이 ‘개발’입니다. 인간은 자연개발을 통해서 삶의 장애를 덜 받는 쪽으로 발전해왔습니다. 또 이런 과정 속에서 자연을 개발하는 게 곧 발전이라는 관념이 굳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자연 개발을 생태계가 스스로 복원할 수 없을 정도로 해버려서 오히려 자연이 파괴되었습니다. 과거에 발전이라고 생각한 개발이 기후위기를 불러일으켜서 인간에게 오히려 큰 손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내가 내 발등을 찍은 꼴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연을 지나치게 개발해서는 안 된다’ 하는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장애를 덜 받도록 하는 개발이 필요하지만, 자연생태계를 해칠 정도로 지나치게 개발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환경 문제에 있어서 ‘중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환경운동이 이번에는 ‘무조건 자연을 보호해야 된다’ 하는 쪽으로 흘러가서 거꾸로 자연이 절대화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을 위해서는 사람이 죽든 말든 신경을 안 쓰게 되는 결과가 빚어집니다. 사람보다 자연이 더 가치가 있고, 사람보다 새가 더 가치가 있고, 사람보다 나무가 더 가치가 있고, 사람보다 나비가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또한 극단에 치우친 것입니다. 항상 이 두 가지 사이에 조화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해 정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먹는 것에 너무 집착해서 많이 먹거나 음식을 탐하게 되면 도리어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그러니 그 어떤 것도 지나치면 나쁩니다. 그런 관점에서 둘 중 어느 하나만 선택한다는 건 없습니다.

‘배고프면 먹어야 한다’ 하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먹으면 건강을 해치게 되고, 게다가 다른 사람 것을 뺏으면 그 사람과 갈등이 생겨서 결국 나에게 손실이 생깁니다. 먹는 것은 정당하지만 때에 따라먹는 것을 자제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이해와 부딪힐 때는 그 사람의 입장도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서 상대방의 눈치만 보고 사는 것도 극단으로 치우친 겁니다. 즉,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는 것도 선택 사항이 아니고, 상대방의 눈치만 보는 것도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이 사이에서 적절한 조절이 필요합니다.

우선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대로 살다 보면 상대방과 부딪히는 일이 생깁니다. 그때는 상대방을 고려해서 배려하면 됩니다. 배려가 지나쳐서 눈치 보고 살면 내 자유가 억압이 되고, 내 자유를 너무 내세우면 상대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기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그 갈등은 결국 나에게 손실을 가져옵니다.

질문자는 자꾸 ‘이게 옳으냐, 저게 옳으냐’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극단주의적 사고방식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내 자유를 누리되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멈추어야 합니다. 누구나 다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지만 상대의 자유를 막을 권리는 없습니다. 누구나 다 즐거움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상대방을 괴롭힐 권리는 없습니다. 누구나 다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상대에게 손해를 끼칠 권리는 없습니다. 우리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곳까지 선을 긋고 거기까지만 가야지 그걸 넘어가면 안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적 자유’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유럽의 모습을 한 번 보세요. ‘내 가게를 내 마음대로 여는데 정부가 무슨 상관이냐’, ‘내가 마스크를 쓰든 안 쓰든 내 자유인데 왜 간섭이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안 만나고는 내 자유인데 왜 침해하느냐’ 이런 주장을 하면서 시위를 하더니 결국 코로나 확진자가 엄청나게 많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개인적 자유를 지나치게 추구하면 사회 전체의 이익을 해치게 됩니다.

반대로 중국처럼 코로나 방역을 위해서 전 국민을 집 안에만 거주시키는 것도 한 극단으로 치우친 정책입니다. 중국에서는 문을 잠그고, 도로를 봉쇄하고, 개인의 자유를 무시하는 정책을 펼쳤는데, 이렇게 하면 코로나는 종식시킬 수 있겠지만 사람들을 지나치게 억압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만 막는다고 우리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이처럼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지나쳐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개인의 자유 추구가 지나쳐서 전체 이익을 훼손하는 것 모두 극단입니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우리는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질문자의 질문도 이런 방식으로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상대방이 커피 한 잔 끓여달라고 하면 ‘내가 이 회사에 커피 끓여주러 왔나, 직접 끓여 드세요’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어요. 이 말은 맞는 말인데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극단입니다. 그럴 때는 우선 ‘알겠습니다’ 하고 커피 한 잔 가져다주고, 다음에도 또 시키면 웃으면서 ‘제가 커피 배달원은 아닌데요’ 하고 커피를 갖다 주면서 실수인 척 옷에 커피를 엎지르는 겁니다. 그때도 성질내지 말고 ‘바닥에 걸려서 넘어졌네요, 죄송해요’ 하고 유머스럽게 넘어가는 겁니다. 악으로 싸우면서 대응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조금씩 주고받으면서 조율을 해나가는 거예요.

상대방이 귀엽다고 뭐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성추행이라고 난리를 피우기보다는 우선 ‘노, 땡큐’라고 말하는 게 좋습니다. ‘저를 귀여워해 주시는 건 좋지만 저는 싫습니다’ 이렇게 의사표시를 분명히 하고, 또다시 반복되면 ‘이건 성추행인데요’ 하고 말하고, 세 번째 반복되면 ‘앞으로는 고발하겠습니다’ 하고 경고를 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 나중에 재판에 가더라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재판에서 승소할 확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상대방의 욕망에 주눅 들 필요는 없지만 동시에 상대방의 욕망을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이런 욕망이 있다, 그러나 지나쳐서는 안 된다’ 하는 입장이 분명해야 해요.

‘당신에게 욕망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욕망이 나를 지나치게 불편하게 만드는 건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입장을 가지면 오해할 만한 일이 생길 때 헷갈리지 않게 됩니다. 그런 일이 처음 생기면 우선 시정하라고 말을 하고, 말을 해도 시정하지 않으면 법에 보장된 틀 안에서 나의 권리를 찾는 길을 택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야 인간이 살아가면서 서로 균형점을 찾아갈 수 있지, 처음부터 무슨 원수를 맺은 것처럼 싸우려고만 하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성질이 더러운 사람으로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관계가 나빠지고, 결국 내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무조건 ‘어느 쪽이 옳은가’ 이렇게만 접근하지 말고, 두 가지 사이에서 때에 따라 적절한 조화가 필요합니다.”

“스님께서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고 중도의 길을 찾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공감이 많이 됩니다. 다만 제 문제로 돌아오면 뭔가 분명하지 않고 실타래처럼 얽혀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건 질문자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항상 ‘어떤 일도 세 번은 봐준다’ 이런 입장을 가지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말과 행동 중에는 한 번을 해도 완전히 모독으로 느껴지는 것도 있습니다. 누가 봐도 성추행이거나, 누가 봐도 범법 행위로 간주되는 건 바로 고소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 보면 관습적으로 하는 행위가 있어요. 이런 행위는 범법 행위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막상 내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쁜 행위입니다. 이런 경우는 세 번 정도 주의를 주고, 세 번 이야기를 했는데도 계속되면 그때는 주변 사람들도 내 입장에 동조를 하게 돼요. 그때가 되면 ‘저 사람은 아무리 상사라고 하지만 지나치다’, ‘저 사람은 아무리 남자라고 해도 지나치다’, ‘저 사람은 아무리 관습이라고 해도 지나치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도 생각하게 돼요. 그러니 명백한 범법 행위는 한 번만 해도 딱 고소를 해야 하지만, 애매한 행위는 서너 번 정도 축적된 상태에서 문제제기를 해야 실질적인 승소 확률도 높고, 인간관계도 유지해 나갈 수 있고, 내 입장에서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해주신 말씀 중 특히 상대방의 욕망을 인정하는 부분이 많이 와닿았습니다. 또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있을 때 관습적인 건 몇 번 봐주고 난 다음 문제제기를 하라는 말씀이 참 좋았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고, 오늘 말씀을 통해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체댓글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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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감사합니다

2021-07-16 00:07:37

김기숙

세번 정도는 들어주고 시정을 요구한다. 갈등은 나에게 손실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상대의 욕망도 인정하고 중도의 방향으로 맞추어 가겠습니다

2021-07-13 08:06:21

김서현

감사합니다. 알고는 있지만 잘되지 않아 실수도 할때가 있습니다.

2021-07-11 1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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