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4.6 농사일
"농부들을 보세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늘 밭에서 일하잖아요."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두북 수련원에서의 일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날이 밝자마자 농사일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이 끝나자마자 스님이 농사팀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오늘은 몇 시에 일을 시작할 거예요?”

“9시에 시작하려고 합니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무슨! 최대한 빨리 일을 시작합시다.”

논둑에 난 풀과 꽃에는 아침이슬이 촉촉이 맺혔습니다.

1시간 앞당겨 8시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사무실에 남는 사람 없이 두북 수련원 구성원 모두가 밭으로 나갔습니다.

“오전은 같이 일하고, 오후에는 각자 자기 업무 보겠습니다. 점심은 농막에서 먹겠습니다.”

먼저 역할을 나누었습니다. 두 팀으로 나뉘어서 한 팀은 포대를 하나씩 들고 논 주위에 머위를 뜯기로 하고, 한 팀은 스님을 따라 논 옆 수로에 무성하게 자란 잡목을 제거하기로 했습니다.

“이쪽 경사면에 머위가 많이 있어요. 먹을 게 이렇게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가만히 둘 수가 없잖아요.”

행자님들이 열심히 머위를 뜯는 사이 스님은 못둑으로 올라가서 수로 옆으로 난 잡목을 제거했습니다.

행자님이 앞에서 예초기로 잡목을 제거하면, 스님이 뒤따라서 레이크와 낫으로 잘라진 잡목과 풀들을 한 곳에 끌어 모았습니다. 땀이 콩죽처럼 흘렀습니다.

“오늘 숙원 사업을 하나 해결해야겠어요.”

수로의 주변이 어느 정도 정비가 되자 스님은 못으로 올라갔습니다. 못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계속 물에 잠기고 있었습니다.

“이 나무를 베어주어야 하는데 늘 생각만 하고 실행을 못했어요.”

스님은 나뭇가지를 밟고 아슬아슬하게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먼저 나뭇가지를 끈으로 묶었습니다. 나뭇가지를 잘랐을 때 물에 빠지면 다시 밖으로 건져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나무를 자르면 끈을 잡아당겨 주세요.”

스님이 나무를 자르자 행자님이 끈을 잡아당겼습니다.

“지금은 모양이 안 좋은데, 여기서 다시 새순이 자라면 모양이 더 예뻐져요.”

자란 나뭇가지를 모두 밖으로 건져 올렸습니다.

자른 나무를 어디에 사용할지 마땅치가 않았는데,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수로를 건널 때 밟고 건널 수 있게 다리를 놓아야겠어요.”

나무를 수로 폭보다 더 길게 자른 후 밟고 건널 수 있도록 나무 네 개를 나란히 놓았습니다.

“이 정도면 건널 수 있어요.”

못둑을 정비한 후 아랫논으로 내려왔습니다. 행자님들이 아랫논 경사면에서 머위를 계속 뜯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머위를 뜯고 있으니까 저는 쑥을 좀 뜯을게요.”

쑥을 한참 뜯고 있던 스님은 논의 경사면에서 쇠뜨기 포자를 발견했습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찾을 때는 안 보이다가 여기 오니까 많이 보이네요.” (웃음)

쇠뜨기 포자를 처음 보는 행자님이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그거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일단 제가 먼저 먹어보고 안 죽으면 여러분에게도 권할게요. 제가 심장이 안 좋다니까 쇠뜨기 포자를 먹어보라고 해서 한번 먹어보려고요.”

경사면에는 머위와 쇠뜨기 포자가 섞여 있었습니다.

“머위 뜯는 사람은 쇠뜨기 포자를 밟고, 쇠뜨기 포자를 뜯는 사람은 머위를 밟네요. 서로 목적이 달라서 그래요.”

시간이 금방 흘러갔습니다.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자, 여기서 일을 마칩시다. 밥 먹기 전에 농막에 가서 쑥을 좀 같이 다듬어요.”

머위는 두 포대 가득 담겼고, 쑥은 한 포대 가득 담겼습니다. 봄을 만끽하며 봄을 채취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다 함께 쑥을 다듬었습니다. 쑥을 다듬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후에는 각자 부서별로 업무를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행자들이 돌아가고 스님은 오후에 고수싹을 옮겨 심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에 스님과 농사팀 행자님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동안 농사 진행 상황을 함께 점검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습니다.

“지금 농사 전체 현황이 어떻습니까?”

모내기 일정과 비닐하우스에 작물 파종 일정 등을 꼼꼼하게 점검했습니다. 농사팀 행자님들은 일손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시골 사람들은 혼자서도 농사를 잘 짓습니다. 동네 어른들을 한번 보세요. 다 혼자서 농사를 짓잖아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혼자서는 못하고 같이 일해야 힘이 나고, 고생하는 것을 누가 알아줘야 하거든요.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일이 재미없잖아요. 그러니까 농민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거의 도인 수준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안 알아주는 데도 늘 밭에 붙어 있잖아요.”

1시간 30분이 지나 밤 9시가 되어 회의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내일 할 일을 제안했습니다.

“내일은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내릴 수 있게 파이프를 연결합시다. 지난가을 홍수 때 떠내려가고 아직 다시 설치를 못했는데 내일 설치합시다. 지하수만 자꾸 쓰지 말고 가능하면 저수지 물을 쓰면 좋겠어요. 지하수는 가물 때만 쓰고요. 지하수가 편리하니까 계속 쓰게 되는데, 지하수 물은 많이 차가워서 작물에도 안 좋아요. 저수지 위에는 사람이 전혀 살지 않고, 농사도 안 짓는 곳이라 물이 아주 깨끗합니다. 원래 옛날부터 먹는 물이었어요.”

내일은 수행 법회가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전체댓글 72

0/200

해인월신승희

글을 읽고만 있어도 정신이 맑아지고 몸도 건강해지는 느낌입니다
농부의딸로 태어나 농사짓는 부모님을 뵙고 자란 것이 저의 행복된 삶의 원동력입니다

2021-04-21 06:57:15

임무진

그러니까 농민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거의 도인 수준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안 알아주는 데도 늘 밭에 붙어 있잖아요.// 남에게 인정받으려 칭찬받으려 애쓰고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봅니다.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할 뿐입니다.

2021-04-15 10:10:50

정지나

아무도 보지않는 것처럼 살라~~
감사합니다 꾸벅!

2021-04-14 06:45:29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