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18 온라인 정초 법회(서울제주, 강원경기), 행복학교 특강
“남편의 자살이 제 탓일까요?”

안녕하세요. 오늘도 어제에 이어서 온라인 정초 법회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주말에는 저녁반 활동가를 대상으로 정초 법회가 열렸다면, 월요일인 오늘부터는 주간반 활동가를 대상으로 정초 법회가 열립니다.

문경 수련원에는 밤새 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저 멀리 희양산도 흰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문경 수련원의 기와지붕과 앞마당도 생크림을 발라 놓은 듯 하얗게 뒤덮였습니다.

오전 10시, 정초 법회 (서울 제주)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업무를 본 후 오전 10시에 모니터와 카메라가 설치된 명상원 정정당에 들어섰습니다.

오전에는 서울제주지부 주간반 활동가들이 온라인상에서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먼저 각 정토회 별로 소개를 하고 공청회를 진행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스님은 각 지역 정토회에서 나온 질문과 제안사항을 경청한 후 회원들이 헷갈려하는 지점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습니다.

정토회를 재창립한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정토회는 주요 활동 공간인 법당을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했습니다. 온라인 시대에는 국내외에 마련한 160여 개의 법당이 모두 없어지고,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게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본의 법당을 여러분 각자의 방으로 이전하게 되는 겁니다. 단순히 법문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시대에 맞게끔 회원 체계, 모둠 구성, 의사결정방식 등 모든 부분에서 정토회를 재창립하는 것이라고 보시면 돼요. 이제 과거의 체제를 완전히 해체하고 온라인에 가장 효율적으로 새롭게 조직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스님은 왜 재편을 하려고 하는지 설명하고 정토회의 설립 취지와 법당의 변천사를 상기시켰습니다. 달라지는 회원 규정과 모둠 구성을 설명하고 지역 정토회에서 나온 질문 및 제안에 대해 답변한 후 현장에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수행 법회에서 나누기를 진행자 할 사람도 활동가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질문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질문이 없자 법회를 마쳤습니다.

“긴 시간 토론하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어떤 것도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과제가 있으면 둘셋이 모여 의논해서 정토회에 건의하고, 다시 만일준비위원회에 제안하고, 이런 식으로 해나가기 바랍니다.”

12시가 넘어 법회를 마쳤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전에 눈을 한 차례 쓸었는데 그 위로 다시 하얗게 눈이 쌓여있었습니다.

오후 2시, 정초 법회 (강원 경기동부)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2시부터 강원 경기동부 주간반 회원들과 정초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별로 소개를 하고 공청회 결과를 발표한 후 스님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문경에 내린 눈 소식을 전하며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지금 밖에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모임을 문경에서 했다면 올라가는 길이 미끄러워서 큰 문제가 되었을 텐데, 온라인으로 전환하니까 이제는 날씨가 춥든 덥든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집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네요. 온라인 시대에는 더 이상 날씨에 구애를 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나서 악수하고 환호하는 것을 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는 조금 부족하지만 온라인 방식은 편리함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우선 시간과 교통비가 많이 절약되잖아요.

또 요즘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겨울철 독감 환자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 독감으로 매년 만 명 이상 사망자가 나오곤 했는데, 독감 환자가 예년보다 십 분의 일이 아니라 백 분의 일 수준으로 줄었다고 해요. 그러니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했던 것도 그 이면에는 이렇게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지역별 공청회에서 나온 제안과 질문 내용에 대해 스님의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도 궁금한 점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은 후 추가로 질문을 했습니다.

온라인으로 바뀌게 되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불교대학과 경전반 교실을 진행하는 활동가와 나머지 일반 회원으로 나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반 교실을 진행하는 활동가를 ‘전법 활동가’라고 부른다면, 전법 활동가가 되지 못하고 일반 회원이 된 사람들은 봉사하려고 하는 마음을 안 내게 될 것을 우려하는 질문이 많이 나왔습니다.

한 분은 지금 대중이 받아들이는 현실에 대해 열변을 토하듯이 말했습니다.

“스님, 똑같은 말씀 반복하시느라고 고생 많으십니다. 오늘 설명을 듣고 나니 불교대학 교실을 진행할 수 있는 사람만 활동 모둠의 모둠원이 될 수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저는 지난 1년 동안 모둠을 운영해보았는데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작은 일만 맡으려고 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같이 활동하고, 같이 법문 듣고, 같이 스님의 하루를 읽고 수련을 하니까 사람들이 성장을 해요. 처음에는 불교대학 진행은 못한다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 진행을 맡아요. 그런데 이 시점에 왜 활동가가 되는 기준을 전법사로 한정짓는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지역에서는 ‘이제 정토회는 팀장급으로 일하는 사람만 챙겨서 간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어요. 지금 대중들은 온라인 개편에 대해 굉장히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온라인이라고 해도 불교대학 교실만 운영한다고 될 일은 아니잖아요?

작년에 일반회원 제도가 생기면서 이미 상처를 받은 사람이 많아요. 이번에도 불교대학 진행을 못하면 일반회원이 되면 된다고 말씀하시지만, 사람들은 이동이 아니라 강등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강등됐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봉사의 마음을 잘 못 내요. 저희는 스님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웃음)

저희는 수행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서로 물들고 좋은 영향을 받으면서 가야 해요. 이런 현실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적극적으로 제안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대중이 현실에 맞지 않다고 하면 진행을 안 해도 돼요. 그런데 온라인으로 개편하는 핵심은 전법활동에 전념하자는 거예요. 예전처럼 함께 하자고 붙들고 있으면 봉사할 마음을 내고, 그냥 놔두면 봉사할 마음을 안 내고, 이렇게 운영하는 방식으로 가지 말자는 겁니다. 억지로 봉사를 하도록 하지 말고, 항상 열어두고 자발적으로 신청을 받아서 운영하자는 거예요.

정토회에는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라는 회원 제도가 있습니다. 이것도 온라인 시대에는 발심행자 조건이 되는 사람을 찾아가서 ‘꼭 해봐라’ 하면서 설득하는 방식이 아니라 본인이 발심행자가 되겠다고 신청서를 내면 교육을 받아 발심행자가 되고, 서원행자도 위에서 추천하는 게 아니라 서원행자가 될 자격 조건이 되는 사람이 본인 스스로 신청하고 교육을 받아 서원행자가 되고, 결사행사나 법사도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이 일을 꼭 해주십시오’ 이렇게 부탁하지 말자는 거예요. 온라인 시대에는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신청자가 없으면 그냥 두고 가자는 겁니다. 사람을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일을 포기하고 간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온라인 시대에는 자율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래야 창조성이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법당을 버릴 수는 없었잖아요? 법당이 있는 한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온라인 시대에는 법당이 다 없어지고 내 방이 법당이 되어 버렸어요. 그러니 봉사도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으면 없는 대로 가면 됩니다. 그렇게 조직을 가볍게 개편해서 가자는 거예요.

억지로 하는 봉사 vs 자발적으로 하는 봉사

앞으로는 봉사자 모집 공고를 내서 신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여러분들이 그들을 모으고 교육해서 일을 진행해나가면 됩니다. 정토회는 세상에 도움이 되겠다고 원(願)을 세운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발심행자가 되면 봉사를 하겠지만, 그러지 못하고 일반회원이 되면 봉사를 안 하겠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지 말고, 포기하고 가자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정토회를 그만두는 사람이 생긴다면 정토회의 활동이나 재정 수입이 줄어들겠지만, 대신 지출도 확 줄어들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본인이 자발적으로 마음을 내서 봉사를 해야지 억지로 보시하고 봉사하도록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봉사를 할 사람은 마음껏 하도록 해 주고, 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해도 되도록 하자는 겁니다. 일반 회원이 되면 누구나 법회를 들을 수 있고, 수행도 할 수 있도록 다 열어주되, 발심해서 더 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은 더 할 수 있게 하자는 방향이에요. 전체 조직을 완전히 개방적으로 개편하려는 것입니다.

다만 본인이 약속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라는 겁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도 관계되는 것입니다.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하듯이 인연을 맺었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고, 책임지기 싫으면 참여하지 않으면 된다는 거죠.

일반 회원들을 팽개치려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자는 거예요. 그래야 일을 하는 것이 재미있어집니다. 일이 힘들어도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힘들어 죽겠다고 하면서 억지로 하는 것은 수행의 본분과도 맞지 않아요. 그런 관점에서 다시 한번 검토해보자는 것입니다.

정토회가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돌아보면 상당수 활동가들이 힘들지만 여기까지 온 측면도 있어요. 그것을 인정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가지 말고 자발성에 기초해서 일을 해나가는 방향으로 개편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라인 정토회에서는 대의원제도 또한 불필요합니다. 오늘 공청회를 하듯이 시시때때로 대중들의 의사를 받기 위한 공청회를 열어서 의결하면 되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온라인 시대에 맞게 체계를 개편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초안도 이번 공청회가 끝나면 다시 수정해서 내려갈 것이고, 그것을 가지고 다시 논의하고 수정해서 새로운 안을 만들어 가게 될 겁니다.

과거에 연연하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여기서 가장 큰 쟁점은 모둠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활동가와 비활동가를 같은 모둠으로 편성해서 함께 가자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만약 여러분들이 이 의견에 찬성한다면 저도 아무런 이견이 없습니다. 그렇게 가도 됩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진지하게 토론해봤으면 해요. 정말 그것이 효과적인지, 여러분들이 과거에 연연해서 제기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토론해보라는 겁니다.

토론을 충분히 해봤는데도 여러분이 그렇게 가기로 결정하면 그렇게 가면 됩니다. 온라인 시대이니까 진행해 나가다가 문제가 생기면 다시 화상회의를 해서 바꾸면 돼요. 과거에는 한번 결정하면 3년은 간다는 원칙을 정했는데, 지금은 그 원칙도 포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코로나 사태 때문에 지난해 정한 것을 1년도 안 돼서 바꾸려고 논의하고 있잖아요? 반대로 더 좋은 게 있다면 굳이 3년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자는 게 아니라 정말 더 좋은 게 있다면 바로 바꾸면 된다는 거예요.

법당도 마찬가지예요. 법당을 좀 더 유지하고 싶으면 지역대의원회의에서 자율로 결정하면 됩니다. 법당의 용도가 있으면 3년을 유지해도 됩니다. 그러나 용도가 없으면서 집착 때문에 지키려고 하는 것은 수행의 관점에서 점검해보라는 겁니다. 만약 법당을 다른 용도로 쓰자고 새로운 제안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별개의 문제라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지 검토해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학대받는 아동을 보호하는 시설로 사용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죠.

온라인 전법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

관점을 조금 크게 가지세요. 지금은 여러분들이 조금 어리둥절할지 모르지만, 방향을 바꿔서 막상 진행해보면 여러분들이 ‘그때 방향을 잘 바꿨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정토회의 관건은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진행할 사람을 얼마나 많이 양성할 수 있는가입니다. 다른 만 가지를 포기해도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연세가 드셨거나 해서 이 일을 맡을 수 없는 분들은 이 일을 지원하는 기능을 하면 돼요. 지역별 수련원에 가서 불사를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나머지 지원하는 역할들을 맡아주면 됩니다. 정토회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했더라도 굳이 전법 활동가 모둠에 있을 이유가 있을까요? 활동가 모둠에 속하지 않더라도 정토회 회원으로서 아무 부족한 게 없습니다. 정토회 회원으로서 수련장에 와서 뭐든지 봉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겠다는 거예요.

이제는 온라인으로 모든 불교대학과 경전반 수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진행자가 굉장히 중요해집니다. 전법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불교대학 진행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아서 실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인격과 자격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래서 연수원에서는 그 일을 할 사람들을 훈련시키려고 합니다.

많이 연로하신 분들은 굳이 불교대학 진행자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얼마든지 있잖아요. 건강이나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이 따라주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굳이 과거에 공로가 있다고 전법사만 모이는 활동가 그룹에 소속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어차피 2년만 더 지나면 1차 만일결사가 끝나고 2차 만일결사를 새로 시작해야 하는데, 그때가 되면 결사행자들도 모든 지위가 해제됩니다. 그러면 재모집을 해서 2차 만일결사를 30년간 책임지고 가겠다는 사람들이 새로 결사행자가 되어야 해요.

이런 변화가 2년 앞당겨졌다 뿐이지 기본 계획에 다 있었던 것입니다. 2년이 당겨진 게 문제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2년을 당겨 시행하려니 준비가 조금 덜 돼서 혼란이 있는 거예요. 만약 2년 후라면 준비가 잘 돼서 바로 개편을 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시간이 조금 당겨진 것뿐이지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어떻게 하면 의기투합해서 신나게 일할 수 있을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효과적일까요? 질문자가 제기했듯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면 진지하게 논의해보세요. 스님의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스님은 여러분들의 관념을 깨뜨리는 역할을 하고, 여러분들은 현실에 토대를 두고 이 문제를 살펴봐야 되겠죠. 그래서 모둠을 편성하는 문제는 다시 토론하거나 검토해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저는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소통을 하고 있는 겁니다. 결론이 안 나면 2월 한 달 내내 토론을 더 해도 됩니다. 그러니 서두르는 게 아닙니다. 죽었으면 장례를 치르는 것을 갖고 서두른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결론이 났으면 집행을 빨리 하는 게 낫고, 결론이 안 났으면 토론을 더 하는 게 낫다’

이렇게 관점을 갖고 충분히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기 바랍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계되는 것은 스님이 마음공부의 관점에서 바르게 지도하겠지만, 어떻게 운영하면 효과적인지에 대한 문제는 세속적인 일이기 때문에 스님이 앞을 내다보고 의견을 내지만 스님이 결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의논해서 결정을 내릴 일입니다.

지금 제일 많이 제기되는 것이 활동가와 비활동가를 같이 모둠에 편성하자는 것인데, 활동가와 비활동가를 함께 모둠에 편성하면 제가 생각하기에는 활동가들이 힘들 것 같아요. 어떤 일이든 의기투합해서 해야 신이 나서 하고, 효과도 나고, 고생해도 재미가 있는데, 7명의 모둠원 중에 3명은 일하고, 4명은 아무것도 안 하면, 일하는 3명의 기운이 빠지게 되거든요.”

“예. 잘 알았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더 받은 후 법회를 마쳤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스님은 옷을 갈아입고 나와 눈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눈 구경하러 가려고 했더니 눈 치울 시간도 부족하네요.”




명상원 구석구석을 쓰는 동안 하늘이 붉게 물들더니 날이 저물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 온라인 행복학교 특강

날이 어두워지자 기와지붕 위로 높이 달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온라인 행복학교 특강을 시작했습니다. 행복학교 마음편과 관계편을 이수한 참가자 22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은 국민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 종교를 뛰어넘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행복학교라고 강조하면서 오늘도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자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행복학교 참가자 중 7명이 화상으로 연결되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시간의 즉문즉설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질문자는 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픈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남편의 자살이 제 탓일까요?

“3년 전에 남편이 아무도 모르는 빚을 지고 자신을 증오하면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저 행복했던 가정이었는데 갑자기 어린 두 아이와 저만 남겨졌습니다. 충격에 심리상태가 매우 불안했던 우리 가족은 저의 상태가 안정되면서 많이 좋아졌습니다. 상담을 받으면서 죄의식은 많이 지웠는데, 심리상담사는 제가 남편을 너무 받들고 신격화해서 남편이 죽었을 수 있다고 한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는 젊은 과부가 되어 사회적 편견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고, 세상 사람들의 평가를 너무 신경 쓰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스님 법문을 자주 접하다 보면 ‘내가 남자 보는 눈이 없어서 그저 잘해주는 남자랑 결혼했나?’ 싶고, 그런 저의 무지함으로 착한 아이들한테 아빠 없는 결핍을 준건 아닌지 한없이 미안하기만 합니다. 탁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저는 그게 잘 안 되고 매일 어깨가 뭉칩니다. 아빠의 죽음에 대해서 아이들이 컸을 때 설명을 해주어야 할 텐데 고민이 많습니다. 지난 날의 후회는 내려놓고 아이들과 즐겁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질문자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간신히 질문 내용을 끝까지 읽었습니다.

“남편이 오늘 죽은 것도 아닌데 울기는 왜 울어요?”

스님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조금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어요. 남편이 죽은 것은 내가 죽인 것도 아니고, 내가 죽음으로 몰아간 것도 아니에요. 그냥 남편이 자기가 스스로 죽은 겁니다. 그게 왜 내 잘못이에요?

‘남편을 내가 몰아붙여서 죽였다’, ‘남편을 내가 떠받들어서 죽였다’ 하는 그 상담사의 얘기는 별로 신뢰할 필요가 없어요. 그 상담사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들어봐야 알겠지만, 질문자의 어떤 부분을 치유해 주려고 그런 말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은 질문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첫째, 이 점을 분명히 해야 됩니다.

남편은 자기 인생을 자기가 결정한 거예요. 모든 사람은 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남편을 미워해도 안 되고, 남편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어요. ‘왜 나를 놔두고 죽었냐’ 하는 것은 내 생각일 뿐입니다. 남편이 자기 인생을 자기가 결정하는데 왜 질문자가 거기에 간섭을 하려고 해요. 그러니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당신 하고 그동안 참 잘 살았소. 당신은 당신 갈 길을 가고, 나는 내 갈 길을 가겠소.’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죄책감을 갖는 동시에 원망하는 마음도 있는 거예요. 스님 법문을 듣고 나서 내가 남편 보는 눈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는데, 스님 법문을 왜 거기에 갖다 붙여서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합니까? (웃음)

내가 살기 힘들다고 왜 남편을 원망합니까? 지금 내가 힘든 것은 내가 선택하고 그 결과로 일어나는 것인데 왜 죽은 사람을 원망해요? 게다가 질문자는 지금 죽지도 않고 살아있으면서요. 그러니 첫째, 남편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남편에게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어요. 그건 자기 인생을 자기가 결정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아이를 혼자서 키우는 게 뭐가 어려워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이 죽고 나서 애들마저 없었다면 내가 좋았겠나?’

애들마저 없었으면 질문자가 좋았을까요? 애들이라도 있다는 건 나한테 좋은 일이잖아요. 부모라면 자식이 둘이 아니라 열이라도 성년이 될 때까지 내가 책임을 지고 키워야죠. 대신에 형편이 되는 만큼 아이를 키우면 돼요. 남편이 있을 때처럼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키운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저 내 형편 따라 최선을 다해서 키우면 되는 거예요. 아이를 키우는 게 부담스럽다는 건 질문자가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항상 마음을 이렇게 가져야 합니다.

‘아이고, 그래도 너희들이라도 있어서 내 삶이 행복하다.’

세상 사람들이 과부라고 말하는 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조선시대 같으면 걱정을 하는 게 이해가 되는데, 요즘 세상에 남편이 죽었다고 내가 다른 사람 눈치를 볼 게 뭐가 있습니까. ‘결혼했어요?’ 물으면 ‘결혼했어요’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남편은요?’ 물으면 ‘돌아가셨어요’라고 대답하면 돼요. 남들이 뭐라 한다고 신경 쓸 필요 없어요. ‘힘들겠네요?’라고 하면 ‘애 둘을 혼자 키우려니 좀 힘드네요’ 하면 됩니다.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어요. 동정을 하든 안 하든 그건 그 사람들이 할 일이에요. 내가 아무 죄도 안 지었는데, 남의 눈치를 볼 이유는 없어요. 아무도 묻는 사람이 없는데 내가 나서서 ‘우리 남편 죽었어요’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묻는데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고요. 내가 죄를 짓지 않았으니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애들이 커도 아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애들이 어릴 때는 ‘아빠는 왜 돌아가셨는데?’라고 물으면 ‘너희들 크면 얘기해줄게’라고 대답하면 돼요. 애들이 크면 ‘아빠가 빚을 지고 힘드셔서 돌아가셨나 보다’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다 큰 아이들에게는 숨길 일이 아니에요.

불행해야 할 이유는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질문자가 좀 떳떳하게 살면 좋겠어요. 질문자는 아무 잘못도 없고, 질문자의 처지가 절대로 불행한 것도 아니에요. 괜히 남 쳐다보면서 ‘남편만 안 죽었으면 더 부유하게 살 텐데’ 이런 생각으로 애들을 키우기 때문에 애들한테 아빠가 없다는 것에 대한 상처가 생기는 겁니다. 엄마가 떳떳하게 지내야 애들도 떳떳하게 자랍니다. 애들이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면 이렇게 말하면 돼요.

‘엄마가 아빠 노릇도 다 하는데, 아빠가 왜 필요하니?’

아니면 이렇게 얘기해도 됩니다.

‘아빠가 있어야 되겠어? 그럼 내가 내일 남자 하나 데려 올게. 같이 살자.’

애들이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하면 애들을 위해서 재혼을 하면 되잖아요. 옛날에는 남자들이 아내가 일찍 죽으면 아이들 키우려고 재혼해서 새로운 부인을 들였습니다. 그렇듯이 자기도 애들한테 아빠가 필요하다고 하면 재혼을 하면 돼요. 요즘 같은 시대에 그걸 왜 꺼려요. 내가 필요해서 재혼해도 되고,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재혼하면 됩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 왜 그런 봉건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요?

좀 떳떳했으면 좋겠어요. 결혼한 것도 죄가 아니고, 남편이 죽은 것도 죄가 아니고, 혼자 사는 것도 죄가 아닙니다. 질문자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질문자가 불행해야 할 이유는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떳떳하게 사세요.”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행복학교에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존중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떤 목표에 대해 생각이 다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예를 들어 남북통일에 대한 생각이 다 다른데, 서로 인정하고 존중만 해서 통일이 될까요?
  • 27살 취준생입니다. 혼자 계신 62세 어머니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저에게 의지하려고 하셔서 힘이 들어요
  • 요즘 부자들은 부동산과 주식 등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에서 때 아닌 호황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저 같은 소시민들은 박탈감을 느낍니다. 이런 부익부 빈익빈 시대에 어떻게 현명하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 20년째 무속인 집에 드나들다 법륜스님을 만나고 저의 어리석음을 깨달아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큰아들이 수술을 하고 남편 사업이 잘 안 되니 무속인 집에 안 가서 그런가 불안한 마음도 듭니다. 집에 무속인이 준 업단지가 있는데 없애려니 두려워요. 사당이라고 생각하고 기도를 드리는데 그래도 될까요?
  • 행복학교에서 ‘우리는 풀 한 포기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배웠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계속 풀을 밟고 지나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뇌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조금만 신경 쓰면 자꾸 두통이 와요. 어떻게 하면 신경을 덜 쓰고 살 수 있을까요?
  • 감정 기복 없이 잔잔해지는 게 행복인가요?
  • 저는 가까운 사람에게도 별로 정이 없어요. 자식에게조차 별로 정이 없어서 고민입니다.

대화를 모두 마치고 스님은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저도 환갑이 넘었는데 스님 말씀 들으면서 상당히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과대망상을 버리고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제 중심을 잘 잡고 살아보겠습니다.”

“딸한테 정을 못줘서 죄책감이 있었는데 스님 말씀이 위로가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스님께서 제 성격을 간파하셔서 딱 이야기해주시니까 옆에서 듣던 남편이 맞장구를 치면서 격하게 공감했어요. 그런 남편을 보니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그래도 스님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 좋아하지 말고 남편이나 좋아하세요.”

마지막으로 남편과 사별한 슬픔을 갖고 살아왔다는 마지막 질문자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분들에게 해주시는 말씀을 듣고 저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런데 제 문제는 아직도 많이 내려놓지 못하는 것 같아요. 원래는 쿨하게 잘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되새기면서 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도 마음이 무거운 질문자를 향해 스님은 다시 한번 질문자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되새기지 말고 지금 ‘아, 아무 문제가 없었네!’ 이렇게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봉건시대에는 남편이 죽으면 같이 따라 못 죽어서 미망인이라는 말을 썼지만 요즘은 누가 그런 말을 써요. 결혼해서 살다가 남편이 죽으면 재혼을 해도 됩니다. 이혼하고 재혼하는 것도 아무 문제가 안 되는 시대인데, 남편이 죽어서 재혼하는 게 뭐가 문제가 되겠어요? 반대로 ‘결혼 한 번 해봤으면 됐지 또 결혼할 거 뭐 있나’ 이런 생각이 들면 혼자 살아도 됩니다. 아무 문제도 없는데 혼자서 자기가 그려놓은 생각에 빠져서 ‘남편이 죽어서 나는 불행하다’, ‘애들한테 아빠가 없어서 미안하다’ 하면서 괴로워하고 있는 거예요.

얼마 전에 어떤 연예인이 남자의 정자를 빌려서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있는 모습이 방송에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 그 아기는 아빠가 없어서 어떡해요? 그러니 아이들 키우는 문제는 질문자가 의지심을 갖고 있어서 생긴 문제이지 아빠가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에요. 남편이 없는 것에 대해 엄마가 열등의식을 갖게 되니까 애들도 아빠 없는 것에 대한 상처를 갖게 되는 거예요. 질문자가 세상 사람이나 애들 앞에서 떳떳해야 됩니다. 질문자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

애들에게는 아빠가 있든 없든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질문자에게 남자가 필요하니까 애들한테도 아빠가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 조금 더 장부답게 떳떳하게 살면 좋겠습니다.”

어느덧 2시간 훌쩍 흘러서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이 행복을 더욱더 널리 전할 것을 당부하며 방송을 마쳤습니다.

“제 책상 위에 ‘9시까지’라고 쪽지가 적혀서 올라왔어요. 벌써 마칠 시간이네요. 언제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행복학교에 잘 다니세요. 또 많은 사람이 행복학교에 올 수 있도록 홍보도 해주세요.

법륜 스님한테 고마운 마음이 들면, 한 명이라도 더 행복학교에 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륜스님한테 받은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생각을 하셔야 돼요. ‘법륜스님 좋아요!’ 이런 말은 필요 없습니다. 법륜 스님이 좋거든 행복학교에 한 명이라도 더 오도록 하세요.” (웃음)

명상원을 나오니 초승달이 기와지붕 위로 슬며시 떠올라 있었습니다.

내일도 온라인 정초 법회가 계속 이어집니다. 오전에는 대구경북지부 주간반 활동가를 대상으로, 오후에는 부산울산지부 주간반 활동가를 대상으로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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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법당곽현숙

관점을 깨뜨려주는게 스님의 역할이라고 하신 말씀, 결정했으면 바로 하면 된다고 하신말씀,전법활동가와 일반회원에 대한 이해가 충분했습니다.
부처님과 스님께 은혜갚는길은 전법이라고 하셨습니다.
공부하고 교육받아 편히 전법할수 있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2021-01-25 07:54:31

굴뚝연기

많이 오픈되신다는 정토회 개편을 읽으니,정토회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은맘이드네요ㅎ
아프게 남편분을 떠나보내신 질문자분에 대한 스님의 말씀이 너무나 큰 울림을줍니다ㅜ[남편은 자기 인생을 자기가 결정한 거예요.] [‘당신 하고 그동안 참 잘 살았소. 당신은 당신 갈 길을 가고, 나는 내 갈 길을 가겠소.’]넘가슴아프실 질문자분께서 부디힘내고 살아가시길ㅠㅠㅠ

2021-01-24 19:45:26

실상

괴로움에 빠졌는 질문자에게 힘이되는 위로의말씀이 좋았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2021-01-24 14: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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