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6.28. 용성조사 탄신 156주년 기념식
“상대는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잘 안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용성조사 탄신 156주년을 맞이하여 다례재와 기념법회가 조사님의 탄생지인 전북 장수군 죽림정사에서 열렸습니다. 스님은 기념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5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했습니다.

오늘 기념법회에는 장수군 장영수 군수님과 송하진 전북 도지사의 부인 오경진 님도 참석했습니다. 식전에 도착한 두 분은 도문 큰스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큰스님은 용성조사님이 어떤 분인지 큰 목소리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용성조사님은 3.1운동 당시 반도기를 사용하려던 것을 태극기를 사용하도록 향도하신 분입니다. 반도기를 든다는 것은 우리의 옛 땅인 고구려와 발해를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고 시인하는 것이 되지 않느냐는 거죠. 그래서 용성조사님은 태극기의 의미를 설명해주면서 태극기를 사용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태극은 무극에서 나왔다. 무극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뜻한다. 이 세계의 부처님이 아미타불인데, 아미타불이 서방정토를 교화하기 위해서는 세 분의 성자를 보내야 한다. 그게 보살승, 연각승, 성문승이다. 태극은 보살승을 뜻하고, 음양은 연각승과 성문승을 각각 뜻한다. 건곤감리는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사홍서원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태극기가 나온 겁니다.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태극기의 의미조차 제대로 설명을 못해서 되겠습니까.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 인류가 태극기 정신을 갖고 상부상조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용성조사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군수님은 용성조사님과 같은 훌륭한 분이 장수에서 태어난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하면서 큰스님의 뜻을 잘 받들 것을 약속했습니다.

“학생들이 용성조사님의 삶과 사상을 배울 수 있게 저희 장수군에서는 정토회와 협력해서 용성연수원을 이곳 물빛 공원에 지으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차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행사를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 함께 행사가 열리는 교육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현장에는 50명의 경전반 학생들만 참석했고, 나머지 1000여 명의 학생들은 온라인 생중계로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한 후 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한 묵념을 했습니다.

이어서 용성조사님의 행장 낭독이 있은 후 스님이 내빈을 향해 환영 인사를 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용성진종조사 탄생 156주년 기념식에 참석해주신 귀빈 여러분, 그리고 생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정토행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기념식에는 특별히 번암면 면장님, 장수군 군수님, 전북 도지사님의 사모님, 조계종 불교음악원 원장 박범훈 님을 비롯한 많은 내빈들이 참석해주셨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죽림정사를 창건하신 불심도문 큰스님께서 직접 법문도 해주시고, 박범훈 원장님께서 노래도 여러 곡 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뜻깊은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강당이 꽉 찬 상태로 음악회도 듣고 불심 도문 큰스님의 우렁찬 법문을 같이 들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직 생활 속 거리두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쉽지만 기념식에 소수만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에는 많은 사람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온라인으로 1000여 명의 대중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참석하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오늘 자리를 빛내주신 내빈 소개가 있은 후 장영수 장수군수님의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오늘은 특별한 축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박범훈 원장님이 1998년 교성곡 "용성"을 작곡할 때 용성조사님 원작 "온 겨레의 노래"를 새롭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세마치장단에 맞추어 새롭게 작곡된 "온 겨레의 노래"를 아름다운 목소리로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축하 공연 덕분에 용성교육관의 분위기가 아주 활기차졌습니다. 대중 모두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들뜬 분위기가 지나가고 이어서 석가여래 부촉계대법 제77세 불심도문 큰스님을 모시고 기념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큰 스님은 먼저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 가운데 임종송을 읊었습니다.

“원아임욕명종시(願我臨欲命終時)
진제일체제장애(盡除一切諸障碍)
면견피불아미타(面見彼佛阿彌陀)
즉득왕생안락찰(卽得往生安樂刹)

원컨대 내가 수명을 마칠 때에 임하여
일체의 모든 장애가 소멸되어서
면전에서 저 아미타 주인공을 친견하고
곧바로 극락정토에 왕생하여지이다.”

그리고 보현보살 십종 대원을 용성조사님이 풀이한 대로 들려주었습니다. 마땅히 열 가지 넓고 큰 행원을 닦아야 한다고 하면서 열 가지를 하나씩 설하여 주었습니다.

"첫째는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요.
둘째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요.
셋째는 널리 공양하는 것이요.
넷째는 업장을 참회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남이 짓는 공덕을 기뻐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설법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요.
일곱째는 부처님께 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이요.
아홉째는 항상 중생을 수순하는 것이요.
열째는 지은 바 모든 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것이니라.

여기서 광수공양(廣修供養)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제불공양이 아니고 왜 광수공양(廣修供養)이라고 했을까요? 이 말은 성불하신 부처님이나 성불 못한 부처님 모두에게 공양을 올리라는 의미입니다. 즉, 대한민국 모든 국민과 전 인류는 내세에 성불하실 부처님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하는 것과 전 인류를 위하는 것과 모든 부처님을 위하는 것이 같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제 법상에 안 올라오고 뒷방에 앉아서 법륜스님 하시는 일을 응원하겠습니다. 앞으로는 법륜 스님이 제가 하던 일을 해나갈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청중은 큰 박수로 큰스님의 법문에 호응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기념법회를 마친 후 곧바로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전반 학생들은 야외로 나가 그늘 밑에 자리를 잡고 각자 싸온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오후 1시 20분부터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경전반 수업을 들으면서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는 시간입니다.

“경전반 공부하시면서 질문할 게 있는 분은 손을 들고 얘기하세요.”

세 사람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고, 사전에 받은 질문도 있었습니다. 그중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인간관계에 갈등이 생겼을 때 스님께서는 상대가 틀렸다고 보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르다고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포기해버립니다. 어떻게 하면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여기 컵과 뚜껑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물건은 크기가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컵이 크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뚜껑과 비교했을 때 뚜껑보다 컵이 크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컵을 이 탁상과 비교하면 컵은 작잖아요. 그래서 존재 자체는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작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것일 뿐입니다. 지금 이대로 다 소중해요. 그러나 비교를 하면 ‘크다’, ‘작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크다’, ‘작다’ 하는 것은 인식상의 문제이지 존재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 컵 자체가 크기 때문에 크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뚜껑과 비교할 때 크다고 인식되는 겁니다. 컵보다 큰 것과 비교할 때는 이 컵이 작다고 인식됩니다. 크다, 작다는 것은 객관의 문제가 아니고 주관의 문제입니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게 진실이에요. 그런데도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나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뚜껑을 기준으로 하면 뚜껑보다는 컵이 커요. 컵을 기준으로 하면 컵보다는 뚜껑이 작아요. 기준을 뭘로 하느냐에 따라서 이런 말이 생기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이 말도 인식상의 오류에 해당합니다. 실제로는 ‘둘이 서로 다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존중’입니다. 존중은 ‘상대를 받든다’, ‘네가 훌륭하다’ 이런 뜻이 아니라 나와 다른 것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둘이 서로 다른데 기준을 나로 잡아버리면, 이것은 옳은 게 되고, 저것은 그른 게 되고, 이것은 맞는 게 되고, 저것은 틀린 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너가 틀렸다. 고쳐라’ 이렇게 말하는데 상대는 안 고칩니다. ‘고쳐라’ 하는 생각은 결국 내 식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상대가 안 고쳐지면 화가 나는 거예요. 화가 나면 내가 힘들어집니다. 상대를 미워해도 내가 힘들어요. 힘이 드니까 ‘그래! 죽든지 살든지, 틀리든지 옳든지, 네 마음대로 해라’ 이러면서 포기해 버리는 겁니다.

상대는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다름을 인정하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화가 나거나 미워지거나 이런 일이 안 생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서 같이 살려면 갈등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한 방에서 사는데 나는 ‘덥다’ 그러고 상대는 ‘춥다’ 그래요. 나를 기준으로 하면 ‘너의 몸이 문제다’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아, 저 사람 입장에서는 덥구나’ 하게 되지 누구를 탓하지는 않게 됩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괴로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 방에 둘이 같이 살려면 어쨌든 조정을 해야 됩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건 아니지만, 조정은 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나는 약간 더운 것 같은데, 당신이 춥다니까 어떻게 할까?’

이럴 때 제일 쉬운 조정 방법이 상대를 기준으로 나를 맞추는 겁니다. 이 방법이 제일 쉽습니다. 나만 바꾸면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더운데 상대는 춥다고 하면 내가 옷 하나 더 벗으면 되고, 상대는 더운데 내가 추우면 내가 옷 하나 더 입으면 됩니다. 그래서 나를 버리는 게 인생살이에서 제일 쉬워요. 그런데 우리는 이 쉬운 길을 안 갑니다. 어쨌든 힘든 길을 가려고 해요. (모두 웃음)

제일 힘든 길은 상대를 고치는 겁니다. 이 방법이 제일 힘듭니다. 상대가 내 마음대로 고쳐지나요? 그런데도 그 어려운 길을 선택하니까 인생살이가 피곤한 겁니다.

제일 어려운 길은 상대를 고쳐서 나한테 맞추는 거예요. 제일 쉬운 길은 나를 고쳐서 상대에게 맞추는 거예요. ‘나도 좀 고치고 너도 좀 고치자. 중간에서 타협하자’ 이런 세 번째 길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제일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다가 도저히 안 되면 자기가 대단히 양보한 것처럼 반반씩 타협하자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인생이 피곤한 거예요.

제일 쉬운 길은 나를 버리는 거예요. 그것보다 조금 어려운 길은 중간을 선택하는 거예요. 그러나 상대가 쉽게 양보를 안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 길도 쉽지는 않아요. 만약 내가 힘이 더 세든지, 키가 더 크든지, 아이와 상대하는 엄마라든지 이런 상황이라면, 힘으로 제압해서 그냥 밀고 나가면 돼요. 상대를 고치려면 자기가 힘이 더 세야 합니다. 물론 힘이 세도 상대를 고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저항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엄마한테 덤비고, 남편이 아내한테, 아내가 남편한테 덤빕니다. 이런 저항을 밀고 나가려면 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나를 기준으로 상대를 고치는 걸 한번 시도해 보는 거예요. 그래서 상대가 고쳐지면 다행입니다. 나를 기준으로 상대를 고치는 것을 ‘나쁘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첫째, 나를 기준으로 상대를 한번 조정해보는 겁니다. 그래서 밀어붙였더니 상대가 흔쾌히 받아들인다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나쁜 것도 아니에요. 둘째, 내 의견을 밀어붙였는데 안 받아들여진다면 중간에서 타협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셋째, 그런데 그것도 안 되면 나를 버리면 해결이 돼요. 다른 방법은 나 혼자서 결정을 못 하지만, 나를 버리는 건 언제든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인생의 주인이 되는 거예요. 언제든지 자기가 결정권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가도 ‘뭐, 그거 내가 하지’ 이렇게 자기가 결정을 내려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고치는 건 내가 결정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늘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에요. 세 가지 모두 하나의 방에서 잔다는 걸 전제로 할 때 조정하는 방법입니다. 만약 방이 두 개라면 조정 방법이 또 있어요. 나는 이 방에 자고 너는 저 방에 자고, 너는 에어컨 켜고, 나는 그냥 자고, 너는 보일러 틀고, 나는 그냥 자고, 이런 조정 방법도 있습니다.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를 뿐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해가면서 조금씩 조정해 가면 됩니다. 자기를 버리는 사람은 무조건 포기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자기를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괴롭지가 않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질문자가 자꾸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자기 방식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너무 힘드니까 결국은 ‘에이, 안 간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욕심을 내서 너무 높은 산을 오른다고 정해놓고 가다가 힘드니까 ‘에이, 산에 가면 뭐해? 집에서 자는 게 낫지’ 이러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는 늘 양 극단에 치우칩니다. 내 식대로 하는 것이면서 ‘다 너를 위해서 그러지 누굴 위해서 그러겠어?’ 이렇게 말하고, 안 되면 ‘그래, 네가 죽든지 살든지 모르겠다’ 하면서 외면합니다.

집착과 외면은 같은 거예요. ‘사랑과 미움은 같다’ 이렇게 말하듯이 내 식대로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되니까 미움이 생기는 겁니다. 내 식대로 하려는 게 사랑이 아니에요. 그건 욕망입니다.”

가볍게 즉문즉설 시간을 가진 후 이어서 죽림정사 곳곳을 순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온라인 생방송을 하는 관계로 스님이 직접 1000여 명의 시청자들을 위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죽림정사 용성교육관에는 불교의 역사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건물 안에는 부처님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고, 건물 바깥벽에는 용성조사님의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님은 건물 내부를 먼저 설명하고, 외부를 둘러본 다음, 기념관을 설명한 후 마지막으로 용성조사님의 생가에서 안내를 마쳤습니다.

스님과 함께 죽림정사를 한 바퀴 돌고 나니 불교의 전체 역사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용성조사님의 생가에 도착한 스님은 방송을 마치면서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방송 마치고 나면 저는 죽림정사 이사회를 해야 합니다. 여기까지만 안내를 해드리고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영상을 시청해주신 분들도 수고하셨고, 영상을 찍는 분들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후 4시부터 죽림정사 이사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도문 큰스님은 이사회 멤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긴 시간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스승인 동헌 완규 조사께서 저한테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100년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졌지만, 저 학생은 1000년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진 도인이니 꼭 잘 잡아 출가를 시켜 법명은 '법륜'이라 하고, 법호는 ’ 지광‘이라고 해라.’

저는 스승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였던 것입니다. 지광 법륜 스님은 그동안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일상생활을 수행 생활로 전화하는 참다운 도인의 몸을 이루고 오분법신향을 올리는 청정 수행자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에 저는 동헌 완규 조사의 명에 따라서 제 할 일을 다 마쳤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법륜 스님에게 모두 맡기겠습니다.”

도문 큰스님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스님이 답했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녁에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해 온라인 명상을 생방송으로 해야 해서 서둘러 출발했습니다. 차 안에서는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원고 교정을 하였습니다. 장수에서 두북까지 2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저녁 8시에 무사히 두북 수련원에 도착해 저녁예불을 드렸습니다.

8시 30분,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은 스님은 차분한 마음으로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있는 이곳 한국의 남부지방은 지금 매우 무덥습니다. 이렇게 그냥 앉아 있는데도 땀이 막 날 정도입니다. 세계 곳곳에 계신 여러분들이 계신 곳은 날씨가 어떤지요?

Hello, It's really hot where I am in the southern region of Korea. I'm sweating even though I'm just still sitting down. I wonder what the weather in your parts of the world look like.”

땀이 나는 가운데 온라인 명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세 개 질문이 올라와 있습니다. 먼저 질문을 보겠습니다.
So I have in front of me three questions from last week. Let us look at the questions first.”

그중 한 분은 호흡을 알아차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질문했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제대로 된 방법이 궁금합니다

“명상이 코끝을 통해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저는 들숨은 코로 하고, 날숨은 입으로 합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코끝으로 알아차리고, 숨을 내쉴 때는 입 끝으로 알아차려도 되는 것인지요? 이게 잘못된 방법인가요?”

”알아차린다는 것은 현재의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린다는 뜻입니다. 호흡을 한다고 알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의 모양도 아니고, 소리도 아니고, 냄새도 아니고, 맛도 아닙니다. 몸에서 느끼는 감촉을 통해 호흡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사를 확인할 때 누워 있는 그 사람의 코에 손가락을 갖다 댈 때가 있잖아요. 코끝에 손가락을 갖다 대면 우리는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으로 숨을 쉬고 있는지 안 쉬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몸 중에 손끝의 접촉 감각이 가장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본인의 호흡은 자기 손을 코끝에 갖다 대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호흡은 손을 굳이 콧구멍 끝에 대지 않아도 다른 부분에서 일어나는 감각으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첫째, 배를 한번 느껴보세요. 배가 오르락내리락 불렀다 낮아지고 합니다. 배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가만히 집중하면 호흡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둘째, 기관지와 콧구멍 이런 곳으로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올 때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면 호흡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콧구멍 끝, 콧구멍 속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집중하면 됩니다.

그런데 호흡만 알아차리는 게 목적이라면 콧구멍 끝보다는 배 쪽으로 알아차리기가 더 쉽습니다. 그런데 명상은 출발이 호흡일 뿐이지 궁극적인 목표가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은 아닙니다. 미세한 감각도 알아차리고, 느낌도 알아차리고, 이렇게 알아차리는 대상이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콧구멍 끝에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유용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콧구멍 끝에서 호흡 알아차리기, 즉 들숨과 날숨 알아차리기를 많이 훈련합니다. 그럴 때 호흡이 자연스럽게 코로 들어오고 입술로 나간다면, 들어올 때는 ‘코로 들어오는구나’ 나갈 때는 ‘입으로 나가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런데 ‘입으로 내보내야 한다’ 이런 정답은 없습니다. 오히려 입으로 호흡이 나갈 때 입으로 나가는 줄 알면 입을 다물면 됩니다. 그러면 저절로 코끝으로 호흡이 나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호흡은 콧구멍으로 들어오고 콧구멍으로 나가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길게 들어오면 길게 들어오는구나’ 하고 알고, 짧게 들어오면 ‘짧게 들어오는구나’ 하고 알고, 숨이 가쁘면 ‘가쁘구나’, 고요하면 ‘고요하구나' 하고 알면 됩니다. 어떻게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호흡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호흡은 저절로 고요해집니다. 그러면 호흡을 놓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미세한 호흡의 감촉도 알아차릴 정도로 더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몸의 작은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감각에도 깨어 있게 되어서 전기가 찌릿찌릿하게 가듯이 온몸에서 감각이 느껴집니다. 우리 몸의 구석구석이 다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감각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미세한 감각까지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작은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도 그 감각들이 변합니다. 또 그 감각들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이 때로는 좋아하기도 하고, 때로는 싫어도 하면서 다시 반응합니다. 몸과 감각과 느낌과 마음이 상호 어떻게 작용하는지 편안한 가운데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굳이 가만히 앉아 있지 않더라도 움직이면서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사람과 대화할 때, 노동할 때, 여러 가지를 작업을 할 때도 그 동작과 거기에 반응하는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감정이 격렬하게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다 막아낼 수 있어요. 억압하고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날 때 알아차리기 때문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알아차림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먼저 호흡부터 알아차림이 유지되는지 연습을 계속해야 하는 겁니다.”

답변을 마치고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30분 간의 명상을 마치는 죽비소리가 울립니다.

탁! 탁! 탁!

화면에 다시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해보니 어땠습니까? 소감을 채팅창에 올려 주세요. 나중에 질문도 올려 주시면 다음 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소감과 질문이 올라오는 동안 스님은 한 가지 공지를 했습니다.

“다음 달, 7월 20일부터 5일간 온라인으로 명상 수련을 하겠습니다. 이번 온라인 명상은 문경 수련원에서 명상을 할 때와 똑같이 진행됩니다. 아침 4시에 일어나서 저녁 9시 반에 취침할 때까지 40분 동안의 명상이 하루에 12번씩 진행됩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매일 법문이 있습니다. 또 여러분들이 명상하다가 어려움이 있으면 질문에 대한 응답도 해 드릴 것입니다.

온라인으로 명상을 진행하는 대신 집에서 명상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사람만 신청 자격이 주어집니다. 첫째, 1인 가구는 신청할 수 있습니다. 즉 혼자 사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자기 방을 명상할 수 있도록 꾸며 놓고, 오직 명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일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환경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음식도 조금 먹어야 하고, 5일 동안 전화도 받으면 안 됩니다. 모든 일정은 문경 수련원에 와서 명상을 할 때와 똑같은 규칙으로 진행됩니다.

만약에 가족과 같이 있다면 독립된 방에서 5일 동안 전혀 방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가족들로부터 받아낸 사람만이 신청이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텐트를 가지고 인터넷이 되는 곳으로 가든지, 아니면 펜션 같은 방을 하나 빌려서 해야 합니다. 도반과 같이 가서 하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세 명을 넘으면 안 됩니다. 가능하면 혼자서 방을 써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같이 방을 쓰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정토회 홈페이지를 보시고 이 조건에 해당하는 분만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문경 수련원에서 같이 명상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의 눈치도 보고 함께하는 기운으로 해나가지만, 혼자서 꾸준히 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니 확실하게 참여할 수 있는 사람만 신청해야 합니다.”

공지가 끝나자 채팅창에 수백 개의 소감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식은땀도 있었고 손발이 조금 부었습니다
I was perspiring a little chill perspiration and my extremities seems have a swollen”

“오늘은 집중이 잘 되고 죽비 소리도 금방 끝났다고 느껴질 정도로 집중이 잘 되었습니다.
I was focusing really well today and the end came really swiftly.”

“꿈을 꾸고 난 뜻한 기분이 듭니다.
I must feel like I just woke up from a dream.”

“처음으로 끝까지 해 보았습니다.
First time actually made it to the end.”

“다리가 많이 저립니다.
There's a lot of ache in my legs.”

소감을 읽고 답변을 해준 후 방송을 마쳤습니다.

“많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는데, 여러분이 올려준 질문은 다음 시간에 또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Still have many comments coming out. We shall address your questions next session. And with this let us conclude we will see you next week.”

방송이 끝나고 스님은 통역하느라 수고해 준 제이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잠시 미국의 코로나 대응 상황과 볼턴의 회고록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하루 종일 두북특별위원회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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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옆에만 붙어 있어야겠다. ㅋㅋ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_()_

2020-11-03 02:11:45

이상희

감사합니다
서로 다르다는 인정서 맘 내려놓기까지 또 알아차림법..오늘 말씀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2020-07-15 07:31:53

김나연

이번 글 좋은 내용이 많아서 많이 배웠습니다

2020-07-08 22: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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