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6.26. 종교인 모임 통영 방문 1일째
“빚을 갚는 방법”

안녕하세요.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서 통영을 방문하는 날입니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를 이끌어가고 있는 종교 지도자분들이 평화재단을 중심으로 지난 20여 년 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매달 모임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는 분단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를 만나 격려의 마음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종교지도자분들은 아침 일찍 평화재단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서울에서 통영으로 출발했고, 스님은 두북 수련원에서 농사일을 하고 언양법당에서 천도재 법문을 한 후 통영으로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아침 기도를 마치고 산 윗밭으로 갔습니다.

산 윗밭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호박이 보였습니다. 이틀 전 ‘살면 살고, 죽으면 죽고’라는 마음으로 퇴비장에서 자란 모종을 옮겨 심었는데 모두 자리를 잘 잡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낫과 괭이를 들고 빠르게 김을 매기 시작했습니다.


잡초를 뽑고 울타리 주변 덩굴을 정리했습니다.

봄에 울타리 주변을 싹 정리했었는데 어느새 울타리는 칡덩굴과 풀로 뒤덮였습니다. 칡덩굴은 나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칭칭 감고 있었습니다.

덩굴로 뒤덮인 나무는 잘 자랄 수 없기 때문에 낫으로 덩굴을 제거해주었습니다.

“스님, 7시 30분이 되었습니다.”

9시에 언양 정토법당에서 천도재 법문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다른 날 보다 일찍 울력을 마쳤습니다. 스님의 작업복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습니다.

작업복을 갈아입고 언양으로 출발했습니다. 9시에 언양 법당에 도착한 스님은 진정한 천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40분 간 설법을 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사람으로서 바르게 살아가는 길입니다. 다른 사람을 해치고 손해 끼치거나 괴로움을 주는 행동은 나를 기준으로 볼 때 그것이 몇 배의 손실로 나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에 바보 같은 짓입니다. 십 원을 벌려다 백 원을 손해 보는 것과 같은 행동입니다. 돈을 벌려고 가게를 열었다가 본전까지 잃어버리는 손해를 보듯이 우리는 이렇게 거꾸로 인생을 삽니다.

거꾸로 된 것을 바로 세우는 것, 천도

우리의 삶은 행복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지만 결과는 더 괴로워집니다. 이런 삶을 산 결과를 총결산 해보면 결국 지옥에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살다 보면 이렇게 결과가 거꾸로 나올 때가 많습니다. 돈 벌려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돈을 잃어버리듯이, 행복하려고 결혼했지만 오히려 불행해지듯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거꾸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렇게 거꾸로 된 것을 바로 세우는 것을 ‘천도(薦度)’라고 합니다. 천도의 뜻은 ‘뒤집힌 것을 바로 세운다’ 하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해지고 싶으면 거꾸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루를 살든, 일 년을 살든, 십 년을 살든, 출발할 때 보다 끝날 때 결과가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아무리 성질이 나고 화가 나더라도 남을 죽이거나 때리지 마라.
둘째, 아무리 이익을 얻고 싶어도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훔치지 마라.
셋째, 아무리 욕망이 일어나더라도 강제로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하지 마라.
넷째,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욕을 하거나 거짓말은 하지 마라.
다섯째, 술을 안 먹으면 좋지만, 술을 먹었다 하더라도 취해서 행패는 부리지 마라.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인생을 거꾸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살아서는 남의 비난을 받고 죽어서는 지옥에 가는 고통의 과보를 받게 된다고 누누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살다 보면 내 성질에 못 이기고 내 이익에 눈이 멀어서 거꾸로 살게 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 결혼하고 자식을 두게 되면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서 남을 해치거나 손해를 끼치거나 괴롭힐 수가 있습니다. 꼭 나쁜 짓을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모르다 보니 결과가 이렇게 거꾸로 될 수 있습니다.

평소에 바른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살면 천도재라는 것을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살다 보면 이렇게 거꾸로 살 수도 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삶 전체를 결산해 보면 손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장사를 시작할 때와 폐업할 때 계산해보면 번 돈보다 잃은 돈이 더 많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천상은커녕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지옥에서 건져내는 것, 거꾸로 된 것을 바로 세우는 것, 이것을 ‘천도’라고 합니다.

빚을 갚는 방법

그럼 어떻게 해야 천도가 될까요? 손실이 난 부분을 배상해야 합니다. 남을 손해 끼치거나 해치거나 괴롭힌 것에 대해서 변상을 하고 갚아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어떻게 손해를 끼쳤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요?

하나하나 살펴보는 방식으로는 누구한테 어떤 손해를 끼쳤다고 일일이 따져봐야 하지만, 천하 만물 전체를 놓고 볼 때는 결국 개개인이 손해를 끼친 결과 이 세상에서 가장 불이익을 당한 사람은 바로 굶어 죽는 사람들입니다. 병이 들었지만 치료받지 못하고 죽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손해를 받고, 저런 손해를 받은 결과, 최종적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사람들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평생 빚진 것을 다 갚으려면, 내가 손해를 끼친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찾아가서 갚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부처님께 올리는 공덕과 똑같은 공덕이 이 세상에 네 가지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첫째,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입니다.
둘째, 병든 사람을 치료할 수 있게 약을 주는 것입니다.
셋째, 가난한 사람을 돕고, 외로운 사람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넷째, 청정하게 수행하는 사람을 외호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천도를 하는 방법은 베푸는 것입니다. 베풀어야 그 공덕으로 천도가 됩니다. 그래서 천도재(薦度齋), 우란분재(盂蘭盆齋)를 말할 때 ‘재’ 자는 베풀다는 의미의 ‘재(齋)’자를 씁니다. 귀신에게 무엇을 올리는 ‘제사(祭祀)’를 지낸다고 할 때의 ‘제(祭)’자가 아닙니다. 베풀어야 모든 죄업이 사라지게 돼요. 그런 의미로 천도재를 지내는 겁니다.

천도재를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꾸 ‘음식을 얼마나 차려야 하나’ 이렇게 걱정하는 겁니다. 음식을 많이 차린다고 공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우리가 마음이 아쉬우니까 음식도 차리고, 다른 것도 준비하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귀신이 와서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으로 천도가 되려면 가난한 이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오늘은 작별 인사를 하는 날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자식이 죽으면 부모 가슴 속에 묻는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만큼 가슴이 아프다는 표현이지만, 이렇게 가슴 아파하는 것은 영가(靈駕)를 위해서 좋은 일이 아닙니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이러니 저러니 하며 계속 붙들고 있으면 새로운 불행을 야기시킵니다.

영가를 떠나보낸 가족 여러분들의 아픔은 이해가 되지만, 그 아픔을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 본인의 건강에도 좋지 않고 고통만 계속 가중시킵니다. 그래서 천도의 다른 의미는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오늘 작별 인사를 하셔야 해요. 아쉽지만 ‘그래 잘 가라’ 하고 인사를 하십시오. 물론 함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아버님, 잘 가십시오’
‘여보, 잘 가요’
‘아들아, 잘 가라’
‘동생아, 잘 가’
‘오빠, 잘 가’

49재를 지내는 오늘은 이렇게 영가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날입니다. 49일 만에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다고 하니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 돼요. 작별 인사를 하지 않게 되면, 영가가 새로 생명을 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니 오늘 이 재를 끝으로 해서 영가를 완전히 떠나보내야 합니다. 애달파서 생기는 정이 아직 남아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원한이 맺힌 것이라 하더라도, 오늘부로 다 풀어버리고, 떠나보내셔야 합니다. 작별 인사를 하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자신을 위해서도 좋고, 영가를 위해서도 좋습니다. 이것을 잘 아셔서 오늘 이 재를 끝으로, 아쉬운 점이 있든, 원한이 있든, 애착이 있든,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돌아가신 분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떠나보내 주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에요.”

법문을 마치고 스님은 가장 먼저 영가를 위해 차를 올리고 축원을 했습니다.

천도 법문을 마치고 10시에 언양법당을 출발해 12시에 통영에 도착했습니다. 다 같이 점심식사를 한 후 가장 먼저 통영 시내에 위치한 윤이상 기념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윤이상 선생의 생가 옆 부지에 조성된 기념관은 선생의 음악 세계를 조명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와 선생이 생전 독일 베를린에서 거주하며 사용하던 유품들과 독일 정부로부터 받은 훈장과 괴테 메달을 비롯한 사무집기, 생전 연주하던 바이올린, 항상 품고 다녔던 소형 태극기와 사진 5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기념관에서 안내를 해주시는 분이 윤이상 선생의 일생에 대해 감동적으로 설명을 잘해주었습니다.

“이 흉상은 북한 평양 만수대공작소에서 만든 겁니다. 윤이상 선생의 평생소원이 남북이 하나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017년에 이 기념관을 새로 개관할 때 북한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윤이상 선생은 통영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 39년을 살다가 독일로 유학을 가서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서양 음악에 동양의 사상을 담아내어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윤이상 선생은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습니다.

“윤이상은 1967년 이른바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이라는 누명을 쓰고 베를린에서 한국으로 강제 납치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가혹한 수형 생활을 했습니다. 이응노 화백, 천상병 시인 등 34명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최고 사형 등 유죄를 선고한 이 사건은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꾸준한 구명 운동이 전개되어 결국 이 사건을 조작했던 정권은 2년 만에 형 집행정지로 윤이상을 독일로 돌려보냈습니다.

윤이상은 수형생활 동안에도 '나비의 미망인', '율', '영상' 등을 작곡하여 세계인을 감동케 하였으나, 부끄럽게도 모국인 대한민국은 끝까지 선생을 박대하여 고향땅을 밟지 못한 채 눈을 감았죠.

그렇지만 윤이상은 죽는 날까지 조국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죽기 전에 선생의 소원은 남과 북이 모여서 휴전선에서 음악회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료가 ‘유럽은 정말 대우를 잘해줘서 좋다 ‘라고 말할 때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럽이 아무리 좋아도 대한민국만 하겠습니까?’

그렇게 사지에 몰리고 고문을 당했음에도 선생은 죽는 날까지 고국 땅을 밟아보고 싶어 했습니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 23년이 지난 2018년에서야 베를린에 있는 유해를 통영으로 모셔왔습니다. 설명을 듣고 스님은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분단의 비극이에요.”

김명혁 목사님도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며 한마디 했습니다.

“저는 사실 오늘 아침까지 윤이상 선생에 대해 몰랐습니다. 오늘 설명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까지, 민족을 사랑하신 정말 귀한 분이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여기를 방문하고 가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걱정이 싹 사라졌습니다.” (웃음)

윤이상 선생은 일평생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를 소원했다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종교인분들은 북한에서 제작했다는 선생의 흉상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윤이상 선생의 부인인 이수자 여사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여사님은 올해 나이가 94세입니다. 현관을 열자 여사님이 환한 웃음으로 종교인분들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연세보다 훨씬 정정해 보이셨습니다.

가장 먼저 김명혁 목사님이 이수자 여사님을 위해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죄와 허물 밖에 없는 우리들이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20여 년 이상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마음과 뜻을 모을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민족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살다 간, 내 몸이 고국에 가서 묻혀야 한다고 마지막 소원을 말하며 돌아가신, 우리 민족과 세계를 품으며 살다 간, 윤이상 선생님을 기억하며 우리 종교인들도 그 정신을 배우겠습니다. 이수자 여사님도 남편을 떠나보냈지만 남은 여생을 건강하게 살다 가시길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종교인분들은 여사님을 위로하며 가볍게 담소를 나눈 후 준비한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종교인 모임에서는 성금을 모아 전달하고, 스님은 작년에 북한 방문을 했을 때 받은 한반도를 수놓은 액자를 선물했습니다.

여사님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집을 나왔습니다.

다음은 윤이상 선생의 유골이 묻힌 묘지를 참배했습니다. 묘지는 통영 국제음악당 한편에 소박하게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음악당의 이름이 이상해서 스님이 물었습니다.

“왜 윤이상 음악당이 아니고 통영 국제음악당이죠?”

“아직 반대 여론이 많아서 윤이상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수 단체에서 반대 집회를 여러 차례 했다고 합니다. 분단의 장벽은 지금도 남아 있었습니다. 묘지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아늑한 위치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잠시 참배를 한 후 음악당을 둘러보았습니다.


여사님은 늘 고국을 그리워했던 윤이상 선생님이 다시 생각나는지 바다를 보며 상념에 잠겼습니다.

“음악당에 묘지를 마련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묘지 안에서도 늘 음악을 듣고 있으니까요.”

다시 웃음을 보이는 이수자 여사님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저녁에는 통영시 시장님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한 후 강연을 하기 위해 다시 윤이상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통영 시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분들이 이번 종교인 모임의 통영 방문 일정에 많은 편의를 봐주었습니다. 스님은 통영 시장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원래는 음악당에서 강연을 하기로 했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규모를 작게 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을 비롯해 모든 참석자들이 발열 체크와 손 씻기를 한 후 강연장에 입장했습니다. 오늘 만남은 '통영시민학교'에서 주관하여 모든 준비를 해주었습니다. 강의 주제는 ‘통영시민과 종교인의 대화, 시민사회의 역할을 말하다’ 입니다.

한 자리씩 건너뛰어서 앉은 방식으로 50여 명의 통영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큰 박수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함께 자리한 종교인분들 한 분 한 분을 소개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어떤 이야기든지 자유롭게 해 보자고 이야기했습니다.

“남북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해도 좋고, 종교에 대한 질문을 해도 좋고, 또 인생 문제에 대한 질문을 해도 좋습니다. 주제에 제한 없이 각자 자기 관심사 또는 하고 싶은 얘기나 어떤 비판을 해도 좋습니다. 욕설만 빼고 주제의 제한은 두지 않고 대화를 하겠습니다. 나이, 종교, 성별 이런 것에 눈치 보지 않고 친구가 친구에게 얘기하듯이 뭐든지 얘기해보는 그런 자리이니까 무엇이든 질문해 보세요.”

스님이 직접 사회를 봤습니다. 질문 내용을 들어보고, 스님은 가장 대답을 잘할 수 있는 분에게 마이크를 넘겼습니다. 아무도 답변할 수 없는 주제는 스님이 답변했습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주로 참석해서 그런지 남북 관계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나빠지는 남북관계, 제 꿈이 무산될까 봐 걱정입니다

“최근에 갑자기 남북관계가 나빠져서 제가 하고자 했던 일을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됩니다. 2년 전만 해도 tv를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를 하는 모습을 보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평소 시베리아 종단 열차를 타고 싶었던 저는 거제도까지 ktx도 생긴다고 해서 ‘앗싸’하는 마음으로 ‘통영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을 통해서 시베리아까지 여행을 하면 되겠네’ 하고 기대를 가졌습니다. ‘금강산 관광도 관계가 다시 좋아지면 언제든지 갈 수 있겠구나’ 하고 기대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남북관계가 나빠지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할까 걱정이 됩니다. 앞으로 제가 여행을 갈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전망을 부탁드립니다.”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도 없고, 남이 나한테 원하는 걸 내가 다 해 줄 수도 없습니다. 여행 못 가면 못 가는 대로 살면 되지요. (웃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 민족 서로 돕기 운동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박남수 교령님이 남북문제에 대해서 고견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교령님께 대답을 들어보겠습니다.”

스님은 마이크를 박남수 교령님에게 전달했습니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박남수 교령님이 답변을 했습니다.

“남북문제가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은 나빠지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잘 되어 가기 위한 방편입니다. ‘지금 꽃샘추위가 심하게 불고 있다’ 이렇게 봐야 합니다. 그러니 개성도 금강산도 다 저하고 함께 가시죠.” (모두 박수)

다시 스님이 마이크를 넘겨받아 답변했습니다.

“2017년만 하더라도 전쟁이 날 것 같았잖아요. 실제로 그때 한미 연합사령관이었던 브룩스 사령관의 얘기를 들어보면 거의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단계까지 갔었습니다. 전쟁을 하려면 마지막 단계가 미국 시민권자를 철수시키는 것입니다. 군사적인 준비는 다 해놓고 마지막으로 미국 시민권자만 철수시키면 공격을 개시하는 그 단계까지 갔는데, 평화로 전환이 됐습니다.

이런 과정은 지난 한국전쟁 이후 70년간 반복되어 왔습니다. 전쟁 직전까지 갔다가 평화로 바뀌어서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했고, 그 이후에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할 때는 통일이 금방 다가올 것 같이 관계가 좋아졌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다시 긴장이 고조되는 분위기로 가고 있는 겁니다.

전쟁이 날 것 같은 국면이 다시 온다는 것은 남북문제를 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7.4 공동성명, 6.15 공동선언, 10.4 공동선언, 4.27 공동선언이 지난 70년간 계속 진행되어 왔다는 것은 남북관계가 풀어지는 쪽으로 한 발 한 발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남북문제는 풀기가 굉장히 어려운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풀려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지난 역사를 잘 살펴보면, 옛날에는 널뛰기를 아주 큰 폭으로 했다면, 갈수록 널뛰기의 폭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관계가 뒤로 물러난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2년 전만 해도 ‘이제 정부가 다 알아서 통일을 이뤄낼 것이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민간이 통일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지만, 저는 ‘꼭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다 된 것 같지만 다 된 적도 없고, 전쟁이 날 것 같지만 다시 평화가 오는,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가운데 계속 남북 관계를 좋아지는 쪽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될 것 같다’ 해도 쉽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하고, ‘안 될 것 같다’ 해도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관점을 가져야 해요.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뒤로 가면 오히려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앞으로 갈 수 있게 더 노력해야 합니다. ‘잘 될 것 같다’ 해도 너무 흥분하지 말고 진정시키는 노력이 필요하고요. 그래서 지금은 불안해하기보다는 몇 발 뒷걸음을 치는 중이라 보고 좀 더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박수)

이 외에도 코로나 사태의 종결과 그 이후,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문제, 남북 관계에 대한 질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K팝과 한류 열풍, 그리고 최근 코로나19 방역을 통해 전 세계인들로부터 얻게 된 신뢰를 기반으로 이제는 남북교류와 협력을 통해 ‘K-개발’이라는 획기적인 국가 발전 전략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강의를 마쳤습니다.

종교인분들과 참석자들 모두 기념사진을 함께 촬영한 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스님은 늦게까지 종교인분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한 후 통영 방문 2일째를 맞이하여 종교인 분들과 통영 곳곳을 둘러보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저녁에는 해외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간담회가 온라인으로 진행됩니다.

전체댓글 72

0/200

김현숙여래심

하늘길 열려 휴가 받아 들어가면 통영 함 들러야겠습니다~

2020-07-18 01:02:55

월광

아버님, 잘 가십시오’
‘여보, 잘 가요’
‘아들아, 잘 가라’
‘동생아, 잘 가’
‘오빠, 잘 가’

돌아가신 모든 분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극락왕생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님을 통해서 어떻게 보내 드려야 하는지 다시 배우고 빚을 갚는 방법도 새롭게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0-07-09 04:07:35

주상철

윤이상선생님에 대한 새로운 눈을 떠습니다.

2020-07-05 05:27:22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