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5.7. 경주 국립공원 관계자들과 경주 남산 순례
“실수를 백 번 한다는 마음으로 해보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경주 국립공원 관계자들과 함께 경주 남산을 순례했습니다. 서울에서 국립공원공단 이사님이 스님을 찾아뵙기 위해 경주로 내려왔습니다.

국립공원공단 이사님은 스님과 잘 아시는 분으로 문화유산 지구로서의 국립공원 운영에 대해 스님의 자문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스님은 특별히 시간을 내어 경주 남산을 함께 순례하면서 대화를 나누자고 제안했습니다.

9시 20분에 경주 남산 아래 통일전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이사님과 함께 경주 국립공원사무소 소장님 등 경주사무소 직원들이 반갑게 스님을 반겨 주었습니다.

“스님께서 시간을 내어 주셔서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후 곧바로 경주 남산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통일전 주차장을 출발하자마자 남산사지 삼층석탑이 보였습니다.

“저기 보시면 남산사지 삼층석탑이 있어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저 탑을 보호하기 위해 친구들과 돈을 모았어요. 모은 돈을 시청에 갖다 주면서 이 돈으로 저 땅을 마을 사람들로부터 구입해서 저 탑을 보호해 달라고 했던 적이 있거든요.” (웃음)

스님은 어릴 적 경주 남산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염불사를 지나 칠불암으로 올라가는 계곡에 들어섰습니다. 울창한 산림 속에 들어오자 곳곳에서 새소리가 들려오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올라가는 길이 넓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도 좋았습니다.

초입에는 오솔길처럼 오붓한 길이 이어지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경사가 커져서 조금씩 숨이 가빠졌습니다.

“잠시 쉬어 갑시다.”

땀을 닦으며 스님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스님은 그동안 경주 남산 순례를 하면서 겪었던 여러 어려움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이사님과 소장님도 스님의 제안을 흔쾌하게 받았습니다.

“저희 정토회에서는 매년 봄가을로 불교대학 학생들을 데리고 경주 남산 순례를 하거든요. 그런데 탐방로 몇 군데가 진입 제한이 걸려 있어서 순례를 못해요.

칠불암의 신선암 코스는 진입 제한 구간을 피해 돌아가야 하니까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해요. 삼릉골 상선암 대좌불로 올라가는 길도 막아 놓아서 저희가 지금 참배를 할 수가 없고요. 용장골 코스는 지곡에 있는 모전석탑을 보기 위해 산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하고요. 그 밑에 하늘 저수지로 내려와서 측면으로 등고선을 따라가면 이영재로 연결되는 길이 있는데, 이 길도 진입이 제한되어 있어요. 순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천룡사나 칠불암에서 올라오면 이 길을 이용하는 게 편하거든요. 안 그러면 또 골짜기로 내려갔다 오거나 봉화 능선으로 올라가서 돌아가야 하니까요. 그 길은 진달래도 정말 많아서 보기가 좋거든요. 부처골에서도 대중을 데리고 올라가다 보면 나중에 막혀 있는 곳이 나와요. 그러면 대중이 보기에는 ‘스님이 막아 놓은 곳으로 우리를 데려왔다’ 이렇게 생각이 드는 거죠. (웃음)

이런 길은 열어 놓는다고 해서 등산객이 많이 다닐 우려는 없거든요. 주로 순례객만 다니는 길이니까요. 순례객은 그곳을 참배해야 하는데, 산 위로 올라갔다 내려오려면 길이 좁으니까 대중이 한 참 동안 기다려야 해서 불편이 있거든요. 이런 길은 순례를 할 때만이라도 한시적으로 열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등산객이 아닌 순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저는 경주 남산을 안내하는 교육자의 입장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오는데 출입 제한이라고 막아 놓은 것을 ‘괜찮아. 넘어가도 돼’ 이렇게 학생들에게 말하기는 곤란하잖아요. (모두 웃음)

이런 점은 순례객을 위해서 개선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등산을 온 사람들은 불상을 안 봐도 괜찮을 겁니다. 그런데 저희는 불상을 참배하고 기도하고 설명을 해줘야 하거든요.”

경주 국립공원 담당자는 스님의 제안에 동의하면서도 공원 측의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국립공원 관리 차원에서는 낙석이 혹시 떨어질 수 있어서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섣불리 출입 제한을 못 풀고 있어요. 무너지는 건 아니지만 개방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만일에 하나 안전사고가 일어나면 책임을 질 수가 없으니까요. 출입 제한을 풀려는 움직임도 있었는데, 특히 경주에 지진이 나면서 그 이후로는 제한을 풀 수가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셨구나. 설명을 들으니까 이해가 되네요. (웃음) 그러면 제가 순례 대중들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해주고 이해를 구하겠습니다.”

“방법은 있습니다. 스님께서 경주 남산 순례를 하신다고 할 때 사전에 국립공원사무소로 협조 공문을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저희 직원들이 인지를 하고 출입 제한을 한시적으로 풀어 드리겠습니다.”

“그것 참 좋은 방법이네요. 앞으로는 사전에 어떤 코스를 갈 것인지 미리 협조를 구하겠습니다.

사실 경주 남산은 산이 좋아서 국립공원이 되었다기보다는 문화재가 많아서 국립공원이 된 것이거든요. 그래서 문화재 탐방을 중심으로 국립공원 관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희도 통일암 너른 숲에서 법회를 열 때는 대중이 많이 모이니까 화장실 쓰기가 어려워서 임시 화장실을 자체적으로 설치해서 사용하기도 해요.” (웃음)

쉽게 해결 방법을 찾았습니다. 웃으면서 다시 산길을 걸었습니다.

중간중간 계곡물소리를 들으니 귀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경주 남산의 문화재 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칠불암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칠불암에 도착할 즈음에 다시 돌계단이 시작되었습니다. 숨을 고르며 약수물을 한 바가지씩 마셨습니다.

가지런하게 이어지는 경사진 계단길 옆으로 대숲이 우거져 있어서 정말 멋졌습니다. 헉헉 숨을 내쉬며 오르던 스님이 옛날 추억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학생 때 큰스님 모시고 칠불암에서 수련을 자주 했는데요. 물지게를 지고 이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해야 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돌계단의 폭이 아주 좁았어요. 물지게 양쪽이 대숲에 걸리니까 이렇게 비스듬하게 물지게를 지고 올라가야 했어요. 이렇게요.” (웃음)

하늘을 가린 대숲 길을 통과해서 올라가니 칠불암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커다란 바위 사면에 각각 불상이 새겨져 있고, 위쪽 바위에 불상 세 개가 새겨져 있어서 총 일곱 개의 석불이 있어서 칠불암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스님은 먼저 가사를 수하고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은 후 돌아서려는데, 칠불암 주지 예진 스님이 반갑게 스님에게 인사를 올리며 일행에게 차 한 잔을 하고 가라고 했습니다. 잠깐 암자에 들어가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여기가 달빛이 정말 아름다워요. 지금도 눈에 선한데, 겨울이 되면 저녁에 소나무에 눈이 하얗게 내려 있는데, 그 위로 달이 떠올라요.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코로나19로 인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주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스님은 요즘 하고 있는 농사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다시 산을 올랐습니다.

신선암에 도착하니 발 아래로 절벽이 보였습니다. 간담이 서늘해하고 있는데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 절벽 위가 제가 어릴 때 명상하던 곳이에요. 옆에 큰스님이 앉아서 저를 딱 지켜보셨어요. 졸음이 와서 깜빡하는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됩니다. 절대 졸 수가 없었어요.” (웃음)

스님은 직접 절벽 위에 앉아 시범을 보였습니다. 뒤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아찔했습니다.

작은 틈으로 걸어서 들어가니 조금 더 넓은 바위면에 보살상이 하나 새겨져 있었습니다.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입니다.

“이 보살상은 한쪽 다리가 다른 쪽 무릎 위에 올라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의자 아래로 편안히 내려놓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걸 ‘유희좌’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펜스가 쳐져 있어서 지나다니기가 항상 불편합니다. 스님은 이 부분을 개선할 수는 없는지 제안했습니다.

“안 그래도 그런 민원이 많이 들어와서 나무 데크를 바위 아래로 내리기로 했습니다.”


국립공원 담당자는 설계도면도 함께 보여주었습니다. 산 아래 풍경을 보니 저절로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백운암을 지나 천룡사로 향했습니다.

천룡사에 도착하자 스님은 이 절의 유래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1700년대에 이미 이곳 천룡사에서는 왕조의 시대가 가고 민국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어요. 그 후 절을 유생들이 불을 질러 버렸어요. 조실 스님은 죽고, 시자가 화상을 입고 살아남아서 폐허가 된 이곳에서 정진을 계속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용성 조사님이 살아남은 그분의 지도를 받아서 이곳에서 정진을 하셨어요. 용성 조사님은 깨닫고 나서도 7, 8년 동안 폐허가 된 이곳에서 화상을 입은 그분을 시봉 하면서 살았어요. 그래서 이곳은 용성 조사님의 중요한 수행 도량입니다.

이 천룡사를 복원하라는 것이 용성 조사님의 유언입니다. 이 절은 그냥 종교적인 의미의 절이 아니에요. 남북통일을 발원하는 호국사찰입니다. 이곳 천룡사를 복원하고 통일을 발원하면 대한민국의 국운이 융창한다는 것이 예언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문화재청이든 시장이든 정치인이든 다들 특정 종교인 불교로만 접근하고 민족 사상적으로 접근을 안 하니까 지금 진척이 안 되고 있어요.”

스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틈수골을 지나 경주 남산을 내려왔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스님은 일행 모두에게 수련원에서 간단하게 식사 대접을 했습니다.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함께 한 후 비닐하우스, 논과 밭 등 농장 곳곳을 견학시켜 주었습니다.

손님들을 보내고 오후에는 농사일을 했습니다. 저녁 7시가 되어 어김없이 농사팀 행자님들과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어떤 알아차림이 있었습니까?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오늘 일하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실수를 해서 지금 맡은 일이 부담이 된다는 고민을 이야기하는 행자님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행자님은 잘못된 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상대가 상처를 받으니까 일을 어떻게 같이 해나가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모두 마치고 나서 스님은 두 행자님을 위해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 법문해 주었습니다.

“내가 잘 모르는 일을 할 때는 ‘나는 이거 잘 모르니까 안 하겠다’ 이렇게 하지 말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거나,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귀를 닫게 됩니다. ‘안다 병’과 ‘모른다 병’은 듣기 싫다는 겁니다. “알았다니까!” 하는 말이나 “몰라!” 하는 말이나 둘 다 듣기 싫다는 뜻입니다. 모르면 배워서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목표를 너무 높이 설정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잘 모르는 일을 맡았다면 ‘아, 배워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내면 됩니다.

실수를 백 번 한다는 마음으로

오늘부터 제가 과제를 두 개 드릴 테니 한 번 해보세요. 첫 번째 과제는 올해 안에 실수 백 번 하기입니다. 올해 안에 백 번까지 실수하는 것을 허용해 드릴게요. 지금 몇 번째예요? (모두 웃음)

“두 번 째예요.”

“아직 멀었네요.. 실수가 백 개를 초과하면 이 일은 행자님의 적성에 도저히 안 맞구나 인정하고 업무를 바꿔 줄게요. 적성에 안 맞는 것을 자꾸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백 번을 초과하지 않으면 크게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 실수를 편하게 받아들여 보세요. 일을 하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예요. 실수 했다고 해서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아직도 열 번 밖에 안 되네.’

이렇게 마음을 내보세요. 알았죠?”

“네.”

“올 해에는 실수할 때마다 번호를 붙여서 백 번 안에만 들어가면 이 일을 계속하고, 백 번이 넘어가면 그때 업무를 바꿔줄게요.

상대에게 편안하게 말하는 방법

두 번째 과제는 잘못된 것을 발견했을 때 상대에게 편안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스타일로 말을 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듣는 것이 다르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말도 독하게 들리는 거예요. ‘왜 임무를 제대로 안 하냐?’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그냥 잘못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힐난처럼 들릴 수가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은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듣는 사람은 비난처럼 느끼는 겁니다.

예를 들어 방금 여러분이 마음 나누기를 할 때 ‘도반의 어떤 행동을 보고 답답했습니다’ 이런 나누기가 있었는데, 제가 들었을 때는 ‘이 정도 나누기를 하는 것은 괜찮다’ 이렇게 생각이 됐습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 사람이 답답하다고 하면서 나를 원망하는구나’ 이렇게 느껴질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잘못된 것이 있으면 말을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 ‘틀린 것을 말할 때 상대방이 상처 입으면 어떡합니까?’ 이렇게 묻는데, 이것이 과제입니다. ‘당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안 했다!’ 이렇게 힐난하듯이 얘기하지 말고 그냥 말을 하면 돼요.

‘아이고, 이거 제대로 작동이 안 되네요. 어떻게 하죠?’

이렇게 그냥 얘기하고 지나가면 됩니다. 결과만 그냥 얘기하는 거예요.

‘열심히 고치셨는데 제대로 작동이 안 되어서 큰일이네요.’

이렇게 얘기하면 본인이 ‘고쳐야 되겠네요’ 하고 고칠 수도 있고, ‘그냥 씁시다’ 이럴 수도 있습니다. ‘저는 또다시 작업을 하기가 싫습니다. 그냥 씁시다’ 이러면 ‘알았어요. 그러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요’ 이렇게 얘기하면 되고, ‘아이고, 어떡하죠?’ 이렇게 걱정을 하고 있으면 ‘우리가 같이 고칩시다’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말을 할 때 ‘당신 책임이에요!’, ‘당신이 해야 할 일이에요!’ 이렇게 비난하는 어투로는 말하지 않은 것이 좋아요.

그런데 말을 그렇게 안 하면 좋지만, 말이 그렇게 나오는 걸 어떡해요. 그것도 내 습이에요. ‘잘하고 싶다’, ‘잘 보이고 싶다’ 하는 것도 내 습관입니다. 그런 습관이 없으면 좋겠지만 내 습관인데 어떻게 해요. 없으면 좋겠지만 안 없어지니까 그걸 안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습을 안고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예를 들어 다리를 다쳐서 쩔뚝거리고 살아야 한다고 합시다. 건강하면 좋지만 쩔뚝거리는 걸 어떡해요. 쩔뚝거릴 수밖에 없다면, 쩔뚝거리는 것에 대해 자꾸 열등의식을 가질 게 아니라 ‘그래도 다리가 없는 것보다는 쩔뚝거려도 다리가 있는 게 낫다’ 이렇게 수용해야 됩니다.

다 괜찮아요. 나도 그런 성질이 있고, 저 사람도 그런 성질이 있어요. 힘들어서 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은 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20대 젊은 사람이 맨날 울긴 울어도 이런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 사람이 누가 있어요? 대한민국에 다 찾아봐도 그런 사람 없어요. 물론 안 울고 하면 더 좋죠. 그래도 울더라도 가버리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고, 안 울고 안 하는 것보다는 울고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일하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실수도 많고 몸을 사린다’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지만, ‘꼼꼼하고 차분하게 잘한다’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꽁해서 상처를 만들어 쥐고 있으면 같이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럴 때 툭 털고 다시 하는 것이 수행자입니다.

툭 털고 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너무 잘하려고 해도 안 되고, 맺힌 것을 금방 풀려고 해도 안 돼요. 사람마다 마음이 풀리는 방식이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법문 듣고 그냥 풀리고, 어떤 사람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 2, 3일 지나서 풀릴 수도 있고, 다른 일로 기분이 좋아져서 그 기분에 따라가다가 같이 풀리기도 합니다. 그 문제를 꼭 해결해야만 풀리는 사람도 있고, 사과를 받아야 풀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풀려요. 세월이 약이에요. 그런데 어차피 풀릴 거라면, 한 달 끌고 푸는 것보다는 오늘 푸는 게 낫죠. 내일까지 쥐고 있다가 풀면 나만 피곤해요.”

“감사합니다.”

법문을 해준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 후 모임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하고 나서 점심때 경로당 두 곳을 방문해 이불 전달식을 한 후, 오후에는 행정처를 비롯해 각 단위에서 요청한 법문을 촬영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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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순례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20-09-28 22:38:41

나그네

저는 가게를 하는데 잘해보려고 한일이 벌써 6번째 문을닫고 옮겨야 할것같습니다 ..백번째가 아니니 다행이겠지요 ㅜㅜ 사실 이것 아니면 제가 할수있는게 없거든요 한번은 잘될거라는 생각으로 힘들때 마다 스님의 글을 읽고 위로받곤합니다
스님~항상건강하세요~

2020-05-13 22:11:37

정지나

그저 결과를 있는 그대로 전해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20-05-12 21: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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