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4.9 농사일
“수행자가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안녕하세요. 오늘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했습니다. 예불과 아침 공양을 마친 후 스님은 아침 7시부터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골목마다 활짝 핀 봄꽃이 아침 인사를 건넵니다.

밭으로 가는 동네 어구에는 늘 망가진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이 계십니다. 스님은 지난번에 서울 가는 길에 반듯한 플라스틱 의자를 구해서 가져다 놓았습니다.

오늘 스님은 산아랫밭에 물을 더 쉽게 받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며 실험을 더 해보았습니다. 밭보다 낮은 지역에 있는 물 웅덩이의 물을 퍼나르지 않고 호스로 연결해서 옮겨오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비닐하우스 앞 물탱크에 저수지로부터 낙차를 이용해 물이 자동으로 공급되도록 장치를 해두었는데, 얼마 전부터 물이 안 나온다고 해서 저수지로 올라가 무엇이 원인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저수지의 물이 줄어들면서 호스 안에 공기가 들어가서 물 공급에 장애가 생겼던 모양입니다. 두 번의 실패 끝에 세 번째에 겨우 다시 낙차를 이용한 물 공급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물이 들어오는 호스 입구를 저수지 깊은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저수지 한쪽 편에는 물에 잠겨 있는 수양버들 가지가 귀신처럼 지저분하게 늘어져 있었는데, 스님은 가지를 말끔하게 정리했습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가지를 자르느라 스님이 물속으로 떨어질 뻔한 아슬아슬한 상황이 되기도 했습니다.

“나무가 물에 잠겨 있어 늘 저수지의 여기 부분이 지저분했거든요. 이렇게 가지를 쳐놓으니까 시원하네요.”

나무를 올라타고 톱질을 하느라 바짝 긴장을 했는지 스님은 나무에서 내려오자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비닐하우스로 내려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참을 먹었습니다. 참을 먹으면서 스님은 어제 몸 상태가 안 좋아 휴식을 취했던 행자님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건강이 안 좋아서 어떡해요?”

“스님, 영농 기계화가 시급히 필요합니다.”

“기계화가 되면 일은 쉬운데 운동이 안 되잖아요. 운동이 되어야 건강해지죠. 필요하면 기계도 써야 하지만, 꼭 기계를 쓰지 않아도 자연을 이용해서 농사를 지을 줄 알아야 나중에 인도나 필리핀 같은 오지에 파견이 되어도 마을 주민들을 도울 수가 있죠. 필리핀 원주민 마을에 가면 기계를 사용해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잖아요. 또 샘을 파서 물을 공급해 주는, 그런 일도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수행자가 짓는 농사는 농사꾼이 짓는 농사와 다를 수가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식을 마치고 나서 스님은 묘당 법사님과 함께 산꼭대기 밭으로 올라갔습니다.

산꼭대기밭은 이웃집 어르신이 생땅을 개간한 것을 보시받은 땅이라 구석구석에 아직 모양이 덜 갖추어진 곳이 많습니다. 오늘은 밭의 모퉁이 부분과 측면 한 줄을 포클레인으로 정비해서 밭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포클레인을 지휘하는 감독이 되어 어느 땅을 파서, 어디로 흙을 붓고, 어떻게 평탄화 작업을 할지, 하나하나 지휘하며 조금씩 밭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여기 땅을 파서 저기로 흙을 부어 주세요.”

2시간 정도 작업한 끝에 황무지 땅이 꽤 쓸 만한 땅으로 바뀌었습니다.

“밭으로 쓸 수 있는 면적이 훨씬 넓어졌죠? 오늘 새로 만든 밭이 지난번에 수련원 뒷 담벼락에 새로 만든 밭보다 면적은 넓어요.” (웃음)

스님이 산꼭대기밭을 정비하고 있는 동안 행자님들은 어제에 이어 동네 어르신 댁에 소똥 거름을 받으러 갔습니다. 오늘은 소똥 세 트럭을 산꼭대기밭으로 올리기로 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소똥이 정말 소중한 것임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트럭에 소똥을 가득 싣고 산꼭대기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도로 보수 공사를 잘해놓은 덕분에 트럭이 한 번에 거뜬히 올라갔습니다. 오늘 산꼭대기밭에는 소똥을 세 트럭이나 부었습니다.

“이 정도면 거름이 충분합니다. 오늘 이 밭에 소똥을 올려놓았기 때문에 이제 호박을 심어도 잘 자랄 거예요. 생땅에는 호박이 잘 안 자라지만, 구덩이에 소똥을 가득 넣으면 호박이 잘 자라요.”

많은 노력들이 쌓여서 황무지 땅이 점점 기름진 밭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스님은 바가지, 삽, 괭이, 채, 고수 씨앗을 들고 다시 산꼭대기밭으로 올라갔습니다.

“고수 씨앗을 물에 불려놓은 게 좀 남았는데, 산꼭대기밭에 모두 심읍시다.”

아직 산꼭대기밭은 생땅이어서 돌이 아주 많습니다. 삽으로 땅을 파서 채로 거른 후 큰 돌을 먼저 골라내었습니다. 고운 흙을 다시 평평하게 펼쳤습니다.


호미로 골을 만든 후 고수 씨앗을 흙과 함께 섞어 골고루 뿌려 주었습니다.

흙을 덮고 나서 물을 주려고 하는데 물뿌리개를 안 갖고 왔음을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그냥 원시적인 방법으로 물을 줍시다. 이렇게 바가지로 퍼서 물을 주는 거예요.” (웃음)

해가 질 무렵 산을 내려왔습니다. 오늘도 땀 흘려 일한 보람된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동네 입구에는 아침에 스님이 두고 간 새 의자에 어르신들이 앉아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고맙다. 좋은 의자를 갖다 놓아서 앉기가 참 편하다.”

저녁 7시에는 두북 수련원에 다 함께 모여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소감을 이야기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오늘도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오늘 알아차림이 있었다면, 제가 ‘빨리 가자’ 이렇게 하는 말이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별생각 없이 ‘가자’ 이렇게 말하는데, 주위 사람들이 마음이 조급해진다니까 앞으로는 조금 더 배려를 해야겠어요.

아무래도 여러분들이 저와 같이 사는 게 좀 부담이 되는가 봐요. 저도 조심해서 이야기하겠지만, 여러분도 저와 함께 있을 때 힘들면 힘들다고 편안하게 표현해주면 좋겠어요. 저는 평생 이렇게 쉰다는 걸 모르고 살아왔거든요. 아픈 것은 아픈 것이고, 일이 많으면 많은 대로 그냥 일하고, 그렇게 살았는데, 여러분은 안 그런 것 같아요. 이렇게 같이 생활하니 이제 저도 여러분의 상황을 헤아려야 할 것 같고, 여러분도 좀 편안하게 지내면 좋을 것 같아요.”

마음 나누기 중에 몸이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사일이 계속되고 저녁마다 마음 나누기가 있다 보니 게 중에는 밤늦게 업무를 봐야 하는 사람도 있어서 과로가 누적되었나 봅니다.

스님은 며칠 동안 마음 나누기를 경청하며 들었던 생각을 오늘 길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수행에 대한 법문을 청해 듣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수행적인 관점에서 얘기를 해볼게요. 우리가 농사짓는 이유가 뭐겠어요? 우리는 돈을 벌려고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잖아요. 돈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 일은 고된 일이고, 경제성도 떨어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돈을 벌려고 농사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돈이 전혀 안 되는 방식으로 낭비적인 농사를 짓는다면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수행자가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수행자가 어떤 일을 할 때는 그 일은 사회적으로도 유의미하고 효율적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 자체가 목적이지만 수행자는 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행의 수단입니다. 그러나 일의 결과는 비교적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행이 목적이지만 일의 결과도 세상 사람 못지않을 때 수행이 사회적 경쟁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는 늘 수행자의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 허겁지겁 일만 한다면 그냥 노동자이지 수행자는 아닙니다. 통일운동만 하면 그건 사회 운동이지 수행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수행자로서 농사짓고, 수행자로서 통일운동하고, 수행자로서 빈곤퇴치 사업을 하는 거예요.

그럼 수행자의 핵심은 뭘까요? 일을 할 때 마음이 불안하거나 초조하거나 긴장이 되거나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수행자예요. 일이 바쁘다고 해서 마음도 같이 바빠져서 허겁지겁하거나, 일이 한가하다고 해서 마음도 게을러져서 놀고 있으면, 그건 세상 사람에 불과합니다. 수행자는 바쁘면 바쁜 대로 일하고, 한가하면 한가한대로 일하는 사람이에요. 물이 흐를 때 경사가 평평하면 천천히 흐르고, 경사가 급하면 빨리 흐르고,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되고, 호수를 만나면 멈추는 것과 같아요.

산꼭대기에 있는 밭은 농사꾼이 볼 때는 좋은 밭이 아니에요. 올라가고, 내려가고, 물을 구하고, 거름을 옮기고, 일이 많습니다. 그것보다 더 평평하고 농사짓기 좋은 땅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농사꾼이라면 그런 밭은 누가 공짜로 준다고 해도 효율을 생각해서 안 받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농사꾼이 아니고 수행자이기 때문에 그 땅을 보시받아서 농사를 짓는 거예요.

일부러 그런 밭을 구해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보시하는 사람이 그 밭을 우리에게 주고 싶다고 해서 우리가 받은 겁니다. 그렇다면 그 밭을 쓸 수 있는 밭으로 만드는 것이 수행입니다. 물이 없으면 물을 만들고, 거름이 없으면 거름을 만들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고, 밭에 돌이 많으면 돌을 골라내고, 그래서 그 밭을 쓸 만한 밭으로 만드는 것이 수행이에요.

만약 2년 동안 우리가 밭을 잘 만들어 놓았는데 다시 밭주인이 찾아와서 돌려달라고 한다면, 농사꾼은 2년 동안 헛일을 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써도 그 밭을 유용하게 쓰면 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주어진 조건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제가 보기에는 여러분들이 수행자로서 농사일을 한다는 것을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기계가 필요하면 기계를 사용해도 됩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효율만 쫓아서 일할 수는 없습니다. 농사꾼은 효율만 생각하고 기계를 사용하겠지만, 수행자는 효율도 추구하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있는 것들을 잘 활용하는 방법도 연구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계를 도입해서 효율적으로 농사를 짓자는 제안에 저도 동의합니다. 여러분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제안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돼요. 농사를 지음으로 해서 최소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정도의 수입은 생겨야 하니까요. 정토회에서 하는 모든 사업은 자립을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꼭 수익을 얻기 위해서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에요.

여러분은 거름을 가져오는 게 힘이 드니까 동네 어르신이 거름을 주겠다고 해도 ‘거름이 필요 있다’, ‘필요 없다’ 자꾸 이렇게만 접근하거든요. 우리가 동네 어르신에게 ‘거름 좀 주세요’ 이렇게 요청한 게 아닙니다. 동네 어르신이 거름을 주겠다고 하니까 우리는 그걸 받아서 쌓아놓았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쓰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당장 필요가 없으니까 ‘그건 필요 없어요’ 자꾸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제가 볼 때는 여러분들이 일에 빠져서 수행 관점을 자꾸 놓치는 것 같습니다. 운동삼아 할 수 있는 일은 꼭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몸을 쓰는 게 좋아요. 운동이라는 것이 꼭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 기구를 잡아당기고 해야 운동이 더 잘 되는 게 아니잖아요. 삽질하는 것도 운동이고,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것도 운동입니다. 어떤 특정한 부위의 근육을 키우는 목적이 아니라면 우리는 농사일을 운동 삼아 할 수 있는 거예요.

물을 공급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기를 꽂아서 모터가 돌아가도록 하면 물을 편하게 받을 수 있어요. 제가 그걸 왜 모르겠어요. 그런데 전기가 가까이 없잖아요. 또 남의 집에 가서 연결해야 하잖아요. 그러니 이 정도 넓이의 밭이라면, 아침마다 산에 올라가서 물도 받고, 물통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정도는 그냥 운동 삼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자연 속에서 사는 경험을 자꾸 해야 앞으로 필리핀이나 인도에 파견이 되든 어디에 파견이 되어도 그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그 동네 사람들이 사는 방식으로 모내기도 손으로 해보고, 삽질도 해보고, 괭이질도 해보고, 그렇게 사는 가운데 거기서 조금 더 아이디어를 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무슨 기계를 사서 해결하자고 하면, 가난한 동네 사람들은 그런 걸 구입할 수가 없거든요. 인도나 필리핀에는 아직도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이 많습니다.

자연을 이용하는 이런 경험들은 나중에 가난한 나라에 가면 그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나라 사람보다는 조금 더 기계를 잘 이용하는 경험이 있어야 거기에 가서 그들보다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 나라 사람의 수준밖에 안 되면, 굳이 거기에 가서 일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우선 그 나라 사람이 하는 방식에 적응할 줄 알아야 하고, 거기에 그치면 안 되고 그것보다 조금 더 나은 경험을 갖고 있어야 그 사람들에게 효율적인 것을 알려줄 수가 있는 겁니다.

명상을 하고, 아침마다 절을 하고, 이런 것만 수행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수행입니다. 전부 다 기계로 농사 지을 거면 그건 농사꾼이지 수행자는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이 점에 대해 좀 생각을 해서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지치게 되는 이유

일에 빠져서 수행적 관점을 놓치기 때문에 지치는 거예요. 몸이 좀 고단할 뿐인데 마음도 덩달아 자꾸 흐트러지잖아요. 몸이 좀 아프면 몸만 아파야지, 마음이 왜 따라가나요. 마음이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여러분들은 몸이 주인이에요. 몸의 컨디션이 좋으면 막 기운을 내고, 몸이 지치면 기분이 가라앉고, 이렇게 몸을 따라서 마음이 움직이는 겁니다. 수행자는 마음 따라 몸이 움직여야 해요. 몸이 아픈 건 쉬어주면 됩니다. 그러나 마음은 흔들리면 안 됩니다. 그 흔들리는 마음을 자기가 딱 보고 ‘어, 내가 지금 경계 따라 흔들리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려야 돼요.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농사짓는다고 정토회에 무슨 큰 도움이 되겠어요. 오히려 다른 분야에 가서 일한다면 훨씬 더 효율이 날 거예요. 그러나 지금은 농사를 맡았으니까 그냥 농사일을 해보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농사지은 고춧가루나 상추를 사람들에게 선물하면, 그 선물을 받은 사람 입장에서 그거 받는다고 무슨 큰 도움이 되겠어요.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 안 되는 선물이잖아요. 그래도 우리가 그분들에게 보시도 많이 받고 도움도 많이 받으니까 이것으로라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죠.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다 선물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수행적 관점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개인을 생각하면 젊은 사람들이 고기도 못 먹고, 매일 땡볕에 앉아서 일하고, 어떻게 보면 불쌍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자꾸 헐떡거리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더 불쌍해 보이는 거예요.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

물 공급을 쉽게 하려면 옆집에 부탁해서 전기를 끌어다 쓰면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 길 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면 남한테 굳이 부탁할 필요가 없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옆집에서 계속 부탁을 하면 한 번 정도는 괜찮지만 두세 번 되면 다 귀찮아요. 그쪽에서 ‘이것 좀 가져가세요’, ‘이것 드세요’ 하면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꺼이 받아도 되지만, 우리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부탁을 안 해야 됩니다. 꼭 필요하다면 준비해 놓았다가 한꺼번에 요청을 해야지, 그때 그때 자꾸 부탁을 하면 싫증을 내요.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서 사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동네 어르신이 거름을 가져가라고 하는 것도 한꺼번에 옮기고 딱 끊어야 돼요. 늘 연결되어 있으면 갈등이 생기거나 정이 생겨요. 정이 생기면 좋은 거 아니에요. 정이 생기는 것은 빚을 안고 사는 것이 되고, 결국 세속 놀음이 됩니다. 그렇다고 원수같이 사는 것도 좋은 게 아니고요. 오고 가되 수행자는 정이 붙으면 안 돼요. 그래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수행공동체에 사는 여러분들이 그냥 세상 사람처럼 되기가 쉬워요.

동네 사람들과 친해져서 밥 한번 먹으러 가고, 그러다 보면 친구가 되는데, 좋게 보면 좋은 일이지만 그게 바로 세속화되는 거예요. 그러니 항상 조금이라도 우리가 이웃에 덕을 베풀되 정을 붙이면 안 됩니다. 이웃에서 우리를 도와줘도 그들이 기뻐지도록 해야 됩니다. 사람의 심리는 도와주고 나서 더 기쁠 때가 있거든요. 여러분이 열심히 일하니까 동네 분들이 먹을 것도 주고, 이것저것 주시는데, 본인들이 원해서 갖다 주는 것은 빚이 아닙니다. 그런데 정이 생기면 언젠가 갚아야 돼요. 정으로 맺어진 관계는 조금만 어긋나면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수행자는 인간관계가 원수가 안 되도록 항상 조정해나갈 줄 알아야 합니다.

수행자의 본분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농사 자체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명상을 수행의 도구로 삼듯이, 절을 수행의 도구로 삼듯이, 농사를 수행의 도구로 삼아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래도 해보고, 저래도 해보고, 흐트러진 것을 정리도 해보고, 그러는 거예요. 이곳 수련원 시설이 열악하잖아요. 건물을 싹 뜯어버리고 새로 지으면 물론 좋겠지요. 그러나 돈을 최대한 적게 들이고, 이리저리 수리해서 편리하도록 써보는 거예요. 절약하기 위해 연구도 하고, 사람들의 도움도 얻고, 그런 것을 재미로 삼아야 해요. 그래야 수행이지 새 건물을 짓는 것은 수행이 아니에요.

효율만 생각하면 싹 밀어버리고 새로 짓는 게 제일 좋고, 산꼭대기가 아니라 평평하고 좋은 땅에 농사를 짓는 게 제일 좋습니다. 농사를 제대로 하려면 들판 논에 비닐하우스를 짓는 게 제일 효과적입니다. 땅도 평평하고 물도 항상 나오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수행자이니까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겁니다. 동네 분들이 땅을 주니까 그걸 활용하는 거예요. 주어진 조건을 이용해서 농사를 짓는 겁니다. 우리는 농업이 전문이 아니잖아요. 지금은 농사 수련을 실험하고 있는 거예요. 다 연습이란 말이에요.

여러분들은 ‘노지를 구해야 한다’, ‘비닐하우스를 구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을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땅을 주는 대로 이렇게 농사를 지어보는 겁니다. 비닐하우스가 생기면 비닐하우스에서 농사를 지으면 되고, 노지가 생기면 노지 밭을 가꾸면 되고, 지하수가 파지면 지하수를 이용해서 농사를 지으면 되고, 지하수가 안 파지면 시냇물을 활용해서 농사를 지으면 돼요.

이런 수행적 관점을 갖고 늘 중심을 잡되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해서 일을 해나가시면 좋겠습니다. 수행자라는 중심을 잃어버리면 안 돼요.”

“감사합니다. 스님.”

행자님들은 스님의 이야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농사꾼이 아니라 수행 삼아 농사를 짓는다는 관점을 다시 새기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해 봅니다. 마음 나누기를 마치니 밤 9시가 다 되었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 있었습니다.

내일(10일)과 모레(11일)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일입니다. 스님은 내일 사전투표소의 문이 열리는 오전 6시에 투표를 한 후 투표 독려 영상을 촬영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공동체 법사단과 수련을 합니다.

전체댓글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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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권

일상 모두를 수행의 관점에서 하면 나 있는곳이 수행 도량이 되겠군요. 고맙습니다.

2020-09-18 17:56:53

하심

감사합니다_()_

2020-04-18 01:56:26

정미주

저도 일할때 수행적 관점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법문 잘 새김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2020-04-16 18: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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