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3.26. 농사일
“스님은 농사일이 재미있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도 농사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늘은 기다리던 비 소식이 있는 날입니다. 비가 오기 전에 작물을 모두 심기 위해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김제동 씨가 함께 했습니다.

오전에는 두북 수련원 한쪽 밭에 쥐이빨 옥수수, 완두콩, 봄배추, 양배추, 브로콜리, 당근을 심었습니다.

옥수수와 완두콩은 토종씨앗을 구해 하루 전날 물에 불려 두었습니다.

스님은 고춧대로 땅을 살짝 찌른 후 완두콩을 심었습니다. 그 뒤로 김제동 씨가 북삽으로 흙을 떠서 그 위를 덮어주었습니다.



콩 한 줄, 옥수수 한 줄을 심고 봄배추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봄배추 모종을 두둑 위에 늘어놓은 후 배추를 심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배추 모종은 콩보다 심기가 까다로워요.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줄기 끝에 있는 생장점에 흙이 묻지 않도록 조심해서 흙을 덮어야 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부슬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스치듯 내리는 비를 맞으며 더욱 속도를 내었습니다. 일정한 간격을 띄우고 배추를 심고 있는데 스님이 금세 김제동 씨를 따라잡습니다.

“스님, 너무 빠르세요. 자꾸 부딪혀요.” (웃음)

“알겠어요. 천천히 할게요.”

몇 포기 심다가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아이고, 연구 좀 해봐야겠어요.”

장갑에 흙이 묻어있으니 배추에 자꾸 흙이 닿았습니다. 스님은 잠시 연구를 하다가 가위를 들었습니다. 배추 모종이 담길만한 작은 플라스틱 컵을 주워 아래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컵으로 모종을 보호한 후 흙을 부었습니다. 작업하기가 훨씬 간편해졌습니다.

양배추도 한 줄, 브로콜리도 한 줄 심었습니다.

당근은 당근 전용 비닐의 폭이 넓어서 두둑 두 개를 합쳐서 넓은 두둑을 만들고 비닐을 깔았습니다.

그리고 구멍마다 당근 씨앗 3개~ 5개를 심었습니다. 깨알처럼 작은 씨앗 3개~ 5개를 구멍에 넣는 일은 인내심과 집중력이 필요했습니다.

봄배추, 양배추, 브로콜리에는 나비가 알을 놓고 잎을 갉아먹기 때문에 한랭사를 씌워주었습니다. 잡초가 자라는 것을 막기 위해 두둑과 두둑 사이에 부직포도 깔아주었습니다. 한랭사, 부직포는 여러 해 사용했던 것이라 길이도 제각각이고 여기저기 찢어져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조각을 맞추어 다 깔아주었습니다.

비는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며 조금씩 빗방울이 굵어지고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비닐하우스에는 일거리가 많았습니다. 무뎌진 낫을 갈고, 모종에는 난각 칼슘과 바닷물을 섞어 희석하여 뿌려주었습니다.

난각 칼슘은 식초에 계란 껍질을 넣어 만듭니다. 식물의 성장을 돕고 각종 병해로부터 저항성을 높여줍니다. 바닷물은 천연방부제 역할을 하고 작물의 맛을 좋게 합니다.

감자에 싹이 여러 개 난 곳은 두 개 만 남겨놓고 싹을 뽑아주었습니다. 싹이 너무 많으면 감자가 크게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벼르고 벼르던 비닐하우스 가장자리에 봄배추를 심었습니다. 먼저 땅에 물을 흠뻑 주고 끝에서부터 배추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호미로 땅을 파서 배추 뿌리가 내릴 흙을 부드럽게 부숴주었습니다. 생장점에 흙이 묻지 않도록 조심스레 모종을 놓아주고 다시 흙으로 덮어주었습니다.

몇 포기 심고 허리를 펴고, 몇 포기 심고 허리 펴기를 반복하면서 스님은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아이고, 왜 이렇게 기노.”

비닐하우스 길이가 70m입니다. 부지런히 심어도 갈 길이 멉니다. 행자님 한 명이 도와드리겠다고 나서자 스님은 사양했습니다.

“스님, 제가 반대편에서 배추를 심어올까요?”

“아니에요. 내 밭은 내가 해야죠.” (웃음)

비닐하우스 가장자리는 행자들이 아무것도 안 심고 버려두어서 스님이 채소를 심겠다고 한 땅입니다.

그런 스님의 모습을 보고 물어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릴 때부터 농사짓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농사짓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웃음) 어릴 때는 하기 싫어도 부모가 시키니까 억지로라도 하게 되고, 온 가족이 다 하니까 같이 해야죠. 아무리 어린 아이라고 하더라도 놀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좀 익숙해 지니까 재미가 생긴 거죠.”

“지금은 농사가 재미있으세요?”

“운동도 되고, 농산물도 수확되니까 좋죠. 누구나 다 자기가 노력해서 생산해서 먹고 살 줄 알아야 해요. 세상 사람들이 다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하고 살아야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거든요. 그렇지 않고 말만 해서 먹고살거나, 높은 지위로 살거나, 재산이 있어서 살다 보면, 자기가 무슨 특별한 줄 알게 돼요. 그래서 점점 교만해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살다 보면 그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항상 자기가 별 것 아닌 그냥 한 생명이라는 관점을 늘 유지해야 보통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있어요. 저는 시골 출신이니까 그냥 한 사람의 농부로서 이렇게 살아가는 거죠. 겸손해지려고 해서 겸손해지는 게 아니라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줄 알면 저절로 겸손해지는 거예요.”

스님은 다시 부지런히 배추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배추 심기를 마친 스님은 널빤지를 들고 울타리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울타리 너머는 동네 할머니의 땅입니다. 할머니가 길을 다니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돌계단을 만들고 널빤지를 댔습니다. 스님은 널빤지 다리 위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튼튼한지 확인했습니다.

“이 정도면 할머니도 다닐 수 있겠어요.”

할머니가 울타리 이 쪽 저 쪽을 드나드실 수 있도록 버려진 나무 막대와 그물망을 재활용하여 문도 만들었습니다. 문을 붙여놓고 보니 아래에 틈이 있어서 큰 돌을 박아주었습니다.

비닐하우스 뒤편에 설치해놓은 큰 통에 물이 잘 모이고 있는지도 확인했습니다. 비닐하우스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이 통에 모이도록 연결해놓았는데 위치가 조금 틀어져서 땅 아래로 물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물통의 위치를 조금 옮기고 돌로 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모종 하우스에서 모종 몇 가지를 담아 텃밭으로 향했습니다.

“이야, 상추 잘 자라는 것 좀 봐요. 비실비실했던 것들이 이렇게 잘 자랐어요.”

시금치도 아주 실했습니다. 크게 자란 시금치는 수확을 했습니다.



시금치를 수확한 빈자리에는 비닐하우스에서 가져온 봄배추, 양상추 모종을 심었습니다.


콩은 자리가 없어 벽돌 틈에 심었습니다.

상추 밭에도 빈자리가 몇 군데 있어서 빈자리가 없도록 작은 상추를 옮겨 심었습니다. 스님은 조그마한 빈 땅도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이제 옷이 젖을 정도로 빗방울이 굵어졌습니다. 스님은 비옷을 챙겨 입고 윗 밭으로 향했습니다.

그저께 파 놓은 웅덩이에 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물 위에는 벚꽃이 내려 있었습니다.

물을 떠서 밭에 있는 큰 통으로 옮겼습니다. 큰 통이 가득 차자 웅덩이의 바닥이 보였습니다.


웅덩이의 바닥에 비닐을 깔아주었습니다. 비닐을 고정시키기 위해 땅을 조금 더 파고 흙과 돌로 비닐의 앞부분을 묻고 큰 돌로 고정시켜주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물이 계속 고였습니다.

“스님, 비닐은 왜 깔아주는 거예요?”

“이렇게 비닐을 깔아주는 이유는 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흙으로 물이 바로 흐르면 둑이 무너져 버려요.”

물을 한 가득 받아놓고 내려오며 개울에서 장화, 장갑, 도구를 씻었습니다. 오르고 내리기가 가팔라서 큰 돌을 주워다 돌계단을 만들었습니다.


저녁 밥상에는 오늘 수확한 시금치와 원추리 나물이 올라왔습니다. 조금 전에 밭에서 뽑은 시금치가 밥상 위에 올라와서 그런지 마치 밭에 있는 시금치를 먹는 기분입니다.

예불을 드리고 난 후 저녁에는 행자님들과 산책 겸 차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돌고 들어왔습니다.

차 안에서 불을 비춰가며 봄으로 충만한 야경을 잠시 보았습니다.

“참 신기하죠. 어떻게 이렇게 예쁜 꽃이 저 나무에서 필 수 있을까요? 꼭 솜털 같아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중학생 때는 겨울이면 미추왕릉의 소나무에 쌓인 눈을 치우러 다녔어요. 나무에 눈이 많이 쌓이면 부러지거든요.”

“자발적으로 하신 거예요?”

“그럼 자발적으로 한 거죠. 첨성대도 맨날 아침마다 청소했어요.”

내일도 하루 종일 봄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오전에는 농사일을 잠시 쉬고, 오후에는 정토회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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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당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
한 시대를 산다는게
행복합니다 ♡

2020-12-17 12:11:30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20-07-15 11:33:00

김지혜

자연은 있는그대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모든것을 소중히 다루시는 스님을 존경합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오늘도 행복합니다

2020-04-05 02: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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