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2.20. 정회원 교육 (광주/전주 정토회)
“도움을 부탁하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광주에서 광주, 전주 정토회 정회원 교육이 있었습니다.

8시 20분에 두북을 출발해 12시가 되어 광주에 도착했습니다. 오랜만에 먼 거리를 달려 스님은 차 안에서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2시에는 주간반, 7시에는 저녁반 정회원을 위해 교육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밤 10시까지 법당에 머무르며 정회원들과 10차 천일결사 사업방향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스님은 교육을 시작하며 만일결사를 어떤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만일결사에 동참하는 자세

“이번 3년은 만일결사를 마무리하는 시기입니다. 만일 결사에는 한 세대가 평생을 바쳐 일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은 1차 만일결사의 첫날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중간에 들어왔으니까 1차 만일결사가 끝나더라도 2차 만일결사 중간까지는 해야 해요. 어쨌든 만 일은 하고 끝내야 합니다. 의리 없는 사람이 중간에 그만두는 거예요. (모두 웃음)

의리가 있다면 절대로 만일결사 중간에 그만 두면 안 됩니다. 중간에 그만둬야 할 상황이 되더라도 ‘만일 결사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못 그만둔다’ 하는 이런 자세가 필요해요.

몇 해 전 지역 정토회에서 초대 총무를 지내신 보살님이 암으로 돌아가시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의리 없이 중간에 그만두면 안 돼요.’
‘그런데 죽는 걸 어떡합니까?’
‘죽는 건 당신의 몸 사정이죠.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할 거 아니에요?’

농담으로 이렇게 대화를 나눴어요. 위로한다고 경상도식으로 말한 거예요. 죽지 말고 건강하게 잘 살라는 뜻을 경상도식으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두 웃음)

그랬더니 며칠 후에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다시 만났어요. 그런데 돈을 주는 거예요. 무슨 돈이냐고 물어보니까 보살님이 이렇게 얘기했어요.

‘만일 결사가 끝나는 날까지의 기도비를 한꺼번에 드리고 갑니다. 몸이 안 좋아서 스님과 한 약속은 못 지키지만, 기도비 내기로 한 약속은 꼭 지키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만 일치 기도비를 다 주고 며칠 있다가 세상을 떠나셨어요. 이 정도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예요. (모두 웃음)

그러니 함부로 죽으면 안 돼요. ‘만일결사 끝날 때까지는 죽으면 안 된다’ 이런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모둠 중심의 법당 운영이 가져올 변화

9차 천일결사까지는 정토회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서 매뉴얼을 만들어서 제공했기 때문에 오늘 같은 행사를 진행할 때도 사회를 보는 사람이 매뉴얼에 안내된 대로 외워서 진행해야 했어요. 이렇게 함으로써 통일성을 담보하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매뉴얼과 조금 안 맞을 때가 있더라도 대부분 매뉴얼을 그대로 지키는 쪽으로 훈련을 계속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모둠 중심의 법당 운영체제로 바뀌게 되면 일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집니다. 이러저러하게 하라고 시킨 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 이러저러한 유형이 있는 가운데 여러분이 어떻게 법당 운영을 할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조금이나마 각 법당의 현실에 맞게끔 조정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맞춤형’이에요. (모두 웃음)

차를 구입할 때 옛날에는 다 똑같은 차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는데 요즘은 자기 취향에 맞게 사양을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잖아요. 그것처럼 이제 정토회도 조금씩 각 지역별 다양성을 수용하는 쪽으로 운영해 나가려고 합니다.”

이제 정회원 교육이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오늘 스님은 간단하게 10차 천일결사 사업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정회원들이 질문하고 제안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주었습니다.

“처음 공청회를 할 때는 제가 한 시간 반쯤 자세하게 설명했어요. 여러분이 그동안 스님의 하루도 읽고 행정처에서 새로 정리해서 안내도 했기 때문에 대충 정리가 되었다고 봅니다. 오늘은 구체적으로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시간을 더 많이 드리겠습니다.”

주간에도, 저녁에도 가장 많은 질문은 모둠 운영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모둠 편성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모둠은 얼마나 지속하는지, 모둠의 일 나누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둠장이 다른 일과 겸직해도 되는지, 지금까지 모둠과 어떻게 다른지, 지원팀과 모둠은 어떻게 협력하는지, 지원팀장의 업무가 너무 과중하지는 않은지 등 구체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모둠 운영에 대해 헷갈려하는 정회원들을 위해 스님은 전체적으로 한 번 정리해주었습니다.

모둠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나요

“모둠 구성은 정회원을 대상으로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정회원들은 ‘모둠’이라고 하니까 기존의 모둠 하고 헷갈려 해요. 불교대학 학사 모둠도 있고, 천일결사 모둠도 있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 만들려고 하는 모둠이 기존의 모둠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명확하게 구분이 안 되어서 혼란스럽습니다.”

“이번에 새로 구성하고자 하는 모둠은 기존의 모둠과는 완전히 다른 모둠이에요. 기존의 모둠은 그냥 학사 운영의 필요에 의해서 만든 것이라면, 이번에 새로 구성하는 모둠은 조직을 뜻하는 명칭입니다.” (모두 웃음)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면, 법당에서 모둠을 운영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법당을 기준으로 해서 말씀드릴게요. 예를 들어 광주법당의 경우, 광주법당의 모든 정회원이 모둠에 편성이 되어야 해요. 예를 들어 광주법당의 정회원 수가 50명이고, 10명씩 모둠을 편성한다면, 총 다섯 모둠으로 짜여지는 거예요. 정회원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둠에 다 편성이 되는 거예요.

그럼 정회원 중에서 자격 정지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격 정지자 중에서 아예 연락도 안 하고 안 나온 지 몇 달이 된 사람은 정회원이라 하더라도 모둠에 편성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예 나오질 않으니 모둠에 편성해봐야 역할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법당에 잘 나오고 있는데도 자격 정지가 된 정회원들이 있습니다. 수행법회 참석 회수가 좀 부족했거나, 회비를 몇 달 안 낸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특위 활동을 하느라 바빠서 수행법회 참석 회수가 미달될 수가 있어요. 이런 사람은 자격 정지자라 하더라도 모두 모둠에 편성돼야 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천일결사자는 정회원이 아니라 하더라도 모둠에 편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일결사자는 무조건 편성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선택해야 할 사항입니다. 반면에 정회원은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주일에 최소한 두 시간은 봉사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같은 두 시간 봉사라 하더라도 정회원은 일반 봉사자처럼 시간 날 때 와서 두 시간을 봉사하고 가는 게 아니라, 두 시간 동안 무슨 일을 맡아서 할 건지 미리 약속을 해야 합니다. 차이는 이것밖에 없어요.

일이 늘어나는 게 아닙니다. 전에는 시간 나는 대로 법당에 나와서 무슨 일이든지 일이 있으면 했지만, 이제는 맡을 일을 미리 정하고 법당에 나온다는 점이 달라요. 무슨 일을 할 것인지 회원들이 모여서 계획을 짤 때 ‘나는 무엇을 맡겠다’ 이렇게 약속을 미리 하는 겁니다. 그 역할을 책임지고 할 수 있다면, 한 달에 한 번 나오더라도 괜찮아요. 한 달에 한 번 나와서 9시간을 한꺼번에 봉사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 적합한 일을 찾아서 이 사람에게 맡기면 됩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해 볼게요. 자, 여기 종이 한 장이 있습니다. 법당에 있는 모든 일을 합친 양이 이 종이 한 장 만큼이라고 합시다. 모둠이 다섯 모둠이라면 종이를 다섯 조각으로 잘라서 모둠장한테 한 조각씩 나눠주는 거예요. 그러면 모둠장이 받아간 한 조각을 모둠 내에서는 다시 열 조각을 내어 한 사람이 한 조각씩 맡도록 나누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각 크기가 똑같지는 않아요. 시간 여유가 많은 사람은 조각이 크고, 시간 여유가 적은 사람은 조각이 작습니다. 예를 들어 통일특별위원회로 나가서 활동 중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게 주된 일이어서 법당 일은 조금밖에 못하니까 크기가 작은 조각을 줘야 하겠죠. 몸이 아픈 사람은 당분간 유예시켜주고요. 이렇게 개인의 형편을 고려하여 전체 계획을 짜야합니다.

모둠을 구성할 때는 지역을 기준으로 나눠서 구성해야 합니다. 광주를 예로 들어보면, 광주시 안에 다섯 개의 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광산구에만 법당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네 개의 구별로 나눠서 모둠을 만드는 거예요. 이때 모둠을 나누는 기준을 주거지에 따를지, 자기 회사 소재지에 따를지는 본인이 생각해서 선택하면 돼요. ‘나는 주된 활동 공간을 어느 구에 두겠다’ 이걸 본인이 선택하는 겁니다. 반드시 거주지를 기준으로 모둠에 소속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근무처를 기준으로 모둠에 소속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나는 회사가 있는 지역이 활동하기 쉽다.’
‘나는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 활동하기 쉽다.’
‘나는 가게를 운영 중인 지역이 활동하기 쉽다.’

이렇게 자기가 활동하기 쉬운 지역을 선택하면 됩니다. 구별로 법당이 모두 생기게 되면, 이제는 선택한 구 안에서 동별로 또 나눠야 합니다. 광주 같은 경우는 아직 구 단위의 법당도 덜 갖추어진 상태니까 일단은 구별로 모둠을 나누는데, 어느 구에는 회원이 10명이고, 또 다른 구에는 회원이 20명일 수도 있어요. 회원이 많은 구는 구 안에서 다시 10명씩 나누는 겁니다. 구 안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10명씩 두 모둠으로 나눌 수 있겠죠. 또 어떤 구는 한 구에 3명밖에 없다고 하면 7명이 있는 구와 합쳐서 두 개의 구를 갖고 한 모둠을 만들게 됩니다. 이렇게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일단 모둠을 만드는 거예요.

여기에 정회원뿐 아니라 천일결사자를 더 결합시킵니다. 경전반에 다니는 사람이 정회원이 됐다면, 그 사람은 자동으로 모둠에 참여하게 됩니다. 경전반 학사 모둠이 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활동하되 동시에 정회원 모둠에도 들어오게 돼요. 불교대학에 다니고 있는 사람 중에도 그 사람이 천일결사자라면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 정회원 모둠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를 종교적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정토회에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것도 좋아하고, 보시금도 빠짐없이 잘 내고, 천일결사 입재식과 회향식에도 잘 참여하지만, 이것 외의 다른 활동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정회원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정회원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모둠 구성원으로 언급할 필요도 없어요.

그러나 천일결사자 중에 불교를 종교적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토회 회원은 될 수 있어요. 정회원은 본인이 수행, 보시, 봉사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약속을 한 사람이지만, 천일결사자는 그런 약속을 안 했으니까요. 이렇게 기도만 하겠다는 천일결사자는 모둠의 구성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모둠에서 사시예불을 드리는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하겠다’라고 한다면 모둠에 넣어서 그 일을 맡길 수는 있습니다. (모두 웃음)

그러나 기도만 하겠다는 천일결사자는 기본적으로 모둠에 넣어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천일결사자는 100퍼센트가 모둠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일부는 못 들어올 수가 있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셨어요?”

“네.”

“그러면 이렇게 해서 구성한 모둠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말씀드릴게요. 모둠을 구성할 때 큰 법당의 경우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모둠을 지역으로 나눠서 그 지역에 사는 회원을 주간반과 저녁반을 구분하지 않고 같은 모둠으로 편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원들의 형편이 그것보다는 주간반 모둠, 저녁반 모둠으로 구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면 그렇게 나누어도 되긴 합니다. 그렇게 나누면 모둠을 나눌 때 기준이 되는 지역의 범위가 더 넓어져야 할까요, 좁아져야 할까요?”

“넓어져야 해요.”

“맞아요. 그런 경우에는 한 개 동으로 하던 것을 두 개 동으로 넓혀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간반 모둠과 저녁반 모둠으로 다시 또 나누어야 하니까요. 주간반과 저녁반을 같이 합쳐서 하나의 모둠으로 편성해도 되고, 각각 나누어서 편성해도 됩니다.

이렇게 해서 모둠을 다섯 개 편성했다고 합시다. 주간반과 저녁반을 합쳤다면 지역별로 다섯 개의 모둠이 생겼을 것이고, 주간반과 저녁반을 나누었다면 주간반 모둠이 두 개이고, 저녁반 모둠이 세 개일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모둠이 편성되었다면, 저녁반 모둠이 더 많으니까 법당의 일을 나눌 때 낮에 필요한 일은 주간반 1모둠과 2모둠이 주로 맡고, 저녁에 필요한 일은 저녁반 3모둠, 4모둠, 5모둠이 주로 맡게 하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저녁 팀장’이라는 직급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법당의 모든 일이 이렇게 모둠 별로 자연스럽게 나뉘니까요. 법당의 부총무는 모둠장에게 업무를 주고, 모둠장이 모둠원들과 협력해서 일을 해나가면 됩니다.

만약 주간반과 저녁반을 모두 통합해서 다섯 개의 모둠을 구성했다면, 낮에 할 일과 저녁에 할 일을 각각의 모둠이 모두 받아가게 하면 됩니다. 모둠 내에서 다시 업무를 나눌 때 저녁에 할 일은 저녁에 나오는 사람이 맡으면 되고, 낮에 할 일은 주간에 나오는 사람이 맡으면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주간반과 저녁반이라는 구분 자체가 필요 없어지고, 모둠 단위로 모든 업무를 보게 되는 거예요. 이제부터는 이렇게 법당을 운영하게 됩니다.

그다음에는 법당을 운영하기 위한 전체 일거리를 세세하게 다 파악해야 합니다. 그런 후 전체 일거리를 모둠 수에 맞춰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일거리를 나눌 때도 어떻게 나누는 것이 효율적인지 상세히 의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일거리를 나눠서 각 모둠에 주면, 모둠장은 모둠원들과 의논해서 각 개인의 처지에 맞게끔 다시 일거리를 배분해야 돼요. 이렇게 세팅을 해서 모자이크의 전체 조각들을 하나씩 채워나가야 합니다. 지금은 일을 세분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형편을 고려해 조각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머리가 좀 아프겠지만, 일단 세팅만 다 되면 그 이후에는 법당 운영이 아주 수월해집니다.”

모둠 운영에 대해 미진했던 부분을 자세하게 알고,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수행자의 자세로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게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던 대화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예하고 하는 자세로 어떻게 민주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정토회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명심문 중 하나가 <시키면 ‘예’ 하고 합니다>입니다.”

“명심문 중에 ‘시키면’이란 말은 없어요. 뭘 시킨다는 거예요? <방긋 웃으며 ‘예’ 하고 합니다>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모두 웃음)

“그렇군요. <방긋 웃으며 ‘예’ 하고 합니다>라는 명심문이 제가 수행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10차 천일결사부터는 운영 방식이 훨씬 더 민주적으로 바뀌다 보니까 저희끼리 의견을 내는 과정에서 좌충우돌하는 경우가 자주 생길 것 같습니다. 욕심에 의해 의견을 내는 것과 정말로 필요해서 의견을 내는 경우를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서 어떻게 관점을 잡아야 하는지 헷갈립니다. <‘예’ 하고 합니다>라는 자세와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자세 사이의 간극에서 어떻게 관점을 잡아야 할까요?”

“관점을 잡기 위해서는 수행자의 정의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지금 수행자가 될 수준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수행자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모두 웃음)

정토회에서 말하는 수행자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발심행자입니다. 발심행자라면 최소한 아무리 화나고 짜증 나고 괴롭다고 해도 그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아야 합니다. 이게 수행자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면 수행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해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게 되면, 우선 내가 괴롭고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수행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괴로움이 생겼을 때 ‘네 탓이다’라고 하는 게 종교예요. 저 사람이 문제인데 저 사람을 내 힘으로는 못 바꾸니까 ‘하나님, 제발 저 인간 좀 바꿔주세요’ 하고 빌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괴로움이 나의 어리석음과 집착으로부터 일어났다고 자각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남을 바꾸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어집니다. 이렇게 관점이 바뀌어야 수행자입니다. 이렇게 관점이 안 바뀌면 수행자가 아닙니다.

물론 이렇게 관점이 딱 바뀌었다고 해서 수행이 끝나는 건 아니에요. 깨달음의장에 다녀오거나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아, 그렇구나’ 하고 관점은 바뀌었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잘 안 됩니다. 딱 부딪히면 그냥 벌컥 화를 내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너는 계속 화를 내니까 수행자가 아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어요. 화를 벌컥 내긴 했지만, 지적을 받고 나면 ‘아이고, 내가 놓쳤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넘어졌더라도 금방 일어날 수 있으면 수행자의 대열에 넣어줍니다.

그런데 그걸 계속 꽁하게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너 지금 수행을 놓쳤다’ 이렇게 말해줘도 오히려 화를 벌컥 내면서 ‘이게 왜 내 잘못이냐? 저 인간이 저래서 그렇지!’ 이렇게 대응한다면 이 사람은 수행자의 자격이 없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는 수행자의 원칙을 늘 지켜야 해요. 넘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나도 모르게 넘어졌더라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내가 상대를 시비하는 것은 내 문제예요. 이걸 자각하고 있으면 수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상대가 자꾸 나를 두고 ‘너 때문에 못살겠다’라며 시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상대에게 ‘너는 수행자라면서 왜 자꾸 나를 시비하느냐? 네가 돌이켜야지’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왜냐하면 수행자는 모든 괴로움을 자기 마음으로 돌이키라고 했으니까요. ‘네 마음을 돌이켜야지 왜 나한테 시비를 하는 거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대응하지 않고 ‘아, 저 사람이 나 때문에 힘들구나. 그래, 내가 미안하다’ 이렇게 상대를 이해해주는 마음을 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정도까지 가면 그 사람은 두 번째 단계인 서원행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탓하면서 짜증을 내면, 발심행자는커녕 아예 수행자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짜증 내는 걸 두고 ‘네 탓이다. 네가 수행을 안 해서 그렇지’ 이렇게 말하면 수행자이긴 해도 첫 단계인 발심행자밖에 안 돼요. 수행자는 그것마저도 수용해서 ‘아이고, 저 때문에 당신이 화났군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가능한 사람은 서원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발심행자는 자기를 아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서원행자는 자기를 아낄 줄 아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발심행자는 ‘어떤 경우에도 괴롭지 않는 사람이 된다’라고 원을 세운 사람이라면, 서원행자는 ‘세상 사람이 필요로 하면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라고 원을 세운 사람이에요.

이처럼 약속을 다 받아놨기 때문에 정토회에서는 그 사람의 의사도 안 물어보고 선거날 대중이 다 모인 자리에서 ‘당신이 총무 하세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겁니다. 이때 ‘나는 못 해요!’ 이렇게 말하면, 이 사람은 발심행자 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서원행자는 될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대중이 원하니 제가 봉사를 하겠습니다.’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이 서원행자입니다. 건강이 안 좋다든지, 자기 나름대로 그 일을 못 할 상황이 있다면, 솔직하게 얘기하면 돼요. ‘총무를 맡겨 주셔서 감사하지만 사실 저는 이런 사정 때문에 하기가 어렵습니다’라고 얘기하면, 대중이 들어보고 판단을 해줄 겁니다. 소임을 맡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대중이 충분히 이해가 되면 ‘오케이, 그러면 안 해도 됩니다’ 이렇게 승낙해 줄 거예요. 그러면 서원행자의 자격 유지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예를 들어 ‘직장 다니느라 바빠서 총무를 하기는 어렵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대중이 이해해주기가 어렵습니다.

‘당신만 바쁩니까? 나도 바쁩니다. 그 정도도 안 하면서 무슨 서원행자예요?’

대중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이처럼 대중이 사퇴를 받아들이지 않는데도 본인이 사퇴하겠다고 하면 서원행자의 자격이 상실됩니다.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이 서원행자예요.

‘뭐든지 예 하고 합니다’ 이것은 수행자의 관점입니다.

나는 항상 수행자의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일이 주어지든 <방긋 웃으며 ‘예’하고 합니다>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정토회의 회원 개개인은 <어떤 일이든지 ‘예’ 하고 합니다>라는 수행적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정토회의 대표나 총무, 임원은 회원 개개인을 위해 적절한 배려를 해줘야 해요. 어떤 일이든지 ‘예’ 하고 하기로 약속했다고 해서 무슨 일이든지 막 시키면 안 됩니다. 가능하면 그 사람의 시간과 공간과 특성을 살려서 업무를 배치해줘야 합니다.

사회나 조직은 개개인들의 처지를 감안해서 배려를 해줘야 하고, 개개인들은 사회와 조직을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바람직한 상호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제 좀 정리가 되었습니까?”

“예.”

“회의를 할 때도 총무나 대표나 임원은 회원들의 의사를 잘 수용해주고 존중해주는 민주적 자세를 가져야 하고, 회원 개개인은 자기 의견을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진짜 민주주의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수행이 결여된 민주주의를 하니까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만날 자기 의견만 고집해서 싸우고 분열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분열하지 말고 무조건 ‘예’ 하고 해라’ 이렇게만 밀어붙이면 독재가 됩니다. 종교도 ‘시키면 시킨 대로 해라’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다가 사실상 독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합하자’라고 하면 독재가 되기 쉽고, ‘민주적으로 하자’라고 하면 분열되기가 쉬워요. 분열도 안 되고, 독재도 안 되게 하는 게 지금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에요. 개인은 뭐든지 수용할 헌신적인 자세를 갖되, 단체는 늘 개개인의 마음 상태나 입장을 배려해서 업무를 배치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면 민주적이면서도 분열이 안 되는 이상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이미 부처님 가르침에 들어 있어요. 그걸 우리가 현실 속에서 실현해보고자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 겁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정회원 교육 기간 스님의 하루를 보니 제가 모르던 원칙이 많았습니다. 원칙을 정리해서 활동가 실무 교육에 안내해주면 좋겠습니다.
  • 통일의병 활동을 안 하면서 사퇴의사도 없는 분들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 통일의병을 담당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나요?
  • 통일의병 교육 내용은 비장하지만, 통일의병 활동의 날에 결석, 지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안이 필요합니다.
  • 법당 내에서 직장을 소개해주는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될까요?
  • 정토회에 유산을 기부하는 절차가 있습니까? 재산을 기부하고 죽을병에 걸리면 임종까지 관리를 해주나요?
  • 10-1차 천일결사 입재식을 할 때 예비 천일결사자도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 시설관리, 건축, 농사 분야 등의 직능 모임을 만들 계획은 없으신가요?
  • 올해부터 두북에 농사 공동체를 시작했는데요. 농산물을 멀리 배달하는 과정에서 탄소를 많이 발생시키기 때문에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 지역에서 나는 음식을 먹도록 권장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농사 공동체를 각 지역별로 확대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 지난 3년간 돈 버는 일, 집안일을 줄이면서 활동을 했는데 수행 법회 일수가 모자라서 발심행자 정지가 됐습니다. 늘 일에 치이는 것 같아요. 보고하는 체계를 간소화하면 좋겠습니다.

밤 9시 30분이 되자 더 이상 질문이 없었습니다. 스님은 진정한 주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교육을 마쳤습니다.

도움을 부탁하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지금까지는 여러분이 총무나 팀장에게서 ‘이것 좀 도와줘’라고 부탁을 받는 입장이었어요. 부탁을 받고 나서 조금 시간을 내서 해주는 식이었는데, 이제 모둠 중심의 법당 운영 체제로 바뀌게 되면 모든 회원이 다 남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회원이 하나씩 책임을 맡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맡은 일을 해내려면 남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일일 봉사자든 누구든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러 다녀야 해요. 그래서 10차 천일결사부터는 여러분의 처지가 조금 바뀌게 돼요. 그동안 늘 남이 나한테 부탁하면 ‘그래, 해줄게’ 이랬는데, 이제는 여러분들이 도움을 부탁하기 위해 이렇게 말하고 다녀야 해요.

‘제가 이번에 이런 일을 맡았는데, 당신이 이 일을 좀 도와주면 좋겠어요.’ (모두 웃음)

이렇게 부탁을 받고 배 내미는 사람이 주인일까요, 빌고 부탁하는 사람이 주인일까요?”

“부탁하는 사람이요.”

“네. 부탁하는 사람이 주인이에요. 주인이기 때문에 부탁을 하는 거예요. 주인이기 때문에 고맙다고 인사하는 겁니다. 똑같이 일하고 헤어질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한다면 누가 주인일까요?”

“인사하는 사람이요.”

“인사받는 사람이 주인이 아니에요.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인사받는 사람은 나그네예요.

손님의 삶에서 주인의 삶으로

올해부터는 여러분 모두가 법당 운영을 위해 빠짐없이 조그마한 일이라도 맡아야 합니다. 맡은 소임을 혼자 할 수 있으면 혼자 하면 되는데, 혼자서 못하면 남한테 부탁해서 도움을 얻어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부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손님에서 주인으로 처지가 바뀌는 겁니다.” (모두 박수)

교육을 마치고 스님은 서울로 향했습니다. 차에 탄 스님은 곧 잠이 들었습니다. 세 시간이 지나 12시가 넘어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문경 수련원에서 전국대의원회의가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급하게 전국에서 모이는 행사를 취소하고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내일은 서울에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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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애승

돌아가시기 전에 만일결사비를 내고 가셨다는 말씀에 한참 눈물이 흘렀습니다. 공덕에 감사합니다. 이기적인 제 자신을 참회합니다.

2021-02-07 08:35:32

황경옥

아직 발심행자 되는것도 멀었지만
조금씩 앞으로 앞으로...
법문 감사합니다

2020-12-02 22:09:21

광덕 박철성

발심행자..수행자의 바른 삶..잘 받습니다
~()~
부탁 하는 사람 ,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이 주인이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주인으로 삶니다.~()~
생생 명경 법문 잘 받습니다. ~()~
고맙습니다. ~()~

2020-11-29 19: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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