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동래지회
걸인이 건넨 껌 한 통의 기쁨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살아도 아무 문제 없는데 구태여 그걸 왜?” 했던 오늘의 주인공 동래지회 신용필 님입니다. 본인 맘대로 살아도 꽤 괜찮은 인생인데, ‘나도 저렇게 해 봐야겠다’하고 ‘굳이’ 발심한 이유, 궁금하신가요? 정토회 도반이기도 한, 주인공 아내의 ‘사실 확인’까지 거친,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 들려 드립니다.

가족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 신용필 님)
▲ 가족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 신용필 님)

좋은 것만 하고 살아도 되는 탐심 많은 나

자라면서 힘든 일이 없었습니다. 집안에선 장손인 제게 가능한 모든 것을 지원해 주었고, 조부모, 삼촌, 고모 등 온 가족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부모는 장사하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고, 가족을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장손으로서 책임감과 부담도 컸지만, 굴곡이 많지 않은 평온한 삶을 살았습니다. 경찰 공무원이 되고서, 다니던 절의 스님 소개로 아내를 만나 결혼하여 아들 둘을 두었습니다.

누구보다 놀기 좋아하고, 축구와 배드민턴, 등산, 자전거 등 운동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중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몹시 무료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아내는 무엇을 하고 있나?’ 갑자기 궁금했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니 아내는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꾸 어딜 갔습니다. “어디 가냐?”라고 따져 묻지는 못하고, 좀 이상하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아내는 2014년부터 정토회 활동을 꾸준히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활동을 하는지 그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2023 보리수 정진 중 피 뽑기
▲ 2023 보리수 정진 중 피 뽑기

나는 원래 이런 사람

어릴 때부터 하기 싫은 건 안 하고, 하고 싶은 건 꼭 했습니다.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있었습니다. 1년 정도 가까이 지내니 안 좋은 습관이 보였습니다. 동료는 침도 가래침도, 아무 때나 아무 곳에나 뱉었습니다. 남의 얘기는 안 듣고 항상 자기 이야기만 하고 끝냈습니다. 갈수록 그 동료 보는 것 자체가 싫었고,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결국, 입을 닫고 관계를 끊었습니다. 싫은 데 억지로 노력하며 관계를 지속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평상시에는 아내의 보기 싫은 모습에도 별다른 말을 안 하지만, 술을 마시면 참지 않고 직설적으로 쏘아붙이는 버릇이 있습니다. 아내가 얼마나 기분이 좋지 않을지 짐작하지만, 먼저 사과하는 게 무척 힘들었습니다. 이런 제 성격을 고치고 싶었던지, 아내는 제게 정토회 활동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법륜스님보다 낫다. 내 말을 들어라.”

아내는 카페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저는 비싼 돈 주고 아무 도움도 안 된다는 생각에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카페 가자고 해도 한 번을 응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야야! 며느리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카페에 한 번만 가주면 안 되겠나?” 했습니다. 그때, 술은 잘 마시러 다니면서 카페는 절대 가지 않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 내가 참, 이렇게 사는 사람이구나!’

2024 으뜸절 천룡사 농사하는 중(제일 앞 오른쪽 신용필 님)
▲ 2024 으뜸절 천룡사 농사하는 중(제일 앞 오른쪽 신용필 님)

나도 그들처럼

2022년, 태풍으로 물에 잠긴 두북수련원 ‘살리고 센터’를 청소한다며 아내가 차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전에도 몇 번 차를 태워주었지만, 수련원에 아내만 내려주고 저는 홀로 등산했습니다. 이번에는 도착하니 엄청 많은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었고, 태풍으로 입은 피해가 커 봉사자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해 보였습니다. 처음으로 같이 봉사해볼까 했는데, 정토회원이 아니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봉사하는데도 자격을 따지다니 참 이상한 단체였습니다. 어찌 되었든 일손을 덜어주고 싶어 그 자리에서 가을 불교대학 입학 신청을 하고 봉사에 참여했습니다.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수련원에서는 봉사 온 사람들 밥을 챙기지 않았습니다. 봉사자들은 해맑게 웃으며 각자 싸 온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그 모습이 참 낯설었습니다. ‘야, 이게 뭔가? 사이비 아닌가?’ 느낌이 싸했습니다. 한편으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도시락 싸서, 사비를 들여, 직업이 따로 있는데도 시간을 내어 봉사하러 온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얼굴을 찬찬히 다시 훑어봤습니다. 모두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정말 편안해 보였습니다. ‘아! 이 사람들 진심이구나.’ 이후 몇 번 더 갔는데, 갈수록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 정말 괜찮다. 나도 저들처럼 한 번 해봐야 하겠다.’라고 발심했습니다.

2023 보리수 정진 중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 서 있는 신용필 님)
▲ 2023 보리수 정진 중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 서 있는 신용필 님)

천룡사 농사팀장, 이것부터 한다

불교대학 입학 이후 천일결사 기도를 하루도 빠짐없이 했습니다. 성격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고 느껴, 2023년에는 천룡사 보리수 정진을 신청했습니다. 매주 법사님의 지도 점검을 받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법사님은 “직장 동료 나름대로 몸이 아프든지, 무슨 이유가 있어서 침과 가래를 뱉을 것이다. 그 사람을 인정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만 봐야지 사람을 무시하고 안 좋게만 보는 것이 아니냐?”라며 제 마음을 돌이켜 보도록 했습니다.

기도문을 ‘우월한 마음, 무시하는 마음을 내려놓습니다’로 정했으나 아직 잘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려 노력해도 싫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래도 ‘아! 내가 저 사람을 싫어하네’ 이 마음을 볼 수는 있습니다. 또 아내에게도 잘못하면 하루를 안 넘기고 사과합니다.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연구도 하고, 아내가 필요한 일을 하기도 합니다. 예전과 달리 아내와 함께 카페에도 갔지만, 요즘은 아내도 카페 가는 것을 즐기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5년 정도 주말농장을 했습니다. 그 경험으로 천룡사 2기 농사팀장을 맡았습니다. 천여 평 땅을 예닐곱 명이 돌아가며 고추, 오이, 토마토, 고구마, 옥수수 등 작물을 심고 관리합니다. 올해는 처음으로 감자를 수확해 깜짝 축제를 열고 나누어 먹었습니다.

봉사자로서 참여할 때는 시키는 만큼, 주어진 만큼 일하면 족했는데, 농사팀장을 맡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제 일이었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절차를 마련해 시간을 맞추어 일하지 않으면 농사일이 안 되었습니다. 제가 주인이고 꼭 해야 할 일이니 틈이 날 때마다 자석에 이끌리듯 천룡사로 향합니다. 농사라는 게 잠시라도 한눈팔면 안 되는, 막 걷기 시작한 아이와도 같아 늘 살펴야 합니다. 천룡사를 다녀오면 정말 마음이 편안하고 좋습니다. 못 가면 너무 아쉬워 다른 개인 약속을 제쳐두고 농사일을 일 순위로 둡니다. 오늘은 누가 무엇을 했고, 내일은 또 누가 무엇을 할 것인지 농사팀 모두가 의견을 나누고, 함께 일하며 수행해 가는 이 길이 참 좋습니다.

으뜸절 천룡사 곶감 만들기(왼쪽 신용필 님)
▲ 으뜸절 천룡사 곶감 만들기(왼쪽 신용필 님)

베푸는 기쁨을 나도, 그도 느끼게

즐거운 것을 할 때 제일 행복했습니다. 전국 명산을 거의 다 타보았고,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하고, 제주도와 대마도도 다녀왔습니다. 배드민턴도 아이들과 함께 즐겼습니다. 그게 참 재미있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천룡사에서 농사를 짓는 게 제일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자주 봉사하러 오면 운동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 관계가 많이 소홀해지지 않나요?”하고 법사님이 묻습니다. 지인들도 모임에 자주 빠지는 제게 “무슨 일이 있나, 왜 변했냐?”라고 묻습니다. 그럼 “어차피 사람은 변하는 거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변했으니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봉사란 남을 위한 것이지, 제게 도움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평소처럼 그냥 지나치다 ‘매일 천원은 보시해야 한다’라는 스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부터 구걸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듯 천 원씩 주었습니다. 어느 날 구걸하던 사람이 가지고 있던 껌 하나를 제게 주려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주었는데, 그분은 뭔가를 주려 했습니다. 주고 싶은 진심 어린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환희심이 났습니다. 이때 ‘아, 내가 누군가를 위하는 게 바로 나를 위한 거구나!’

으뜸절인 천룡사 농사팀장을 맡아 매주 천룡사를 오르내리는 저를 보며 아들은 “봉사하러 다니는 게 그렇게 좋으세요?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어요?”라고 묻습니다. “좋아서 가는 거지, 안 좋으면 내 돈 내고, 도시락 싸 들고 가겠냐?”고 되묻습니다. 저 자신에게는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지금이 좋은 줄 알면, 과거나 미래가 어떠해도 상관없다. 이렇게 살면 참 괜찮다.’

무엇이든 늘 함께 하는 아내와
▲ 무엇이든 늘 함께 하는 아내와


지하철역에서 주인공에게 껌을 건네던, 구걸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생생합니다. 가난한 집만 골라 걸식하던 마하가섭의 걸식 정신도 떠 오릅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얻을 때 기뻐하지만, 오히려 베풀 때 보람을 느끼고 당당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주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_곽정란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편집_도경화(대구경북지부 동대구지회)

전체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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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성

봉사란 누군가 필요한것을 해주는 거지막 결국 그것은 나를 위한것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글이였습니디구걸하는 사람의 껌 한통 짠 합니다
가난한여인의 작은 보시로 등불이 꺼지지 않 았다는 경전의 글이 생각나면서 그 구걸하시는 분은 귀한 복을 지으셨네요^^

2024-09-21 08:35:51

혜덕 정희도

와 정말 공감도 되고 감동받으면서 잘 읽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부부이시네요!^^ 아직 천룡사는 못가봤는데
다음에 가보면 꼬옥 밭에 봉사해보고 싶네요!

2024-09-11 23:37:39

박언희

결이 고운 이야기 고맙습니다~^^

2024-09-09 16: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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