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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문제였다.
이번 수련은 오롯이 혼자였기에 방해물이 전혀 없을 거라 여겨, 안심하고 명상에 참여했다. 그런데 파리가 문제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둘째 날 파리 한 마리가 거실에 들어왔다. 명상하고 있는 내 얼굴에 파리가 앉았다. 반사적으로 손이 올라갈 뻔했다.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얼굴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눈가에 앉았다. 그 곳이 가장 알맞은 자리였나보다.
그곳에서 날갯짓하는 건지 다리를 비비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0.000001초의 속도로 마구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내 눈을 필사적으로 뜨게 해서 그 안으로 들어갈 태세였다. 처음엔 이 일을 어쩌나? 손으로 내치나? 아니면 잠시 눈을 뜰까 고심하다가 '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내버려 둬라. 그러면 저절로 진정된다.' 했던 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리고 부처님이 고행하실 때 아이들이 부처님 귓가에 나무를 쑤셔 넣고 장난친 것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 너는 그곳에서 열심히 날갯짓하여라. 나는 숨을 쉬겠노라.' 하고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호흡에 오롯이 집중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그저 한가한 마음으로 파리의 그 기행을 바라볼 수 있었다.
파리의 행동은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눈가에서 날갯짓하는 것은, 아주 귀여운 축에 들었다. 이번에는 내 볼과 귓가, 목 곳곳을 돌아다니며 간지럽히는데 간지러운 것은, 도저히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움찔했다. 파리는 마치 엄숙한 장례식장에서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세 살배기 어린아이 같았다.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다가 어느새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파리는 내 명상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조금도 없었다. 다만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살면서 ‘남편은 왜 그렇게 나를 괴롭히나?’ 싶어 미워하고 원망했는데 그는 추호도 나를 괴롭힐 마음이 없었다. 다만 그는 자기 업식대로 살아가는 것일 뿐이었다. 파리가 가고 모기 한 마리가 웽, 하고 와서 내 팔에 앉았다. 내 팔에 빨대를 꽂고 피를 팔아먹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따끔거렸다. 순간 불쾌한 감정이 잠시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봐 준다. 그래 아주 아주 쬐끔 피 한 방울 너에게 준다고 내가 어찌 되는 것이 아닌데 그동안 그것을 못 봐주고 단번에 죽였구나! 모기는 피를 빨아먹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숨을 쉰다. 죽비소리가 들렸다.
파리 때문에 호흡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했지만, 파리가 문제는 아니었다. 어떤 상황도 올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편안함을 연습하는 것이 명상이라면, 나는 파리 덕분에 큰 공부를 한 것이다.
그다음 타임에 파리를 까맣게 잊고 그대로 명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파리가 다시 왔다. 이번에는 날갯짓이나 앉아 있는 넓이로 봐서 두 마리가 온 것 같다. 온 얼굴을 기어 다니다가 이번에는 입술에 붙었다. 이번에는 입술을 열어젖혀서 기어코 입안으로 들어갈 태세였다. 간지러움을 참기 힘들었지만, 파리가 어디까지 하나 관찰자의 입장에 서니 미워하는 마음이 안 생기고 귀엽게 보였다. 장소를 옮기지 않은 내가 잘못이구나! 다음 타임에는 장소를 옮겨야겠다 마음먹었다.
방으로 장소를 옮겼다. 파리가 따라올까 봐 문을 닫았다. 선풍기를 켤 수도 없고, 방은 너무 더웠다. 그래도 파리의 놀이터로 내 몸을 내어 주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숨을 쉰다. 숨을 쉬는 것이 참 경이롭다. 숨을 쉬니 온갖 감각을 느낀다. 아픈 것도 느끼고, 다리 저린 것도 느끼고, 가려운 것도 느끼고, 간지러움도 느낀다. 다리가 저리고 아픈 통증이 올 때 ‘아, 이런 감각을 내가 느끼는구나! 살아서 숨을 쉬니 이런 것도 느끼는구나!’ 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내 얼굴에 붙어서 놀았던 파리 한 마리도, 내 팔에서 피를 빨아먹던 모기 한 마리도 다 숨을 쉬고 있는 생명이로구나! 내가 특별할 게 없구나! 다 같이 숨 쉬고 살아가는 똑같은 생명이구나, 싶어서 파리, 모기에 대해서 다정해졌다.
이번 명상 참 고맙다. 편안하게 잘 쉬었고, 내 몸과 내 감각과 내 마음을 잘 볼 수 있었다. 큰 공부 거리가 되어준 파리, 모기에게도 고맙다. 이 명상을 위해서 힘써 주신 지도 법사님과 스태프 여러분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예전에 문경수련원에서 명상했을 때는 4박 5일 동안 다리, 허리 등 온몸이 아프다 끝났다. 이번에는 다리 통증이 많이 줄었고, 후반부에는 허리 통증이 중심이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다 보니 자세가 조금 교정이 되었는지 108배를 할 때도 구부정했던 자세가 더 반듯해진 것 같다.
이전에는 편하다는 이유로 왼쪽 다리를 위로 하고 앉았다. 골반이 문제인지 왼쪽 무릎이 들린 상태였다.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를 위로 하니 무릎이 들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어색한 느낌이었지만 명상을 반복하다 보니 더 안정적으로 앉을 수 있었다.
코끝에서 공기가 들어가고 나오는 감각도 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길지는 않았지만, 호흡에만 깨어있는 순간도 몇 번 있었다. 아직 그 외의 미세한 느낌이나 감각을 알아챌 수준까지 안정되지는 못했다.
이번 명상수련 기간에 앉는 자세나 코끝의 감각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나아진 것 같다. 하루 30분 정도는 명상을 꾸준히 해볼 생각이다.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가능하다면 더 편안하게 명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내가 집에서 명상하면 감자를 삶아주겠다는 아내의 말에 기대하는 마음을 가졌다. 4박 5일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아내는 막상 감자를 삶아주기는커녕 본인도 휴가라며 퇴근길에 맥주와 안주를 사 오니 분별이 났다. 결국, 필담으로 감자는 안 삶아주느냐고 따졌고, 엎드려 절 받기로 받아먹은 삶은 옥수수를 과식해 하루 정도 체기가 있었다.
산만한 사람은 집에서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다음에는 연수원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하니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설거지, 빨래, 아픈 고양이 밥 주고, 약 주고, 주사 놓는 일을 내가 다 했다. 제대로 된 수련이 아니었다.
그래도 4박 5일을 다른 거 하며 보낸 것보다는, 훨씬 좋은 휴식이 되었다. 첫날은 입재 법문부터 졸면서 비몽사몽 들었지만 둘째 날부터는 졸음이 가시고 저녁에는 잠이 오지 않아 누워서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을 하다 잠들었다. 여름 휴가를 잘 보내어 감사한 마음이다. 매일 일상에서도 꾸준히 명상하다가 다음에는 오프라인 명상수련을 신청해야겠다.
글_임경화 (거제지회), 손상우 (수영지회)
편집_권영숙(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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