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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토요일 오후 12시 40분, 이곳은 불 꺼진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3층입니다.
청소도구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카트들은 누가, 언제 사용하는 것일까요?
가까이 가서 보니 누군가 이미 옷장을 정리하듯 차곡차곡 손걸레와 밀대, 각종 청소용품을 챙겨 두었습니다. 이 차분한 손길의 주인이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4층으로 올라가 봅니다.
여기들 계셨군요! '정토사회문화회관 도량청정 봉사팀'의 토요일 정기봉사자들입니다. 도량청정 봉사는 매주 화, 목, 토, 일 이렇게 주 4일간 진행됩니다. 부처님오신날 같은 큰 연례행사, 혹은 즉문즉설이나 각종 입재식이 있는 날이면 정기 봉사일이 아니어도 수시로 뒷정리 겸 도량청정이 진행됩니다.
정기봉사자들은 둘씩 짝을 지어 특정 요일을 맡아 그날의 도량청정 봉사를 지원합니다. 오늘은 부천지회에서 봉사하러 오는 날입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은 서제, 인경, 강경 등 세 지부의 으뜸절이면서, 거기 속한 18개 지회의 '일과 수행의 통일' 봉사 프로그램 실천 장소이기도 합니다.
정기봉사자들은 도량청정 봉사를 위해 방문하는 회원들을 위해 청소도구를 미리 준비하고, 청소 방법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지금은 정기봉사자가 부족해 주 4일밖에 청소하지 못하지만, 정기봉사자 신청이 많아지면 주변의 다른 큰 건물들처럼 '매일 도량청정'이 가능해 질 것입니다.
이 건물의 주인은 정토회원입니다. 정토회가 쓰는 모든 건물과 사찰은 회원들이 직접 관리하고 있습니다. 쓰는 자가 주인이니, 주인이 직접 관리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는 단 한 방울의 세제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EM(Effective Mocro-organisms)발효액이라는 친환경 세정제를 사용합니다. EM은 사람, 식물, 환경에 유용한 미생물을 배양해 만드는 물질인데 청소와 악취 제거에 효과가 좋습니다.
여기에 바짝 말려 걷어온 걸레를 착착 접어서 올려주면, 오늘의 카트가 완성됩니다.
부천지회에서 청정히 할 구역은 회관 7층과 12층입니다. 노란 카트는 바닥과 유리창 청소가 가능한 용품들이 들어 있어서 층 별로 한 대씩 가져가고, 미니카트는 12층의 샤워장과 화장실 청소를 위한 용품이 들어있습니다. 이제 오늘의 주인공, 부천지회 회원들을 만나러 가봅니다.
오후 1시 30분, 회관 1층 스페인계단에서 부천지회 사회자의 주도로 '일과 수행의 통일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스페인계단은 회관을 찾아오는 회원들이 앉아서 쉴 수도 있고, 상시 상영 중인 각종 홍보 영상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가볍게 오늘의 일정을 안내받고 회관 입구의 마애불을 참배합니다.
나들이 나온 것처럼 기분 좋게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2층을 둘러보러 올라갑니다. 2층에는 카페와 휴게실, 그리고 에코샵이 있습니다.
2층 휴게실은 '새활용공간'입니다. 헌 옷을 수선하고, 뒷물수건 등 각종 환경상품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휴게실 봉사자에게 설명을 듣고 에코샵으로 이동합니다.
에코샵에서는 새활용공간에서 만든 환경상품과 염주, 방석 등 다양한 물건을 유통하고 있습니다.
이제 계단을 이용해 3층의 설법전을 참배하고 4층 소강당으로 이동할 차례입니다. 주요 법회가 이루어지는 설법전은 300여 개의 방석이 놓일 만큼 큰 공간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서원행자 수계식이 거행되고 있어서 설법전을 참배하지 못했습니다.
소강당에 모여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잠시 입정합니다.
이어서 법륜스님의 법문(봉사란 무엇인가)을 듣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대가를 받는 것을 노동이라고 합니다. 대가를 받지 않는 것을 봉사라고 합니다. 노동은 돈이 목적이지만, 내가 원해서 누군가에게 밥을 해주는 것은 '자기실현'에 속합니다. 자기실현을 위한 행위는 나의 행위를 돈 받고 팔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원봉사는 우리의 행위 가운데 가장 자기를 실현하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도 자기 자신이나 가족을 위한 것은 대가 없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나 나라나 세계를 위해서는 잘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만약, 나나 내 가족을 넘어서서 내가 사는 사회나 세계를 위해서 대가 없이 봉사할 수 있다면 '나'라고 하는 것이 확대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더 큰 자기실현의 길입니다."
다시 한 번 입정하고, 유수스님의 법문을 듣습니다. 유수스님은 봉사자들을 환영하면서, 이 건물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그리고 이 건물을 지은 의미와 운영 방향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홍서원을 하고 여는 나누기를 시작합니다. 오늘의 명심문은 "만물에는 다 제자리가 있습니다" 입니다.
이제 팀을 나누어 7층과 12층으로 흩어집니다. 본격적으로 도량청정 봉사를 진행하는데, 약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됩니다. 먼저 정기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지하 3층으로 내려가 카트를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카트에 실린 각종 청소도구에 대한 설명도 듣습니다.
회관 7층에는 '되살림센터'가 있습니다. 회원들이 기부한 옷과 생활용품이 많습니다. 내게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골라서 되사용합니다.
만약 회관에 방문해서 2층 카페를 이용하려는데 텀블러를 깜빡했다면, 이곳에서 가져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막상 집에 가져갔지만 잘 쓰지 않는다면, 이곳에 다시 기부하면 됩니다.
7층 봉사팀은 이곳 되살림센터와 비상계단 전실, 그리고 각 회의실 청소를 꼼꼼히 했습니다.
정기봉사자들은 일일봉사자들이 사용한 걸레의 먼지도 제거하고 자세한 청소 방법을 안내하면서 계속 봉사를 지원합니다.
12층 봉사팀은 남자샤워실과 게스트룸, 그리고 복도와 신발장을 청소했습니다.
물청소하면서 봉사자들의 옷이 많이 젖었습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행복해요."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분명 힘든 표정이었는데... 오해를 했나 봅니다.
복도와 신발장 청소를 끝으로 12층도 도량청정을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걸레를 지하의 세탁실로 가져가 세탁기에 돌려주면 오늘의 봉사가 끝납니다.
부천지회 회원들이 명상을 하고 닫는 나누기를 진행하는 동안, 건물 밖에서는 '도량청정 조경팀'의 봉사가 한창입니다. 정기봉사자로 구성된 조경팀은 회관의 푸르름을 책임집니다.
분갈이, 병충해 방제, 각종 식물의 월동 준비를 합니다. 조경에 관한 공부도 필수로 해야 하고 전문성이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무엇보다, '무릎꿇고 흙을 만지며 지렁이와 식물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분 환영'이라고 합니다.
한유진 님은 능숙한 손길로 반송(盤松)에 물을 주고는, 호스를 단단히 묶어 고정했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청소의 원칙은 세 가지에요. 친환경적일 것, 효율적일 것, 그리고 비전문가들도 할 수 있도록 쉬울 것."
"청소 방법이나 청소용품은 무수한 수정을 거쳐서 선택됐어요. 예를 들면 효과가 좋더라도 공정이 너무 정교하면 평범한 도반들이 따라 할 수 없으니까 안 돼요. 또 공양간 청소가 특히 어려운데, 다양한 방법으로 청소해 본 끝에 스팀청소기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알았죠."
"대리석 바닥은 미세 모래로 인해 상처를 입는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세제를 넣어 쓰도록 설계된 대리석 청소기를 구입했지만, 우리는 물만 넣어 쓰고 있어요. 그 대신 손으로 일일이 기계를 청소하죠."
"카트에 청소용품을 나눠 싣고 이동하는 것도, 지하철 청소하시는 분들께 배웠어요. 하나씩 다 겪어보고, 시행착오를 거치고, 문제가 있으면 수정하면서 지금의 도량청정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도반님께 '청소'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더니, 조미라 님이 미소를 지으며 답합니다.
"다음 사람을 위한 배려죠. 다음 사람이 이 공간을 청정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배려."
이번 취재는 희망리포터 6명이 함께 했습니다. 취재를 시작하면서 청소로 깨달음을 얻은 주리반특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만물에는 다 제자리가 있습니다"라는 오늘의 명심문처럼, 청소는 만물을 제 자리로 돌려놓는 일입니다. 먼지가 없이 맑았던 것에 먼지가 앉았으면, 그것을 털어 원래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나'를 청소할 수 있다면, 성내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예쁘게 웃었던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갈 지도 모릅니다. 나의 본래 모습은 무엇인가, 나의 원래 자리는 어디인가 물으며 때를 닦는 사이에, 맑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릅니다.
'무언가를 닦는다는 점에서, 청소와 수행은 같다. 다만 청소는 보이는 것을 닦고, 수행은 보이지 않는 것을 닦는다. 살아가면서 내 주변을 청소 하듯 마음을 닦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안과 밖이 모두 청정해질 것이다. 오늘 만난 도량청정 봉사자님들의 얼굴에서 가벼움과 즐거움을 보았다. 평온하고 환했다. 청소가 이런 얼굴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면, 나도 얼른 청소 봉사를 해야겠다.' (김선화 희망리포터의 취재후기 중에서)
취재_강지윤, 김난희, 김선화, 여수연, 이승준, 장수린
사진_이승준(광주전라지부 전주지회)
편집_이승준(광주전라지부 전주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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