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10여 년 전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서 법륜스님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후 즉문즉설을 틈틈이 들었고, 문경 수련원이 궁금해 직접 찾아갔습니다. 수련원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대웅전 앞에서 산 아래 경치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돌아왔습니다. 정토회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집 근처 정토법당이 없었고, 수원에서 서울 법당까지 불교대학에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불교대학에 가야지' 하면서 가지 않은 것은 그때 저는 아직 살 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020년 12월 지인의 추천으로 행복학교를 신청했습니다. 당시 행복학교는 온라인으로 주말에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정토회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천일결사 기도수행문을 읽었습니다. ‘모든 괴로움의 뿌리가 다 마음 가운데 있고, 그 마음의 실체가 공하다’는 문구를 보고 '이것이구나!' 가슴에 확 와닿았습니다.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행복학교를 소개한 지인의 한마디 “참을 것이 없어야 한다”는 말도 이해되었습니다. 곧바로 2021년 3월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렇게 평일에는 불교대학 수업과 법문을 듣고, 주말에는 행복학교 수업과 수행 연습에 참여했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가난했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한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다툼이 잦았습니다. 다툼이 심해지는 날이면 아버지는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 싸움의 끝에는 자식들을 향해 퍼붓는 날카롭고 비수 같은 무서운 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주눅 들었고, 늘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고,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마음에서 무섭고 두려운 부모님을 밀어냈습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가정 형편이 비교되어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외로움과 불안함을 꼭꼭 숨기며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학교 공부는 뒤처지지 않았지만, 어린 나이에도 그것이 부모님에게 기쁨만은 아니고 어려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대학 진학보다 취직해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공부를 마쳤습니다. 대학 진학 후 틈틈이 아르바이트했고, 대학 졸업 후 바로 대기업에 취직했습니다. 저는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다 된다고 생각했고, 사실 그렇게 되기도 했습니다. 일 중심으로 앞만 보고 살았고, '행복'에 대해 고민도 없었고, 여유를 갖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어린 시절의 빈곤과 결핍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대기업 근무 후 컨설팅 업계로 이직하면서 경력은 쌓이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미래의 불안과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남에게 피해 주지 않을 정도로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의 욕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아주 작은 부족함이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회사에서 저는 화 잘 내고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니 이렇게 하라" 강요했고, 아니다 싶으면 불편한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냈습니다. 말투는 차갑고 냉소적이었습니다. 집에서도 가족들이 제 말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사과하는 방법을 잘 몰랐고, 사람들 관계에서 상처를 주고받으니, 말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편했습니다. 화를 내면서도 화인 줄 몰랐고, 고쳐야 한다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하지만 화내고 후회하고, 또 화내고 후회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괴로웠습니다. 어느 날 직장에서 회의 중 무책임한 태도의 동료에게 무척 화가 났습니다. 같이 참석한 후배는 저와 다른 반응을 보여 후배에게 물었습니다. “아까 회의 때 너는 화 안 났니?” 후배는 "네. 화 안 났어요. 그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않아요?” 가볍게 말했습니다.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후배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와서일까?'라는 생각과 이 다름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살아온 환경이 나와 후배에게 어떻게 다른 영향을 주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학적으로 이 문제를 풀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이기적 유전자》, 《코스모스》 및 과학, 종교, 철학 관련 도서를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육식이 화를 만든다는 내용의 책을 읽고 10년 전부터 육식도 하지 않았습니다. 화내고 후회하는 반복되는 상황을 제어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행복학교를 졸업하고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수업을 들으며 법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했습니다. 읽었던 다양한 책들의 내용과 스님의 법문 내용이 꿰맞춰지는 느낌이 들어 더욱 믿음이 갔습니다. ‘화가 왜 나는 것인지?’ 그 원리를 알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니 망설이지 않고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주위 사람들이 제게 "말투가 부드럽고 따뜻해졌다"라고 합니다. 이제는 화가 잘 나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화가 올라오는 순간의 제 마음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부모님을 생각하며 많이 돌아보았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자식을 키우다 보니 폭력적인 말과 행동이 나왔을 부모님을 이해했습니다. 키우기 힘들다고 내다 버리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부모님의 고단한 삶의 노고와 애정을 자양분으로 지금의 제가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요즘에는 어머니와 함께 ‘스님의 하루’나 ‘즉문즉설’을 들으며, 옛 기억을 끄집어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오프라인 즉문즉설에 가족과 함께 참여하며, 오랜 시간 묵혀두었던 감정과 오해를 풉니다. 어머니가 스님의 법문을 듣고 마음이 편해지고, 때로는 부정적인 제 모습을 꼬집으니 저 또한 즐겁습니다. 아버지는 15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충분히 화해하지 못한 채 떠난 것이 아쉽지만, 이 마음 또한 틈틈이 살펴봅니다.
저를 가장 크게 변하게 한 것은 천일결사 새벽 정진입니다. 처음에는 새벽 기상과 108배가 잘 안되었습니다. 제대로 못 하니, 자기 합리화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다 일어나고 싶은데 못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일어나기 싫으니 안 일어나는 것임을 깨닫고, 저 스스로를 사실대로 보지 못하는구나!를 알았습니다. 지금은 고민하지 않고, '꾸준하게 그냥 합니다'라는 명심문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정토회 프로그램은 모두 좋았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참여하면 깨치는 것들이 있습니다.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인도성지순례, 명상수련 등 정토회 프로그램이면 시간을 내어, 그냥 따라 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했습니다.
정토행자 수계를 받은 후 인도성지순례에 참여했는데, 갑자기 모둠장이 되었습니다. 원래 예정된 도반이 사정이 생겨 저에게 그 역할이 왔습니다. '선배 도반이 많은데, 왜 내게 이런 역할을 맡기는 걸까?'라며 얼떨떨했지만, 그냥 ‘네’ 하고 했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수원지회 모둠장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둠에 세 명의 전법 활동가가 있습니다. 두 명이 다른 일을 하고 있어 신참인 제가 모둠장을 맡았습니다. 이번에도 그냥 ‘네’ 하고 했습니다. 모둠장을 하면서 도반들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업무 관련 사람들, 가족, 몇 명의 친구가 전부였던 제게 큰 수행 과제였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관계에서 오는 어색함과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나의 시비분별과 마주하면 여지없이 무너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정일사 정진 때 법사님에게 이런 마음을 얘기했습니다. 법사님은 '내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는다.'라는 명심문으로 정진하도록 권유했습니다. 제가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는 훈련이 안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부끄러운 좁은 제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았지만, 내어놓았기에 나아갈 수 있음을 지금은 압니다.
처음 모둠장을 할 때 소통방에 내용을 전달하면 '모둠원들이 다 본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지 내용을 보고 참여하는 사람은 마음 내서 하는 것이고,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참여하고 싶지 않겠지,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모둠장을 다시 하면서 제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6.13만인 대법회 준비를 위해 75명의 모둠원과 연락했습니다. 그동안 활동하지 않다가 만인 대법회에는 참여하는 도반이 있었습니다. 그 도반을 보며 '아! 이렇게 만인이 되는구나, 그동안 내가 생각으로 일을 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더 깊이 있게 활동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부족한 수행 정진을 만회하고자 학사 진행도 요청해 경전대학 진행자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매일 퇴근 후에는 학사수업과 수행법회, 그리고 회의와 교육 일정 등으로 바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에서야 제 모습을 조금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정토회 소임을 통해 도반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관계는 제가 만들 수도 있고, 주변 도반들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일 속에서 이것을 확실히 경험하며 스스로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여전히 걸려 넘어지는 상황이 반복되지만, 이제는 “우리는 모자이크 붓다입니다.” 명심문으로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정토회 수행자로서 수행과 보시, 봉사 활동으로 제 생활의 많은 부분이 채워지고 있습니다. 덜어냄과 채워짐의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길을 함께하는 모든 부처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동안 녹음 파일을 들으며 출퇴근했습니다. 이어폰으로 들리는 음성이 잔잔한 음악처럼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수행으로 단단해지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수연 님을 응원합니다.
글_민헌기 희망리포터(인천경기서부지부 인천지회)
편집_박선희 (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전체댓글 39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수원지회’의 다른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