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남양주지회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첫 인터뷰여서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의 주인공 남양주지회 화도 모둠장 이혜숙 님을 만났습니다. 이혜숙 님은 '자신감 센 언니'로 지내다 정토회를 만나 편안하고 가벼워졌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울면서 했는데, 정토회를 만나 너무 많이 울어 이제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인터뷰를 글로 옮기며 차곡차곡 수행 정진한 이혜숙 님의 모습이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업식을 돌아보고, 가족을 이해하고, 모두가 다름을 알고, '끝까지 수행 정진한다'는 원을 세운 주인공 이혜숙 님의 수행담을 소개합니다.

소중한 선물

2020년 행복학교 홍보
▲ 2020년 행복학교 홍보

2011년 직장에서 우편물을 정리하다 우연히 《월간정토》를 봤습니다. '마음을 위로하는 책이겠지'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도반의 ‘행복하다’라는 글귀가 낯설지만 절실하게 와 닿았습니다. 당시 저는 직장과 가정에서 가장 힘들고 괴로운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그 글귀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정토회 홈페이지에서 '내가 일으킨 한 생각이 괴로움을 만든다’라는 〈깨달음의 장1〉 안내 문구를 보았습니다.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고, 그 뜻을 더 알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

2023년 초파일 행사 (가운데 이혜숙 님)
▲ 2023년 초파일 행사 (가운데 이혜숙 님)

아버지는 주변에 늘 사람이 많고, 인심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는 술만 마시면 살림을 때려 부수는 주사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난동을 부리면 동네 사람들이 몰려오고 어머니는 울었습니다. 어릴 때 자다 일어나 이런 모습을 종종 보았습니다. 가정을 돌보지 않던 아버지는 결국 바람이 나서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을 나갔습니다. 삼 남매의 양육과 가계를 책임져야 했던 엄마는 손수 국수를 뽑고 장사를 해 우리 형제를 길렀습니다. 하루는 동생들과 놀다 집에 오니 엄마가 쌀자루 위에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도와주는 사람 없이 홀로 힘들게 국수 장사로 자식을 키우는 엄마가 같은 여자로서 한없이 불쌍했습니다.

2023년 공양간 바라지 (왼쪽 이혜숙 님)
▲ 2023년 공양간 바라지 (왼쪽 이혜숙 님)

제가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책임하게 집을 나가 어느 날 느닷없이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너무 미웠고,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엄마도 미웠습니다. 그토록 아버지를 원망했는데, 다시 받아주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아버지가 용서를 구하며 엄마에게 잘할 거라 기대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게을렀고 술도 많이 마시고 바람도 피웠습니다. 반항기 많고 사춘기였던 저는 도저히 집에서 지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큰집으로 도망쳤습니다. 큰집에서 학교까지는 한 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큰집에서 1년 넘게 살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느 날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고 들어가니, 아버지가 제 머리를 잘랐습니다. 저는 '어디 두고 보자'라는 심정으로 머리를 잘리고, 한동안 빡빡 자른 머리로 지냈습니다. 저는 모든 일에 엇나갔고,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스물세 살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오래지 않아 이혼했습니다.

이혼은 쉽지 않았습니다. 주사 있는 남편은 친정집 국수 가게에 와서 난동을 부렸고, 부모님은 그걸 다 받아냈습니다. 저는 너무 괴로워 '차라리 죽자' 마음먹고 약까지 먹었습니다. 그때부터 ‘안 되면 죽자’라는 생각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스물일곱에 힘들게 이혼했습니다.

내 뜻대로

2023년 행복학교 홍보 (맨왼쪽 이혜숙 님)
▲ 2023년 행복학교 홍보 (맨왼쪽 이혜숙 님)

지금의 남편과는 재혼했습니다. 남편은 세 살 연하로 서울 소재 아파트도 소유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결혼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서른셋에 재혼하고 딸을 낳았습니다. 용기 내 결혼했고, 내 선택을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내 뜻대로 이루어지고 행복해질 거라' 믿었습니다. 첫 번째 결혼은 실패했으나 두 번째 결혼은 어떻게든 잘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결혼생활은 제가 생각한 것과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싶었지만, 남편의 사업은 잘되지 않았고 빚만 쌓였습니다. 남편도 어렵게 살아서 그런지 고집이 셌고, 저 역시 아버지를 닮아 욱하는 성격에 고집이 셌습니다. 저는 화나면 불같이 화내고 다 뱉어냈습니다. 남편은 반대로 입을 꽉 다물었습니다. 경제관념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남편과 자주 다투었습니다. 당시 딸은 사춘기였고, 저는 갱년기로 몸과 마음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 무렵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어 괴로움과 불안감은 점점 커졌습니다.

2023년 연등 봉사 (맨왼쪽 이혜숙 님)
▲ 2023년 연등 봉사 (맨왼쪽 이혜숙 님)

그러다 문득 〈깨달음의 장〉에 가고 싶었습니다. 알아보니 불교대학에 입학해야 갈 수 있었습니다. 2013년 3월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고, 그해 5월 〈깨달음의 장〉에 다녀왔습니다. 그 후 4년 동안 직장 다니지 않고 정토회에서 공부하고 봉사하며 지냈습니다. 한 도반이 "지하 단칸방에서 라면을 끓여먹더라도 이 공부를 한번 해봐라"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당장 굶어 죽지 않으니 공부해서 이 불안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후, 어릴 때부터 꾹꾹 눌러두었던 불안과 두려움, 원망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습니다. 청소하려고 하면 먼지가 더 잘 보이는 것처럼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마음이 더 불안했습니다.

정진, 가벼움!

2023년 으뜸절 도량청정 봉사 (뒷줄 맨오른쪽 이혜숙 님)
▲ 2023년 으뜸절 도량청정 봉사 (뒷줄 맨오른쪽 이혜숙 님)

불교대학 입학 6개월 후, 딸이 "엄마 많이 변한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고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그동안 제 욕심으로 남편을 봤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천 배도 하고, 만 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남편과의 관계가 점차 나아졌습니다. 남편에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권유했는데,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참 후 남편은 혼자 차에서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제가 활동한지 2년 후, 남편도 〈깨달음의 장〉에 가고,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 수행하며 봉사하는 현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원망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쉽게 녹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정진 후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남편과의 갈등 또는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눌려있던 '불안'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물건을 부수며 화내던 모습과 혼자 울고 있는 불쌍한 엄마를 보며 불안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어른이 되었을 때는 '내 뜻대로 될 거라 자신하며, 막상 잘되지 않으면 회피했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수행하고 정진하며 제 삶을 회피하지 않고 돌아볼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가볍고 행복한 마음입니다.

대학교 4학년인 딸은 "돈 많고 서로 싸우는 집보다 돈은 없지만, 우리 집이 좋다"라고 합니다. 저를 닮아 씩씩하게 잘 지내지만, 어렸을 때 '제가 물려준 업식이 무겁겠구나!'라고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내 생각일 뿐 스님 말씀대로 "부처님, 우리 딸은 저를 닮아 잘 살 겁니다."라고 기도합니다.

모두가 다름

2023년 모둠원들과 불교대학 홍보 (왼쪽에서 세번째 이혜숙 님)
▲ 2023년 모둠원들과 불교대학 홍보 (왼쪽에서 세번째 이혜숙 님)

제겐 정토회 봉사가 살아갈 힘이 되므로,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서초법당 사회활동 팀장도 하고, 행복학교2 진행을 6년 동안 했고, 지금은 남양주 지회에서 모둠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닮아 사람 챙기는 걸 좋아합니다. 도반들과 끝까지 정토행자로 함께 가고 싶습니다. 보기 싫은 사람도 알고 보면 남편이나 제 모습이 보여 이해됩니다. 일하며 받은 큰 복은 '모두가 다름을' 안 것입니다. 가장 큰 배움이었습니다. 가끔 분별하는 마음에 욱하고 올라오지만, 알아차리고 마음에 남지 않으니 가볍고 편안합니다.

2019년 인도성지순례 중에(오른쪽 이혜숙 님)
▲ 2019년 인도성지순례 중에(오른쪽 이혜숙 님)

요즘은 나 자신에게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예전 힘들 때 '그냥 죽어버리면 되지'라는 마음속 주문으로 나를 아끼고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담배도 오래 피웠고, 낮과 밤이 바뀐 채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토회를 만나 수행하며 25년 동안 피웠던 담배도 끊고, 새벽 정진을 위해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잠을 잡니다.

서원행자3 추천자 교육을 받았습니다. 수행 과제는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입니다. 그래서 '요구가 없으면 번뇌도 없습니다.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이 원을 가지고 정토회에서 끝까지 수행정진 하겠습니다.


2011년 우연히 정토지에서 찾은 '행복하다'는 글귀는 이제 이혜숙 님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 수행담을 읽은 또 다른 누군가가 정토회를 만나는 상상을 해봅니다. 정토회에서 정진하고 봉사하며 마음에 품었던 고통과 괴로움을 모두 녹여내고 가볍고 편안해진 이혜숙 님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_이소윤 희망리포터 (강원경기동부지회 용인지회)
편집_박선희 (강원경기동부지회 수원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 행복학교 법륜스님 행복학교는 온라인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진행자와 참가자가 행복을 배우고 연습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체험의 장'입니다. 행복학교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3. 서원행자 정토회 정회원은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로 구분됨. 수행, 봉사, 보시 활동을 기준으로 하며, 발심행자 3년 후 추천과 심사를 통해 서원행자 자격이 주어짐. 서원행자는 임원이 될 수 있는 피선거권을 가짐.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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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왕

마음이 흐뭇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

2024-04-05 19:22:38

박현미

우선 이혜숙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남편과 함께 봉사활동 하신다니 부러울따름입니다.
지금부터는 남의 편이 아닌 내편인 남편분과 함께
봉사활동 하시면서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2024-04-01 22:39:42

노반장

서원행자교육 받으셨다니 축하드립니다. 보살님의
미소만큼이나 아름답게 빛나시길~♡ 남은길은
행복뿐입니다~♡ 감동글 잘읽었어요^^

2024-03-25 1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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