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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는 딸을 돕고 싶은데 방법을 못찾아 괴로웠습니다. 어느 날,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정토불교대학 모집 광고 문구를 만났습니다. '정말 불교 공부를 하면 괴로움 없이 살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2022년 봄 불교대학에 등록했습니다. 입학하고 며칠 후 친정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기로 한 공부이니 계속 했습니다. 2023년 봄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전법활동가 교육을 받을 때 <깨달음의 장>에 다녀왔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지회장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법륜스님이 북미 강연을 하는데 밴쿠버 강연 총괄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누가 나서지 않으면 밴쿠버 강연은 성사될 수 없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내가 할 만해 보이니 맡겨주는 일이겠지.' 가볍게 해보자 싶어 소임을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와병 중이던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들었습니다. 맡기로 한 소임이니 그냥 하기로 했습니다. 책임감이 강한 편이기도 했고 부모님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저를 응원해 줄 거라 믿었습니다. 강연 준비로 정신없이 바쁘게 보낸 덕에 슬픔에 빠져있지 않았습니다. 있는 자리에서 잘 쓰이는 값진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십여 년 방송 일을 했습니다.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강연 준비 정도는 그냥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막상 일을 맡고 보니 정토회에 갓 들어와 사람들을 알지 못해 봉사팀을 꾸리고 적재적소에 인원을 배치하는 것부터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10여 명의 봉사자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파트를 지원하고 각 파트에서 필요한 봉사자들을 알아서 섭외했습니다. 54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을 쓱싹 꾸렸습니다. 강연 당일 봉사 16명을 포함해 총 70명으로, 북미지역 강연 봉사팀들 중 최대 규모의 봉사단이 밴쿠버에서 탄생했습니다.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봉사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제가 강연 총괄로서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소통하는 것이었습니다. 실무에 필요한 답변이 미뤄지면 바로 처리될 수 있는 일이 하루 이틀 늦어집니다. 봉사자들이 강연 준비만 붙잡고 있을 수 없기에 최대한 신속하게 알아보고 답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돌아보면 강연 준비로 한창이던 그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바쁜 날들이었습니다.
매주 한 번 카페에 빵을 납품하고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과 학교 다니는 두 아이의 식사를 챙기며, 한인 라디오 방송국에서 주 3회 2시간짜리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하루 6시간씩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해외 순회강연 업무를 소통했습니다. 게다가 몸담고 있는 한인극단의 정기공연이 10월 예정이라 주 2회 이상 연극 연습에 참석했습니다. 연습이 있는 날은 밤 10시에 집에 돌아와서도 강연 준비 관련 소통을 하느라 스마트폰을 놓지 않았습니다. 잠은 하루 3~5시간만 잤습니다. 외줄 타는 사람처럼 일 분 일 초 꼭꼭 밟아가며 긴장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몸은 힘들었는데 스트레스는 없었습니다. 강연을 준비하는 내내 봉사자들과 소통하고 한마음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가는 길은 참 즐거웠습니다.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강연 총괄 봉사를 하며 내 삶을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다니며 제가 많은 부분에서 상을 짓고 있음을 알았지만 어떻게 하면 깨뜨릴 수 있는지 그 방법은 잘 몰랐습니다. 강연 총괄로 많은 봉사자와 함께 일을 하며 하나의 사실에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내놓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정말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같은 것을 보는데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구나!’ 깨달았고, 그렇게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스트레스도 덜 받고 내가 편안해지는 길임을 체험했습니다. 연습을 반복할 수 있었던 기회 덕에 이제는 집에서도 자연스럽게 연습합니다. 내가 낳은 나의 자식이지만, 사랑하는 나의 남편이지만, 이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임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래서 그랬구나!' 한 발 물러나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면 내가 좋았습니다.
강연날 준비한 440석이 꽉 차서 나중에 오신 분들은 입장하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밴쿠버에서 두 번의 강연이 있었는데 당시 마련했던 400석이 부족했습니다. 이번에는 40석을 늘였는데도 좌석이 모자란 것을 보면서 다음에는 더 큰 장소를 빌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제대로 하자면 강연 장소는 6개월 전에 섭외가 되어야 하는데 촉박하게 빠듯한 예산으로 장소를 섭외하려니 선택의 폭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행히 일본인 커뮤니티 센터를 빌리기로 했는데, 당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한창 시끄러울 때라 “왜 일본 쪽 장소를 쓰냐!”는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항의하는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오히려 수고가 많다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어떤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할 때 항상 비용이 발목을 잡는데, 비용을 많이 쓰지 않아도 좋은 행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정토회 봉사를 하면서 배웠습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는' 검소한 생활을 지향하는 정토회이니만큼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언론사에는 광고 의뢰를 하는 대신 기사로 행사 소개를 의뢰했고, 무료로 쓸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언론홍보비 지출 하나 없이 440석을 꽉 채울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
강연 당일 시간 관계상 신청한 질문을 다 받지 못했습니다. 그 중 마지막 질문자는 북한이탈자로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그리워 통일은 언제쯤 될지, 통일을 위해 무얼 해야 할지 질문지를 접수한 상태였습니다. 질문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던 질문 접수 봉사자는 질문할 수 있게 해달라며 제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책 사인회가 끝나고 겨우 짬을 내어 스님께 물었고 스님께서 흔쾌히 "개별적으로 답변을 해주겠다." 했습니다. 질문 접수 봉사자가 강연장을 떠나고 있던 질문자를 쫓아가 데려왔습니다. 그렇게 그 질문자는 스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단 한 명의 질문자라도 놓치지 않고 스님의 답변을 들을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했던 점은 두고두고 흐뭇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해보자.' 하고 시작한 강연 준비 총괄은 막상 해보니 결코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도반들과 함께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토회 모임을 할 때마다 명심문 ‘우리는 모자이크 붓다입니다'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이유를 실감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강연 준비를 하면서 강연장 섭외, 봉사자 구성, 필요한 물품 준비 등 해야 할 일에 대한 자료를 나름대로 꼼꼼히 기록해두었습니다. 다음 강연을 준비할 봉사자에게 잘 전달하겠습니다. '혼자 다 해야 한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모자이크 붓다입니다. 함께 하는 도반이 있으니 즐겁게 할 수 있을 겁니다.'라는 저의 격려도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글_김영아 희망리포터(해외지부 북미지회)
편집_김난희(강원경기동부지부 원주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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