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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병이 있습니다. '연말 병, 신년 병' 연말이면 돌아볼 한해를 산 것도 아니면서, 한해를 돌아보겠다고 난리, 난리 그런 난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한해 돌아보기를 며칠 하다가 ‘헐, 이럴 때가 아니지. 지나간 한해에 집착 말고, 신년 계획이나 세워야지!’하면서 달력을 펴고 또 촘촘히 방학계획을 세우듯 적습니다.
신년 계획이라는 걸 세우려니 도대체 작년에는 ‘내가 뭘 계획했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거창한 사람입니다. 1년 전인 2023년 이맘때 '나 홀로 기도밴드'에 새해계획을 써놓고 딱 1년 후인 오늘에야 펼쳤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고사하고, 3개월에 한 번, 아니 6개월에 한 번이라도 펼쳐봤으면 실행력이 더 높았을 텐데 1년 뒤에 쳐다보니 ‘내가 언제 이런 말을 했어?’라고 오리발을 내밉니다.
까마득하게 잊었던 계획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작년 계획을 1년 만에 들여다보며 반발심과 저를 타박하는 마음이 툭툭 올라왔습니다. 계획이 거창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지킨 것 하나 없을까, 의문입니다. 그래서 스님이 안 지킬 줄 알고 ‘그냥 살아라’라고 한 것일까요?
‘정토행자의 하루’에 나오는 도반들의 수행담을 4년간 정리하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남이 아닌 저를 알고 싶어졌습니다. ‘나는 그 하고많은 종교단체 중에 어떻게 정토회를 만났을까. 카톨릭 신자였던 내가 왜 불교 공부를 시작했을까, 공부로 안 끝내고 어쩌다 아침 수행에 봉사까지 하고 있을까, 어쩌다...’
수행담의 주인공들에게 했던 질문을 저 자신에게 했습니다. 인생극장이 따로 없습니다. 인생의 골짜기마다 당시에는 몰랐던 배움이 선물처럼 있었습니다.
‘잘 넘겨왔구나. 그때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부처님 법 만났다고 새지 않았구나.’
‘아무개야(접니다), 만약 다른 길로 샜다면, 오죽하면 샜겠냐. 잘 샜다. 그때 네가 한 선택은 무조건 잘했다. 다시 돌아가도 그 선택을 했을 거다. 후회하지 말고, 그때의 경험을 통해 오늘을 다시 쓰면 된다. 괜찮다. 다 괜찮다.’
무엇을 말하려고 이 편집자가 말을 이렇게 돌리고 돌릴까요? 네, 2024년에는 ‘정토행자의 하루’가 바뀝니다. 그동안 월, 수, 금, 발행했던 기사를 월, 수만 발행합니다. 금요일은 주인공이 바뀝니다.
사실 포장은 그럴싸하게 했지만, 그렇게 바뀌는 이유, 아니 바뀔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정토회가 온라인 체계로 바뀌면서 도반들과의 만남이 많이 줄었습니다. 전에는 법당 가면 도반을 만났고, 자연스럽게 수행 이야기를 들으며 기사로 나가기 좋았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또, ‘정토행자의 하루’ 수행담에 실릴 조건이 나름 엄격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토행자의 하루’ 주인공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2024년부터 주 2회로 월요일은 <월간정토>에 실린 수행담으로, 수요일은 기존대로 희망 리포터들이 인터뷰한 기사가 나갑니다. 물론 매번 금요일이 쉬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각 지역 정토회 실천장소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물어 나를 생각입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라고 할까요.
어느 금요일은 기사를 발행하기도 하고, 어느 금요일은 기사를 발행하지 않기도 합니다. 실천기사를 발행하지 않는 금요일은 ‘여러분의 삶’을 발행해보면 어떨까요?
“나 말이야, 엄마가 ‘이모 딸은 용돈을 얼마 줬다더라’라고 했을 때 비교하는 느낌 때문에 화가 탁 올라왔다. 근데 바로 알아차렸잖아. 알아차리니까 웃음이 나더라. 그래서 엄마에게 웃으며 말했어. ‘엄마, 이모가 부러웠구나?’라고 말이야. 알아차렸다고 다 풀린 건 아닌데 버럭 화를 내진 않았어.”
한주 끝자락에 선 어느 금요일은 실천기사로, 또 어느 금요일은 ‘우리들의 삶’으로, 채워가면 좋겠습니다.
글_정토행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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