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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로 소감을 시작해야 할까요. 이 말이 좋겠습니다. 저는 수행자가 되는 사람은 DNA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리가 아픈 고통을 견디고 이겨내는 건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번 명상은 그 특별함이란 보통의 노력을 이어가는 과정이란 걸 알게 된 기회였습니다.
저는 일을 어느 정도 하면 “이만하면 됐지.”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번 명상은 지난번과는 달리 애쓰지 않고 4일을 잘 지냈습니다. 명상수련이 끝나간다고 생각했던 마지막 날, 그때부터 마음에 요동이 일었습니다. 다리는 뼈를 비틀 듯이 아팠고 가슴이 답답해지자 호흡도 거칠어졌습니다. 어김없이 “이 정도 한 게 어디야 그만하자. 다리 한 번만 풀자.”라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그래도 꿈쩍하지 않으니 이제는 똥 누러 가고 싶다는 생각마저 일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들떴습니다. 아니, 화장실 가는 것에 마음이 들뜰 일입니까?
평소 같았으면 다리를 풀고 화장실도 다녀왔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백전백패를 하던 제가 의지를 다지지도 않고 4박 5일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지금 내 행동이 미래에 씨앗이 된다.”라는 스님의 말씀 덕분이었습니다. 한 번 다리를 풀면 당장은 편할 수 있지만, 다음에 명상할 때도 저는 또 쉽게 다리를 풀겠지요. 그렇게 하기는 싫었습니다. 명상하면 저의 못된 성격도 바꿔준다는데, 그냥 호흡만 보고 있으면 된다는데, 다리를 풀 순 없었습니다. 졸기도 하고 호흡에 집중하기도 하고 때로는 망상을 피우면서 시간을 견뎠습니다.
어느 순간 제가 호흡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동안은 호흡에 집중한다 해도 눈 밑이 긴장하거나 광대뼈에 힘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끝을 왔다 갔다 하는 온도도 느껴지고 코털도 느껴졌습니다. 시원한 공기가 목구멍을 넘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숨을 목구멍 깊이 넣어보기도 했습니다. 명상 시간이 짧게 느껴졌고 ‘이게 뭐지?’라는 마음에 다시 연습해 보고 싶었습니다.
다시 코끝에 집중하고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이때 다리도 아팠습니다. 역시 숨이 살짝 가빠지고 배 쪽의 열기가 느껴지며 마음이 답답해졌습니다. 아픈 것도 답답한 것도 싫었습니다. 또다시 명상의 끝을 알리는 죽비 소리를 기다리는 저를 보았습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호흡에 집중했습니다. 조금 전만큼 집중할 수는 없었지만,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고 돌아가기를 반복했습니다.
명상수련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아프지만 호흡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호흡에만 집중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도 시간을 평온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 나도 되는구나. 이렇게 연습하면 나의 뾰족뾰족한 성질이 깎여나가는구나. 그동안 빨리 해결하고자 조급했던 마음들이 날 힘들게 했구나.’
살아 있어 알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아서 알 수 있었습니다. 대단한 사람들이 수행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행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무엇이든 제 속도에 맞춰서 포기하지 않고자 합니다. 당장 해결하고자 조급해하지 않겠습니다.
부처님 정말 감사합니다. 법을 전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같이 해주신 법륜스님과 도반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이번 명상 수련을 점수로 매긴다면 10점 만점 중 2점입니다. 혼자 집중할 수 있는 공간과 노트북, 다이소에서 산 작은 알람시계, 명상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갖춰졌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아 이제 쉬기만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그 생각은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10분이 지나서 완전히 깨져버렸습니다. 들숨, 날숨을 관찰하기는커녕 앉아있는 행위 자체가 무척 불편했습니다. 다리에 피가 안 통해 발가락조차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기분 나쁜 감각에 당장에라도 다리를 펴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습니다. 최대한 견뎌보려고 했는데 그럴수록 심장이 두근거려 불안에 허덕였고 그 끝에 다리를 펴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저는 명상이 고상하고 우아할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에 저는, 파도를 넘나들었고 제 안의 폭풍우와 마주했습니다. 그 과정은 참 힘에 부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만두고 싶었고 괴로웠습니다. 억압받는 것 같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다리가 저리다 못해 감각이 없어 포행 시간에는 일어설 수조차 없었습니다. 두툼한 이불을 엉덩이에 깔았다 뺐다, 여러 시도를 했고 마지막 5분을 못 참아 눈을 번쩍 떠버리기도 했습니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뭐든 했습니다. 모두 계율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습니다.
휴, 2일 차까지도 알 수 없는 불안과 그것을 해소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몰랐습니다. 제가 왜 이러는 것인지. 그러던 중 스님은 '명상은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내가 이런 문제가 있구나. 스스로 자각하는 시간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명상 중 일어나는 현상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충동성이 올라오는구나. 불안을 해소하려고 끊임없이 다른 것에 집착하는구나. 내 뜻대로 안 되면 화가 나구나. 불편한 것을 견디지 못하구나.’
끊임없이 껄떡거리고 지랄발광하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제 성질머리를 제대로 본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과 신체가 이미 형성된 업식(karma)과 습관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먹는 습관, 보는 습관, 자는 습관, 생각하는 습관, 마음의 습관, 감정의 습관대로 '나'는 움직이려 했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제 삶의 많은 부분을 자유 의지가 아닌 이미 정해진 업식(karma)대로 살아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계율을 지키지도, 모든 스케줄에 참여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 동안 제 속에 잠재된 폭풍과 마주했다는 것이 참 다행입니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으며 모든 것이 준비된 시간에도 저는 불안하고 화가 나고 갈팡질팡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은 ‘내 안에 있었음’을 여실히 느꼈습니다.
‘내 꼴도 모른 채, 나 잘난 맛’에 살았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 꼴을 모르고 남만 잘못했다’라고 지적한 지난날도 반성합니다. 치열했던 4박 5일이 지나고 나니 이 시간이 "몸과 마음, 정신"의 휴식이었음을 압니다. 계율을 어겨 다소 부끄럽지만, 다음 명상이 기다려집니다. 그때는 이번보다는 편안하게 참여하길 기대합니다. 명상을 이끌어주신 법륜스님, 정토회 스태프들, 함께 한 도반들 모두 감사합니다.
도반에게 존경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요? 자신과의 싸움을 이렇게 알아차리고 세세하게 표현하니 말입니다. ‘지금 내 행동이 미래에 씨앗이 된다.’ 이 말이 무시무시하게도 들리지만, 희망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아싸, 지금부터 내 미래의 시작인 씨앗을 심는다!”라고 말이죠. 오늘이 저의 첫날입니다. 미래의 씨앗을 심는 첫날!
글_강지윤(인천경기지부 안양지회), 전송연(청년특별지부, 경상모둠)
편집_권영숙(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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