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엄마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이병례 님은 인도성지순례에서, ‘모든 분별심은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는 명심문에 충실한 도반들 덕분에 자기 업식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열반당에서 엄마에게 편지를 쓰면서 오랜 시간 걸려있던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모두 녹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엄마 덕분에 세상에 나왔고 그래서 인도성지순례를 올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했다는 이병례 님의 소감문 함께 읽어보시죠.

성지순례, 나를 보는 여행을 떠나다

불교대학 다닐 때부터 인도 성지순례를 가고 싶었는데, 이번에 막상 성지순례 참가자 1,250명을 모집한다는 공지가 올라오니 이런저런 걱정으로 신청을 망설였다. 하지만 직장까지 그만두고 신청하는 다른 도반들을 보며 나의 가장 큰 걸림돌은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가보자. 가서 내 업식의 끝을 보고 오자.’ 가족들에게도 오로지 나를 보는 여행을 할 것이니, 연락 없으면 무소식이 희소식임을 당부해두었다.

이병례님
▲ 이병례님

나는 걱정이 많은 업식이라 여행을 가면 항상 여분의 짐을 많이 챙긴다. 그런데 성지순례는 22인치 캐리어 하나와 배낭과 침낭만 챙겨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이 작은 캐리어에 어떻게 짐을 다 싸? 이건 말이 안 되는데….’ 가기도 전에 분별이 나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짐을 쌌다 풀다를 반복하며 괜히 신청했다는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정토회를 믿고 하라는 대로 하자는 마음을 내면서 걱정 반 기대감 반으로 출발하였다.

인도에서의 여러 일정

델리 공항에 도착해 바라나시로 가는 버스 안에서 본 인도의 풍경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거리의 집들이 내 눈에는 다 폐가로 보였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지저분한 옷차림으로 구걸하는 모습과 무질서한 도로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스님께서 여러 번 말씀해 주셨는데도 막상 내 눈으로 보니 놀라웠다. 새삼스레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이 그냥 듣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구나 싶었다 .

강가강에 도착하니 한쪽에서는 시신을 화장하고 있었고, 또 한쪽에서는 모든 죄가 사라지고 윤회하지 않길 바라며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 대비되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죽음도 삶의 한 모습이구나 싶었고, 삶과 죽음이 같다는 말의 의미도 이해가 되는 듯했다.

강가강에서(맨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병례 님)
▲ 강가강에서(맨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병례 님)

사르나트에 도착해서는 수계식이 있었다. 가사를 처음 입어 보는 나에게는 역사적인 순간이었고 연비를 하고 나니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그러나 일정이 계속되면서 가사로 인해 활동이 불편해지자 처음 가사를 입었을 때의 감동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가사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손바닥 뒤집듯 마음이 뒤집히는 나를 보며 ‘내가 이렇구나’ 알게 되었다.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이 준비한 환영식은 너무 큰 감동의 연속이었다. 마치 내 자식 재롱잔치를 보듯 푹 빠져서 보며 많이 웃고 눈물을 흘렸다.

만인공양을 할 때는 쌀을 나눠주는 소임을 맡았다. 몸이 불편한 분이 있어 쌀을 들어드린다고 했더니 스스로 가져가겠다고 하셨다. 그분의 화사한 미소에 눈물이 핑 돌았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미소를 지으며 서로의 마음을 전해주고 받을 수 있었다.

제띠안에서는 평화행진 퍼포먼스를 했는데 구호를 외치고 함께 노래도 부르니 평화의 중요성이 마음을 타고 흐르는 듯했다. 행진하는 동안 우리나라의 평화 통일을 간절히 기원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도반들과(앞줄 맨 왼쪽이 이병례 님)
▲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도반들과(앞줄 맨 왼쪽이 이병례 님)

엄마에게 감사함으로 멈추지 않던 눈물

열반당에서는 정토회와 인연 맺어준 분께 편지쓰기를 했는데, 이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엄마가 낳아주셔서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얼마나 감사한지 눈물이 났다.

내가 여섯 살 때 아버지의 자살을 경험했다. 그날 나는 집에 아버지와 함께 있었고 아버지의 선택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빠의 돌아가심이 내 탓이 되었고, 그 이유로 엄마에게 많이 맞고 자랐다. 여섯 살이던 나는 아빠의 선택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알았다면 당연히 말렸을 텐데,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을 텐데, 내가 그렇게 무심하고 나쁜 아이가 된 억울함에 속을 태우며 엄마를 원망했다.

정일사 회향 때 엄마에 대한 원망을 내어놓으니 법사님께서 낳아준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안 버리고 키워준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수없이 말씀해 주었지만 사실 마음에 와 닿지 않았었다. '엄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명심문으로 기도하면서도 엄마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놓지 못하고 있었는데, 열반당에서 스르르 그 미움과 원망이 녹아내렸다. 정말 이런 순간이 올 줄 몰랐다.

‘이것만으로도 제 인도 성지순례는 충분합니다. 부처님께 감사하고 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엄마에게 더 감사합니다. 엄마! 덕분에 부처님 법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원망하고 미워했던 마음 이곳에 다 묻고 가겠습니다. 이제는 저를 더 아끼고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그렇게 열반당에서 내내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나에게는 너무도 감동적이고 감사한 순간이었다.

원후봉밀터에서(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이병례 님)
▲ 원후봉밀터에서(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이병례 님)

전법 활동을 하면서 쉼을 찾다

성지순례를 하며 도반들을 통해 내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내 업식도 볼 수 있었다.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있는데도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하고, 더욱더 서로를 챙기는 모습에 뭉클함도 느꼈다. 혼자서는 못 갈 것 같은 이 길을 도반들과 함께하니 갈 수 있었다. '도반이 전부’임을 절실히 경험한 성지순례였다.

17호차 2조인 우리 조는 ‘모든 분별심은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는 명심문에 참으로 충실했고, ‘우리는 분별심을 모르는 조다’라는 우리끼리의 명심문을 더했기에, 도반들과 함께하는 순례 기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성지순례를 가기 전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생방송반 담당을 하면서 너무 힘들어 일반회원으로 내려가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법사님께서 “왜 일반회원으로 가서 쉼을 찾아요? 전법 활동하면서 쉼을 찾아야죠.” 라고 말씀하셔서 수긍이 갔다. 이 좋은 법을 전하는 전법 활동을 통해 쉼을 찾는 게 맞다는 생각이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더 견고해졌다.

이번에 모둠장 소임을 받았다. 흔쾌히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소임을 승낙하면서, 성지순례를 하며 나를 봤듯 이제는 모둠장 소임 속에서 나를 보자는 마음이다. 이렇게 내 행복을 위해 2차 만일도 한 걸음씩 나아가 보려 한다.

이병례님
▲ 이병례님

이 글은 <월간정토> 2023년 4월 호에 수록 된 강원경기동부지부 화성지회 이병례 님의 소감문입니다.

글_이병례(강원경기동부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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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43

0/200

오주희

전법을 하면서 쉬신다는 가르침 저도 새겨듣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24-01-21 17:30:36

정명주

감동적인 글 잘봤습니다.
저도 엄마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밑마음에 있습니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신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을 내겠습니다.

2024-01-19 10:07:27

보현

고맙습니다

2024-01-19 08: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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