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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봄 불교대학에 들어왔고, 모둠장으로 시작해 점점 중한 소임을 맡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소임은 2015년에 맡은 불교대학 팀장입니다. 저는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는 성격입니다. 학생들을 깨달음의 장1에 보내고, 입재 시키는 것이, 저 자신한테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다니고, 팀장 소임을 하면서 바뀌었습니다. 도반들이 수행하면서 좋아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니 기뻤습니다. 저 또한 도반들에게 모범이 되고자, 매일 새벽 5시 기도를 빠지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다양한 소임이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맡은 일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가장 바빴을 때는 총무 소임을 맡았을 때입니다. 화장실 갈 때도 휴대폰을 들고 다녔습니다. 그 바빴던 시간 덕분에 가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정토회에 다니면서도 남편과의 갈등,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불안함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정토회 봉사로 바쁘지 않았다면 그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시어머니 때문에 불안함이 많았습니다. 시어머니가 집에 올 때는 물론, 전화만 와도 불안함에 휩싸였습니다. 정토회 오프라인 법회가 열릴 당시에는 봉사한다고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습니다. 한날은 정일사 회향을 다녀왔는데 늦은 밤까지 시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는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음 굳게 먹고 시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의 힘듦과 불안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불안함 때문에 아들 또한 틱 현상으로 불안함을 호소하는 일과 남편과의 갈등을 숨김없이 말했습니다. 그 후론 시어머니도 저의 수행 활동에 잔소리하지 않았고 우리 집에 자주 오지 않았습니다. 자연히 불안한 마음도 차츰 줄어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시댁에 말할 수 없는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저는 시댁에서 장만해 준 집이 항상 부담이었습니다.
아들 하나 딸 셋 중에서 둘째로 저는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컨테이너 운전을 했는데 왠지 모르게, 그것이 부끄럽고 당당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이 남들 앞에 내세울 건 아니라고 눈치로 알았습니다. 그에 비해 시부모님은 모두 대학을 나왔습니다. 엘리트 가정인 시댁을 보며 저는 은근히 학력 콤플렉스를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이 운전기사인 것을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났다는 아버지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편은 "아버님이 새벽에 그곳을 왜 가셨나?"라고 물었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이 운전기사였다는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순간에도 아버지의 직업을 숨기기에 급급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도 사무치게 죄송합니다. 새벽 기도를 할 때 아버지에 대한 참회 기도를 잊지 않습니다. 지금은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신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저와 법당 시절부터 오래 같이 수행하고 있는 도반이 있습니다. 저보다 앞서 총무를 했고, 그 뒤를 이어 제가 소임을 맡은 인연이 있습니다. 서로 밝은 에너지를 공유하며 힘이 되는 소중한 도반입니다.
저는 걱정이 많은 편인데, 그 도반은 무엇을 하든지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냅니다. 언제나 그 도반을 보면서 ‘수행이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사회생활을 할 때 어떤 일을 해도 3년을 넘겨본 일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오래 못하고 연애를 해도 1년을 넘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 제가 정토회 들어와 천일결사 기도를 3년 했을 때 너무나 기뻤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업식을 깼다는 쾌감과 ‘나도 하면 오래 할 수 있구나!’라는 뿌듯함이 전율을 타고 올라왔습니다. 이것은 곧바로 저를 알아가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수행 이전에는 불평불만이 많았던 저였습니다. 뭐 잘난 것도 없는데 부모님에게 감사한 줄도 몰랐습니다. 남편과 연애할 때도 남편의 월급이 적다는 이유로 결혼을 망설였습니다. 결혼 후, 남편은 월급도 적은 데다가 늦게 왔습니다. 결혼 초에는 남편이 일찍 왔으면 하는 마음이 많아 늦게 귀가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정토회에 다니면서 늦게 오는 게 좋아졌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5시에 일어나는데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매일같이 새벽 출근을 합니다. ‘나는 집에서 편하게 기도만 하는데도 힘든데 남편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참 착한 사람입니다. 일하기 싫다든지, 불평불만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기도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날 퇴근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90도로 인사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수행이 나의 삶을 이렇게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저를 알아차리고 싫은 마음을 극복하며 모두에게 도움 되는 길로 나아가겠습니다.
굵직한 소임을 맡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흘러간다는 김상미 님입니다. ‘그동안 너무도 열심히 달려오셨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소탈하게 들려주는 마음에서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소임을 맡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수행할 거라 믿으며 응원을 보냅니다.
글_이태기 희망리포터(부산울산지부 해운대지회)
편집_이주현(부산울산지부 동래지회)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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