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용인지회
행복해지는 주문 "□ □"

처음 인터뷰를 맡아 설레는 마음으로 용인으로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저를 배려하는 주인공의 표정과 말투 덕택에 편한 마음으로 질문하고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한결같이 차분한 목소리로 고요하게 말해 준 최영자 님의 이야기입니다.

따뜻한 사랑속에 자란 시골 소녀

저는 시골 농부의 다섯 아이 중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동이 트기 전부터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이었고, 특히 아버지는 어떤 경우에도 자식들을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가족 모두 서로를 도우며 함께 사는 따뜻한 사랑 속에서 자랐습니다.

시골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이 일반적이었지만, 부모님은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아 저에게 대학 교육을 받도록 했습니다. 학비가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야간 대학에 다녔는데, 교수님의 추천으로 대학교 직원으로 일하며 학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2018년 성남시청. 행복학교 캠프 안내 봉사
▲ 2018년 성남시청. 행복학교 캠프 안내 봉사

낙오자가 되어가는 남편을 지켜보며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가족과 함께 사업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IMF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서 모든 재산을 잃었습니다. 상속받았던 부모님 재산마저 경매에 넘겨졌고, 결국 살고 있는 집만 남았습니다. 신용불량자가 된 남편은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좌절하며 주저앉았습니다. 저는 점점 낙오자가 되어가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괴로웠습니다.

남편은 술을 먹고 주사를 부리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직장 동료들이 결혼해서 "해외여행 간다." "휴가 간다."라고 하면, 저의 처지와 비교하며 괴로워했습니다. 남편이 다시 일어서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런 기대는 점차 무거운 현실에 짓눌렸습니다. 이혼도 생각했지만, 결혼도 제가 선택했으니, 아이들 하고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힘겹게 버텼습니다.

2012년 불교대학도반들과 강연봉사(오른쪽 두번째가 최영자 님)
▲ 2012년 불교대학도반들과 강연봉사(오른쪽 두번째가 최영자 님)

고개를 숙여 마음을 숙이다

불교대학을 다니던 여동생이 법륜스님의 《기도》라는 책을 건네며 "언니! 마지막 참회수행법만 따라 해봐" "매일 해보면 좋다."라고 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남편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시어머니를 미워했습니다. 술에 취한 남편의 행동을 보며 ‘시어머님이 아들을 잘못 가르쳤다’라고 생각하고, 시어머니에게 전화로 하소연했습니다. 친정 부모님에게는 걱정할까 말 못 하면서도, 남의 엄마인 시어머니에게는 원망의 소리를 했습니다.

책에 적힌 수행법을 3개월 동안 꾸준히 해보니, 시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이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스님의 '고개를 숙이면 마음도 숙인다’라는 말씀의 의미를 체감했습니다. 그리고 동생의 권유로 법륜스님의 법문을 들었고, 그 쉽고 명쾌한 가르침에 매료되어 막냇동생과 함께 2012년 남양주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법당이 없던 시절이라 남양주 군부대 안에 있는 법당을 빌려서 수업도 듣고 홍보활동도 했습니다.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불교대학 팀장을 2년간 했습니다. 퇴근 후에 밥 먹을 시간도 없었지만 즐겁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못할 것 같았던 일들도 차근차근하면서 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책임지고 하게 되면 능력이 향상된다는 걸 체험했습니다.

2018년 8월 용인시 박물관, 행복학교 광장 프로그램(뒷줄 맨 오른쪽 최영자 님)
▲ 2018년 8월 용인시 박물관, 행복학교 광장 프로그램(뒷줄 맨 오른쪽 최영자 님)

남편이 술 먹는데, 내가 왜 괴로울까?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중 ‘남편이 술을 먹는데 당신이 왜 괴롭냐?’라는 법문을 듣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예전엔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며 계속 전화하고, 전화 안 받으면 문자 남기고, 그러다 온갖 상상을 하면서 잠을 못 자고 불안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괴로울 때마다, ‘남편은 남편대로 술 먹는데 왜 집에 있는 사람이 괴롭냐?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닐 텐데’라고 생각하며 조금씩 집착을 내려놓았습니다. 속으로는 아직 분별심이 있었지만, 돌이켜 ‘술집에서 자든지 말든지, 죽지 않고 돌아온 것만도 다행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당시 〈나눔의 장1〉을 다녀왔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도 가정 상황도 변한 게 없는데, 제가 편안해지니 남편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는 남편을 보며 연민을 느끼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랐습니다. 꼭 그의 잘못만이 아니고, 저의 어리석음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며 서로 다름을 인정했습니다. 다른 집 남편 대하듯, 기대나 요구하지 않으니, 저 자신이 편안해졌습니다.

수행을 통해 질투와 옹졸함이 남을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더불어 사람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면서, 과거의 상처와 시댁과의 갈등도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그로 인해 더욱 자신감 있고 편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2018년 8월 행복광장프로그램(앞줄 맨 왼쪽 첫번째 최영자 님)
▲ 2018년 8월 행복광장프로그램(앞줄 맨 왼쪽 첫번째 최영자 님)

행복해지는 주문 ‘행복’

6년간 통일특별위원회에서 행복학교를 진행했습니다. 행복학교 초창기에는 홍보부터 장소 물색까지 봉사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일을 했습니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한 ‘전법을 향해 길을 떠나거라’라는 말을 새기며 행복학교를 진행했습니다. 엄청 성공적이진 않았어도, 힘든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 나가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체계화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더 다양한 경험과 다채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이 하나로 모여 진행 멘트까지 세팅되는 등, 행복학교가 계속 발전했습니다.

같은 일을 계속하면 점점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데, 행복학교에 오는 분들은 처음 오는 분들이기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4주 정도만 해도 참가한 학생들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행복학교를 진행하면 학생들도 행복하지만 제가 더 행복합니다. ‘'행복" 이라는 말을 계속 하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학교 진행하니까 행복할 거야!'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행복학교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과정속에서도 행복을 느꼈습니다.

2023년 5월 27일 정토사회문화회관. 부처님오신날 봉사(왼쪽 세번째 최영자 님)
▲ 2023년 5월 27일 정토사회문화회관. 부처님오신날 봉사(왼쪽 세번째 최영자 님)

또 다른 수행거리, 희귀병!

2019년 여름, '타카야스'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자기 혈관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으로, 현재 약물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일상에서는 큰 불편이 없지만, 무리하게 활동하면 피로감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당시 ‘이제껏 열심히 잘 산다고 살았는데 이런 게 왜 나한테 왔을까?’라고 원망하며 일주일을 울었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내려놓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기본은 하자’라고 생각하며 유지만 했습니다.

현재까지는 완치가 어려운 병이라, 병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정토회 활동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 만큼 했다'라고 생각해도, 많이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충실하지 못했던 시간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스님의 법문과 정토회를 통해 명확하게 배웠기에 걱정과 불안은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서원행자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건강 때문에 할 수 없으니 꾸준한 관리와 수행으로 이겨낼 뿐입니다. 여건이 안 되는데, 바라는 건 욕심임을 알고 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 수행을 통해 열등감과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었고, 봉사하면서 자긍심이 생겨 당당해졌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몸담을 수 있는 곳이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2차 만일을 온전하게 마치고, 대한민국이 평화통일이 되는 것을 보고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너무 큰 서원일까요?
정토회와 통일특별위원회 활동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은 다 했습니다. 이제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주어지는 소임을 충실히 하고 싶습니다.

2023년 8월 불교대학 홍보활동(왼쪽 세번째 최영자 님)
▲ 2023년 8월 불교대학 홍보활동(왼쪽 세번째 최영자 님)


가장 행복하길 원했던 가정에 괴로움이 닥쳤을 때, 가족을 책임지고 걸어가는 모습, 희귀병에 걸린 후에도 일상을 이어 나가는 모습이 제겐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고, 누군가 원망하고 싶은 순간이 와도 묵묵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사람은 볼수록 아름답습니다.

글_인기영 희망리포터(인천경기서부지부 광명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1.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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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석

항상 편안하게 모둠원들을 살펴주시는 최영자보살님의 수행이야기가 감동적입니다. 고맙습니다.

2024-05-22 10:01:23

이윤주(대정진)

희귀병 진단 받고도 일상을 이어 가시는 모습에 ,
분별심이 올라올때면 소임을 내려놓을까? 하는잠깐의 마음을 참회합니다.
나를 위한 일임을 다시금 새겨 꾸준히 소임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2023-11-17 16:12:07

명덕(섭)

행복해지는 주문 비기 잘 들었습니다 _()__()__()_

2023-11-03 07: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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