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성남지회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

2014년 불교대학 입학 후 불교대학 영상봉사를 시작으로 2015년 가을 불교대학 담당, 2017년부터 통일특별위원회에서 6년간 활동 후 2021년 수지지회 임시지회장을 했습니다. 현재는 강원경기동부지부 성남지회의 금곡모둠장인 신옥미 님을 온라인으로 만났습니다. 인터뷰 내내 편안하고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말하였습니다. 예민함과 까칠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는데 반전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2019년 부처님 오신날 마야부인(신옥미 님)
▲ 2019년 부처님 오신날 마야부인(신옥미 님)

꺼져버린 등대

저는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으로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성향의 아이였습니다. 다른 형제들에 비해 부모님은 제게 많이 허용적이었지만, 저는 부모님께 불만이 가장 많았습니다. 부모님은 넉넉하게 베풀며 사람 좋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가산을 일군 할머니는 며느리인 어머니를 못마땅해했습니다. 며느리가 재산을 빼돌렸다고 구박하며 맨날 “내쫓아라”라는 말을 거의 매일 했습니다. 저는 그런 불화의 환경이 싫었습니다.

'왜 나를 태어나게 했을까?, 살기 싫다'라는 불만이 늘 있었습니다. 저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어머니를 괴롭히는 가해자 할머니, 그 사이에서 무능한 아버지가 가장인 현실이 저의 불만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일방적으로 피해자인 어머니에게 집착했습니다.

결혼 2년 후 저의 멘토였던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환갑이 된 어느 날 새벽부터 말을 못하고 그 길로 중증의 뇌졸중 환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형제들에게도 정신적 기둥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쓰러진 후 등대의 불빛이 딱 꺼진 것처럼 저와 형제들 모두 마음의 방향을 잃고 갈 길을 몰라 방황했습니다.

남편은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분노 조절 장애가 있었습니다. 남편의 분노하는 모습에 저는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힘들었습니다. 남편의 사업도 어려웠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제가 약국을 하며 메꾸었습니다. 아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시부모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친정어머니가 할머니한테 잘하는 것을 보고 자란 저는 시어른들에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약국을 하면서도 반찬을 만들어 가져다드렸습니다. 큰 며느리로 시댁 식구들도 챙기며 저의 마음은 늘 우울했습니다. ‘지금 할 만큼 다 하고 다시는 사람으로 안 태어날 거야’라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아이들 또한 제가 원하는 만큼 되지 않았습니다.

2017년행복캠프스텝 봉사후 (맨오른쪽 신옥미님)
▲ 2017년행복캠프스텝 봉사후 (맨오른쪽 신옥미님)

삶의 방향을 전환한 즉문즉설

살면서 힘들어하는 저에게 언니가 인터넷에서 정토회를 검색해 보라고 권유하였습니다. 초파일이면 절에서 기도하는 어머니를 보고 저도 가끔 절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언니의 권유가 저를 정토회로 자연스럽게 이끌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글로 보는 즉문즉설을 읽었습니다. 어떤 법문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과거는 어떻든 현재의 괴로움은 나의 선택’이라는 말씀은 제게 깨달음과 함께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4년 봄 불교대학에 입학하면서 정토회와의 인연을 시작하였습니다.

기도의 공덕

불교대학의 ‘수행 맛보기’를 하며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100일을 하면 나를 알고 천일을 하면 업식이 바뀐다’는 지도법사님의 말씀을 듣고 시작한 108배 정진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만 9년이 넘고 이제 10년째 접어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새벽 5시 기도를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집을 나가기 전에 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새벽 3시에 하기도 하고 오후 2시에 하기도 했습니다. 가끔 108배가 하기 싫을 때면, 상반기 하반기 정일사 정진 기간 중 400배를 하고 나면 108배는 훨씬 수월했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한 공덕으로 남편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행복학교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의 상처를 보면서 남편의 상처도 보였습니다. 시부모님은 부부싸움이 잦았고, 그 갈등 속에서 자랐기에 어렸을 때부터 상처가 많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행복학교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도 받아 주면서 ‘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받아주는데 내 남편 마음 그거 하나 못 받아 주나?’라고 생각했습니다.

2023년 JTS 모금 활동 (오른쪽 신옥미님)
▲ 2023년 JTS 모금 활동 (오른쪽 신옥미님)

어느 날 남편 혼자 시부모님 댁에 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그의 얼굴에 짜증난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우리 남편 힘들었구나" 하니 남편도 "응, 힘들었어"라며 자신의 마음을 말했습니다. 부모님께 표현하지 못하고 참았던 마음을 꺼내 놓으며 남편은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은 남편도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늘 억울함이 있었는데 그 기저에는 착한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어리석음이 있었음을 <깨달음의 장>에서 알았습니다. 깨닫게 되니, 저의 오만함도 함께 완전히 깨졌습니다. 그때까지 괴로웠던 것은 모두 제가 지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아이 탓, 세상 탓, 남편 탓, 시어머니 탓을 했음을 확연히 알았습니다. 착한 여자에 대한 집착을 인정하고 나의 욕심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풀어지며 얼굴 표정도 확 달라졌습니다. 책을 읽으며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차이가 컸습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원망이 감사로

명상하며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에는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어린 제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에게서 아직 못 벗어난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린 나이에 힘들었겠구나. 너 힘들었지? 그런데 괜찮아 그래도 이만큼 왔잖아’라며 현재의 제가 과거의 상처받은 저를 알아주고 다독여주었습니다. 그렇게 명상으로 알아차리는 연습을 했습니다. 명상하며 체력도 좋아졌습니다. 지금까지 여름과 겨울 매번 명상수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부모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를 오래 했습니다. 기도하며 아버지도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했습니다. 아버지를 미워한 것도 제가 어리석었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일방적인 피해자였던 어머니 또한 욕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욕심으로 뇌졸중이 왔고 그것도 ‘인연 과보’였음을 알았습니다.

‘왜 나를 낳아서 이 험한 세상을 살게 했냐?’라는 원망도 놓았습니다. 부모님이 낳고 싶어 낳은 게 아니라 생겼으니 낳았고,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잘 키운 것도 알았습니다. 부모님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야가 생겼습니다. 원망했던 마음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바뀌고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음을 알았습니다. 감사 기도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했을 뿐 아니라 저의 자존감도 많이 올라갔습니다.

예전에는 실수하는 제가 너무 싫었습니다. 실수하고 틀리는 저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실수는 안 할 수 없고, 모든 걸 다 알 수도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읽고 제게 필요한 기도문을 찾아 기도문을 직접 만들어 정진했습니다. ‘틀리고, 모르고, 잘못하는 사람이 저입니다. 저는 그래도 잘살고 있습니다’라는 기도문으로 오랫동안 정진 했습니다. 그렇게 실수하는 저를 인정하니 저에 대해 관대해졌습니다. 남의 실수도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합니다. 실수를 했을 때 무엇 때문에 실수했는지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도 남에게도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요즘은 어떤 일이든 미리 단정 짓지 않고 그냥 합니다.

2017년 부처님오신날 내부안내 봉사후 (오른쪽 첫번째 신옥미 님)
▲ 2017년 부처님오신날 내부안내 봉사후 (오른쪽 첫번째 신옥미 님)

마음이 불안하고 우울할 때도 있습니다. ‘또 불안해하는구나’라고 알아차리고 ‘저는 편안합니다’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불안한 마음이 일어나는 횟수도 줄고 일어나더라도 '또 그러는구나'라고 알아차리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합니다. 남이 저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지금은 ‘그럴 수 있지. 당신의 업식으로 보니 그렇게 보였나 보다’라고 넘기면서 많이 단단해졌습니다.

계산할 수 없는 가치들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진행자와 함께 이끌어 준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많았습니다. 저도 작게나마 남을 돕고자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봉사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저에게 좋음을 알았습니다. 세상은 가치의 기준을 돈으로 계산하지만, 봉사활동을 통해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들이 많음을 알았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를 통해 배우고 얻은 것이 참 많습니다. 옷 한 벌을 30년 째 입고 계신 지도법사님의 기준으로 보면 저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먹고 자고 입는 부분에서 예전에는 갖고 싶은 충동을 참고 남의 눈치를 봤습니다. 지금은 욕구를 알아차리면 멈추고, 끌려가다가 다시 멈추고, 하면서 오히려 욕구로부터 더 자유로워지고 가벼워졌습니다. '정토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외제 차 타고 명품으로 저를 과시하고 인정받고 싶어서 가슴속은 썩어가고 있고 어쩌면 이혼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을 연습하면서 행복해졌습니다. 행복학교를 진행하며 우리 사회에 정신적으로 힘들고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봉사는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를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행복 연습을 할 때 "감사합니다. 행복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제가 하늘을 봐도 아름답다는 것을 모르고 오로지 일만 하고 생계에만 집중하고 살았습니다. 행복 연습을 하면서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어 행복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 행복해” 이런 말들을 일상으로 하며 더 행복해졌습니다.

2017년 행복한 대화 홍보활동 중
▲ 2017년 행복한 대화 홍보활동 중

참가자분들은 한 달 동안 참가하지만, 진행자인 우리는 1년, 2년 계속 합니다. 그래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사람은 어쩌면 진행자입니다. 행복학교 프로그램인 ‘남편 연구보고서’, ‘자식 연구보고서’를 하면서 그 혜택 또한 저에게로 돌아왔습니다. 한 달 연이어 또 한 달, 매달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화요일 목요일 행복학교 마음편, 월요일에는 관계편 또 심화편을 했습니다. 월화수목 금금금이라는 말까지 하며 행복학교를 진행했습니다. 온라인 초기에는 해외까지 했습니다. 새벽 6시부터 하루 종일 하다 보니 정말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정토회는 한 사람 한 사람 회원들의 노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도 시간이 허락되는 범위 내에서 욕심내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봉사하면서 수행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불법은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행은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자기를 바꾼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인데, 기도의 힘으로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신옥미 님이 알려주었습니다. 수행과 봉사를 하면서 얻게 된 가치는 그 어떤 것과 비교 할 수 없이 크다는 것도 다시 배웠습니다. 매번 기사를 쓸 때마다 다가오는 감동에 이 소임을 놓지 않고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어 감사합니다.

글_이재선 희망리포터 (서울제주지부 구로지회)
편집_최미영 (국제지부 아태지회)

전체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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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대정진)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2023-11-17 16:27:04

명덕(섭)

멋진 수행담 부럽습니다!!!
[겉은 이것저것으로 치장하고 속은 썩어 가는]것이 바로 저였습니다_()__()__()_

2023-11-05 08:05:14

조현서

신옥미님 감사합니다
경전 반때 선배와의 만남 시간 귀한 초대 손님 우러러 보고 가까이 하기 어려운 선배 도반 이셨어요^^
가볍게 그냥 따라 가보겠습니다.옆에 계셔서 감사합니다

2023-10-24 22: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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