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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교사셨고 평범한 가정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아버지가 시내에 있는 학교로 전근을 갔습니다. 그 바람에 가족 모두 시내로 나가고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저만 시골에 남겨졌습니다. 막내동생은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아서 시내로 데려 갔습니다. 부모님이 할머니를 시골에 혼자 두기가 그러니까 남자 하나 있어야 된다 하셔서 아들인 저를 할머니 곁에 남겨놓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할머니와 같이 살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할머니와 둘이서 고향을 지키느라 외로움을 탔었습니다.
어린시절 제 별명은 안방 영감이었습니다. 밖에 안 나가고 웬만하면 집에서 만화책 보고 놀고, 심심할 때는 어르신들 하는 화투가지고 놀기도 했습니다. 공부 좋아하고 책 좋아하는 얌전한 학생이었습니다. 안방 영감 스타일이다 보니까 공부를 또 열심히 했습니다. ‘공부해서 돈을 잘 벌어야겠다’ 아니면 ‘성공해야겠다’ 같은 생각은 없었고 그냥 학생이니까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한테서 크게 잔소리 들은 게 없습니다. 어린시절에는 크게 괴로웠던 일 없이 평탄하게 자랐습니다. 재수한 게 나름 어려운 고비였는데 지나고 보니 인생에 있어서 1년 재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직장생활이 인생의 굴곡이라면 굴곡이었습니다. 제가 직장에서 사장한테 견제 받는 입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업무상 사장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 보니 그 당시에 사장의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원래 회사가 서울 강남에 있었는데 2002년도에 창원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발령 받고 나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나가라는 압박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잘못한 거라면 창피해서라도 사표 쓰고 나가지만 부당하게 대우하는 걸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압력을 견디고 정년까지 근무하다 퇴직했습니다.
퇴직하고나서 동생한테 퇴직금을 날리고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 때 마음이 힘들어서 절을 찾아 다녔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불교 학생회도 다녔고 불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불법과 부처님을 믿고 있었지만 우리나라 불교에 문제점이 많다 생각해서 40대 중반까지 보시 한 번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정토회는 깨끗하다는 얘기를 언뜻 듣고 정토회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퇴직하고 너무 힘드니까 2,3일에 한 번씩 절에 다녔는데 어느 날 절에서 108배 중 부처님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정토회에 한 번 가보자라는 생각이 팍 들었습니다. 그렇게 누구 소개 없이 제 발로 법당을 찾아갔습니다. 마침 그 때가 3월 초라 불교 대학을 접수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접수하고 2020년에 창원 법당에서 불교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져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번갈아 가며 다녔습니다. 그 때 도반들 얼굴을 보다 안 보다 해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제가 만약 퇴직하고 바로 정토회를 만났으면 아마 활동을 많이 못했을 거 같습니다. 퇴직금 빚도 어느정도 정리하고나서 정토회를 만났기에 지금은 아주 행복한 상태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불교대학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봉림사지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실천장소 꼭지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2021년 8.15 광복절 행사 때 봉림사지 통일 기도를 처음 참석했습니다. 그 때 이후로 결심이 서서 매주 참석했는데 그러다 보니 선배 도반들로부터 소임을 받았습니다. 그 때가 정토회 들어온 지 2년 됐을 때입니다. 얼마 안됐는데 내가 이걸 맡아도 될까 하는 불안함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선배 도반들로부터 하다 보면 선배들이 도와줄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하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소임을 줬을 때는 여러사람이 보고 저 사람은 이 소임이 적합하다 판단이 섰기 때문에 시키는 것이라며 활동 기간이 1년 밖에 되든 안 되든 거기에 구애받지 말고 편안하게 받으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 대신 ‘예’하고 합니다 라는 말씀대로 ‘예’하고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혹시 잘 못하면 얘기를 해 주실 거고 거기에 대해서 부담 갖거나 미안해하거나 창피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선배 도반들이 항상 저한테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내가 몇 년 더 했을 뿐이지 사실 선배 후배 이런 거 없다. 같은 도반일 뿐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편안하게 맡아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도반들과 함께 봉림사지에서 300배도 하고 명상도 하고 빈 터에다가 밭도 일구고 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봉림사지는 특별히 잘 가꾸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곳이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곳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서기 372년입니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 불교가 처음 들어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선 서기 48년에 허황후가 인도에서 가야로 왔을 때 불교가 전해졌을 거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허황후와 함께 가야로 온 장유화상이 봉림사지에 와서 절을 지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지금 유물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에서 주관해서 발굴 작업을 하고 유물 조사를 하면 저희는 옆에서 보조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가야시대 유물이 발굴된다면 우리나라 불교 역사가 300년이나 앞당겨지게 되니 얼마나 큰 일입니까? 아직 유물이 언제 나올지 모르고 안 나오면 언제까지 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매주 일요일마다 도반들과 함께 기도하고 봉림사지를 잘 가꿔나가고 있습니다.
봉림사지 꼭지를 맡으면서 느낀 것은 수행 보시 봉사 중에 수행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수행이 최고다’라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 한 사람 한 사람 힘들어서 그만두는 걸 보면 결국 수행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끝까지 남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도 하루를 빼먹으면 자꾸 빠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학교 운동장에 가서 걷기를 하는데 비가 와서 하루 빠집니다. 그럼 다음에 또 쉽게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이 최고라는 말을 수행은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혹시 시간이 안돼서 보시나 봉사를 할 형편은 안되더라도 수행이라도 붙잡고 있으면 언젠가 인연이 될 때 보시, 봉사도 또 다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행을 안 하면 보시, 봉사할 인연도 없어지게 됩니다. 저는 불교대학 들어와서 한 달 만에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입재식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정토회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서 기도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믿는 마음이 깊다기보다 그냥 하기로 하면 하는 거라서 합니다. 수행과제를 정한 것도 아니고 때로는 그냥 운동으로 하는 건가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그냥 꾸준하게 하는 게 최고다 하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부처님 법을 제대로 만났는데 이거를 놓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저는 혜택을 많이 받고 살았습니다. 옛날에 돈이 없어서 학교도 못 가는 시절에 좋은 어머니, 아버지 만나서 대학도 갔고 혜택을 받고 살았는데 이제는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것이지 특별히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내가 할 일이니까 하자 그런 마음입니다.
제 나이가 65세인데 봉림사지에 저와 비슷한 나이대인 분들이 오면 참 반갑습니다. 그분들을 보면 “우리 60살 넘었으니까 살 만큼 살았잖아. 이제 좋은 일 하고 살자”라고 토닥여주고 싶습니다. 나이도 육십이 넘었으니 이제는 진짜 좋은 일, 뜻깊은 일을 하고 싶은데 정토회에서 그런 일들이 만들어지니까 좋습니다. 가능하다면 북한이나 인도에서도 봉사하고 싶습니다. 제가 건강 체질인데다 젊을 때부터 단전호흡 등 운동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진짜 시켜만 주신다면 거기서 봉사하다 죽어도 괜찮다는 마음입니다. 아쉬운 점은 백일출가를 하고 싶은데 나이제한이 걸려서 참여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나이제한을 둔 이유가 나름대로 있겠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입니다. 앞으로 정토회에서 죽을 때까지 봉사하다 살고 싶습니다. 그게 꿈이지 뭐 다른 건 없습니다.
저는 ‘기여’라는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마침 인터뷰 도중에 이 단어가 나오길래 귀가 쫑긋했습니다. “그냥 연금 받고 살아가는 것보다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종필 님이 흘러가듯이 얘기를 했지만 저에게는 그 말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나’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하는 이종필 님의 마음이 깊이 느껴졌습니다. 열정적으로 봉사를 하며 몸소 기여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이종필 님, 언젠가는 인도에서 소식 듣길 바랍니다.
글_조은아(청년지회)
편집_서지영(수원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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