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첫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주일에 2번 영어 과외를 시켰습니다. 매일 저녁 영어책에 나오는 문장과 노래를 공부시켰고, 아이가 잘 따라오지 않으면, 많이 혼내고, 화를 내었습니다. 때로는 때리기도 했습니다. 첫째 아이 18개월부터 아이들 공부에 관심이 많았고, 영재로 키우고 싶은 마음에 공원과 도서관이 있는 곳으로 이사했습니다. 아이를 저로 삼고, 제가 못한 꿈을 이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첫째의 희생이 컸습니다.
남편이 해외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세 아이를 거의 홀로 키우고 있었습니다. 키우면서 아이들은 마땅히 지켜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돼.’ ‘저건 저렇게 해야 해.’라는 도덕적 관념이 강했습니다. 이 모든 걸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읽었던 많은 육아서적을 통해 쌓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제가 세운 계획과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기대가 크니 화를 내었고, 화를 내는 저 자신을 못마땅해하고 자책했습니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우울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까’라며 제가 문제라는 생각은 못 하고 아이가 문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교대학 다니기 전에 《엄마수업》책을 먼저 읽었습니다. ‘스님이 이런 책도 다 내시네?’ 하면서 ‘아이가 세 살 될 때까지 엄마가 돌봐야된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러다 아파트 앞에 불교대학 모집광고를 보았는데 법륜스님이 직접 오셔서 가르치는 줄 알았습니다. 아쉽게 영상 강의여서 큰 기대를 안했지만 법문이 너무 좋았습니다.
2013년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아이에게 강요한 기준이 다 제가 만든 기준, 제 틀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틀 안에 살면서 저와 가족들 모두 행복하지 않았음에도, 제 기준을 강요했음을 알았습니다. 아마 불교대학을 만나지 않았다면 계속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제 문제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이때까지 너희들에게 잘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라고 했더니, 오히려 첫째 아이는 “엄마가 잘못한 것 맞아.”라고 하면서 울기도 하고, 저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마음이 바뀌면 아이들이 바로 바뀔 줄 알았는데, 한참이나 쌓였던 감정을 풀어냈습니다. 조금씩 좋아졌지만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엄마를 탓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과거를 서로 웃으면서 얘기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불교대학 이후 아이들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갑자기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잘해 드리지 못했다는 마음에 우울증이 왔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홀로 계신 어머니에 대한 걱정, 이런 상황에 남편은 해외에 있어 매일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첫째 아이는 아주 불안했는지 점심시간마다 밥도 안 먹고 엄마를 확인하러 집에 오곤 했습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저를 불러 ‘아이가 정말 위험해요. 어머니가 힘든 것은 잘 알겠지만, 아이가 정말 위험한 거 같아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제가 법륜스님을 만난 이후 아이가 많이 차분해지며 밝아졌는데 다시 달라졌습니다. 학교에서 불안심리가 많이 보이고 아이가 폭군으로 변해간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정토회 봉사, 직장, 기도, 육아 모든 것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서 몇 달이나 울며 우울에 빠져있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아이들이 많이 불안해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선생님의 말에 저만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고, 기도를 열심히 하며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좋은 쪽으로 바뀌면 아이가 좋아지고, 제가 안 좋게 바뀌면 아이가 다시 나빠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정토회가 선물 같았습니다. 도반들과 나누기할 때 도반들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알아주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정토회에 발을 반만 담그고 '내 일과 내 가족'이 더 우선이었습니다. 그러나 힘들 때 곁에 있어 주는 도반, 1년 차이로 돌아가신 양가 아버님의 장례식에 멀리까지 찾아와 준 도반들을 보며 큰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런 도반들을 보며 이곳에서 평생 은혜를 갚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봉사에 발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경기광주지회 모둠장이지만, 지난 6년간 행복학교1 특별위원회 활동을 하였습니다. 행복실천으로 노인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영양꾸러미2를 전달하는 활동을 하면서 함께 잘 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에 도움을 주는 일을 통해 스스로 저를 괜찮은 사람,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정토회 활동에는 그런 마음을 느낄 기회가 참 많습니다.
사각지대 어르신을 찾는 활동으로 퇴근후에 미용실, 철물점, 어린이집, 식당에 가서 대상자가 없는지 직접 수소문하고, 폐지 줍는 어르신을 따라가 여쭤보기도 하였습니다. ‘없으면 말고’가 아니라 ‘발굴될 때까지 적극적으로’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과정에서 고생할지 몰라도 꾸러미를 전달할 때가 참 보람됩니다.
꾸러미를 전달하고 싶은데 1년 동안 저를 의심하던 어르신이 있었습니다.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에 설득하여도 의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1년 반 만에 꾸러미를 전달했을 때 어르신께서 감동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도움 준다고 하고는 사기 치는 경우만 겪어서 사람을 잘 믿지 못했는데, 이제 사람을 믿어도 되겠다.”고 하신 말씀에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을 변화시키는구나!’ 느꼈습니다. 같은 동네 사는 이 어르신은 1년 동안 저를 믿어도 되는지 꾸준히 지켜보다 꾸러미를 받기로 결정하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는 일이 시간은 걸릴지라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런 경험이 참 따뜻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기 전 저는 남한테 인정받으려 하고, 남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이른바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인정해 줘야 제 가치가 살아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열등감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잘 보이려고, 인정받으려고 했는데 지금 저는 있는 그대로 제가 참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도 변화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잘 안 가려 하고, 조퇴하려 하고, 지각하면 예전에는 무척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돼!’라며 아이를 탓하거나 비난했습니다. 3년 전 문득 제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에 아이가 “엄마 왜 날 비난해?”라고 묻는 말이 화두처럼 다가왔습니다. 아이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 아직 아이에게 상처가 있구나!'. 정토회 활동하면서 아이를 존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이 불편한 마음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렇게 행동하는 게 내 아이’라고 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예전에는 시선이 밖으로 향하여 남 탓하거나 분별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제 생각과 다른 것을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기도하며 제 마음을 알아차리고, 상대를 이해하려 합니다. 이해할 수 있으니, 갈등이 줄었습니다. 아직 노력하는 모습을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이고자 합니다.
수행은 필수입니다. 10년째 수행 중입니다. 안 한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절하고 기도하는 자체에 깨어있습니다. 저만 알고 살다가 함께 더불어 사는 게 굉장히 따뜻하고 보람됩니다. 봉사 활동을 하면서 이렇게 살아야 되겠구나! 느꼈습니다. 애가 셋이니 봉사해야 한다는 법사님 말씀이 와닿았습니다. 나만 잘 살려 하지 않고 이웃과 함께 사는 마음과 자세가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봉사하며 경험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니 아이들도 점점 봉사에 관심을 보입니다. 엄마가 바로 사는 것이 아이들도 바로 사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엄마의 가치관, 행동을 아이들이 따라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걱정되는 일이 올라올 때 나를 믿고, 아이들을 믿고, 도반과 법륜스님을 믿고 해보자는 믿음을 냅니다.
김은주 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으니 훌쩍 인터뷰를 마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저도 두 아이가 있고, 아이들이 어릴 때 때리고 혼냈던 과보가 있습니다. 결국 아이는 엄마의 등을 보며 자란다는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크게 깨달은 인터뷰였습니다. 수행과 봉사를 삶 속에서 실천하고,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저도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참 좋은 소임을 맡은 덕에 직접 만나 생생한 수행담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도 봉사할 수 있는 지금이 참 감사합니다.
글_허수정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지부 경기광주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전체댓글 33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경기광주지회’의 다른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