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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유방암에 걸렸습니다. 법륜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병을 발견했으니 천만다행이구나 여기며 투병 기간 내내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니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봉사를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정토회에 전화해 봉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담당자가 불교대학에 다니면 하고 싶은 봉사를 다 할 수 있다고 해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불교대학 수업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채 경계심이 가득했고, ‘내가 봉사하러 왔지 불교를 배우러 왔나’하는 생각이 강하게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강한 아상을 가지고 정토회에 첫발을 들이밀었습니다.
저는 경상남도 통영의 욕지도라는 섬에서 딸만 여섯인 집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여객선 기관장이었던 아버지는 어느 날 열이 급격히 오르면서 병원 갈 틈도 없이 갑자기 폐렴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저는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농사짓던 어머니를 도와 일꾼처럼 농사를 지었습니다. 학교 갔다 오면 어머니가 일을 시켰고, 저는 그게 너무 싫고 힘들고 화가 났습니다. 마늘을 뽑으라거나 녹두를 따라고 하면 되려 지근지근 밟아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야 저한테 일을 안 시킬 것 같았고, 그래서 맞기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때의 습관이 남아 “하기 싫은데요? 안 해요!”가 지금도 입에 붙어 있습니다.
결혼하고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매일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보면서 ‘나도 남편과 똑같이 돈 버는데 남편은 집안일도 안 하고 나만 다 한다, 나만 손해 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남편이 싫었습니다. 저만 열심히 살고 열심히 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족과 놀러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남편과 싸우기라도 하면 목적지에 도착해도 화가 풀릴 때까지 차에서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서 놀아주었습니다. 제가 독재하는 사람이니 아이들과의 관계도 안 좋았습니다. 부부싸움을 하면 아이들이 울고 있어도 그냥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둘째 아이는 불안의 강도가 높았습니다. 손톱을 물어뜯어 잘라줄 손톱이 없었고, 손톱은 반 토막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좌충우돌하다 결혼 10년 차에 들어서고 아이들도 초등학생이 되니 조금 편안해지면서 이제 좀 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유방암에 걸렸습니다. 유방암 3기에 종양 크기가 10cm라니 너무 놀랐습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몇 살인데? 내가 암이라니?’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세월이 허망했습니다. 삶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고, 그냥 차라리 빨리 죽고 싶었습니다. 남편 역시 저의 병으로 좌절했습니다. 남편은 저를 부둥켜안으며 오열했고, 저보다 더 힘들어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그때 보였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멀쩡한 줄 알았습니다. 제가 아무리 화를 내도 화를 내기는커녕 꿈쩍도 안하는 남편에 더 화가 났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프다는 걸 안 순간 꺼이꺼이 우는 남편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치료받고 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전에 가끔 듣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매일 찾아 듣기 시작했습니다. ‘병을 발견했으니 다행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어 감사합니다, 머리카락이 자라니 감사합니다.’ 매일 매일 감사할 이유를 찾아 하루에 천 번도 넘게 감사합니다를 되뇌이며 투병 기간을 이겨냈습니다.
수술하고 퇴원하는 날 남편이 “당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죽다 살아난 기념으로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스님 법문 덕분에 투병 기간 동안 우울한 대신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지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저에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했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정토회에서 많은 봉사를 걸림없이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전에 저는 회사에 봉사하러 오는 분들을 볼 때면 ‘왜 아까운 시간을 나에게 사용하지 않고 남에게 봉사하며 지낼까? 나는 절대로 봉사를 안 해야지’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닐 때까지도 불량학생이었던 저는 <깨달음의 장1> 이후 새벽 정진을 시작하면서 드디어 제 ‘꼬라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정말 내 마음대로 살았구나. 아이들과 남편은 피해자구나. 남편이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구나. 그렇게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또 계속 정진하다 보니 전에는 매일 화를 냈다면 점점 3일에 한 번, 5일에 한 번 꼴로 화내는 횟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가 이렇게 좋아졌으니 너네 엄마도 정토회에 보내라'고 할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덕분에 저는 새벽 정진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걸 놓으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걸 아니까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매일 매일 수행 정진합니다. 바보같이 화내고 짜증내고 남편을 미워하며 원망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숙입니다.
저는 제가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밖에서는 유쾌하고 일 잘하고 좋은 사람인데, 집에서는 남편이 원인을 제공하기에 화를 낼 수밖에 없다고 오래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정진하면서 사실을 보니 남편은 제게 너무나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방에 양말을 벗어 아무 데나 놓아도 되지만, 남편이 그런 행동을 하면 저는 그 꼴을 보지 못하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나는 다 괜찮아, 그런데 남편과 아이들은 안 돼!' 제가 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JTS 안산 다문화센터에서 ‘고려인'(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에 살고 있는 한국인 교포를 통틀어 일컫는 말)의 병원 진료 봉사를 할 때였습니다. 고려인이 수원에서 병원진료 받는 걸 도와주고 다시 안산까지 함께 돌아오는 봉사였습니다. 한 번은 당시 찜질방에 거주하던 한 고려인이 종일 식사를 못 한 채로 병원 진료를 받은 후 다문화센터로 돌아오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피곤하고 또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그에게 간단한 간식을 챙겨주면서 찜질방에 가 식사를 하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병원검사로 종일 굶었던 그는 어떻게 찜질방에서 밥을 먹느냐고 버럭 화를 내었습니다.
그때 아차 싶었습니다. 제가 힘들고 지친 것만 생각하고, 그의 배고픔과 힘든 처지를 고려하지 못했음을, 습관대로 타인을 고려하지 못하고 자신의 힘듦만 보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사과하고 숙이면서 식사를 마치고 찜질방에 가도록 했습니다. 그의 화를 풀기 위해 숙이는 저를 보면서 ‘왜 남편에게는 이렇게 숙이지 못하고 뻣뻣하게 굴까?’ 싶었습니다. '아, 내가 저분에게는 자비심이 있지만 남편에게는 자비심과 감사가 없구나.' 제가 남편 덕분에 경제적 어려움 없이 정토회 활동도 편하게 하면서 살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가 화를 내준 덕분에 이기적이고 뻣뻣했던 제가 남편에게 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부부싸움을 안 하고 제가 집을 나가지 않으니 둘째 아이의 불안도 사라졌습니다. 아이의 열 손가락에 손톱이 다 있고, 잘라줄 손톱이 생겼습니다. 깎아줄 손톱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또 지금은 친구보다 정토회 도반을 만나 마음을 나누는 게 좋습니다. 무엇보다 불교대학 진행자 소임을 하면서 학생들이 변화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게 뿌듯합니다. 저의 가정이 부처님 법을 만나 살아나듯이 다른 이에게도 부처님 법이 전해져 그들의 가정이 살아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니 참 좋습니다. 제가 체험했으니,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임을 확신합니다.
희망리포터가 되고 처음 써보는 기사가 부담되었나 봅니다. 리포터 소임에서 '잘린다'고 생각하고 가볍게 써보라는 법사님의 조언에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제 능력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화상 인터뷰 전에 수원 JTS 거리모금 활동에서 박성아 님을 먼저 만났습니다.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모습 뒤에 보물 같은 이야기가 숨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인터뷰하는 것이 저에게는 긴장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불교대학 진행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박성아 님 덕분에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생각의 관점도 바뀌었습니다. 솔직하게 이야기 나눠주신 박성아님에게 감사합니다.
글_정수경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지부 화성지회)
편집_이혜수(서울제주지부 성동지회)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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