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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한때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았던 종교단체의 독실한 신자입니다. 결혼 초에는 화목했지만, 15년 전 아내가 이 종교를 믿으면서부터 많은 불화가 생겼습니다. 저는 가정에 마음을 못 두고 집 밖으로 나돌았습니다. 퇴근 후에는 마라톤, 배드민턴, 탁구 등 운동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주말에는 산악회에서 이 산 저 산으로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저는 건강한 체질이 아니어서 무리한 운동으로 허리를 다쳐 더 이상 운동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집에 있는 것은 싫어서 퇴근 후에 공원을 산책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그 후 3년 동안 오직 즉문즉설만 들었습니다. 즉문즉설을 들을 때면 참으로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하지만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종교활동을 하느라 집에 없고, 아이들은 어려서 집을 난장판으로 어질러 놓기 일쑤였습니다. 그 당시 너무 억울하고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화가 많이 났습니다. 이혼도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아이들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법륜스님의 불교대학 포스터가 눈에 띄었습니다. 한번 다녀볼까 생각했는데, 의심병이 있어 어떤 단체인지도 모른 채 1년을 다닐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프로그램은 없을까?’ 하고 정토회로 연락하니 “수행법회에 한번 참여해 보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찾은 날이 마침 백중1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종교적 경험이 전혀 없는 무신론자였던 저는 ‘나하고는 안 맞다.’, ‘정토회도 기존 불교와 다르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며 불교대학 입학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2~3년간 스님의 즉문즉설 듣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즉문즉설을 들으면서 나름대로 내 마음을 다스린다는 생각도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꾹꾹 눌려놓았던 괴로운 마음은 점점 포화 상태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정토회 홈페이지에서 불교대학 이외 어떤 다른 프로그램이 있는지 찾아봤습니다. 프로그램마다 사전 조건이 있었는데, 당시 <깨달음의 장2>은 별다른 조건 없이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어 아무것도 모르고 신청했습니다. 평소 타이핑 속도가 상당히 빠르지만, <깨달음의 장> 신청은 두 번 탈락하고, 세 번째에 간신히 신청되어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친한 직장동료가 4박 5일 동안 어떤 프로그램인지 물었을 때, “몰라. 그냥 한번 가 보려고.” 대답하며 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제 심정은 한마디로 ‘답답함’이었습니다.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2017년 8월 초<깨달음의 장>에 갔습니다. 태어나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후 ‘마음공부를 해야겠다.’라고 다짐하고 스님 책 10권을 사서 일주일 안에 독파했습니다. 그리고 좀 더 공부해 보고자 2017년 9월 드디어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을 마치고 경전대학에 다니면서 경전대학 담당 소임을 맡았습니다. 이후 모둠장, 불교대학 운영자, 그리고 지원 담당을 하면서 개발 업무를 함께 시작했습니다. 저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입니다. 전문개발자는 아니지만, 취미로 프로그래밍을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활동을 할 무렵, 정기법회 담당 소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지회 회원들이 편리하게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법회 시스템을 개발해 보자는 의견에 “제가 한번 해 보겠다.”고 하여 시스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저는 지원 담당 소임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지원 담당이 회의 의결도 많이 하니, 지원 담당자를 위한 편리한 회의 시스템도 개발했습니다. 후에 이 ‘회의 의결 시스템’은 대전충청지부에서 사용되었고, 이를 계기로 저는 온라인 불사위원회 소속 플랫폼 개발실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취미로 하던 프로그래밍이 정토회에서 잘 쓰일 수 있어 무척 보람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저는 지원 담당 업무를 그만두고 시스템 팀에 본격적으로 합류하여 마이정토에서 개발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시스템 팀에서 가장 보람된 경험은 2022년 1차 만일결사3 회향을 준비하면서 일만불교대학 생방송반 개발과 운영이었습니다. 기본반은 기존 시스템을 사용하면 되지만, 생방송반은 스님의 직강으로 진행되는데 정작 생방송반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입학을 한 달여 앞둔 상황에서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 긴급하게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개발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봉사자가 갑자기 손가락이 부러져 더 이상 개발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개발실은 그야말로 멘붕이었습니다. 저는 전문개발자도 아니고 취미로 하고 있어 섣불리 개발업무를 책임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가 “한번 해보겠다.”라고 했습니다. 거의 모든 일을 제쳐 두고 3주간 꼬박 개발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2주간의 테스트를 거쳐 드디어 생방송반이 운영되었습니다. 작은 오류들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일만불교대학의 생방송반이 운영되어 정말 벅차고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개발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2022년 9월 경전대학 수업사이트 접속이 잘 안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한 달 정도 그런 상황이 이어졌고, 원인을 몰라 애를 먹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접속 오류를 겪는 상황이니, 수업 시작 30분 전부터 가슴이 막 두근거리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 개발팀에서 교육 중이던 한 봉사자가 “이게 원인이 아닐까?” 하고 의견을 냈습니다. 그 의견대로 고쳐보니 딱!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막 개발을 배우는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여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개발 일을 할수록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고, ‘문제가 생기면 결국엔 해결될 수 있다.’라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개발 초기 때보다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신도가 원하면 자정에도 일대일 교육을 할 정도로 헌신적입니다. 정토회에 오기 전, 아내의 믿음이 제 기준으로는 전혀 납득이 안 되어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님 법문을 꾸준히 듣다 보니 ‘아내가 어떤 종교를 믿고, 또 많은 사람이 그 종교를 믿는다면 아내의 믿음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5년 전 아내가 다른 종교에 빠져 가정을 소홀히 할 때 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가정이 파탄 나지도 않았고 유지되고 있는 걸 보면 ‘그때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니 ‘그때 그 일은 세상이 무너질 일이 아니었고, 실은 별일 아니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누나가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그 이후 저도 세상을 비관적이고 우울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생겼고, 대학 때도 우울감 때문에 불면증이 생겨 약도 먹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우울감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가끔 우울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땐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그리고 아침기도를 하면서 불안한 감정이나 부정적인 생각들을 알아차리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내와 화목하지 못하고, 화가 나서 아내에게 심한 말도 많이 하고 격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상처와 불안감을 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그때 좀 더 현명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지금 스물네 살인 큰딸이 우울증이 좀 있습니다. 그런 딸이 최근 1년 정도 잘 지내는 듯했는데, 다시 우울해진다며 엊그제 제 곁에 와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딸 어깨를 토닥거리며 “걱정하지 마라. 다 괜찮을 거다.”라고 위로했습니다. 이렇게 딸의 두려운 마음을 헤아려 주고 마음껏 울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둘째는 2년 전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워낙 게임을 좋아해서 자퇴 후 6개월 정도 주야장천 게임만 했습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 갑자기 양자물리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양자역학을 알기 위해 미적분을 공부하겠다고 하여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런데 수학 공부의 기본이 안 되어 있어 저와 중학교 2학년 수학 문제를 일주일에 서너 번 함께 풀고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수학을 무척 좋아했는데, 아이 덕분에 수학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아이가 학교를 자퇴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난 학교 밖 시스템이 있기는 하지만, 잘 운영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조금 기다려 주고, 필요한 부분을 도와주니 아이가 상황을 극복하고 잘 자라주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저는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고, 예전에는 공부를 못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옛날과 같은 생각이라면 아이들과 의절했을지도 모릅니다. (웃음) 그런데 스님께서 ‘사람을 죽이고 왔더라도 자식을 감싸주는 사람이 부모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예전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들의 방황이나 어려움도 이제는 편안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아내가 종교활동에 빠져 있을 때 ‘돈 버는 내가 왜 가사 일까지 해?’라며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 밥 챙겨주면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으니 억울한 마음이 감사함으로 바뀌고 행복을 느낍니다. 참으로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정토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아내와 아이들을 비난하고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저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함께 공부도 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다만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실 저는 정토회 활동을 제가 좋아서 합니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제 문제를 많이 해결했고, 아내와 아이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직장동료까지 폭넓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 참 편해졌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제게 ‘얼굴이 매우 편안해 보인다.’라고 합니다. 이 모두 정토회 덕분입니다.
아내는 저의 종교활동을 인정합니다. 제가 활동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잔소리도 안 합니다. 주변에 활동하고 싶어도 부인 또는 남편의 반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저를 부러워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아내의 종교활동을 인정합니다. 얼마 전 아내가 자신의 생일선물로 성경을 한번 읽어달라고 하여 일독(一讀) 선물도 하고, 아내의 종교단체 사람들과 몇 달간 공부도 했습니다. 이렇게 관용과 포용으로 상대방을 인정하면, ‘결국엔 조화롭게 화합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 어른들은 “부부가 종교가 다르면 집안 망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럼, 저와 아내는 “우리 가정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가정입니다.”라고 농담처럼 가볍게 말합니다.
저의 이런 모든 경험이 정토회에 감사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감사함을 회향하는 마음으로 어렵고 힘든 소임도 기꺼이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마이정토’는 기존 개발자들이 몇 명 있었지만, 지금은 저 혼자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정토회에서 핵심적 인력이 필요한 곳이 개발실인데, 일반 봉사자들은 프로그램 언어를 새로 배워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함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정토회 시스템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IT 관련 봉사자가 더욱 필요합니다. 마이정토에 많은 봉사자가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안영섭 님은 시스템 팀에는 나보다 더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인터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로지 혼자서 일만불교대학 생방송반 시스템을 개발, 운영한 분이 인터뷰 대상자가 될 자격이 없다니!’ 그 말이 어불성설인 것 같습니다. 못 만났으면 너무나 아쉬웠을 안영섭 님과의 인터뷰를 끝내며, 제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가족 안에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신 모습과 감사의 마음을 봉사로 회향하는 정토행자의 모습에서 저 역시 분발하는 마음을 내어 봅니다.
글_박선희(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편집_김윤희(강원경기동부지부 용인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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