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천안지회
편안한 흔들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천천히 느리게 사는 삶을 꿈꾸던 권유숙 님을 온라인으로 만났습니다. 2015년 봄 불교대학에 입학해 가을에는 학생이자 불교대학 담당으로 일찍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천안정토회 불교대학 팀장, 정토회총무, 천안지회장 소임을 거쳐 지금은 대전충청지부 지부장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권유숙 님은 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소임을 어떤 마음으로 맡아 왔을까요? 권유숙 님의 수행, 보시, 봉사의 삶, 그 문을 살짝 열어봅니다.

나는 착한 사람이라서

저는 정토회에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2011년에 〈깨달음의 장1〉에 가면서 처음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제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힘들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고 힘듦이 조금 해결되어, 법륜스님의 전국 100강을 들으러 이곳저곳 찾아다녔습니다. 제가 숨통 트이는 걸 본 남편도 일 년 뒤에 〈깨달음의 장〉에 갔습니다. 남편은 바로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에서 배움을 이어갔고, 저는 남편을 지켜보며 정토회 행사에만 따라갔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 2년 있다가 정토회에 왔습니다.

불교대학에서 실천적 불교 사상 제1강을 듣는데 확 깨달아졌습니다. ‘내가 양동이를 썼구나! 양동이 안에서 두드렸구나!’어머니 살아계셨을 때 가졌던 힘듦과 동서와의 갈등이 정말 확 깨졌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깨달았다면, 불교대학에서는 법문듣고 깨달았습니다. 〈나눔의 장2〉에 갔을 때 ‘어머니가 나를 괴롭힌 것도 아닌데 내가 왜 힘들었지?’ 돌아보았습니다. 다 지나고 보니 제가 시어머니를 바꾸려고 했고,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돌이켜보니 사실은 어머니가 제 뜻대로 되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퇴근해 돌아올 때가 되면 어머니는 집에 딱 들어와 있어야 하고, 밥상을 차려놓으면 딱 들어와서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를 제가 다 문제 삼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정말 착한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내가 편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어머니를 위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인도 성지순례에서 권유숙 님
▲ 인도 성지순례에서 권유숙 님

천천히 게으르게 살고 싶은 꿈

아침에 눈 뜨면 출근 준비로 시작해서 아이 셋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고, 출근하면 집은 다 잊고 일에 집중하다가, 퇴근하는 차에 딱 타는 순간부터 다시 직장 일은 싹 잊고 아이들을 데리러 가고 집에 와서 저녁 준비를 하고……. 정신없이 기계처럼 사는 데 지쳤습니다. 정년을 13년 앞두고 이른 퇴직을 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처럼 정말 천천히 게으르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기다려 주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2015년에 봄 불교대학에 입학했는데 그때는 불교대학이 1년 과정이었습니다. 불교대학 한 학기 마칠 즈음에 제가 퇴직했습니다. 불교대학을 아직 반밖에 안 다닌 저에게 퇴임 바로 전날 가을 불교대 담당 소임이 주어졌습니다. ‘내가 얼마나 천천히 게으르게 살고 싶었는데! 아직 불교대학 졸업도 안 했는데! 퇴직과 동시에 소임을 주다니!’ 분별심이 엄청났습니다. 그런데도 못 도망가는 저를 보았습니다.

소임은 다음 소임으로 이어질수록 더 많은 시간과 역할을 요구하며 눈덩이처럼 점점 커졌습니다. 갈수록 큰 소임을 받는데, 요술 같이 제 마음은 갈수록 더 가벼워졌습니다. 지회장 소임 하면서 제일 감사한 일은 '천천히 게으르게 살고 싶다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시절 쉬면서 천천히 살 기회가 있었던들 그 욕구가 이렇게 말끔히 해결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욕구라는 것이 채워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서원행자 수계식에서 (왼쪽 권유숙 님)
▲ 서원행자 수계식에서 (왼쪽 권유숙 님)

명상=쉼

2020년 제10차 천안지회 지회장 소임을 받고 나서 곧이어 코로나 보살이 찾아왔습니다. 봄 불교대학이 온라인 수업과 법당 오프라인 수업으로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입재식을 앞두고 도반들과 이름도 낯선 ‘구글 미트’라는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배우기 시작했고, 거짓말처럼 온라인에서 만나 입재식을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온라인 활동은 온라인 가을 불교대학을 열기에 이르렀습니다. 온라인 불교대학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모르면서 홍보했고 신기하게 입학생들이 모였습니다. 온라인 행복학교를 진행한 경험이 있는 통일특별위원회 도반들이 제1기 온라인 불교대학의 진행을 맡아주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던 길의 초석을 놓아준 그 도반들이 늘 두고두고 고맙습니다.

겨울〈온라인 명상〉은 제게 선물이었습니다. 스님께서 4박 5일 동안 ‘아무 할 일이 없다. 할 일을 다 마쳤다.’라며 편안하게 이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호흡에 깨어있는 시간보다 망상에 빠져있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며 편안하게 이어갔습니다. 정년을 13년 앞두고 일찍 퇴직할 때는 정말 ‘충분히 쉬어보자, 천천히 살아보자, 게으르게 살아보자, 하릴없이 살아보자’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이루지 못한 아쉬움은 한 가닥 원망으로 마음 밑바닥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4박 5일을 마치고 나자 ‘나는 원 없이 쉬었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떤 휴양지에 여행을 가서도 할 수 없는 충분한 휴식과 게으름으로 해결할 수 없는 머리 맑은 휴식의 경험은 값진 자산이 되었습니다. 퇴직 후 '내 마음대로 산다고 그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었다'라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욕구가 나의 주인이 되는가,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가의 차이였습니다.

인도 성지순례에서 도반들과(앞줄 왼쪽 두 번째 권유숙 님)
▲ 인도 성지순례에서 도반들과(앞줄 왼쪽 두 번째 권유숙 님)

사람은 품는 것

10차에는 조직이 바뀌면서 세종 지역이 새로이 천안에 편재되었습니다. 지회장 소임을 받으며 세종 지역 도반들이 낯선 지역에 합쳐지며 느꼈을 상실감을 살피며 하나 되는 과정이 제 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사람을 챙긴다고 하는 게 뭘까? 사람이 책임진다고 하는 게 뭘까?’ 막연한 자기 질문이 많았습니다. 사람을 챙긴다는 것은 사람을 품는 것 같습니다. 저를 불편해하거나 힘들어하는 도반이 제 품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 품에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서 저 자신에게 감동합니다.

지부 안에 다른 지회의 지회장 도반이 있고, 우리 지회의 도반이 있습니다. 지회 도반을 만날 때는 불편해도 제가 다 품으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도반이니까 제가 바라는 게 적습니다. 그런데 지회장 도반들에게는 제가 기대가 있었습니다. 제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이렇게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걸 잘 몰랐습니다. 지회장 도반을 만날 때 힘든 이유가 제 마음이 지회 도반을 만날 때와 달라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문경 선유동연수원에서 도반들과 울력
▲ 문경 선유동연수원에서 도반들과 울력

겉모습에 속지 마라

지부의 지회장 도반들과는 회의와 협업이 많습니다. ‘이런 건 왜 이런지 궁금해요’, ‘이거는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같은 다양한 의견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의미도 말투가 공격적이거나 부정적인 단어로 표현할 때는 제가 움츠러들었습니다. 왠지 저도 막 어렵게 가고 있는데, 왜 그렇게 가냐고 저를 뒤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었습니다. 또 저는 투덜거리는 사람들에게도 힘이 달렸습니다. 그런데 정일사 수련하면서 알았습니다.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빨리 가기 때문에 힘들어서 그럴 수 있다.'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되는 원리를 이해하고 나니, 진짜로 그 지회가 뭐든지 1등으로 해결하는 게 보였습니다. 그 도반이 먼저 가면서 시행착오를 해준 덕분에 저는 편안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덕을 많이 봤습니다.

문경수련원에서 도반들(왼쪽 두 번째 권유숙 님)
▲ 문경수련원에서 도반들(왼쪽 두 번째 권유숙 님)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지부장 소임을 받기에는 제가 정토회에 몸담고 있던 시간이 짧다는 생각에 조금 자신이 없습니다. 세월은 그냥 가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지회장 경험을 해봐서 ‘내가 지금 모르고 있다’라고 인정하기는 조금 쉽습니다. 지금은 ‘내가 얼마큼 알아들었지?’ 하고 나를 살피는 걸 보면, 내가 못 알아듣는 것을 아는 거예요. 다음 소임을 할 때는 가볍게 한다고 했지만 지금도 조금 무겁습니다. 그리고 이 옷이 저한테 잘 안 맞는 것 같은 느낌도 여전합니다.

제가 확실히 아는 것은 믿을 도반이 있다는 것과 몰라도 물을 데가 있다는 것입니다. 소임이 커질수록 오히려 가볍게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이걸 누구랑 함께 얘기할까?’ 여기부터 출발하면 됩니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소임을 해나갈 수 있게 합니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를 때는 해결 안 되는 것이, 오히려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 되는 셈입니다. 제가 관점이 잘 안 잡히면 도반들과 이야기해 보면 거의 해결됩니다. 그리고 물어볼 법사님이 있고, 선배 도반이 있습니다. 이렇게 정토회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길입니다.

도반들과 불교대학 홍보(왼쪽 두 번째 권유숙 님)
▲ 도반들과 불교대학 홍보(왼쪽 두 번째 권유숙 님)


처음 본 주인공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일은 설레면서도 부담스러웠습니다. 모든 정토 행자들의 삶이 극적일 수 없지만 잔잔하게 이어지는 수행의 길이 심심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도 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로 사람을 품어 온 주인공의 마음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정토회는 우리가 만들어 간다는 말을 마음에 새깁니다. 저도 그 길을 심심하게 따라 가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_신정순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경주지회)
편집_박은영(대전충청지부 천안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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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감사합니다~.

2023-07-26 02:46:15

보현

고맙습니다

2023-06-15 09:01:08

엄태숙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가까이 계신 분 이야기를 읽자니 제가 왜 더 긴장이 되는지요 담담하게 굵직한 이야기들을 풀어주시니 '편안한 흔들림'이 참 적절하다 여겨집니다
제겐 신청했다 취소했던 불대를 작년에 전화로 입학 권해주셔서 물러서는 마음에서 벗어나 이 바른 법을 알게 한 인연도 있으신 분이라 여러번 찬찬히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2023-06-01 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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