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동래지회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즉문즉설이 연이 되어 정토회를 검색하다 만나게 된 한 장의 사진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황색 가사를 입은 인도성지순례 사진이었습니다. 그 대열에 끼고 싶었습니다. 회원의 자격이 있어야 갈 수 있다기에 2019년 가을에 정토불교대학 입학생이 되었습니다. 코로나의 여파로 3년 만에 성지순례의 길이 열렸고 운이 좋게도 정토회 만일결사 회향에 맞춰 기획된 부처님의 제자 1250명의 숫자에 맞춘 1250명이 함께 하는 32차 인도성진순례단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에 해외여행을 꿈꾸면서 그 첫 여행지는 인도였으면 했고 그 여행은 담마를 구하는 여행이었으면 했습니다. 어쩌다보니 이번 성지순례가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기에 얼떨결에 젊은 날의 꿈이 이루어진 격이라 설레는 마음이 두 배였습니다. 감사의 마음에 조장이라는 소임을 선뜻 받아들였고 봉사하며 함께 할 수 있었기에 보람도 두 배였습니다.

진신사리탑터 앞에서 쌍수대나무를 배경삼아
▲ 진신사리탑터 앞에서 쌍수대나무를 배경삼아

정토회 인도성지순례는 최대한 부처님처럼 입고 먹고 자면서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자는 취지도 있습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자고 많이 걷는 것은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보다는 구걸하는 아이들을 어찌 대해야 할지, 소매치기가 많다는데 내 것과 네 것의 경계를 어떻게 가져야 할지, 위생 상태의 벽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습니다.

늘상 현실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일어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삼엄한 검색대를 지나 도착한 인도에서 저를 가장 많이 긴장시킨 것은 힌두어였습니다. 겨우 나마스떼 한 단어만 준비했기에 그들의 의도를 읽으려고 눈빛과 몸짓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습니다. 단체로 맞춰 입은 티셔츠와 조끼와 모자는 우리가 어디에 있어도 우리임을 드러내기에 힘이 되었습니다. 덕분이었을까요. 제가 만난 인도는 풍경은 가난했지만 따스했고 율과 법이 생활과 조화를 잘 이뤄내고 있었습니다.

샤르나트에서 동래지회 2그룹 모둠장님과 함께
▲ 샤르나트에서 동래지회 2그룹 모둠장님과 함께

초전법륜 성지인 사르나트에서의 수계식을 시작으로 전정각산 아래 위치한 수자타아카데미 쁘락보디홀에서의 법회와 보드가야 대탑, 라즈기르 죽림정사, 바이살리 월후봉밀터, 열반당, 랑그람, 룸비니, 기원정사, 상카시아 담마센터에서 치러진 회향식에 이르는 1250명과 함께하는 예불과 법회는 경건하고 감동이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길은 마치 아버지의 무릎에서 자란 내가 아버지의 고향과 묘소를 참배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낯설지 않았고 눈과 귀와 피부에 익숙했습니다. 1250명이 다함께 경전을 낭독할 때면 260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부처님이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깨달음을 이루시고 45년간 여법하게 가르침을 펴신 한 인간으로서의 부처님께 깊은 존경심이 솟았습니다.

네팔 국경을 넘을 때와 로히니 강을 찾았을 때가 깊은 인상으로 남습니다. 네팔에 수재가 났을 때 JTS에서 도움의 손길이 있었답니다. 그 인연이 있어 이번 국경을 넘을 때 네팔 외교부에서 공무원을 증원해 국경 수속이 빠르게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건기에 찾아 간 로히니 강은 수량이 냇물같아 부처님 당시에 가뭄으로 인한 로히니 강변의 물싸움을 연상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끼야족과 부처님 외가가 있는 곳인 꼴리야족은 가뭄이 든 해에 서로 물을 먼저 대려는 다툼이 번져 전쟁을 준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은 양쪽 모두 볼 수 있도록 강물 중앙에 멈추어 허공에 머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들은 강물이 더 소중한가, 그대들의 몸에 흐르는 피가 더 소중한가. 사소한 강물을 가지고 소중한 생명을 희생시켜서는 안된다.” 이 두 일화를 통해 총과 칼은 벽을 높게 할 뿐임을 깨닫습니다. 나눔을 통해서만이 나와 상대를 모두 지킬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32차 인도성지순례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과 함께
▲ 32차 인도성지순례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과 함께

이런 일화도 있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머물 때였습니다. 교실을 비우고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아 마련한 숙소였습니다. 신발을 벗고 덧신을 신고 들어가라는 공지가 있었는데 얼떨결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 짐을 풀었습니다. 하룻밤 지나고 보니 신발을 신은 채로는 지저분해서 영 아니더라고요. 준비해 간 걸레로 닦아내자며 눈에 보이는 커다란 통에 물을 받아와 조원들과 바닥청소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수자타 여학생 세 명이 교실에 찾아와 화를 내었습니다. 뭐라 뭐라 손짓을 하는데 우리는 바닥을 더렵혀 그러는 줄 알고 ‘미안하다’ ‘깨끗하게 청소해 놓겠다’는 대답만 줄창했습니다. 학생들은 계속 화를 내었습니다. 바닥이 문제가 아님을 깨닫고 학생들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집중했습니다. 통을 들고 따라오라 하더니 펌프가에 물을 버리라 합니다. 그러더니 신발장 위에 통을 올려두라네요. 그리곤 절대 손대지 말랍니다. 시키는대로 하면서도 의아스러워 학생들이 떠나고 난 뒤 살그머니 신발장을 열어보았습니다. 그건 신발장이 아니라 식판을 담아두는 그릇장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여학생들이 화를 낸 이유를 확연히 알았습니다. 당연히 화를 낼 만하죠. 설거지 통을 걸레통으로 사용했으니 큰 실수를 한겁니다. 화를 내는 여학생들에게 감동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는 버려진 땅이라는 이름 ‘둥게스와리’에 있습니다. 인도에서도 가장 극심한 빈곤지역인 둥게스와리의 아이들은 주로 여행객을 상대로 구걸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습니다. 이 비참한 실상을 개선하고자 1994년 법륜스님은 이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여 함께 학교를 지었습니다. 그 역사가 이어져 이제 이곳 학생들은 구걸을 넘어 우리의 목에 꽃을 걸어주고, 우리의 실수에 당당하게 화를 내는 자존감 높게 자랐습니다. 잘 가르치셨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신 법륜스님의 발자취에도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상카시아에 석가족의 후예들을 위해 담마센터를 조성하신 사려깊은 그 뜻에 저도 마음의 꽃다발을 걸어드립니다.

석가족 학생들이 나누어 준 꽃잎
▲ 석가족 학생들이 나누어 준 꽃잎

성지에서 받은 감동과는 다르게 1250명 순례단과의 일상은 분별심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갖가지 분별심에 상당히 당황했습니다. 그래도 정토 수행자들인데 망가져도 급이 있겠지 했던 저의 안일한 기대를 비행기에 오르면서부터 여지없이 무너뜨렸습니다. 한 두끼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먹는 것에 애착을 부리는 이, 평소에도 아팠던 몸이었거늘 새삼 아픈 것 마냥 몸아픈 걱정을 매일매일 하는 이, 자기 짐 걱정에 노심초사 귀가 어두인 이, 조직의 규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이, 자신은 아무것도 안하면서 리더쉽 부재만을 탓하는 이, 줄서는 일은 항상 어수선하기 일쑤였고 화장지를 쓰지 않는 인도 화장실에 우리가 버린 화장지가 수북했습니다.

너나 없이 일어나는 분별심에 우리는 각자 신심이 어디에 있는지 묻고 있었습니다. 저도 순례 내내 물었습니다. 열반당에 들어섰을 때가 떠오릅니다. 와로 누워계신 부처님을 뵈자 실존을 뵌 듯 눈물이 벅차게 흘렀습니다. 이게 신심일까요. 순례를 마치며 깨닫습니다. 그건 단순한 감동일 뿐임을. 한량없이 일어나는 분별에도 불구하고 순례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그 마음이 신심임을 알았습니다. 순례에 함께하지 못한 <깨달음의 장> 동기가 보내 준 ‘순례의 꽃은 내가 일으키는 분별심의 바닥을 보는 것이다’는 글귀를 진심으로 이해했습니다.

‘정토행자라 할 지라도 베인 습의 정도라 달라 일어나는 일이구나’하고 알아차리면 내 마음이 편해진다며 적절한 때에 일깨움을 주신 차량 지도법사였던 월광법사님에게 감사합니다. 부처님 살아계셨던 당시 1250명의 제자들도 이러했을 것입니다. 귀 어두운 이, 눈 어두운 이, 양동이를 뒤집어 쓴 이와 자기 몸뚱이 걱정만 하는 이기적인 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45년을 여여하게 가르침을 펴셨던 부처님을 떠올리며 제가 닦아야 할 제 업식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32차 인도성지순례 원후봉밀터에서 월광법사님과 조원들
▲ 32차 인도성지순례 원후봉밀터에서 월광법사님과 조원들


15박16일이라는 짧지 않는 순례는 함께 하는 이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정토회 모든 분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어설픈 분별심에 혼을 빼기 일쑤였던 저를 조장이라 믿고 끝까지 도와준 30호차 2조 조원님들 고맙습니다. 현지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음에도 순례를 포기하지 않고 멀찌감치 앉아 여여하게 법회에 참석하셨던 분들께도 존경을 표합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혀 끝에 남은 짜이향이 느껴집니다. 순례에서의 체험도 이러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유훈을 새기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정토 세상을 위하여 잘 쓰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_이주현(부산울산지부 동래지회)

전체댓글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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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원

부처님이 남기셨던 발자국 위로 법륜스님이 씨앗을 심고 순례자들이 피워낸 꽃의 향을 맡는 듯한 글이었습니다. 가만히 향을 맡노라면 요즘같은 분란의 시대, 한때 부처님이 그러하셨듯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강물이 그저 고요하고 맑게 흘러가기를 바라게 됩니다. 긴 순례 속에서도 감사와 깨달음을 잊지 않는 마음에 존경심을 표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2023-03-15 21:54:38

이윤주

순례내내 알지 못했던 감동이 글을읽으며 밀려옴을 느낌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2023-03-06 17:37:08

배병갑

그렇군요. 순례는 내가 일으키는 분별심의 바닥을 보는 것이군요. 그래서 성지 순례는 다들 감동이라 부르는군요

2023-03-03 10: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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