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정토행자의 하루
16년 9개월 중에 7년의 세월

정토행자의 하루가 2차 만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희망리포터와 편집자가 꾸려지는 과정입니다. 지금이 회향 기간이기도 하고, 인도성지순례에 많은 사람이 떠나 쉬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월요일과 수요일은 한 도반이 전해준 수행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그냥 편하게 한번 들어보시죠.

염주를 집어 던지고

제가 정토회에 온 건, 2004년 겨울입니다. 기도를 시작한 건 2006년 5월, 불교대학을 다니던 어느 날이구요. 기도할 마음이 전혀 없던 제가 마음을 확 바꾼 건 불교대학 도반의 한마디 말이었습니다. "아침에 기도를 안 하면 하루가 불안해요. 그래서 저는 기도를 빼먹지 않습니다." 저는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그 도반을 많이 신뢰했습니다. 사회에서 성공한 그 도반이, 뭐든 다 가진 것 같은 그 도반이, 기도를 안 하면 불안하다는 말에 저는 충격받았습니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남과 비교하는 업식이 있는데 그 도반과 저를 비교했습니다. 사회적 명성도 있고, 돈도 많고, 부족함이 없는 저 도반에 비해 저는 당시 남편과 사사건건 싸웠고, 초등학생인 자식들은 아빠와 편짰는지 삐딱했고, IMF때 시동생 빚보증으로 집을 날렸고, 비싼 이자까지 갚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다시 말해 불안하면 제가 더 불안하고 화가 많은 상태여서 기도를 안 할 수가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는 아주 당당하게 안 했습니다. 기도한다고 무슨 불안이 사라지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라고, 속으로 비꼬았습니다.

그러나 또 제 업식 중에 부러움을 동반한 경쟁심이라는 것이 작동했습니다. ‘아무개야(접니다), 완벽해 보이는 저 사람도 기도해서 불안을 없앤다는데 정작 불안한 조건에 있는 네가 기도를 안 한다는 게 말이 되니? 저 도반을 존경한다며? 그럼 그 도반이 기도할 때는 이유가 있겠지. 한번 해봐’

〈깨달음의 장1〉에 다녀와서 기도를 몇 번 시도 했지만, 그때마다 염주가 제 손을 떠나 방문에 탁 부딪혀 떨어집디다. 그렇게 몇 번 염주를 던지고서야 비로소 108배를 끝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대립
▲ 대립

염주를 다시 잡고

어쨌든 그렇게 2006년 5월 어느 날, 다시 염주를 잡았습니다. 참회라는 말이 여전히 제 어깨를 짓누르고, 억울해서 다리가 꿇어지지 않았지만, 억지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뭐가 불만이야? 돈도 내가 벌고, 집안일도 내가 하고, 당신네 집이 진 빚 내가 갚고, 애들도 내가 키우고, 도대체 당신이 하는 일이 뭔데? 내가 이혼 안 하고 데리고 살아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 나한테 바짝 엎드리고 살아도 시원찮아.’

남편을 무시하는 마음, 가난한 시댁을 무시하는 마음, 끊임없이 올라왔습니다. 제가 가난한 남편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 내 맘대로 할 수 있겠다는 마음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가난하고 착한 시댁 식구들을 구원한 며느리로 군림하고 싶었습니다.

이혼은 내가 요구해야지

남편이 제게 이혼하자고 안 했으면 저는 끝까지 군림하고 살았을 사람입니다. 저는 ‘이혼을 해도 내가 요구 해야지, 어디서 감히 남편이 먼저 요구하냐’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때까지도 저는 제가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습니다. 사회적으로 봐도 가정을 야무지게 챙기고, 재산까지 늘리는 저는 능력 있는 사람이고, 반면 남편은 무능력하게 보였으니까요.

16년 9개월을 함께한 기도방석과 염주
▲ 16년 9개월을 함께한 기도방석과 염주

남편의 이혼 요구에 억울하고 또 억울했습니다. 한 배, 한 배 절하며 지난 시간을 되짚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 잘 얻어서 좋겠다는 말을 한두 번도 아니고, 수시로 듣는 남편 심정은 어땠을까. 그 말이 남편에겐 칭찬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력을 확인받는 순간이었겠구나. 더군다나 부인이 자기를 우습게 보니 정말 자존심 상했겠다. 그래서 나한테 돈을 왕창 벌어보이려고 주식에 손댔구나.’

그렇게 조금씩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물론 그런 마음이 들었다가도 순간, ‘아니 그래도 집안 경제를 책임지는 내가 더 힘들지, 당신이 더 힘들어?’라는 마음으로 시소타듯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해도 기도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의 상처를 깊게 입은 남편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7년의 세월

7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남편 마음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남편과 화해할 수 있었던 것은 스님 법문 들으며 저를 숙인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옆으로 잠깐 새자면, 지인이 갖다준 큰 절 책자에는 온통 기도 가피로 도배되어 있었습니다. 기도했더니 아프던 것이 나았다더라, 쫄딱 망한 사업이 다시 일어섰다더라, 기도해서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냈다더라, 이런 가피 입은 것만 쓰여 있어서, 얼마나 혹했는지 모릅니다.

화해
▲ 화해

'나도 지인이 다니는 절에 가서 복을 빌어야 집안이 잘되는 것 아닌가?' 때론 그렇게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올라오게 두고, 다시 잘 안되는 참회기도지만 꾸준히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기도해서 돈 번 것 보다, 좋은 대학에 보낸 것 보다, 7년 만에 남편이 닫았던 마음을 연 것이 더 큰 가피라고 생각합니다.

기도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제가 무슨 수행을 새벽 5시에 칼같이 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아닙니다. 실은 새벽 5시는 귀신들이 활동하는 시간 같아 재끼고, 6시도 귀신들이 아직 돌아가지 않은 시간 같아 재끼고, 저는 그냥 눈 뜨면 기도했습니다. 더 늦어질 때도 있었지만, 한가지 지킨 원칙은 하루가 가기 전에 기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참회가 되든, 안되든, 이석증이 와서 하늘이 돌든 말든, 허리를 다쳐 108배가 1시간이 걸리든 말든, 빠지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강박증 환자처럼 기도라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자유로운 사람

큰딸이 그려준 부처님
▲ 큰딸이 그려준 부처님

그런데 그 기도에 대한 매달림, 집착이, 헛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가정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남편에게 주었으니까요. 남편 인생 사전에 ‘사과, 미안’ 이런 단어는 없는 줄 알았는데 남편은 제게 사과했습니다. 못되게 굴어 미안했다고. 그러면서 남편은 제게 좀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자유로운 인간은 우리 집에 한 명이면 족하다'라고 답하려다 수행 정진으로 꾹, 참았습니다.

어쨌든 저는 남편에게 믿음을 주었지만, '하루도 안 빼먹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상으로 다시 ‘나’를 삼았습니다. 전에는 무슨 말이 나오면 무조건 "나, 기도 안 빼먹는 사람이다"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요즘은 기도한다는 말을 숨깁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16년 넘게 했어도 업식이 별로 안 바뀐 걸 알면 누가 정토회에 남겠나, 싶어서요. 이렇게 제가 정토회 생각하는 마음이 깊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수요일에 또 뵙죠.


글_편집_정토행자의 하루 편집팀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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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광효)

정말 재미지게 쓰시고 재미지게 살아가십니다 나누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23-05-05 06:19:35

전소린

따님께 선물로 받은 그림이 참 좋습니다^^

2023-04-16 00:33:32

김학연

멋있습니다. 정토회는 무슨 마술을 부리는지 사람을 바꿉니다. 정말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얻게도 하네요.

2023-02-24 09: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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