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용인지회
저는 이미 인도에 있습니다

카페에서 주인공을 만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데, 얼룩얼룩한 길이 도반의 눈물 자국 같았습니다. 돌아와 원고를 얼른 써야 하는데 쓸 수가 없었습니다. 놀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삼십 년 가까운 그 긴긴 세월, 아픔이 쌓이고 쌓인 몸을 지켜 낸 주인공의 멋진 승리에 흠이 나면 어쩌나 두려웠습니다. 아자! 용기 내서 소개합니다. 주인공, 박서윤 님입니다.

천주교 신자가 반한 반야심경

저는 명상센터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쌓이는 스트레스로 힘들어하자, 동료가 법륜스님의 반야심경1 유튜브를 천주교 신자인 제게 소개해주었습니다. 반야심경 강의를 들으며 그 명쾌함에 반했습니다. 그 강의를 듣고 있는 정토회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이어서, 법륜스님의 강의를 직접 듣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정토회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일에 염증을 느끼던 차에 운영난이 겹쳐 5년간 운영하던 명상센터를 정리했습니다. 그 후,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 천주교 봉사단체와 여러 봉사단체를 기웃거리다 보니, 봉사하는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법륜스님이 운영하는 단체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 정토불교대학 홍보물을 보고 2015년 3월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하는 날,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해서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정토불교대학 입학 후 3개월 즈음, 전세금을 올려주어야 했습니다. 제가 돈을 탕진하기도 했고 남편 사업도 어려웠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은 갓난아기 때부터 고생했던 아토피가 다시 심해졌습니다. 조카 돌잔치에서 만난 이모가 이런 제 상황을 듣고, 공기 좋은 용인에 비싸지 않은 가격에 빌라를 샀다며 제 가족이 그리로 이사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모의 제안이 구원의 손길처럼 느껴졌습니다.

깨우침

용인으로 이사한 후 기흥법당 정토불교대학에 다녔습니다. 불교대학 공부는 늘 감동이었습니다. 특히 법륜스님이 감옥에서 고문당하면서 깨우침을 얻은 일화를 들으며, 어릴 때 저를 때렸던 엄마가 생각나서 주저앉아 펑펑 울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원망하는 마음이 줄어들었습니다.

그 당시 정토회는 천일결사2 목표 중 하나로 지역 법당 만들기 사업이 한창이었습니다. 기흥법당이 집에서 멀어서 집주변에 법당이 생기길 기원하며, 3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불교대학을 마무리할 즈음, 처인법당을 만들기 위해 한 도반이 불사금을 모금하러 기흥법당에 왔습니다. 제가 사는 가까운 곳에 법당이 생긴다는 말에 무엇이든지 시켜주면 다 하겠다며 그 길로 도반을 따라갔습니다. 가면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원이 이루어진 것 같아 너무 행복해서 흘린 감격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처인법당 회계 소임을 맡았고, 기흥법당에서 공부하고 처인법당에서는 일하는 분주한 일상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2018년 정일사 후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첫번째)
▲ 2018년 정일사 후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첫번째)

한없이 아팠던 어린 시절

아버지와 엄마는 스무 살에 저를 낳았습니다. 능력이 많은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잘나가는 대기업 사원이었습니다. 돈을 잘 벌어서 그런지 늘 바람을 피우느라 집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집에 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으러 어린 저를 데리고 아버지의 불륜 현장을 찾아다녔습니다. 어쩌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피를 보는 싸움이 밤새 끊이지 않았습니다.

꿈 많고 활달했던 엄마는 점점 우울하고 화가 많아졌고, 자신의 화를 어린 제게 풀었습니다. 제가 실수한다고 때리고, 놀랜다고 때리고, 못한다고 때렸습니다. 제가 하루에 몇 차례씩 맞는 일은 일상이었습니다. 엄마의 화가 폭발하면 엄마 옆에 있는 것이 바가지든, 빗자루든, 스카이 콩콩이든 저를 때리는 흉기가 되었습니다. 때리면서도 분이 안 풀릴 때면 엄마는 제게 칼로 찔러 죽였으면 좋겠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는 등의 폭력적인 말을 수시로 했습니다. 그 당시 제 마음이 제일 편안한 시간은 맞고 난 직후, 잠깐의 시간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는 엄마가 제게, 엄마가 때릴 때 가만히 맞다가는 죽을 수 있으니 제발 도망가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도 제가 맞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긴 저는 그런 엄마의 부탁에 맞서서 그 자리에 꼿꼿이 앉아 맞았습니다. 어린 제가 할 수 있는 나름대로 이를 악물고 하는 저항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어릴 때부터 깜짝깜짝 놀라고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제 어린 시절 사진엔 웃는 얼굴이 없습니다.

20대 후반 어느 날, 밥을 먹다가 엄마가 저를 때리려고 하자 제가 젓가락을 든 상태에서 엄마의 손을 막았습니다. 젓가락을 든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면서 엄마를 찌르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왔습니다. 제 마음속에 살심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아들 덕분에 시작한 공부

결혼하기 전 저는 성당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서른이 넘어 집에서 도망치듯 결혼했습니다. 집을 떠났는데도 불안감과 우울증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첫아이를 낳았는데 심장병으로 사흘 만에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때부터는 아이를 갖는 일도 겁나서 불안감이 더 심해졌습니다. 남편 사업도 잘 안되어 스트레스가 가중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두려워했던 임신을 했습니다. 임신 기간 내내 첫아이와 같은 결과가 있으면 어쩌나 하고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아들을 낳았는데 아토피 피부로 가려워서 갓난아이가 잠을 30분도 깊이 자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잠을 자지 못하니 이 아이가 살 수 있을까?’라는 몹쓸 생각도 했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토피 체질이었던 아들에게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다 했습니다. 그때 저는 만나는 뭇 생명에게, 아들이 좋아지게 해달라고 마음을 다해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아들 덕분에 간절함이란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어린 아들이 아토피로 고생할 때, 저는 갑상선암을 진단받았습니다. 남편은 직장을 마지못해 다니다가 제가 갑상선암에 걸렸다고 하니, 아내가 언제 어떻게 될 줄 모르는데 어떻게 직장을 다니냐며 그만두었습니다. 먹고 살 일이 막막했고, 부부 사이는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두세 살 때부터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명상으로부터 엄마와의 관계와 부부관계 개선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남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는데 저는 그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정토회에 다니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문경수련원에서 정토불교대학 졸업수련 소임 중(왼쪽)
▲ 2017년 문경수련원에서 정토불교대학 졸업수련 소임 중(왼쪽)

‘부모가 사이가 좋지 않은데도 당신을 키워줬으니 부모가 당신을 정말 사랑한 거다’라는 이해되지 않았던 법륜스님의 말씀이 어느 법회 시간에 가슴을 울렸습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셨구나! 단지 자신의 감정 다스리는 방법을 몰라서 나를 때린 것이었구나’라고 깨우치며,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아냈습니다. 이렇게 정토회에서 방석 때를 묻히고 있으면 스님과 도반들이 제 영혼에 박혀 있던 아프고 억울한 마음의 돌덩이를 툭툭 떼어내 줍니다.

▶스님 법문 출처 전체보기 클릭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363회]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큽니다

내 인생의 기적, 300배

봉사를 시작하며 즐거웠지만, 여전히 가정형편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제가 봉사할 시간에 일해서 돈 벌길 바랐지만, 저는 자신을 알아가는 마음공부에 매진하겠다고 단호하게 제 결심을 말했습니다. 말해놓고도 ‘돈이 있어야 버스비 내고 보시도 하는데’라고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후부터 남편 하는 일이 잘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초중고를 다닐 때, 혹시 친엄마가 맞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무심하게 놔뒀습니다. 그런데, 과학 쪽에 관심이 많더니 인공지능 분야 세계대회에 나가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신문에도 이름이 실렸습니다. 지금은 그쪽 분야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아토피도 나아졌습니다. 제 마음이 편해지고 엉켜있던 실타래들이 풀어지니 그렇게 잘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남편이 온라인 사업을 하다 보니 삼시 세끼를 집에서 먹습니다. 가끔 제 회의가 길어지고 일정이 많을 때면 남편이 화나서 밥 달라고 문을 두드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은, 제가 정토회를 만나서라고 남편이 말합니다. 제가 도반들을 만나러 나갈 때, 남편은 보시하라고 돈을 주며 꼭 맛난 것을 저에게 사라고 합니다. 같은 빌라에 사는 주민을 수행 도반으로 만든 것도 남편이었습니다.

2019년 법륜스님 강연에서 봉사 중
▲ 2019년 법륜스님 강연에서 봉사 중

내 꿈은 인도 봉사

이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모든 인연이 감사함으로 바뀐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300배 정진의 힘입니다. 그 감사함을 조금이라도 갚으려고 정토회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임을 맡을수록 갚아야 할 감사함이 더 쌓이기만 합니다. 이 감사함이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꿈에 저를 한발 한발 가까이 다가서게 이끕니다. 그래서 부족한 제게 오는 소임은 언제나 커다란 복입니다.

이렇게 정토회는 제 인생에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올 2022년도는 제가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을 때 남편에게 제 꿈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던 그 해입니다. “여보, 나는 우리 아들 스무 살이 되면 인도에 봉사하러 갈 거야”.

아직 인도는 가지 않았지만 저는 이미 인도에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 상황에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마음공부에 매진하겠다’라고 가족에게 말한 주인공의 선언이 마음에서 맴돕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서원이구나’라고 깨칩니다. 용인지회 박서윤 지회장님이 인도에서 보내올 행복 편지를 읽고 싶은 마음에 벌써부터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글_장준분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지부 수지지회)
편집_성지연(강원경기동부지부 경기광주지회)


  1. 반야심경 대승경전의 하나 

  2.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각주22]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전체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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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감사한 마음입니다

2023-05-16 05:56:39

김희란

감사핫 맘입니다

2023-03-10 10:58:59

최영미

감동입니다
또 배우고 갑니다

2023-02-27 00: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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