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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남편이 저를 수행자의 길로 들어서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남편은 자신의 공부에 대한 확고한 자부심과 자신만의 세계관이 확실해서 그 외의 것은 들으려 하거나 관심도 두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남자 같으면 아들 둘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고 함께 공도 찰 것 같은데, 남편은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반면에 제가 시댁과 갈등을 겪을 때 남편은 시댁 편을 들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사리 판단하는 합리적인 성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부모님이 잘못한 부분이 크다는 걸 인정하며 제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는 자기 일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시댁과의 관계, 아이들 교육,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당하는 일은 모두 제 차지였습니다. 이렇게 각자 살 거면 뭐 하려고 결혼을 했을까? 회의감이 들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지자 저는 점점 지쳐만 갔습니다. 남편이 무슨 말이라도 하면 그냥 무시했습니다. 가족에게 관심이 전혀 없는 남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모두 틀린 말로 들렸습니다. 아이들이나 저에 대해서 뭘 안다고 저런 말을 하나 의문이 들어서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의 태도에 남편도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다며 더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정토회에 다니면서 “예, 하고 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은 저에게는 마법의 주문과 같았습니다. ‘나도 한번 해볼까? 남편의 말에 무조건 “예!”하고 해보자.’라고 마음먹고 실천해 봤습니다. 그런데 정말 “예”하고 들어보니 남편은 놀랍게도 모두 맞는 말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자신이 얘기가 잘 통하고 열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말이 들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제가 얼마나 제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정말 철벽같은 여자였습니다. 남편의 말대로 해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남편은 균형감 있게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긴가민가한 때도 있었지만 일단 남편의 말대로 따라보고 “이것은 이런 문제가 있어서 안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남편은 “그럴 줄 알았어요. 나도 알고 있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 자신도 다 알고 있었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말하는 남편의 마음을 받아주는 것이었구나!’라고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남편의 판단력을 확실하게 인정할 수 있었던 계기는 둘째 아들 문제를 풀어가면서였습니다. 둘째 아들은 인간성 좋고 사람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기가 관심 있는 것만 보고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포기하는 과목들이 생기면서 큰일 났다고 걱정하자, 남편은 “그 애가 하는 일이면 다 좋다고 받아주고, 또 그 애가 싫다고 하면 싫어하는구나 받아줍시다. 그렇게, 그 애한테 맞춰봅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의 상황을 인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남편의 말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남편의 말대로 아이를 딱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신기하게도 아이와 부드럽게 대화할 수 있었고 그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은 후 저는 모든 일에서 아이들보다 남편의 의견을 우선시했습니다. 또한, 아이들 앞에서도 남편을 깍듯하게 대했습니다. 남편이 아이들과 의견을 주고받을 때, 아이들보다 남편의 의견이나 말에 긍정적인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은 저와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유학 후 한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남편이 참 많이 힘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만 힘든 줄 알았지, 남편이 밖에서 얼마나 힘든지는 헤아려주지 않았구나’라며 남편을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를 존중해주는 제 마음을 알아차린 남편은 고마워했습니다.
정토회를 떠날까 심각하게 고민했던 때가 있습니다. 저와는 매우 다른 성향의 도반과 일한 적이 있는데, 그 도반은 부드럽고 여성스러우면서 나긋나긋했습니다. 막상 일을 시작하자 그 도반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맡은 일을 완수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도반의 일을 제가 대신 처리해야만 했습니다. ‘정말 못하겠다. 이 꼴을 계속 보느니 차라리 내가 나가고 말지.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야지.’라는 심경에 이르렀습니다. ‘왜 자기가 하기로 한 일을 책임지고 처리하지 못하지?’라는 분별심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 결과로 커져 버린 저의 괴로움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수행한 공덕인지, 어느 날 문득 초심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저 사람대로 사는 거고, 나는 나대로 사는 거지. 정말 저 사람 하나 때문에 내가 이 좋은 불법 공부를 포기해야 해? 지금 여기 내가 왜 있는 거야? 이 공부가 좋고, 얼마나 재미있는데,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것이 이 부처님 법을 만난 것이라 자부했는데, 사람 하나로 이걸 그만둔단 말이야?’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게 아니라 저 자신이 좋으니까 제가 정토회에 몸담은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이렇게 좋은 불법 공부를 다른 사람 때문에 그만둔다면 어리석은 거겠구나. 그렇다면 나를 위해서, 내가 더 행복하기 위해서 계속 나아가야겠구나!’라고 결심했습니다.
누구나 자기 습관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삽니다. 저는 저대로 수행하면서 살 뿐, 상대의 다름을 탓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상황에서든지 제가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안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타인을 분별하면서 제 성질에 제가 넘어질 이유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은 차츰 편안해졌고, 그 도반을 보는 제 시선도 서서히 편해졌습니다. ‘그는 그냥 그러할 뿐 저를 괴롭히려고 그러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제가 그러하듯 그도 자기 습관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에 부딪히면 이렇게 생각하며 돌이킵니다.
글_김세영(인천경기서부지부_일산지회)
편집_성지연(강원경기동부지부_경기광주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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