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달서지회
엄마, 사랑합니다

대구 달서지회에는 2012년에 불교대학에 입학하여 법당 일에 솔선수범하며 수행과 봉사를 꾸준히 이어온 장경숙 님이 있습니다. 행복학교 진행자로 묵묵히 수행과 전법을 해나가고 있는 장경숙 님의 수행담을 전합니다.

내 인생 최대의 실수

제가 20대일 때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미 4기였습니다. 당시 두 언니들은 결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었고, 저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경기도 부천으로 발령이 나며 세 식구가 함께 대구에서 부천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제 인생 최대의 실수였습니다. 2003년 2월에 제가 발령받고 경기도로 세 식구가 올라온 바로 그해, 11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올라와 힘들었습니다. 아는 언니가 저를 서초법당 법회에 데려갔습니다. 절이라 해서 좋아하며 따라갔는데 법회는 영상으로 이루어졌고 나누기를 하는 게 무척 불편했습니다. 꽤 오랜 기간 안내 문자가 와서 더 불편했습니다. 심지어 스님이 누군지 내가 어디에 다녀왔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문경에서 도반들과 함께 (첫번째)
▲ 문경에서 도반들과 함께 (첫번째)

우리는 그냥 안 맞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엄마와 저의 싸움은 시작되었습니다. 원래도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성격이 그냥 안 맞았습니다. 엄마는 성격도 거칠고 잔소리도 많이했습니다. 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계속 입을 댔습니다. 저도 성격이 세니까 싸우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보들보들한 성격이어서 중재자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그 덕에 엄마와 같이 살 수 있었는데 아빠가 없으니 난리가 난 것입니다. 저는 엄마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무시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진작 알았더라면 그렇게 미워하지 않고 ‘그렇구나’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게다가 삼십 년간 막내로 살았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게 기대고 의지하는 게 불편했습니다. 내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엄마가 짐스럽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저를 아버지 대신으로 생각했습니다. 퇴근 전에 전화해서 몇 시에 집에 올 거냐, 저녁은 뭐 먹을까, 주말에는 같이 어디 가자며 아빠가 엄마에게 하던 것을 제가 계속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게다가 제 월급으로 생활했으니 경제적인 것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최악이었습니다

추석 날 아침에 전 담아 놓은 접시를 던지기도 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이상한 두통도 왔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혈관 확장성 두통이라고 했습니다. 일을 하거나 누구를 만나고 집에 오면 그대로 쓰러지고는 했습니다. 최악이었습니다. 그 당시 친구들이 너는 대학교 때도 맨날 엄마랑 싸우고 아침 안 먹었다고 이야기를 하더니 아직도 그러고 사냐고 했습니다. 또 왜 언니들한테 얘기하지 않고 혼자만 계속 짐스럽게 생각하며 사냐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엄마와 싸운 얘기를 하면 친구들은 그러고 나서 다음 날 엄마 얼굴을 볼 수나 있냐고 놀라곤 했습니다. 그만큼 심하게 싸웠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대구로 돌아왔습니다. 환경도 달라졌고, 언니들도 옆에 있으니 잘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여전히 엄마와의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언니들이 엄마와 저의 관계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언니들한테 도저히 엄마와 더 못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언니들도 그러면 집을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혼자 나와 집을 구했습니다.

나와서 혼자 살면 편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계속 마음 속에 엄마가 걸렸습니다. 엄마 자체가 독립적인 성격이 아니고 사람한테 의지하는 걸 좋아하는데 혼자 인 것이 계속 신경 쓰였습니다.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내가 끝내 해결해야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결국 내 문제였습니다.

인도 성지순례 중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첫째줄 왼쪽 두번째)
▲ 인도 성지순례 중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첫째줄 왼쪽 두번째)

미워하던 엄마가 나의 소중한 도반으로

혼자 집 나온 지 1년 반쯤 됐을 무렵 경북대에서 열린 청년열린아카데미에서 스님 강연을 들었습니다. ‘내가 찾던 곳이구나. 이거구나.’ 하는 느낌이 왔습니다. 저는 20대부터 송광사 해인사 등 수련회 참여하여 참선 하고 절도 하며 수행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법정스님 틱낫한 스님처럼 사회 참여적인 스님을 존경했습니다. 정토회가 자기 수행과 사회 실천을 모두 지향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대구법당에 갔고 며칠 뒤 7-2차 입재식에 참여했습니다. 가을에 달서법당이 생기고 수행법회에 나가게 되었고 이듬해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천일결사 입재를 하고 부터는 정진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안 하는 걸 생각해 본 적 없고, 빠진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 천일결사 기도는 하기로 했으니까 그냥 하는 겁니다. 저도 일어나기 싫습니다. 더 자고 싶어도 더 자면 출근해야 되는데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정진 덕분에 생활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냥 아침에 눈 뜨자마자 습관으로 합니다. 이제 아침 기도는 제 생활에 일부입니다.

집을 나온 후 거의 1년 간 엄마랑 연락하지 않고 살다가 법당에 다니며 다시 엄마 집에 왕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권유로 2015년 경산법당 불교대학에 입학한 엄마는 경전반까지 졸업했고 수행법회, 금요정진 등 법당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는 나의 소중한 도반이 되었습니다.

소중한 도반, 엄마와 함께
▲ 소중한 도반, 엄마와 함께

잠을 줄이고 노는 시간도 줄이며 정토회 활동하기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힘들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정작 가장 힘든 건 아직 오지 않은 것일 지도 모릅니다. 2016년 소임이 여러 개 주어졌습니다. 새로 개원한 중리법당의 불교대학 담당, 원래 법당인 송현법당의 사회활동팀장, 지부팀장 대행 등을 맡았습니다. 그 시기엔 직장 생활하며 도저히 일을 다 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잠을 줄이고 노는 시간도 줄이며 어찌저찌 하니 일을 다 해낼 수 있었습니다. 2020년 가을 학기 온라인 불교대학 첫 해, 특위에서 불교대 담당을 맡게 되었던 때가 몸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월요일은 불교대학 진행, 화~토요일은 행복학교 진행, 수요일은 법회, 주말 일정 등 그냥 내내 달렸습니다. 이듬 해 정토회가 모든 불교대학, 경전대학 수업을 화, 목요일으로 통일하지 않았다면 지금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평화대회에서(뒷줄 왼쪽 첫번째)
▲ 평화대회에서(뒷줄 왼쪽 첫번째)

다시 엄마와 살게 되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가장 힘든 건가 싶기도 합니다. 2019년 엄마가 치매 판정을 받고 더 이상 혼자 둘 수 없어서 올해부터 엄마랑 다시 둘이서 살게 되었습니다. 언니랑 같이 엄마를 모셔보려고 언니 집 근처로 이사를 해서 직장과 많이 멀어졌습니다. 출근 준비도 해야 하고 엄마 아침도 챙겨야 하니 4시 반에 일어나 기도 하고 5시 반에 엄마의 아침을 차려 드리고 6시 반에 집을 나섭니다. 퇴근하고 30분 정도 있으면 엄마가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옵니다. 목욕 시켜 드리고 주무실 때까지 말벗 하다가 저녁에는 행복학교 진행이나 법회, 회의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힘들다기보다 하루가 꽉 찬 느낌입니다.

엄마와 함께 지내며 힘들 때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제가 막 울었습니다. 퇴근을 했는데 환절기라 몸이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엄마가 뭐 때문인지 주간보호센터 갔다 와서 뭐든지 싫다고 했습니다. 옷도 벗기 싫다, 씻기 싫다, 뭐 하기 싫다, 뭐 줘도 안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너무 지치고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막 울었습니다. 그리고 언니한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나 죽을 것 같아. 우울증 걸릴 것 같아.’라고 호소 했더니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언니가 왔습니다. 언니가 와서 엄마 케어를 하고 말벗도 해주고 합니다. 엄마가 짜증 낼 것 같으면 언니는 빨리 과자 하나 꺼내서 식탁에 올려 놓으라는 조언을 해주고 신경을 써줍니다. 이런 일이 흔하지는 않습니다. 예전에는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거의 한 달에 한 번도 없습니다.

JTS 모금 활동 중 (왼쪽 두번째)
▲ JTS 모금 활동 중 (왼쪽 두번째)

그래도 지금은 엄마가 밉지 않다

이렇게 지내도 지금은 엄마가 밉지 않습니다. 병에 걸린 엄마가 불쌍합니다. 병 자체가 그러니까요. 저의 기도문이 ‘있는 그대로 봅니다’ 입니다. 뒤에 생략된 건 ‘엄마는 환자입니다.’ 입니다. 최근에 정일사에서 받은 것인데 그게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몸은 힘듭니다. 잠을 거의 제대로 못 잡니다. 보호센터에서 돌아온 엄마는 저녁 6시쯤 잠에 들었다가 자정이 넘으면 일어나서 돌아다닙니다. 그럴때 마다 저는 선잠에서 깹니다. 저는 보통 3시 반 쯤에 깨어 있습니다. 그때부터는 엄마가 왕성하게 돌아다녀 다시 잘 수가 없습니다. 4시 반까지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기도하고 엄마 아침도 챙겨드리고 출근 준비도 하면 아침에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출근해서 기절해 있습니다. 업무 시간 전까지 말 시키지 말라고 하고 한 20분을 엎드려 잡니다. 그렇게 있다가 옆에 동료들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부시시 깨서 업무에 들어갑니다. 내년에 직장을 집 근처로 옮기면 지금보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전법의 보람

행복학교 진행을 하며 참가자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 내가 더 행복해집니다.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 노트북 앞에 앉지만 4주 만에 밝아진 참가자들의 모습에 뿌듯하고 감동입니다. 집에서 먼 곳으로 4주 동안 행복학교를 진행하기 위해 다닌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못하겠다고 하니 참가자가 자기 집에서 하면 어떠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집에서 노부부와 옆집 할머니까지 함께 행복학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부부갈등으로 힘들어하던 노부부가 4주만에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마지막 4주째에는 부부가 이제는 대화도 하고 자기 전에 서로 잘 자라 인사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한 달 동안 그 멀리까지 1시간 이상 왕복해야 했는데 다니면서도 굉장히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밖에도 행복학교에서 만난 분들이 종종 톡을 보내옵니다. 제가 뭘 크게 해드린 것도 없는데 제 덕분이라는 말에 감동받고는 합니다.

쓸모있는 삶을 살고 싶다

한 주도 쉬지 않고 다음 기수 행복학교 참가자를 받으며 지치고 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쉬면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지난 여름에 전법 활동가 열흘 휴가가 있었습니다. 그 기간에 6박 7일 명상도 참여하고 쉬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약간 금단 증상처럼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습니다. 반복되는 활동이지만 새롭다고 생각하며 하려고 합니다. 활동이 이제 생활입니다. 활동이 매일 즐겁고 신나지는 않습니다. 발 안빼고 도반들이 하듯이 그냥 합니다. 잘 쓰일 수 있어 감사하고 필요하다면 내내 쓰이며 쓸모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바람으로 엄마가 지금 상태로 조금만 더 같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와 조금 더 함께 하고 싶습니다.

달서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왼쪽 첫번째)
▲ 달서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왼쪽 첫번째)

장경숙님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알람을 해두고 10시에 행복 연습을 행복학교 참가자 단체방에 즐겁게 올렸습니다. 오늘도 장경숙님은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가며 전법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수행자 장경숙님의 개인적인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글_김국화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달서지회)
편집_서지영(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전체댓글 27

0/200

느릿느릿

어쩌면
힘들어하며 괴로워하며
살게 되기 쉬울텐데
수행자로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에
감동이 오네요~~

2023-08-09 11:02:50

한혜선

응원합니다🙏저도 엄마와의 관계가 어려워서 그런지 많이 공감하며 가슴 찡한 울림이 있네여…
함께 수행하며 할 수 있는 지금 여기 든든합니다.

2023-03-12 10:12:21

김태희

존재 자체로 훌륭한 장경숙님!
여린 몸으로 먼곳을 출퇴근하며 어머니까지 챙기는 장경숙님의 모습에 큰 용기와 감동을 받습니다.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장경숙님은 언제나 지금처럼 같은 사람일꺼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행복하세요!

2022-11-09 12: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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