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운정법당
30년 수행자, 한혜자 님과의 행복한 대화

만일결사의 마지막 해인 2022년, 그 시작 부터 함께해온 한혜자님의 21년 3월 발행된 기사를 다시 읽어 봅니다.

일산정토회에 이런 분이 계셨구나! 처음 김포법당 한혜자 님의 약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991년 정토회에 들어와 천일결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한 분! 법사님도 특별한 활동가도 아닌 평범한 정토회원으로서 바쁜 일상 속에 30년 기도의 약속을 칼같이 지켜온 분! 한혜자 님은 그 꾸준함과 정진의 공덕을 인정받아 2020년 '정토행자상-정진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대체 어떤 분일까? 그 정진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법륜스님을 매주 영상이 아닌 법당에서 직접 만날 수 있었던 30년 전 정토회의 모습은 어땠을까?

꼼꼼하게 질문을 모아 운정법당의 이진성 님과 함께 한혜자 님을 만났습니다. 2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아픔이 새겨진 한혜자 님의 삶과 수행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30년 정진의 선배 도반과 3년차 후배의 만남, 그 행복한 대화를 따라가 봅니다.

한혜자 님. 1991년 정토회 입문, 1994년 천일결사 1-1차 입재, 9차 일산정토회 대의원, 10차 김포법당 지역 대의원, 2020년 <정토행자상-정진상> 수상
▲ 한혜자 님. 1991년 정토회 입문, 1994년 천일결사 1-1차 입재, 9차 일산정토회 대의원, 10차 김포법당 지역 대의원, 2020년 <정토행자상-정진상> 수상

30년 기도의 약속

이진성 : 천일결사를 시작한 해가 1993년이니까 어느새 28년이 흘렀습니다. 먼저 그 때 얘기부터 듣고 싶은데요, 정말 처음부터 ‘30년 동안 기도 하겠다’ 생각하셨어요?
한혜자 : 처음부터 법륜스님이 30년 기도를 하자,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계산해봤어요. 30년? 그럼 74살이더라고, 끝나는 해가.. (웃음) 그래, 그 정도면 할 수 있겠다 싶었죠.
이진성 : 정말요? 30년 목표를 세운 스님도 대단하지만 그렇게 마음 내신 것도 놀랍네요. 어떻게 그런 마음이 드신 건가요?
한혜자 : 그냥,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내년만 하면 끝나잖아요. 그 30년도.. 내가 약속한 거니까 하는 거지 뭐.. (웃음) 남편이 같이 여행가서도 맨날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걸 보고 뭘 그렇게 매일 하냐고 물어요. ‘그러게, 내가 뭘 하는 걸까’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내 안의 부처님한테 기도하는 거구나!’

만 일간의 기도, 마치면 74세란 시간의 무게가 그저 담담하게 느껴졌다는 한혜자 님. 당시 수행의 에너지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무엇이 한혜자 님을 그렇게 단단한 수행자로 만들었을까? 한혜자 님이 처음 찾았을 1991년 당시, 정토회는 서울시 은평구 홍제동에 ‘정토포교원’이란 이름을 내걸고 있었습니다.

카바레 건물 3층, 정토포교원

한혜자 : 3층 건물 제일 위층에 있었어요. 원래 결혼식장으로 썼던 데였대. 밑에 지하실은 카바레인가 무도장인가 그랬어. (큰 웃음)
이진성 : 결혼식장이면 꽤 큰 건물 아닌가요?
한혜자: 별로 크진 않았던 것 같아. 법당 크기가... 그러니까 (주위 둘러보며) 여기 우리 김포법당보다 조금 작았을까? 뭐 대충 비슷했던 것 같아요. 입구에 사무실 같은 작은 방이 있었고 법당 옆에는 스님 방이 또 조그맣게 있었어요.

1991년 홍제동 정토포교원에서 열린 1차 법사수계식
▲ 1991년 홍제동 정토포교원에서 열린 1차 법사수계식

이진성 : 당시 법회하면 몇 분 정도 오셨어요?
한혜자 : 많으면 한 80명~100명 정도 됐던 것 같아.
이진성 : 여기 이 정도 크기에 100명이면 법당이 꽉 찼겠네요?
한혜자 : 그러게. 그땐 그랬던 것 같아요.
이진성 : 열기가 대단했겠네요?
한혜자 : 스님 법문이 워낙 좋았으니까. 나도 처음 왔다가 스님 법문에 뿅 가서 계속 다니게 된 거야. (웃음) 하루는 법당에서 법문 듣는데 진짜 부처님이 와서 법문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당시 정토포교원에서는 매주 법륜스님이 <수행법회>와 경전 강좌를 주재했고 보수법사님이 ‘부처님의 일생’을 강의했습니다. 한혜자 님은 그렇게 일주일에 세 번을, 목동에서 홍제동까지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며 다녔습니다.

바르게 못 살아서 죄송합니다

때때로 부산에 있던 각해보살님(정토회 고문, 2018년 별세)이 법당에 들렸습니다. 그럴 때면 법륜스님까지 한 자리에 모여 회원들의 수행을 점검하는 정담회를 가졌습니다.

한혜자 : ‘부처님 관세음 보살님, 바르게 못 살아서 죄송합니다. 욕심을 버리겠습니다.’ 이게 각해보살님께 받은 첫 기도문이에요. 그때 그 기도문 받고 스님한테 항의했어. 나, 바르게 못 산 거 없다고. (웃음)
이진성 : 스님이 뭐라시던가요?
한혜자 : 그때는 스님이 얼마나 날카로우셨는지 몰라. 지금은 진짜 부드러워지셨잖아요. 근데 그때는 아이구 찬바람이 진짜 쌩쌩 나지. 나를 보면서 “기도해 보세요. 아시게 될 겁니다” 하는데 느낌이 마치 무를 칼로 자르는 것 같아. 두 번 다시 질문을 못하겠더라고. (웃음)
이진성 : 본전도 못 건지실 거 왜 그러셨어요?
한혜자 : 정말 바르게 못 산 거 없는데... 억울해서 그랬지. 아버지 625때 돌아가시고 어머니 재혼하시고.. 힘들게 살았어도 정직하게 산다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바르게 못 살았다하니까.. 그런데 그 기도문 읽으며 매일 절 하다보니까 그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이진성 : 뭔데요?
한혜자 : 바르게 못 살았다는 게, ‘아 이게 남편 미워하고 원망하며 산 걸 말하는 거구나!’ 그렇게 자각이 되니까..

남편은 결혼 한지 몇 달 채 되지 않아 직장에 사표를 던졌고 이후 손대는 사업마다 다 실패했습니다. 술을 자주 먹었고 주사가 심해 집에서 행패를 부리곤 했습니다. 남편이 돈 벌어 오지 않아서 원망스럽고 술 먹어서 밉고 그래서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내 괴로움이 남편 때문이 아니라 남편에게 바라는 내 마음 때문’이란 걸 깨닫고 나니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직장에 사표를 낸 것도 지방 공장에 내려가기 싫어했을 한혜자 님을 위한 것이었고 술도 일이 잘 안 풀리니 화가 나서 먹은 거란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한혜자 : 각해보살님이 그래요. 화가 나니까.. 그게 술로 불 끄는 역할을 한다고.. 아, 우리 남편도 속에 불이 나니까 그랬구나..

2020년 생일날 남편 김용석 님과 함께
▲ 2020년 생일날 남편 김용석 님과 함께

시어머니 똥, 내 속의 똥

남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서서히 누그러질 무렵, 이번엔 시어머니 병환이 찾아 왔습니다. 폐암이라 했습니다. 노환이라 병원에선 수술을 포기했고 시동생의 제안으로 자연치료를 하게 됐습니다. 현미와 녹즙만 먹고 숙변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병수발은 당연히 며느리들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한혜자 님은 맏며느리였습니다.

한혜자 : 항문은 벌어지고 똥도 보이는데 못 누시더라고. 그래서 장갑을 끼고 이렇게 손가락을 넣어 똥을 퍼내려 하니까 이게 끈적거리기만 하지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관장을 한 번 더하자 그랬더니 인제 어머니는 밑이 빠지는 것 같고 힘들지. 사정사정해서 한 번을 더 했는데 그제야 숙변이 한 가득 나와요. 우리 시누는 막 도망가는 거야. 그 냄새가 얼마나 역겨운지 말도 못해요.
이진성 : 그때도 수행하신 게 도움이 되셨나요?
한혜자 : 마침 반야심경 강의를 듣고 있었어요. 반야심경에 ‘불구부정’이란 얘기가 나오잖아요. 내가 구역질 내는 거 보면서 ‘내 속에도 똥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런 반응을 하는 구나’ 했어요. 정말 경전 말씀이 체감이 되는 거예요.
이진성 : 시어머님은 그래서 어떻게 되셨나요?
한혜자: 그 치료가 효험이 있으셨는지 일어나셨어요. 근데 몇 년 괜찮으시다가 이번엔 치매에 걸리신 거예요. 심란한 마음에 문경에서 각해보살님을 한 번 더 친견하게 됐어요. 각해보살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어머니가 너무 큰 아들 걱정해서 그렇게 되신 거라고. 그래서 어머니께 그랬어요. “어머니, 걱정 마세요. 당신 아들, 내가 잘 돌볼 게요.” 그렇게 한 3, 4년 더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어요.

한참 남편과 시어머니에 관한 아픈 가족사를 듣다보니 부모님 없이 컸다는 한혜자 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졌습니다. 놀랍게도 한혜자 님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였습니다.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소학교 교사를 하던 중 아이들에게 민족교육을 시킨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그 때 나이 겨우 18세, 3년 형을 선고받고 형기를 마치자마자 곧장 징용에 끌려갔고 만주에서 해방을 맞았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와 결혼도 하고 간신히 안정을 찾아갈 즈음.. 이번엔 전쟁이 났습니다. 한혜자 님이 태어난 그 이듬해였습니다.

부모를 잃다

한혜자 : 아버지가 당시 경찰이셨던가 봐. 북한 사람들이 학살을 한 거지. 아버지 얼굴은 사진으로 밖에 못 봤어. 한 살 때 돌아가셨으니까..
이진성 : 세상에.. 어떡해요..
한혜자 : 그래서 처음에는 북한에 대해 감정이 안 좋았어요. 근데 통일기도 하면서는 그게 녹아지더라고... 이제는 그런 마음 없어요.

2017년 <전쟁반대 평화협상> 시위 현장 (가운데)
▲ 2017년 <전쟁반대 평화협상> 시위 현장 (가운데)

아버지가 죽었을 때 부부는 혼인 신고도 안 된 상태였습니다. 외할머니는 갓 스물도 안 돼 청상과부가 된 딸을, 더구나 법적으론 처녀인 줄 알면서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은 어머니와 함께 홍성 외갓집에서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된 어느 날, 어머니는 한혜자 님을 데리고 서산 작은 아버지 집에 갔습니다. 이제부턴 여기서 학교를 다닐 거라 했습니다. 어머니는 딸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떠났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한혜자 님은 그날 밤이 마지막이란 걸 알았다고 합니다.

한혜자 : 새벽에 깼어. 깼는데 엄마가 일어나 갈 때까지 일어나질 못하겠더라고. 내가 울고불고 하면 우리 엄마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그래서 계속 자는 척 했지. 어린 마음에 왜 그랬는지 몰라, 지금 생각해보면...
이진성 : 세상에.. 초등학교 2학년 어린 나인데 뭘 알아서... 눈물 나네요.

어머니는 재혼해 부산에 살다가 새로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영영 끊긴 것만 같던 어머니와의 인연은 한혜자 님이 나이 들고서야 다시 이어졌습니다. 어머니 집 식구들은 지금도 한혜자 님의 존재를 모릅니다. 하지만 어머니와는 가끔씩 통화도 하며 자연스럽게 지낸다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200배를 하세요

한혜자 : 왕래는 뭐 외삼촌 집에 오시면 한 번쯤 볼까.. 그니까 엄마한테는 크게 정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그때 헤어져서 그런지.. 그냥 엄마는 쌀쌀맞으니까 크게 기대를 안 해. 근데 보니까 나도 그런 성향이 있는 것 같아.
이진성 : 어떤 성향이요?
한혜자 : 쌀쌀 맞은 성격. ‘가족을 성불시키겠습니다. 남편에게 숙이겠습니다.’ 이게 각해보살님한테 받은 두 번째 기도문이거든. 그때 애들한테 200배를 하라 그러시더라고. 왜 그러실까 처음엔 잘 몰랐는데 200배 하다보니까 자각이 와요. ‘나도 이렇게 혼자 잘 컸는데 니들은 뭐, 못 클 이유가 어디 있느냐’ 하면서 아이들을 외면하는 마음을 내고 있더라고..
이진성 : 그래서 가족 성불은 성공하셨나요?
한혜자 : 하나도 못했어요. (웃음) 남편도 홍제동 있을 때 <깨달음의 장>은 다녀왔거든. 그래도 수행을 안 하니까 연결 안 되더라고요. 자기는 무교라고, 당신은 얼마든지 해도 괜찮은데 자기한테 강요하지 말라 그래요. 작은 애는 대학 졸업하던 해에 인도 자원봉사를 두 주 갔다 왔는데 그러는 거야. “엄마, 정토회는 다 좋은데 저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웃음) 너무 버려라, 버려라 해서 지금은 안 된대. 알아서 해라 그랬어요.

김포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왼쪽 아래)
▲ 김포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왼쪽 아래)

‘마음도 보시하고 생각도 보시하고 나는 가슴앓이 하더라도 남의 가슴앓이 더 생각하겠습니다’ 한혜자 님이 각해보살님에게 받은 마지막 기도문입니다. 1999년 서초동 정토회관이 완성되어 이사하고 모인 자리였습니다.

부처가 되는 지름길, 기도

한혜자 : 각해보살님이 저한테 “조상의 빚 있어요”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법륜스님한테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봤어요. 스님이 말씀하시길, 불자기 때문에 최종 목표는 부처가 되는 거 아니냐, 성불이 목표인데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인색함의 뿌리가 있다고, 그게 조상의 빚이라는 거야. 근데 그 뿌리를 빼기가 힘들다는 거지. 그래서 기부를 10만원 하기로 했으면 20만원 하라고 얘기해주시더라고요.
이진성 : 항상 궁금한 게 그런 기도문 주실 때 어떻게 우리 마음만이 아니라 우리 안의 인연과보까지 다 보실 수 있는 걸까요?
한혜자 : 혜안이 열리셨으니까 수행 점검할 때 지켜보시면 아시는 거겠지요. 여튼 기도문은 그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지름길 같아요. 기도하면서 그 기도문을 통해 스스로 자각이 되니까. 근데 사실 모든 기도문이 다 우리 수행문에 함축되어 있어요. 수행문은 누구한테나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기도문인거죠.

이진성 : 그런데 30년 넘게 기도 하면서 슬럼프는 없으셨나요?
한혜자 : 지금 우리 이진성 님, 막 환희심 나서 하잖아. (웃음) 처음 공부 시작하고는 저도 그렇게 환희심 나서 몇 년 쭉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 처지는 시점이 오더라고요. 그때 원효스님의 <초발심자격문>을 읽게 됐는데 끝부분에 이런 얘기가 나와요. ‘부서진 수레는 구를 수 없고 늙은 사람은 바꿀 수 없다.’ 이 구절을 읽고선 공부는 어떡하든 젊어서 해야겠구나, 나이 먹으면 수행이 더 힘들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재발심 한 거죠. 그 뒤론 슬럼프 같은 건 없었던 것 같아.

이진성 님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한혜자 님(실제 인터뷰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진행됐습니다.)
▲ 이진성 님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한혜자 님(실제 인터뷰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진행됐습니다.)

큰 아이의 위기, 내가 짓고 내가 받다

이진성 : 작년에 정토행자상 정진상 받으셨는데 그때 소감은 어떠셨나요?
한혜자 : 작년에 큰 아이 부부가 위기였어요. 큰 아이가 폭력을 행사하고 며느리가 경찰에 신고하고 별거하고 이혼 위기까지 갔었거든요. 아, 이게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거구나! 쟤네들이 나한테 그걸 보여주는 구나.. 엄마가 바르게 못 살아서 너희가 이런 고통을 받는 구나.. 이런 자각이 오면서 작년 한 해 기도를 오롯이 한 거 같아요. 결국 애들도 화해하고 다시 합쳤어요. 며느리한테 ‘참 고맙다, 감사하다’ 문자를 보냈거든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ㅋㅋ’ 이런 문자가 왔더라고요. 그런 위기도 내가 짓고 받는 것이지 남이 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다 공부거리더라고요.

이진성 : 어떻게 내가 원인을 지었다고 알게 되신 거예요.
한혜자 : 큰 애가 아빠가 하던 거, 나를 때리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이런 거를 똑같이 자기 마누라한테 했더라고. 우리가 잘못된 본보기를 보였으니까 그랬던 거잖아요.
전우성 : 그러니까 바깥 어른 잘못 아닌가요?
한혜자 : 나로부터인 거지. 그 사람 탓은 아니죠. 내가 잘 이해하고 받아줬으면 그렇게까진 안 했을 테니까.

열심히 받아 적다 무심코 던진 바보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아무리 많이 듣고 그 순간 이해했다 해도 스스로 깨치기 전에는 절대 안다 할 수 없다는 걸 또 다시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어느새 2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 창으론 늦은 오후의 햇살이 가늘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아껴두던 바보 질문 한 가지를 더 던졌습니다.

수행은 '당당한 나'를 찾아가는 길

전우성 : 수행을 잘 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한혜자 : 수행이란 그냥 꾸준히 하는 것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깨닫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꾸준히 하면서 중간 중간에 알아차리고 자각되는 게 많았어요. 그런 것 같아요. 부처님이 일러주신 길이 다 있으니까 그 길만 따라가면 된다.. 누가 찾아 주지 않는다, 내가 그 길에서 찾아내는 거다.
이진성 : 저는 기도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지금껏 살아온 과정들이 한 번에 쫙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경험을 했거든요. 그래서 잘 되는가 보다 그랬는데 금방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한혜자 : 그냥 하기 싫은 나를 봐야죠. 하기 싫구나, 그렇지.. 하기 싫은 게 당연하지 이렇게 위로도 해주고, 그러면 돼요.

이진성 : 저는 좋을 땐 너무 좋고, 싫을 땐 또 너무 싫어서..
한혜자 : 그게 널뛰기를 하죠. 하다보면 잔잔해 지면서 꾸준히 하게 돼요. 싫어도 하고 좋아도 하는 게 수행 같아요.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내가 당당해진 걸 알게 될 거예요.
이진성 : 자꾸 싫은 마음에 쫓아가 버리게 돼요.
한혜자 : 수행이란 원래 역행하는 거래잖아요.
이진성 : 역행이요?
한혜자 : 하기 싫은 마음을 하려니까 그게 역행하는 거잖아.
이진성 : 아...! 맞아요. 스님께서도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게 수행이라 하셨어요.
한혜자: 잘 된다, 안 된다.. 스프링을 당겼다 놓으면 제자리잖아요. 그래도 사실은 조금씩 앞으로 가는 거예요. 아무리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아도요. 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잖아요.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고.


인터뷰를 마치며 ‘꾸준히 수행하면 당당해진 나를 보게 된다’는 한혜자 님의 말이 마음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첫 통화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느낀 이 분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한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당당하다.'

인터뷰_이진성, 전우성 (일산정토회 운정법당)
글_전우성 희망리포터(일산정토회 운정법당)
편집_허란희(용인정토회 용인법당)

전체댓글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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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서

불대 학생일때 천결 입재하고 1차만일 30년 수행자 중에 하루도 빠지지않고 수행하신분이 과연 어느 분이실지 스님과 악수하시는 분이 누구실지 궁굼 했습니다. 어느날 화면속에 스님 악수하시는 보살님을 보며 와~~하고 박수치며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보살님 처럼은 못하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수행하겠습니다~늘 감사합니다.옆에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03-17 19:21:59

최화심

30년 한결같이 수행하신 수행자의 삶이 느껴집니다. 저도 45살에 정토회에 들어와 올해 10년째인데 30년 후인 75살에 당당한 수행자로 거듭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단지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2022-08-08 12:21:20

이의수

한혜자보살님의 수행담을 들어니 고개가 숙여지는군요 정토회의 산증인이신 보살님 오래도록 건강하시고 후배들을 위해 많은 도움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2022-08-03 11: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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