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실천

주1일봉사
감자 한 알이 내 밥상에 오르기까지

감자캐기 좋은 날

맑은 날씨 덕분인지 여주로 향하는 마음은 소풍을 떠나는 아이마냥 설렙니다. 널찍했던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논밭을 낀 지방도로로 들어서 한참을 달리자 어느덧 한 마을길로 들어섭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 한 흙길로 변했습니다. 실천장소 꼭지 도반이 보내준 길안내 사진과 눈앞에 보이는 갈림길을 맞추어보며 오른쪽 길로 조금 올라가자 몇 대의 차량과 도반들이 보입니다. 실천장소에 맞게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현장에서 도반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교차합니다.

탁 트인 여주 실천장소 전경
▲ 탁 트인 여주 실천장소 전경

여주 북내면 신남리에 위치한 약 만 평정도 되는 이 땅은 경기광주지회의 실천장소입니다. 여러 해 전 정토회원이 기증했지만 오랜 시간 무단경작지로 있었다가 지회의 실천장소로 배정되면서 관리가 시작되었습니다. 경기광주지회는 정토회 농사팀과 불사팀의 자문을 구하면서 실천장소 운영 방향과 계획을 세워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정토회원들이 함께 봉사하며 일과 수행의 통일을 체험할 수 있는 수도권 실천활동의 중심지로 만드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실천활동은 연초에 계획한대로 지회장, 농사담당과 실천장소 꼭지가 논의 후 일정을 잡고 공지를 합니다. 4월부터 10월 사이에 한 달에 두 번 정도 활동계획을 세워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정토회 농사팀에서 두북의 씨감자를 조달해주어서 200평 가량의 땅에 감자를 심었습니다. 7월 3일, 오늘은 드디어 감자를 수확하는 날입니다. 지난 6월, 김매기 활동을 진행한지 한 달 만입니다.

감자는 어디에 있나요?
▲ 감자는 어디에 있나요?

경기광주지회 실천장소가 두 곳이라 지회 활동이 중복되는 경우 봉사자를 찾기가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강원경기동부지부에서 봉사자를 모집해 주어서 서른 여 명의 봉사자들이 모였습니다. 실천장소에 도착해서 팔토시와 장갑을 끼며 어디가 감자밭인지 둘러보는 도반들을 향해 강원경기동부지부장이 한 마디로 정리해 줍니다.

“잡초가 없고 깨끗하게 정돈된 밭 옆에 정리되지 않은 밭이 우리 밭입니다!“

짧은 탄식과 웃음이 지나갑니다. 한 달 전, 이곳 감자밭에 와서 김매기를 했던 도반들은 감자를 덮을 정도로 길게 자란 잡초들을 보며 놀랍니다.

놀다 가면 되지!

봉사자 모두 둥그렇게 모여 서서 삼귀의, 수행문을 읊고 여는 나누기를 합니다.

반가움과 어색함이 감도는 여는 나누기 시간
▲ 반가움과 어색함이 감도는 여는 나누기 시간

“놀러온다는 생각으로 너무 들떠서 출발했나 봅니다. 도착해서 보니 제가 팔토시도 안 챙기고 모자도 안 가져 왔네요.”

여는 나누기를 마친 엄마 옆 꼬마 도반이 큰 소리로 말합니다.

“놀다 가면 되지!”

꼬마 도반의 명쾌한 해답에 모두 웃음이 터집니다. 이어 활동 설명을 듣습니다.

“두 명씩 짝을 지어서 이랑 한 줄씩 맡아주세요. 비닐을 먼저 제거하고, 여기 있는 호미를 하나씩 챙겨서 감자를 캐주세요.”

바로 감자밭으로 들어가 호미로 흙을 긁어내며 감자알을 건져 올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비닐 제거라는 우선 작업이 있습니다. 비닐 위에는 김매기로 마른 잡초와 흙이 엉켜있어 단박에 쉽게 걷어지지 않습니다. 흙과 마른 잡초를 고랑으로 비켜내고 감자가 비닐에 같이 끌려가지 않게 찢어가며 걷어냅니다. 걷어낸 비닐은 밭 입구에 모았습니다.

비닐 걷어내기
▲ 비닐 걷어내기

올해 씌운 비닐은 걷어냈지만 아직 여기저기 비닐조각들이 보입니다. 작년 외부인이 무단으로 감자농사를 하면서 비닐을 걷어내지 않고 감자를 캐냈던가 봅니다. 널려있는 비닐조각은 골칫거리 중 하나입니다. 작년과 같은 무단경작을 막기 위해서 올해 실천장소 열 군데에 ‘외부인 경작금지’ 표지판을 설치해 두었습니다.

아빠와 함께 온 꼬마 도반
▲ 아빠와 함께 온 꼬마 도반

비닐을 걷어내고 호미를 감자 옆 흙에 꽂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손으로 감자 주변 흙을 헤쳐서 감자알을 주워준 다음, 더 깊이 있는 감자알은 호미로 뿌리 근처 흙을 살살 파내면서 캐주세요.”

하마터면 호미로 감자알을 찍을 뻔 했습니다. 이틀 전 내린 비로 흙이 부드러워 손으로 조금만 헤쳐도 노오란 감자알이 고개를 내밉니다. 흙 속에서 나온 감자알들은 이랑 위 곳곳에 모아서 잠시 햇빛을 쏘여 말려줍니다. 이렇게 흙을 말려줘야 썩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답니다.

감자는 일광욕 중
▲ 감자는 일광욕 중

감별사와 장성들

50분 가량 지나서 휴식시간을 가집니다. 감자밭 옆 그늘로만 들어가도 한결 시원합니다. 도반들은 각자 가지고온 물을 마시며 땀을 식힙니다. 아직 임야 건축 허가가 나지 않은 이곳에는 화장실이나 수도 등 기반시설이 없습니다. 바구니, 호미와 장갑 등 도구를 보관할 장소도 마땅치 않아서 책임봉사자가 개인차량으로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봉사자들에게 미리 화장실과 수도가 없음을 공지하고 봉사시간을 2시간 내외로 줄여서 활동계획을 잡으니 봉사자들이 큰 불편 없이 활동에 임합니다.

바구니에 감자 담기
▲ 바구니에 감자 담기

10여 분의 휴식을 마치고 임은주 농사 담당 도반이 업무를 재분담합니다. 먹을 수 없는 파란 감자와 썩은 감자를 골라낼 줄 아는 감별사 5명을 뽑고, 큰 바구니에 담긴 감자를 밭에서 감별사 앞으로 들어 날라줄 힘이 좋은 장성 6명을 뽑았습니다. 다른 도반들은 계속해서 감자를 캐면서 다음에 무를 심기 좋도록 호미로 흙을 갈라줍니다. 감자를 수확한 뒤 8월에는 김장을 위한 무를 심을 예정이랍니다.

감별사에게 향하는 감자들
▲ 감별사에게 향하는 감자들

농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봉사자들이 많습니다. 농사 초보 봉사자가 지나간 이랑에 다시 한 번 호미질을 하니 굵은 감자알이 서너 개 더 나옵니다. 밭갈이를 놓친 이랑은 지나가면서 한 번 더 갈아주고 듬성듬성 잡초도 뽑습니다.

짧은 2시간의 활동이지만 강렬한 햇볕 아래에 있다 보니 쉽게 열이 오르고 금방 지칩니다. 다시 한 번 짧은 휴식을 하고 감자를 크기별로 종이상자에 담습니다. 큰 감자알, 중간 감자알, 조림용 작은 감자알로 나누어서 상자에 담습니다. 감자 한 알을 두고 중간 크기인지 조림용인지 왈가왈부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이 감자는 볶음용인가, 조림용인가?
▲ 이 감자는 볶음용인가, 조림용인가?

간장에 졸여질지, 채 썰려서 볶아질지 심판대에 서서 긴장하고 있는 감자를 상상하니 빙긋 웃음이 납니다. 오늘 여기서 수확한 감자는 농사팀의 지침에 따라 한 알도 빠짐없이 정토사회문화회관 공양간으로 갑니다. 크기별로 잘 담긴 감자상자들은 한 쪽에 잘 쌓아서 더 이상 햇빛을 보지 않게 신문지로 잘 덮어둡니다.

감자상자 신문지로 덮어주기
▲ 감자상자 신문지로 덮어주기

감자 한 알이 주는 감사함

활동을 마치면서 세 모둠을 지어 둘러앉고 닫는 나누기를 했습니다. 많은 도반들이 온라인으로만 보던 도반을 직접 만나서 반가웠고 소풍을 나온 것처럼 즐겁고 행복했다는 마음을 나눕니다. 지난 번 씨감자를 심고 김매기 활동에 참여했던 도반들은 그 사이 감자가 얼마나 컸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왔는데 잡초가 수북하게 자라있어 놀랐답니다.

꼬마 농부들
▲ 꼬마 농부들

실천활동을 신청한 봉사자가 많다는 희소식에 슬쩍 ‘이번에 나는 빠질까?’하는 마음이 올라왔지만 그 마음을 옆으로 치워두고 오길 잘했다는 솔직한 나누기를 해주는 도반도 있습니다. 대형마트 농산물 코너에서 20년째 일하고 있다는 도반은 내가 진열하는 농산물들이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지 처음 알았다며 밥상에 올라온 감자 한 알에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낀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늘 아래 닫는 나누기
▲ 그늘 아래 닫는 나누기

7월 3일, 여주 실천활동 봉사자들
▲ 7월 3일, 여주 실천활동 봉사자들

나누기와 사홍서원을 마치고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감자를 표현하는 주먹을 쥐고 사진을 찍습니다. 아쉬움의 작별인사를 하고 차량이 한 대씩 빠져나가는 사이, 몇몇 봉사자들은 남아서 널어둔 비닐을 말아서 봉투에 집어넣고 감자상자를 차에 싣습니다. 휴식을 취한 그늘 자리를 다시 살펴보며 깨끗하게 정리합니다.

잘 쓰이는 삶
▲ 잘 쓰이는 삶

임은주 농사 담당 도반이 빨아서 널어둔 목장갑들이 한 장 한 장 모자이크 붓다의 조각같습니다. 봉사자들이 쓴 호미와 장갑들이 제자리로 돌아간 모습이 잘 쓰이는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아 뭉클합니다.

수행에 활기를 불어주는 실천장소

여주 실천장소 꼭지 주소진 님의 소감으로 감자밭 이야기를 마칩니다.

“여주 실천장소와 가까운 이천지역 회원으로 이 소임을 맡았습니다. 다른 소임으로 바쁘지만 가끔씩 방문하는 실천장소는 소임으로써 부담과 책임보다는 힐링이 됩니다. 햇빛을 쐬고 땀을 흘리니 잡생각도 줄고 잠도 더 잘 잡니다. 작물을 재배하며 자연을 느끼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습니다. 지도법사님의 농사활동을 조금이나마 경험해보며 그냥 해보는 일과 수행의 통일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시대를 지나며 법당이 없어지고 온라인으로 활동하는 정토회에 도반들과 직접 만나서 함께 일하는 실천장소는 부족한 수행과 봉사에 활기를 불어주는, 꼭 필요한 수행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지회 다른 활동이 겹치는 날에는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봉사자들이 와서 활동하기도 합니다. 책임봉사자가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번 지부의 참여는 정말 큰 힘이었습니다. 실천장소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높아지고 책임봉사자들도 늘어나면 수도권 실천장소 중심지가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

감자캐기가 끝난 감자밭
▲ 감자캐기가 끝난 감자밭

▲ 감자캐기 실천활동 현장 속으로!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글_김난희 (정토행자의 하루팀, 강원경기동부지부 원주지회)
사진_이일중(강원경기동부지부장), 안교심, 임은주, 주소진(강원경기동부지부 경기광주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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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온라인활동에서 느끼지 못했던 땀흘려 일하고 봉사하는 좋은 체험과 함께 수행 도반들을 직접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셨기에 정말 값진것 같습니다. 봉사오신분들 다들 감사드립니다!

2022-08-02 18:06:07

일향화

잘 봤습니다 수확이 꽤 많네요 만평이라니 엄청 넓네요

2022-07-26 07:20:40

현광 변상용

직접 흙을 뭍히고 내 손으로 캐 본 감자라 식탁에 올려져 있는걸 보면 달리 보일 것 같아요.
여주는 그래도 집에서 가까워서 다음엔 꼭 함께 하고 싶습니다.
모두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2022-07-25 19: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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