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정토행자상 수상자
먼저 떠난 조카가 준 귀한 선물

2022년 정토 행자 정진상을 받은 백은정 님. 행복학교 진행자, 행복시민모임의 행복 센터장, 지금은 포항지회 지회장으로, 매일 새벽 도반들과 함께 수행하고 있습니다. 수행 정진과 봉사로 이어온 10년간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안녕 잘 가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저는 온통 아이 교육에 관련한 육아서를 찾아 읽었습니다. 어느 날, TV 종교 채널을 보다가 우연히 즉문즉설을 보았습니다. 그동안 제 주변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에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몇 번 더 들으면서 법당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지인과 함께 찾아간 곳이 포항 덕산법당이었습니다.

10-8차 천일결사 입재식 정진상
▲ 10-8차 천일결사 입재식 정진상

그 당시 저는 풀리지 않는 고민과 우울한 기분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시댁 조카가 오토바이 사고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생겨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때부터 누구에게나 사고는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늘 불안했습니다. 2012년 10월의 마지막 날, 수행법회를 들으며 제 안에 있던 여러 의문이 하나둘씩 풀렸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사고가 생겼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조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힘들었는데 “안녕 잘 가”라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10-8차 입재식 정진상 받았을 때
▲ 10-8차 입재식 정진상 받았을 때

법문을 들으면서 마음이 힘들수록 봉사도 빠지지 않고, 사회에 도움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내놓지 않았던 이야기를 1년 뒤 나누기 때 꺼내면서 치유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백중1천도재를 지내면서 마음으로 잘 보냈습니다. 불교대학 입학하기 전, 3개월간 매주 수행 법회 즉문즉설을 들으며 평소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바로 해소했습니다. 그렇게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법문이였기에 한주도 법당을 빠질 수 없었습니다. 둘째 아이 육아하면서 우울감이 있었던 저는 그런 법문이 너무 좋았습니다.

아버지의 애국심도, 어머니의 불안함도, 그대로 닮은 나

어릴 적 아버지는 애국자였습니다. 포항 영일군 문화원에서 사무국장 일을 오래 하고, 향토 발전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일정한 소득은 없었지만 지금도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저희 1남 2녀를 반듯하게 잘 키워 주었기에 어릴 때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줄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동네 과수원 일과 화장품 외판을 하는 등 알아서 생계를 꾸려나갔습니다.

저희 집은 늘 주말이면 일가친척들이 북적거렸습니다. 어머니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내색하지 않고 정성껏 음식해서 대접했습니다. 그 힘든 이야기를 막내인 저에게 하소연하듯 자주 했습니다. 사춘기가 되면서 어머니의 힘듦도 알았지만 ‘그렇게 힘들면 안하면 되지’라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맏며느리로서 책임을 다하면서도 생활고를 겪다 보니 늘 불안한 마음이 제게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결혼할 때도 같이 있으면 편안해서 좋았고, 제 말을 잘 들어주는 게 끌려서 결혼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하는 봉사를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외조해 주고 있어 고맙고 든든합니다.

2016년 인도성지순례 나란다대학 앞에서
▲ 2016년 인도성지순례 나란다대학 앞에서

사람을 보지 말고 법을 봐라

법당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봉사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매주 법회와 행사 일정에 맞춰 봉사하다 보니 과부하가 걸렸습니다. 담당 법사님에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마음이 혼란스러웠을 때 스님 법문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도반을 보지 말고 법을 봐라! 스님도 보지 마라!” 법당봉사자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그 도반들도 경전반을 갓 졸업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2016 인도성지순례 불가촉 천민마을 아이들과 함께
▲ 2016 인도성지순례 불가촉 천민마을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봉사도 같이했습니다. 궁금하고 의문이 들 때마다 신기하게 제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딱 맞는 법문이 나와 바로 해소했습니다. 그렇게 새벽 정진과 법문의 중요함을 잘 알았습니다. 그 후 2017년에 통일 특별위원으로 나가면서 하는 봉사마다 모두 재밌게 했습니다. 처음 법당 갔을 때 JTS 사전영상 법문을 보면서 이 봉사는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북한과 인도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소중한 한 끼의 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길거리캠페인 모금을 하지만 그때는 상가에 직접 들어가서 동서남북으로 일곱 군데를 차례대로 들어가서 주면 받고, 안주면 그냥 나왔습니다. 이 집은 잘살고 못 살고 판단하지 않고 들어간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선배 도반이 시범을 보여주고 저에게도 해 보라고 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덜덜 떨면서 했습니다.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면서 어떤 소임이든 두려움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2017년 한반도 평화 1인 릴레이 피켓시위 중
▲ 2017년 한반도 평화 1인 릴레이 피켓시위 중

포항과 경주에 행복학교도 열고 2018년에는 행복 센터를 열면서 센터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대경 지부에서 포항에 1호로 열어 장소부터 실내 인테리어 소품, 집기까지 직접 도반들과 함께 저렴하고 목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계약했습니다. 탁자, 의자, 실내 소품, 프린터, 정수기 등도 도반들이 보시했습니다. TV 모니터만 새것으로 구입하고 손수 일구며 그렇게 시작했던 곳이다 보니 의병 활동하러 나갈 때 나누기하면서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한참 재미있게 하는 중에 다른 소임으로 자리를 옮기니 섭섭한 마음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라고 생각하니 속이 시원했습니다. 10차 년을 시작하면서 선거로 서원 행자인 경주정토회 총무로 선출되어 “예. 하고 합니다”로 받긴 했지만, 포항과 경주지역 6개 법당을 어떻게 운영할까? 걱정이 앞서 뜬눈으로 밤을 꼴딱 새우기도 했습니다.

2018 양덕행복학교 참가자와 함께(왼쪽 두 번째 주인공)
▲ 2018 양덕행복학교 참가자와 함께(왼쪽 두 번째 주인공)

영천, 경주, 포항(남구, 북구), 영덕, 울진까지 통일 특별위원에서 3년간 소임을 하다 정토회 총무가 되었습니다. 총무가 되니 행정적인 것보다 도반들과의 마찰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3개월쯤 지나면서 ‘지역적인 환경이 달라서 그렇구나’를 이해했습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꾸준한 수행과 300배 정진을 열심히 했습니다. 법당에서 연말과 연초에 3천 배와 월 1회씩 천 배를 했던 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처음 법당 갔을 때부터 함께하는 정진과 봉사를 거부하지 않고 하면서 기초가 탄탄해서 잘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모자이크 한 조각의 힘

2020년 가을 불교대학이 온라인으로 개편되어, 남산 순례도 온라인으로 둘러보았습니다. 그때 천룡사 절을 보다가 ‘이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이 절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용성조사의 유훈 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역마다 으뜸 절 관련해서 법문도 들으며 법사님에게 질문했는데 천룡사는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정토회에서 맡아서 관리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마다 도반들과 함께 산을 올랐고 사시 예불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요일마다 사시 기도에 참여하는 도반들이 생겼고 경주에 있는 노보살님들은 토요일에 정진하며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 천룡사 앞마당, 맨 앞줄 첫 번째 검정색모자  주인공
▲ 2020년 12월 천룡사 앞마당, 맨 앞줄 첫 번째 검정색모자 주인공

2021년 경주정토회에서 양덕법당이 제일 먼저 정리했지만 원상복구 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건물주는 20년 전으로 복귀를 원하고, 정토회에서 해줄 수 있는 것과 차이가 있어서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법정 소송까지 가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수요일마다 천룡사에서 기도 정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복을 빌러 간 것은 아니지만 단합하는 차원에서 원을 세우고 도반들과 함께 가는 게 제 개인적으로는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두 달쯤 되었을 때 기도하고 내려오는데, 철거 담당하는 사람에게 '한 번만 더 건물주를 만나보면 어떻겠냐?'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건물주가 원하는 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니 복구 비용이었습니다. 마지막 얼마 안 되는 복구 비용을 건물주에게 주고,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았습니다. 법당철거 후 두 달간의 긴 실랑이를 도반들과 천룡사에서 정진하면서 복잡한 마음을 잘 다스리고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제24차 그룹장 회의
▲ 제24차 그룹장 회의

다른 법당들도 정리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도반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다 해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주법당은 보증금이 1억 정도 되는 큰돈이었는데 7년이나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곳은 매주 천룡사에 기도 다니는 노보살님이 연결해서 잘 마무리 했습니다. 경주정토회에서 법당 6개를 다 정리하면서 가장 어려웠지만 뿌듯한 일이었습니다. 정진을 빠짐없이 했고, 법회 들으면서 관점을 놓치지 않았는지 확인했습니다. 도반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으로 잘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정진과 화합의 시간

2021년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되어 포항지회장을 맡으며 매일 아침 두 그룹으로 나눠 정진했습니다. 한곳에서는 전법 활동가들이, 다른 곳에선 그룹장이 대문을 열고 일반회원과 함께하는 정진이 이어졌습니다. 모둠장임에도 기도가 안 되는 도반이 있었기에 공동 정진을 통해 기도를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정일사2〉 이후 모둠별로 연계된 일반 그룹과 매일 아침 6개의 기도 대문을 열고 모둠별 공동 정진을 하다 10-9차를 맞았습니다. 불교대학, 경전대학 학생들도 함께 참여해 지금도 공동 정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경전대학은 졸업했지만 혼자 하기 힘들었는데 같이 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었고 전법활동가들은 일반회원들이 함께해서 힘이 난다고 했습니다.

처음 정진상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받지 않겠다고 강하게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정진상은 혼자서 정진 많이 해서 받는 상이 아니었습니다. 도반들을 독려하면서 회원들과 함께 정진하며 봉사 활동해서 받는 상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도반들과 함께한 공동 상이기에 대표로 제가 받아서 입재식 마치고 도반들에게 화상으로 만나 “축하합니다”라며 돌려주었습니다.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고 어제를 돌아보며 나를 알아가는 공동 정진. 혼자가 아닌 함께라서 받은 상이라는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2022년 5월 포항지회 모둠장 주례회의를 마치며 (왼쪽줄 첫 번째 주인공)
▲ 2022년 5월 포항지회 모둠장 주례회의를 마치며 (왼쪽줄 첫 번째 주인공)

힘들어도 재미있는 해탈의 길

10년 전 법당 갔을 때 시키는 것을 무조건 다하다 보니 힘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당신은 정토회 왜 다니는데?” 갑자기 물었습니다. “나는 해탈, 열반하고 싶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해탈이 ‘괴로움이 없는 것’ 그것도 정확히 모르면서 불교대학에 다니고 있어서 그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불교 공부만 하는 줄 알았는데 봉사도 계속하고 힘들어 보이니까 당연히 그럴만 했습니다. 그 후로도 '인도성지순례'도 다녀오고, '동북아역사기행' 갔을 때도 남편은 묵묵히 견디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그때 사진을 보며 “인도 갔을 때 당신 얼굴이 너무 환하더라” 하길래 “당연하지! 거기 가면 밥 다 주지. 잠만 자고 여행만 다니면 되는데 얼마나 좋겠어.” 했습니다.

2022년 상반기 정일사 기간 새벽 공동 정진 후 도반들과 함께(왼쪽 줄 첫 번째 주인공)
▲ 2022년 상반기 정일사 기간 새벽 공동 정진 후 도반들과 함께(왼쪽 줄 첫 번째 주인공)

그 전부터 저는 봉사 일로 늘 바빠서 가족들을 일일이 챙겨 주지 않았지만 모두 자립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아들이 옆에 있어서 묻고 배우면서 잘 모르는 것도 척척 할 수 있었습니다. 온종일 회의하고 일이 끊기지 않아서 잠시 밖에 나갈 틈도 없이 하다 보니 아이들이 저를 걱정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에게 “엄마가 하는 일이 많아서 힘들 때도 있고 재미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예쁜 옷 입고 운동 다니고 다이어트하고 친구들과 차 마시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고 좋단다. 진짜로 힘들면 벌써 그만뒀겠지”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느새 의젓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교육이랄게 없이 지나갔습니다. 관심은 가지되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고 믿고 기다려 주면서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정토회 오기 전에는 망망대해 바다 위에 혼자 떠 있는 느낌으로 뭘 해야 할지 몰랐는데, 지금은 목적지를 향해 확연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게 제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입니다. 앞으로도 늘 지금처럼 봉사할 것입니다. 여기서 더하면 과부하가 생겨서 오래 못 할 것이고, 덜 하면 나태해져서 게으를 것 같아 지금처럼만 하겠습니다.


인터뷰하는 내내 힘이 넘치는 목소리에 저도 에너지를 듬뿍 받았습니다. 인도성지순례 갔을 때가 가장 편하고 좋았다는 이야기에 평소 얼마나 바쁘고 힘겹게 보냈을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봉사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는 않는다. 도반들과 함께라서 주어지는 소임을 기꺼이 받았고, 정진상 또한 도반들의 것'이라는 소감에 저 또한 감동했습니다.

글_이재선 희망리포터(대경지부/동대구지회)
편집_조미경(경남지부/김해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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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중불교 7대 행사의 하나. 돌아가신 조상님을 생각하며 천도재를 지냄. 

  2. 정일사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의 준말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 

전체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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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

오랜시간 정진하고 활동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2022-08-29 19:31:31

보명

굉장히 감동적입니다. 부모에게서 받고 형성된 습성 중에 장점은 살리시고, 단점은 꾸준한 수행으로 극복하신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길에 부처님 법과 스승님의 법문, 그리고 도반들이 함께 있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2022-08-17 07:30:57

보현

고맙습니다

2022-08-03 10: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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