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정토행자의 하루
정토불교대학
쉽지 않은 길 위에서 견고해지다

정토불교대학을 시작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개인 법당에서 편하게 법문 듣고, 화상으로 도반들과 나누기합니다. 그런데 정토불교대학의 첫 시작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불교대학 30주년을 기념하고자 그간의 역사를 정리하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행자의 하루 팀은 2022년 3월 16일, 보수법사님을 만나 정토회 30년 역사 중 정토불교대학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의 역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의 시초

1991년, 부처님 말씀과 지도법사님의 법문을 넓게 펼치면 좋겠다는 의견을 시작으로 정토불교대학을 준비했습니다. 정토회 회원과 일반인들 대상이었습니다. 불교대학 장소를 대각사로 정하고 보수법사님은 교육과정 구성을, 덕생법사님은 전법을 맡았습니다.

인도 성지순례 중 보수법사님
▲ 인도 성지순례 중 보수법사님

기본 교육과정은 지도법사님이 중앙 불교교육원에서 했던 '현대인을 위한 불교사상 강좌'를 기본으로 했습니다. 실천적 불교, 부처님의 생애, 근본 교리, 불교 변천사 등을 포함하여 총 10과목이었고, 강사진은 동국대 교수, 재가법사 등 총 10명 정도였습니다. 1991년 9월 8일 정토불교대학 1기 입학식을 치렀습니다. 200명 정도 되는 수강생 중 3분의 1만이 정토회 회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정토회 회원이 아닌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주일 3일(월, 수, 금) 3개월 과정으로 주간, 야간, 통신, 3개 반으로 구성했습니다. 통신반 학생들은 입학식, 중간 수련 2회, 졸업식에만 직접 참석했고, 일주일 강의를 녹음한 3강 카세트테이프를 교재로 받아서 수업했습니다. 1991년 12월 8일 졸업식에서 총 149명(주간반 25명, 야간반 42명, 통신반 8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대각사에서의 정토불교대학 수업은 1992년까지 계속했습니다.

정토회 활동 보고서에 남아있는 불교대학 운영 기록
▲ 정토회 활동 보고서에 남아있는 불교대학 운영 기록

보수법사님의 찾아가는 정토불교대학

1993년부터는 서초동 교대 정문 앞에 있던 정토법당으로 수업 장소를 옮겨 유수스님과 보수법사님이 직접 강의했습니다. 이때 통신반은 없어졌습니다. 1994년에 홍제, 서초, 성남, 동래에서 정토불교대학을 시작했습니다. 1995년에는 홍제, 서초, 동래, 경주에서, 1996년에는 동래, 대구, 대전, 경주 등으로 정토불교대학을 확장했습니다.

초기에는 홍제, 서초, 동래, 경주, 대구 등 법당이 있는 곳에서 먼저 정토불교대학을 진행했고, 이어서 대전, 청주, 마산, 울산 등 가정 법회를 열던 곳에서 정토불교대학을 하면서, 법당의 체계를 잡았습니다. 불교대학이 자리 잡으면서 법당도 마련했습니다.

법당이나 가정 법회가 없는 지역에서는 절이나 회관같은 외부 장소를 빌려서 먼저 지도법사님의 '금강경' 혹은 '반야심경' 강좌를 개설하여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강좌를 마칠 때 쯤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도록 안내했습니다. 기존 가정 법회에 참가하던 사람들과 경전 강좌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해서 '바른 불교'와 '정토회의 사상과 취지'를 공부하고 졸업하면서 '수행법회'에 참석하도록 안내했습니다. 가정 법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정토불교대학을 운영하면서, 기존 회원들은 수행하고 봉사하면서 단단해지고, 새로운 회원들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법당을 개설했습니다. 지역 법당을 열고 정토회 회원이 늘어나고 지역법당을 여는 과정에서, 정토불교대학은 마중물 역할을 했습니다.

박종숙 국장: 유수스님과 보수법사님, 두 분이 정토불교대학 강의를 직접 하셨나요?
보수법사님: 네. 지도법사님이 강의하셨던 내용을 골간으로 해서 유수스님과 제가 강의했습니다. 유수스님은 서울에서 강의하셨고, 지방은 주로 제가 다녔어요.

유수스님과 보수법사님
▲ 유수스님과 보수법사님

박종숙 국장: 강의 다니실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셨어요? 법문은 언제 하셨나요?
보수법사님: 대부분 새벽차로 다니거나 밤 기차로 다녔어요. 새벽에 도착하면 목욕탕에 가서 씻고 법당에 들어가서 법문을 했어요. 한 지역에 주간과 저녁반이 같이 있으면 오전 법회 후에 쉬었다가 저녁 법문을 했고, 주간과 저녁반이 다른 지역에 있으면 오전 법회 후에 점심을 먹고 이동해서 저녁 법문을 했어요. 예를 들면, 월요일은 대구에서 오전과 저녁, 화요일은 부산에서 오전과 저녁, 수요일은 경주에서 오전과 저녁, 목요일 오전은 마산에서 저녁은 울산에서, 금요일 오전은 대전에서 저녁은 청주에서, 토요일은 광주에서 정토불교대학을 진행했어요.

박종숙 국장: 일주일 내내 전국을 다니시며 법문하는 생활을 몇 년 하신 거예요?
사회자: 93년부터 비디오테이프 시대 이전인 2000년까지니까, 7년간 하신 거네요?
보수법사님: 아마 그럴 거예요.
사회자: 계속 차에서 주무시고 일주일 내내 법문하면서 어떻게 7년 동안 다니셨어요?
보수법사님: 주간반과 저녁반 법문이 끝나면, 법당이 있는 곳이면 그 법당에서 자고 새벽차로 이동하거나, 혹은 밤차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어요. 그때는 재밌었죠. 스스로 공부도 많이 됐어요. 일주일 동안 같은 내용으로 오전 오후로 총 10회 이상 불교대학 강의를 하잖아요. 하다 보면 내 속에서 분명하지 않았던 내용이 더 명확해지고, 내 삶 속에서 새로운 것이 적용되기도 하고, 더욱더 세밀하게 관찰되기도 하지요. 그래서 똑같은 강의인데도, 월요일 오전에는 90분 동안 법문했는데, 금요일 저녁 법문 시간은 2시간 반이 될 때도 있고 그랬어요. (웃음) 왜냐하면, 스님의 법문 중에 나의 상담 경험과 연관된 것들이 나와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용을 추가하곤 했죠. 공부가 많이 되고 재미가 있었어요. 재밌으니까 했죠.

쉽지 않았기에 견고해질 수 있었다

박종숙 국장: 정토불교대학 진행하면서 쫓겨난 적도 있으시다면서요?
보수법사님: 정토불교대학을 진행하면서는 아니고 정토불교대학을 준비하는 지도법사님 경전 강좌를 할 때였지요. 마산의 어떤 보살님이 스님 법회를 하고 불교대학을 개설하고 가정 법회를 열려고 100평짜리 고급아파트를 얻었어요. 그때 사람들이 100명이 넘게 왔었는데 두 번 하고 쫓겨났어요. 처음에 100명 넘는 사람이 오자 주차장도 문제가 되고, 엘리베이터도 문제가 되고, 출입구 관리시스템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답니다. 하지만 첫날 왔을 때는 집들이 한다고 생각해서 봐줬는데, 다음 주에 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오니까 그 아파트 주민들이 난리가 난 거예요. 그렇게 두 번하고 쫓겨났어요.

그래서 급하게 다른 장소를 구하던 중에 어떤 절에 주지 스님의 허락을 받아서 법당을 빌렸어요. 지도법사님의 ‘금강경 강좌’를 개설했는데 그곳 스님들이 처음에는 별문제 안 삼았어요. 그런데 그 절에서 오래 다니셨던 고정 신도님들이 문제가 되었지요. 그 신도님들은 처음에는 분위기가 별로 안 좋았어요. 지도법사님이 그 당시에는 젊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으셨고, 그분들은 지도법사님의 법문을 들은 적도 없었으니 좀 시큰둥했었지요. 법회를 시작했는데 의식도 따라 하지 않고, 맨 뒤쪽 벽에 기대앉아서 '얼마나 하나 보자'라는 태도로 있다가, 우리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자세가 바뀌고 인상이 펴지면서 점점 법문에 빠져드는 모습이 보였어요. 전에는 듣도 보도 못했던 법문을 들은 신도님들이 너무 좋아서 주지스님께 지도법사님에 대한 찬사를 하면서 주지스님과 비교하니까, 그 절에서도 계속 법문을 할 수 없게 돼서 결국은 쫓겨났어요. 그래서 마을회관을 빌려서 했지요.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 했던 분 들 중 ‘우리 절이 있어야 하겠다’라면서 마음을 낸 보살님들이 마산법당을 마련하고 불교대학을 개설했지요. 마산만이 아니라 울산, 대전, 청주, 광주 모두 역사를 들으면, 진짜 재밌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사회자: 그 당시 학생들의 괴로움이 무엇이었고, 어떻게 해소되었을까요?
보수법사님: 거의 95%가 가정 문제였고, 남편이나 자식과의 문제로 힘들어 오신 분들이 많았어요. 스님의 법문을 듣고 기도하면서 괴로움이 많이 사라지고, 불교대학에 입학했죠. 불교에 관심이 있거나 공부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고, 개인의 괴로움 때문에 오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때, 월광법사님(현 광명지회 지회법사)이 마산에서 사셨는데 직장 끝나고 매일 저녁 동래까지 오셨어요. 대단하셨죠. 그 법사님은 자기 삶의 중심에 대한 고민으로 오셨어요. 스님 법문 듣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 분 중 한 분이시죠.

사회자: 기본 다섯 명이란 불교대학 개설기준은 그때부터 있었던 건가요?
보수 법사님: 5명 이상 기준은 영상 법회를 연 후부터이고, 그때는 보통 15명에서 20명쯤 있었어요.

사회자: 법사님이 전국을 다니시며 강의하실 때 지금처럼 즉문즉설 같은 시간이 있었나요? 아니면 교리만 설명하셨나요?
보수법사님: 그때는 법문이 끝나면 바로 질의응답을 했었지요. 지금의 불교대학 내용을 그때도 그대로 진행했었는데, 법문을 마치면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질문이 불교대학 내용도 있고 개인 가정사나 수행에 대한 내용도 있었지요. 결국은 지금의 즉문즉설 같은 형식이었지요. 물론 지도법사님의 즉문즉설과는 깊이가 아주 다르지만요. 법문과 질의응답을 따로 하는 것은 영상 수업으로 바뀐 다음부터 했어요. 지금 지도법사님이 한 달에 한 번 즉문즉설 하시는 것처럼 특강으로 했어요. 8회 법문한 후, 하루를 정해서 특강을 했어요. 예를 들면, ‘부처님의 생애’를 강의하고 나면, 그 내용을 정리해주는 것처럼요.

박종숙 국장: 하루 정해서, 질의응답을 집중적으로 하셨다고요?
보수법사님: 예. 영상 수업으로 바뀌면서요. 왜냐하면, 그때는 영상 수업이 실제로 가능할지를 의심스러웠거든요.
박종숙 국장: 지금 우리가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것은 영상에서 영상으로의 전환이지만, 그때는 직강에서 영상으로 바뀌는 것이니 그때가 오히려 지금보다 고민이 더 컸다는 거네요?
보수법사님: 예. 그땐 고민이 컸죠. 스님이 오시면 100명쯤 오는데, 제가 가면 약 열 명쯤 왔죠, 뭐. 열 명이 채 안 올 때도 있었어요. 요즘에는 법당이 깔끔해서 수행 처소 같잖아요. 예전에는 꾸질꾸질했어요. (웃음) 인테리어 공사 전혀 안 하고, 벽지도 새로 안 발랐지요. 돈이 없었으니 리모델링은 거의 없었고, 꼭 필요한 것만 최소로 했었지요. 법당에 처음 온 사람이 수행 처소로 느끼기 어려웠어요. 점 보러 온 사람이 많았다니까요. 생각해보세요. 절이라고는 하는데 분위기는 심상치 않고, 스님도 안 계시고, 보살님들(현재 법사님들)만 앉아있어. 가끔 머리 깎지 않은 어떤 법사가 오는데, 기존 스님들 법문과는 달라. 그러다가, 영상으로 바뀌면, 'TV 틀어놓고 장난하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그 기간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불교대학에 안착시킬 수 있을까’하고 엄청나게 고민했어요. 그 방책 중의 하나로 ‘질의응답 법문’을 생각해 낸 것이지요.

영상시대에 발맞추다

2000년, 정토 법당에서 시작한 즉문즉설 법회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려서, 인터넷으로 스님 법문을 보았습니다. 지방으로 보내달라는 요청에 즉문즉설 법문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버스로 보내 지역에서도 보기 시작했습니다. 서초법당에서 진행한 정토불교대학 법문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지역 법당으로 보냈습니다. 그 비디오테이프를 TV로 함께 보는 가정 법회 방식으로 정토불교대학을 운영했습니다.

2008년에서 2009년 동안, 일만 명 전법을 달성하면서 TV 대신 DVD와 스크린을 사용했습니다. 이때, 정토불교대학이 크게 확장되었고, 정토 행자가 법당의 법회를 직접 운영하는 방식으로 변했습니다. 2010년, 서초법당에서 진행한 즉문즉설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지도법사님은 전국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열고, ‘힐링 캠프’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방송 출연을 계기로 2014년에 또 한 번 불교대학 학생들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 영상법문은 1999년 서초법당 개원 기념 백일법문을 녹화해서 사용했다가, 중간에 출가열반일 용맹정진 8일 법문을 녹화해서 한 번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부터 정토회가 새로운 2차 만일을 시작하면서 일반인들이 더 쉽게 불법의 핵심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법문으로 바꾸기 위해서 지난 3월부터 지도법사님이 직접 생방송으로 강의하는 것을 녹화하고 있습니다.

1999년에 녹화한 서초법당 개원 기념 백일법문과 출가 열반 용맹정진 8일 법문에 이어서, 2022년 현재 진행 중인 지도법사님이 직접 생방송으로 강의하는 정토불교대학 법문 전체를 녹화하고 있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에서 (법륜스님 왼쪽이 보수법사님)
▲ 인도 성지 순례에서 (법륜스님 왼쪽이 보수법사님)

발품이 만든 기적

박종숙 국장: 1999년 정토회관 건립 때의 법문을 녹화해 놨다가 2000년부터 비디오테이프로 바꾼 거네요. 비디오테이프로 바꾼 후부터는 유수스님과 보수법사님께서는 현장 강의를 안 하신 거예요? 아니면 병행하셨어요?
보수법사님: 그때,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씩 가서 질문을 받았죠. 지금의 특강처럼 만나서 정리해주고 지원했어요. 그리고 수행 법회 법문을 했지요. 영상 불교대학에서 수행 법회로 안착하는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법회가 영상 법회로 정착되기 전까지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정토불교대학을 하던 순서대로 수행 법회를 하면서 또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박종숙 국장: 유수스님과 보수법사님의 발품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속속들이 들어가 보면, 정말 소중한 시간에 관한 이야기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저희는 3년 소임하고 나면 지겨워서 (웃음) 다른 소임을 받고 싶은데, 이리 오랜 세월 동안 한 가지 일을 계속하시는 게 참 대단하십니다. 법당이 없던 그 시절에 집마다 돌아다니시면서 밤차로 이동하셨다는 것을 새롭게 알고 감동했습니다.
보수법사님 : 갑자기 진짜 민망하네요. (웃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햇 수로는 7년이지만, 중간에 교통사고가 나서 1년쯤 쉬었으니 한 6년쯤 했네요. 불교대학은 6년쯤 하고, 영상으로 바뀌면서 불교대학 지원과 수행 법회로 3년가량을 했어요. 저는 기차 타는 걸 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너무 재밌었어요. 기차를 타고 오가면 항상 계절을 생생히 볼 수 있어요. 특히 봄에 꽃이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매일 매일 조금씩 올라오면서 피잖아요. 가을 단풍은 북쪽에서 차츰 남쪽으로 내려가잖아요. 그게 너무너무 재밌고 좋았어요. 역마살이 있나 봐요. 저는 요즘이 더 힘들어요. 그때는 딱 하나의 일, 많아야 두 가지 일 정도였는데, 요즘은 하루에도 여러 가지 일하고, 회의도 하루에 한 번 두 번 세 번도 하잖아요. 요즘, 정토 행자님들은 정말 대단하세요. 오늘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여러분을 뵙게 돼서 반갑고 기분 좋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보수법사님과의 인터뷰(아랫줄 가운데 보수법사님)
▲ 보수법사님과의 인터뷰(아랫줄 가운데 보수법사님)


보수법사님과 같은 정토 행자들 덕분에 정토회가 계속되고, 제게까지 법이 전달된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 해 동안 쉼 없이 밤차로 전국을 오가며 보통 사람이라면 하지 못했을 일을 한 보수법사님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이 좋은 불법을 전국에 퍼뜨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지 않을까요? 또한, 그런 원을 바탕으로,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돼’라는 제한을 두지 않았기에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재밌으니까 했지’라고 툭 던지는 보수 법사님의 간결한 한마디가 큰 울림이 되어 가슴이 따뜻합니다.

글_최미영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서대문지회)
편집_성지연(강원경기동부지부 경기광주지회)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전체댓글 35

0/200

김정은

감사합니다

2022-11-10 13:48:57

명일

법사님 이야기 읽으며 기차타고 멀리 광주까지 오가시던 생각이 납니다. 법사님 은혜로 이 좋은 법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9-23 12:32:31

묘선주

편안하게 멀리서 사진으로라도 법사님 뵐 수 있는 것에 너무 감사합니다. 뵙고 싶어요~
법문이나 스님의 하루 정토지를 통해 소식 전해받고 있긴 했지만 생생한 인터뷰로 정토의 역사와 여기까지 만들어오신 걸음걸음이 느껴져 감동입니다.
이 자리에서 감동적인 이 글을 읽기까지 고생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2022-08-01 02:15:39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정토행자의 하루’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