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정토행자의 하루
내가 세상의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정토행자의 하루 편집자 회의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한 기사를 준비해보자는 안건이 나왔습니다. 편집자들의 '부처님 오신 날'에 대한 소회를 나누다보면 어떤 기사거리가 나오지 않을까해서 돌아가며 나누기를 시작했습니다. 제 차례가 되자, 저도 모르게 "저는 '부처님 오신 날'이든 '크리스마스'든 '생일'이 불편해요."라는 첫마디가 튀어나왔습니다.
언제든 일어나는 생각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편안한 도반들과의 나누기에서 저의 집착을 발견한 이야기. 살짝 들려드릴게요!

열 두살의 생일날
▲ 열 두살의 생일날

그냥 지나칠 뻔 했잖아!

대학교 4학년 때 만나 이제는 모두 결혼하고 서로 다른 지역에 사는 15년 지기 친구가 있습니다. 3월의 어느 날 케이크 선물교환권과 함께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왜 생일 알림 안 해놨어?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 했잖아!.”
“촌스럽게 뭘 그런 걸 해...”
“다들 아이 낳고 정신없이 사느라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데 이럴 때라도 연락해야지.”

매년 제 생일은 잊지 않고 챙겨주는 유일한 친구. 서로 주고받는 선물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귀찮을 때도 있어서 제가 은근슬쩍 생일을 잊은 척 챙겨주지 않는 해에도 이 친구는 한결같이 제 생일을 챙겨줍니다.

사실 저는 ‘생일’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달깍거렸습니다. 내 생일이든 친구의 생일이든 생일이라는 단어가 저는 불편했습니다. 매년 지인들을 챙기는 것도 버겁고 생일을 축하받을 때도 기쁜 마음보다는 부담감을 먼저 느꼈습니다.

열세 살의 생일날

나는 왜 가볍게 축하하지도, 축하받지도 못할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니 열세 살의 생일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우리집 첫째로 태어나 매년 엄마가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생일상을 차려주었습니다. 생일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불고기, 잡채, 딸기, 돈까스, 조각피자에 더해 제과점에서 파는 제일 큰 케이크가 생일상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친구 동생들까지 초대해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 북적이는 아주아주 성대한 생일파티를 치렀습니다. 다른 친구들 생일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동네에서 가장 큰 파티였던 것 같아요.

동네에서 가장 큰 잔치였던 나의 생일파티
▲ 동네에서 가장 큰 잔치였던 나의 생일파티

열세 살 생일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작년까지 휘황찬란하게 차려져 있던 생일상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안방에 등지고 누워있는 엄마만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케이크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집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마음이 아픈 엄마는 몸이 아픈 척 등지고 누워있던 걸까? 하지만 엄마가 아픈 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제 생일상과 케이크를 찾느라 안방과 주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열 세살의 생일은 작은 케이크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엄마가 챙겨주지 않으면 나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무렵 세상을 알아가면서 제 마음엔 더 큰 상처들이 새겨졌습니다. 매일 새벽에 출근하는 아버지는 사실 어느 회사에도 소속되지 않은 일용직 노동자라는 사실. 그래서 우리집은 매우 가난하다는 사실. 반장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았지만 남자여자 성별을 갈라 재투표를 하고 제가 부반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반장이 된 남자 아이 엄마의 촌지 때문이라는 사실. 중학교 입학금이 없어서 돈을 꾸기 위해 엄마가 울먹이며 여기저기 친척들에게 전화하던 모습. 제가 살고 있는 이런 세상은 내가 세상의 주인공인 줄 알았던 저에게 큰 성장통을 안겨주었습니다.

특별해지자!

3월 19일은 온전히 나만의 날인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같은 반 친구 두 명과 제 생일이 같았습니다. 같은 날 생일인 급우들은 저보다 더 많은 축하를 받고 더 많은 선물을 받은 것처럼 보였어요. 내내 웃고 있는 그들은 한없이 행복해보였습니다. 반대로 저는 ‘아,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한없이 우울하고 슬픈 생일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생일’이 불편해진 것 같아요. 세상의 주인공도 아닌데 생일은 축하해서 뭐하나. 누구나 태어나고 죽는 건 다 똑같은데 도대체 무얼 축하하는 걸까. 이런 회의적인 생각이 제 깊은 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특별하게 태어난 것이 아니니 내 능력으로 특별함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대학교는 차석으로 졸업하고, 회사에서도 입사한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우수직원표창을 받을 만큼 모든 일에 성심을 다 했습니다.

특별하고자 했던 제 신념은 저 스스로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저와 제 주변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맞춤법을 틀리는 친구들에게는 하나하나 일러주고, 쓰레기를 버리거나 무단횡단을 하기라도 하면 심하게 화를 냈습니다. 친구의 알바비를 제대로 정산하지 않은 사장을 고소하자며 제가 나서서 소장을 써주고 함께 경찰서에 가서 소장을 접수해 주기도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남자직원들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 너무 자주 자리를 비운다며 건의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모든 일에 빈틈없이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관계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계속 부딪히는 일이 많았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쌈닭'이라 불렀습니다. 내 삶의 괴로움을 제가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세상이 삐뚤어져 내가 적응하지 못하는 거라 위로하며 이직을 반복했습니다.

2019년, 불교대학 홍보중인 주인공
▲ 2019년, 불교대학 홍보중인 주인공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법

정토회를 만나서도 저의 집착은 단번에 깨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비뚤어졌다.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는 제 괴로움의 답을 구할 때마다 법사님들은 ‘갑질 하지마라. 공주병이다.’라는 도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깊은 뜻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새벽정진으로 나를 바라보는 힘이 생기고, 도반들과 많은 나누기를 하면서 모든 도움 말씀들이 ‘특별함’에 집착하고 있는 제 업식을 관통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불법은 저에게 세상의 주인공이 아닌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타인의 인정으로 특별해지는 법이 아닌 나를 이해하고 나를 위로하고 나를 인정해주는 법을 배웠습니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왜 이런 마음이 올라올까?' 하고 내 마음을 공부합니다. '아! 어릴 적 어떤 기억이 지금의 내 마음을 만들었구나.' 하고 알아낼 때면 꼭꼭 숨어있던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기쁩니다. 타인이 아닌 제가 저를 인정하고 격려해주기 시작하니, 삶이 가벼워졌습니다. 세상은 제가 생각한 만큼 비뚤어있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글_정토행자의 하루(김난희)

전체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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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주

김난희님 글 잘 읽었습니다. 지금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김난희님을 보면 상상이 잘 안 가는 얘기네요^^
불법은 정말 기적을 만드는것 같습니다!

2023-09-17 09:27:16

엄태숙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어릴 때의 나, 나의 엄마, 나의 할머니, 나의 아빠. 우체국 다닐 때의 나, 내 아들들의 눈에 비춰보였을 나의 모습들...
잘 따라 배우겠습니다
난희님 수행담 적힌 희망편지부터 보았고 글은 이제야 봅니다 (그 희망편지는 이미 제 카톡에 담겨져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

2023-05-06 09:33:26

김정은

고맙습니다.
나도 고집부리며 살고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마음공부 하며 생활해봅니다

2023-04-12 10: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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