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주지회
나는 연습생 수행자입니다

네 살짜리 아이가 빵 하나를 들고 뺏기지 않으려고 울었습니다. 화가 난 엄마가 아이를 던져서 턱에 큰 상처가 났지만 ‘넌 고집이 센 아이야. 못됐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내 것은 내가 챙겨야 한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몇십 년 후, 함께 수행하는 도반이 ‘네 살짜리 아이는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어른은 그러면 안 되지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때야 꼭 쥐고 있던 손에 힘을 빼고 빵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경주지회에서 불교대학을 진행하고 있는 조계량 님의 남은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트라우마

저는 턱에 눈에 띄는 상처 자국이 있습니다. 제가 네 살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언니는 여덟 살, 오빠는 여섯 살, 세 살 아래 남동생은 태어났는지 엄마 배 속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군인이어서 집을 떠나있었고 엄마는 작은 가게를 했습니다. 엄마가 저녁때 빵 두 개를 주며 나누어 먹으라고 했는데 저는 혼자서 빵 하나를 차지했고, 언니와 오빠가 나머지 하나로 나누어 먹었다고 합니다. 언니, 오빠가 다 먹고 더 달라고 했는데 저는 빵을 뺏기지 않으려고 심하게 울었고 달래다가 안 되었던지 화가 난 엄마는 저를 던졌는데 턱에 심한 상처가 났습니다.

행복학교 홍보 중인 조계량 님
▲ 행복학교 홍보 중인 조계량 님

어렴풋이 아팠던 기억이 나지만 지금까지도 그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건 자라면서 여러 번 엄마한테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언가를 요구하면 엄마는 “네가 호강에 겨워서 요강에 똥 싼다. 고집은 얼마나 센지. 엄마가 어릴 때는...”이라며 이야기를 꺼냅니다. 언니도 “너 정말 못됐었다”라며 말을 보탭니다. 그렇게 그 상처는 무언가 잘 못하면 내가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남아 상대의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정토회에 들어와서 턱에 난 상처가 저의 트라우마라는 것을 알았고 그 마음을 내어놓았습니다. 듣고 있던 도반은 “네 살짜리 아이는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어른은 그러면 안 되지요.”라고 했습니다. 움켜쥐고 억눌렀던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언니가 아무렇지 않게 어릴 적 이야기를 또 꺼낼 때, 마음에 담고 있었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합니다. “언니야, 내가 아무리 고집 피우고 울고 떼를 써도 네 살 아니었나? 화가 나고, 힘들어도 엄마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어른인데” 엄마에게도 이야기합니다. “엄마, 그럴 때는 ‘미안해’라고 하면 상대의 마음이 풀릴 텐데.” 엄마는 “내가 왜 미안한데? 하나도 안 미안하다.”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아버지의 화난 모습을 미워 했는데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화날 만도 했다’고 이해했습니다.

아들이 맺어준 정토회

10년 전 큰아들이 군대에 가기전 방에서 나오지 않고 게임만 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째려보기도 하고,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사람들이 싫어할 거라는 말도 했습니다. 정신과 진료를 받고, 유명한 대학 교수님과 상담도 했지만 약을 먹이지는 않았습니다. 약에 의존해서 살지도 모른다는 저의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들었습니다. ‘저런 질문을 하나? 저 정도는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니 강연이 지루하기까지 했습니다. 스님의 책을 읽고, 아들과 비슷한 상황의 즉문즉설 영상을 찾아보았습니다. 책과 영상을 보면서 제가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아들에게 강압적이고 아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식 교육을 저에게 맡겨놓았던 남편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네가 왜 그러냐?”라며 윽박지르고 집기를 던져 살림살이가 부서지기도 했습니다. 법륜스님의 강연회를 들으러 간 지 2년 만에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이 들려줄 답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저를 숙이고 절을 한다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동북아 역사기행 중 (오른쪽)
▲ 동북아 역사기행 중 (오른쪽)

아들의 마음을 읽지 않던 엄마

아이가 태어나서는 시어머니께, 여섯 살쯤에는 시누이에게, 초등학교 들어가서는 함께 살게 된 친정엄마에게 육아를 맡겼습니다. 주 양육자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아이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를 살피지 않았습니다. 가난하지 않으면 아이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는지 일에 매진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토요일, 일요일에 할머니 집에 왔다가 가면 가슴이 아팠다’는 말을 성인이 된 후에 듣고는 저의 잘못을 알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이를 품어주기보다는 시간만 나면 가르치려고 했는데 곧잘 엄마 말을 따르던 아들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했고, 자살하고 싶어 한다는 친구 이야기를 했지만 그냥그냥 지나갔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낯선 놀이문화, 따라가기 어려운 학업, 내성적인 성격 등으로 대학 생활을 힘들어했지만, 적당히 아들 몫으로 넘겼습니다. 그러더니 아들은 마음에 병이 났습니다. 저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들의 마음을 먼저 읽는 엄마

아들 방 앞에서 300배를 했습니다. 자식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은 첫발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심심했던지 방 밖으로 나온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즉문즉설에서 제가 했던 질문과 스님의 법문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놈아, 너 때문에 엄마가 매일 네 방문 앞에서 300배를 하는데 힘들어 죽겠다.”라며 땀 흘린 저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절을 한지 열흘쯤 되어서 아들은 병원에 가겠다고 했고, 진료받고 약을 먹었습니다. 6개월을 꾸준히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은 후 아들은 군대에 갔습니다. 스님 법문을 편안하게 듣는 아들에게 스님 책을 권해주었고 월간 정토지를 보내주었습니다. 아들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해서 학업과 함께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고, 열흘 동안 필리핀 봉사활동도 다녀왔습니다.

아들이 회사 생활하면서 힘들어하면 “너무 잘하려고 욕심내지 마라, 회사에서 잘리면 내려와서 엄마랑 농사짓자”라고 합니다. 아들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욕심 많은 엄마가 그냥 해 보는 소리가 아니라 ‘그래도 괜찮다’라는 여유를 부립니다. 말해 놓고 보니 저의 마음이 더 편안합니다. 정토회는 ‘저 잘난 줄만 알고 살던 저’에게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살피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연탄 배달 봉사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빨간 모자)
▲ 연탄 배달 봉사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빨간 모자)

오르락내리락 봉사활동

2015년에 대경지회에서 봉사 할 때였습니다. 처음 맡은 역할이 다른 도반에게 가고 저는 부엌에서 지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팀장이 달라진 봉사를 제안했을 때 “예”라고 대답했지만 막상 일하다 보니 부엌일에 자신이 없고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하기 싫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부엌일에 능숙한 도반과 함께했지만 제가 잘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잘할 자신이 없는 봉사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팀장에게 울먹이며 불편한 마음을 내어놓았습니다. 제가 잘하는 봉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2016년 경산법당 저녁 불교대학 진행을 했습니다. 입학생이 9명쯤으로 작은 법당에서 제법 많았습니다. 그런데 초반에 그만두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전화도 하고, 의욕적으로 챙긴 것 같은데 학생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니 ‘정성이 부족한가?’라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을 2개월 남겨두고 통일 특별위원회에서 행복학교 진행자를 모집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재미있는 봉사를 하고 싶은 저는 행복학교 진행자가 되었습니다.

행복학교를 진행하면서 재미있는 것도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하지 않은 장소,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 매번 다른 참여자 등이 힘들었습니다. 진행자가 지친 모습을 보여주니 더 이상 행복학교가 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상황에 휘둘리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봉사했습니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봉사이다

코로나19로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컴퓨터 사용이 서툴렀지만, 도반의 도움을 받아서 불교대 돕는이를 6개월씩 두 번 했습니다. 돕는이를 하면서는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불교대학 학생이 오지 않을때 ‘그 사람을 걱정하느냐 아니면 나를 걱정하느냐?’ 라는 법문을 듣고, 진행자는 ‘나를 위한 걱정이 아니라 한 명의 학생이라도 부처님 법 만나서 행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님 강연회에서 도서판매 봉사 중
▲ 스님 강연회에서 도서판매 봉사 중

경전반 수업을 진행하면서 ‘왜 바쁠까?’라는 주제로 자신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수행 연습을 했습니다. 제가 평소 무척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때그때 이유가 다르긴 했지만, 빨리 일을 끝내고 재미있는 다른 걸 하려고 바쁠 때가 제일 많았습니다. 즐거움은 채워도 채워도 갈증이 나서 바쁜 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

습관적으로 밤 10시부터 12시까지는 드라마를 봤습니다. 드라마가 재미있건 재미가 없건 그 시간에는 어떤 드라마라도 보았습니다. 또 드라마에서 나오는 음식을 보면 뭐든 먹어야 했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거나 집에 있는 음식을 먹어서 배가 나오고, 건강에 좋지 않았지만 매일 했습니다. ‘왜 내가 이런 즐거움을 쫒느라 정신없이 사는 거지?’ 진행자가 수행 연습을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밤늦게 텔레비전 보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도반과 함께하니 일상에서 중독적인 습관을 끊는 것이 쉬웠습니다. 봉사는 저에게 제일 뿌듯하고 보물 같은 시간입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경전반 학생 한 명이 6개월 동안 저를 보며 아이 같다고 했습니다. 정토회와 인연 맺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 ‘아이 같다’는 말을 듣습니다. 나이도 들었고, 수행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세월도 있는데 이제는 ‘어른스럽다’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배우면서 부처님과 너무 비교되는 욕심 많은 제가 부끄러워 많이 울었습니다. 부처님은 닮고 싶고, 욕심은 잡고 있는 저를 봉사하면서 알아갑니다. 어른스러워 보이는 도반이 편안하게 봉사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따라 배웁니다.

정토회 끈을 놓으면 아직은, 어느 시궁창에 빠져 허덕일지 모른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꾸준히 법문 듣고, 나누기하고, 기도하면서 욕망대로 살지 않도록 돌아봅니다. 저를 어른스럽게 만들어주는 봉사는 꾸준히 걸어가야 하는 소중한 길입니다.

경전대학 졸업식 (맨 윗줄 첫 번째)
▲ 경전대학 졸업식 (맨 윗줄 첫 번째)


조계량 님과 인터뷰 일정을 정하고 사전에 인터뷰 내용을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코로나19 확진이 되고 주인공도 몸이 좋지 않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다른 사람을 섭외하는 게 좋겠다고도 했습니다. 바쁜 마음에 잠시 고민했지만, 일주일을 기다리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다행히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조계량 님은 인터뷰할 내용을 글로 보내주었고 영상으로 만나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거침없이 내어주면서도 보여줄 것이 없는 부끄러운 수행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연습하고 있다’는 말에 힘을 주었습니다. 하루하루 수행 연습하는 조계량 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미소가 지어집니다. 가까이에서 늘 함께하겠습니다.

글_김정림 희망리포터 (대구경북지부 경주지회)
편집_강현아 (대구경북지부 수성지회)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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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눈물이 눈물이 그냥 내립니다

네 살 짜리 아이는 그럴 수 있지요
스무살도 그럴 수 있어요
내 아이들을 이해하고 감사하는 마음, 나를 돌아보며 치유되는 시간입니다
감사합니다

2023-07-02 06:49:34

박지영

감동으로 몇번이나 울컥했습니다. 나는 어떤 아이를 움켜쥐고 있나 돌아보게 됩니다. 극복하신 이야기 읽으니 내 수행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3-06-29 23:08:37

심차순

계량님의 나눔에 감동 입니다.
하루 하루 연습하는 수행자라는 얘기가,
남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6-29 13: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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