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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오빠가 다섯 명이 있었고 할머니, 엄마, 아버지와 살았습니다. 막내 딸이다보니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늘 혼자였습니다. 다섯이나 되는 오빠들이 있었지만 모두 남자이니 집에서는 주로 저 혼자 놀고, 엄마를 돕는 일도 저 혼자 도와야 했습니다. 언니나 여동생이 있는 친구들을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마을이 제법 컸는데, 우리집은 맨 꼭대기에 있어서 친구들과 끝까지 못 놀고 노는 도중에 집에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늘 외로웠습니다. 어린 시절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하게 되었을 때, 이래저래서 제가 외로웠다고 말을 하면 친구들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 걸 보면, 그 외로움은 실오라기 같았는데, 떨쳐내지 못하고 제가 크게 가꾸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제 외로움을 얘기하면 가족과 친구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결혼하고 아들만 둘 낳아 키우면서 딸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딸을 낳았으면 제 외로움을 딸이 물려받을까 걱정해서인지, 딸을 낳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저는 마음에 찌꺼기가 끼어 있는 것처럼 늘 찝찝하고 답답했습니다. 외로움을 배움으로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결혼 전 직장을 다니면서도 여가는 배우는 데 썼고, 결혼 후에도 작은 아이 세 살 때 운전면허 자격증을 따고, 복지관에서 컴퓨터 활용을 배웠습니다. 신협 주부대학에서 게이트볼도 배우고, 마사지도 배웠습니다. 1996년에는 지역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1997년도부터 2018년까지 어린이집을 운영하였습니다. 그리고 정토회를 다니면서도 노래교실과 웃음치료를 배워 주간보호센터에서 웃음치료강사도 했습니다. 또 수련단체에서 수련도 했고 어머니를 따라 이 절 저 절을 다니며 기도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외로움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동네 가까이 있는 마을을 지나다 ‘나를 찾는…’ 문장이 적힌 현수막에 끌려 들어가 보니, 비구니스님 한 분이 계신 가정집 절이었습니다. 저의 외로움을 말하니, 금강경1 해설본을 읽으면서 참회 기도를 올리라 하였습니다. 3년을 하였지만 제가 해결하고자 하는 허함과 외로움은 그대로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기계적으로 읽고 기계적으로 절을 했던 것 같습니다.
2015년 가을, 핸드폰을 보다가 팟캐스트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있는데, 아래 자막에 정토회 불교대학 모집 홍보가 눈에 띄었습니다. 저기 가서 공부하면 불교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고,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전화하니 수지 용인법당이었습니다. 집이 기흥구라고 하니 신갈에 법당이 있다고 안내해주어 등록하였습니다.
2016년 봄 불교대학을 입학하였습니다. 모둠장이 5월 29일 8-9차 천일결사2 입재식3을 안내해주어 참여하였습니다. 또 법당에서 토요일에 새벽기도와 수행담 나누기, 목탁 치는 법을 알려주고, 아침기도도 꾸준히 할 수 있게 이끌어 주었습니다. 이때 배운 것들이 고맙게도 수행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8월에 <깨달음의 장4>도 다녀왔습니다. 수련하면서도 저는 외로움을 놓지 못했습니다.
9월에 <나눔의 장5>을 갔습니다. 마지막 날 울력을 해야 하는데 비가 와서 못 하고 법당에 둘러앉았습니다. 법사님이 마지막으로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있는 사람은 말하라고 하여, “정토회에 들어와서 수행과 활동을 했지만, 제 외로움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제 마음을 내어놓았습니다. 법사님은 '아침 수행을 딱 일주일만 하라’고 하시며 ‘엄마의 외로움 알아주기’ 기도문을 주셨습니다.
기도 두 번째 날, 엄마가 얼마나 외로우셨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외로움이 느껴지며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마구마구 울었습니다. 셋째 날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마음이 평온하고 엄마의 외로움을 느끼려 해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외롭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평생을 가슴에 응어리처럼 담고 있던 외로움이 사라졌습니다. 딱 삼일만이었습니다.
환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내면서 생각해보니, 엄마는 집안일과 농사를 지으시면서 드센 시어머님 모시고 남편 뒷바라지에 다섯 아들과 딸을 탈 없이 키워내셨습니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친구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네 엄마 발꿈치만 따라가도 잘 사는 거’라던 친구의 말이 맞았습니다. 엄마는 일생을 보살행으로 사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환갑이 넘은 지금 나이에도 머리가 검고 이도 튼튼합니다. 아무리 힘들게 일해도 몸살 한 번 앓지 않았습니다. 이는 모두 부모님이 가지고 있던 각기 좋은 신체조건만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버지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2017년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대학을 다니면서 봄불교대학을 담당했습니다. 2018년 7월, 20여년간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었습니다. 자유의 몸이 되어 저녁에 가던 법당을 낮에 가니 신세계를 만난 듯 기뻤습니다. 2018년 경전반 졸업 후, 7대 행사에서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소임과 수요법회에서 담당자 부재 시 영상이나 사회를 맡아서 하는 저녁부 깍두기로 소임 활동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저는 물 만난 물고기였습니다. 2019년 1월 인도성지순례에서 조장을 맡고 부처님의 일생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다녀왔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하면서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이 가슴에 새겨져 수행자다운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새물정진6이 있어 서초법당으로 가는 길에 총무 도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녁 책임팀장을 맡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선뜻 ‘네’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새물정진 점검에 참여했습니다. 정진하면서 법사님께 이 일을 내놓고 걱정했다가 법사님 말씀에 용기 내서 저녁 책임팀장을 맡았습니다. 저녁 책임팀장 소임은 쉽지 않았습니다. 정토회에 들어온 기간이 짧으니 이래저래 잡음이 있기도 하고, 소소하게 보이지 않는 힘든 일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18개월만 채우자 하는 마음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렇게 소임을 마치고 나니 저도 모르게 훌쩍 자라있었습니다.
저녁 책임팀장 소임 기간이 3년이 되지 않아, 한 번 더 소임을 맡으려 마음먹고 있는데 국장님께서 법당 부총무 소임을 맡아 달라 하였습니다. 저녁부에서 주간부로 옮겨 활동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선뜻 대답을 못 했습니다. 며칠 생각하다 “자등명 법등명으로 원칙은 지키되 융통성 있게 소통한다”는 마음으로 부총무 소임을 맡았습니다.
부총무 소임을 맡은 그해, 코로나19로 인하여 정토회의 모든 행사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다른 부총무들과 온오프라인으로 업무를 배워가면서 한 해를 보냈습니다. 2021년 법당 정리를 걱정했지만, 법당 도반들의 도움으로 큰 어려움 없이 정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두북수련원으로 물품을 보낼 수 있는 차량 소개와 물품을 실어주고 마지막 법당 사물함 제거와 천장 마무리를 남편이 도와주어 고맙고 든든했습니다.
코로나19로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저는 2021년 3월 북미 동부 해외 불교대학 진행자로 활동하며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을 나와 넓은 세상을 구경하는 복을 누렸습니다. 짧은 6개월의 소임이었지만, '힘든 일은 힘들구나' 알아차리고 스스로에게 힘을 주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일했습니다. 어려움은 늘 있게 마련이니, 그것을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생각하고 잘 넘기는 힘과 지혜를 터득하였습니다. 대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소임이 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토회에 몸담은 시간이 길지 않지만 서원행자7를 신청하여, 온라인 서원행자 1기 교육을 마치고 수계를 받았습니다. 교육받으면서 어렵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자진해서 신청했고 시작했으니, 되든 안 되든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고비고비를 이겨내며 교육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서원행자 교육을 받으면서 분별심이 많은 나를 알았습니다. 그 또한 나이기에 수행으로 닦아 내면 되니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토닥였습니다.
함께하는 도반들이 소중하고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그 감사함을 나누고 함께 어울리면서 가볍게 살아가겠습니다. 소임이 오면 분별심 내려놓고 오는 대로 맡아 착실하게 하니, 집안도 평안하고 가족들이 무탈하고, 일들이 순조롭게 잘 풀렸습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가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부처님 법을 사무치게 깨치는 2022년 봄입니다.
김미정 님을 소개하면서, 내가 어떤 자세로 일을 하는지 다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수행의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고 수행의 자세가 중요한 것을, 분별심을 내지 않고 착실하게 하면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을, 내가 수행을 하니 가족 모두가 편안한 것을, 모나게 살지 않으면 곧게 난 길만을 걸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글_장준분 희망리포터 (강원경기동부지부 용인지회)
편집_이정선(경남지부 진주지회)
금강경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
입재식정토행자 천일결사를 백일 단위로 나누어 매 백일 마다 함께 모여 수행을 점검하고, 새롭게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의식. ↩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
새물정진정일사 프로그램을 마친 정토회 신규 활동가를 대상으로 하는 수련프로그램. ↩
서원행자 정토회 정회원은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로 구분됨. 수행, 봉사, 보시 활동을 기준으로 하며, 발심행자 3년 후 추천과 심사를 통해 서원행자 자격이 주어짐. 서원행자는 임원이 될 수 있는 피선거권을 가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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