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향음법사님 마지막 이야기
빈그릇 운동 100만 명 서약 달성하다

젊은 시절, 고집 세고 욕심 많으며 다른 사람을 바꾸려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해야 직성이 풀렸으며 하나에 꽂히면 주변 사람들을 모아 어떻게든 해내는 잔다르크였다고 자신을 표현하는 향음법사님. 2004년 빈그릇 100만 명 서약 운동을 성공으로 이끌어낸 주인공입니다. 향음법사님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비움과 나눔'의 빈그릇 운동

정토회는 정토회관을 중심으로 20여 년 넘게 음식물쓰레기 제로 운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2004년 당시 우리나라 음식물쓰레기 처리비용이 15조 이상이라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아예 만들지 말자!’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어, 전통 승가에서 해왔던 공양 방식을 현대화하여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소박한 실천으로 자연을 살리고 지구 반대쪽의 굶주린 이웃들을 살리자는 것이 ‘비움과 나눔’의 빈그릇 운동입니다. 2004년 9월 정토회 백일결사 실천 과제로 채택된 이 빈그릇 운동을 대중운동으로 해보면 좋겠다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그때 스님께서 이 과제를 누가 하겠냐고 할 때 저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저한테 시켜주시면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하겠습니다!” 가족에게 가장 먼저 천 원의 서약금과 서약을 받고서 이렇게 ‘빈그릇 운동 10만인 서약 캠페인’ 소임을 맡았습니다.

2007년 불교문화마당 빈그릇운동 서약 현장
▲ 2007년 불교문화마당 빈그릇운동 서약 현장

100만을 넘어 150만 명 서약을 받기까지

2004년 캠페인을 시작하자마자 10만 명 서약목표를 훌쩍 넘겼고, 20만 명이 동참했습니다. 2005년에 정부가 음식물 폐기물을 매립장에 직접 매립할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매립하면 수질과 토양을 오염시키는 환경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운동을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빈그릇 운동 100만인 서약 캠페인’으로 서약 인원 수를 늘렸습니다.

전국에서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업, 종교계, 시민단체, 언론 등이 동참하여 ‘빈그릇운동-음식 남기지 않기 100만인 서약 캠페인’을 알리는 선포식을 하였습니다. 서울 선포식은 2005년 5월 20일 명동에서 (재)정토회가 주최하고 (사)에코붓다가 주관하여 환경부, 보건복지부, 해양수산부 후원으로 열렸습니다. 법륜 스님, 환경부 장관, 종교단체, 방송인들이 모여 서약서를 작성하고 “나는 음식을 남기지 않겠습니다” 우렁차게 외치며 동참금 천원을 서약통에 넣었습니다.

대중부들이 빈그릇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고 모두 모여 3천 배를 했습니다. 먼저 정토회관 공양간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 양을 날마다 점검했고 ‘이건 왜 버려졌을까? 쓰레기를 되살릴 수는 없을까?’ 하며 여러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또한 어디까지 먹을 수 있을지도 연구했습니다. 호박 꼭지, 수박 껍질을 먹어보기도 하고, 감자껍질, 양파껍질을 얇게 다져서 전도 부치고, 장아찌를 담그기도 했습니다. 생 쓰레기를 모아 옥상의 텃밭에서 퇴비화도 했습니다. 그리고 환경과 건강에 이롭게 조리하는 방법, 음식물쓰레기 남기지 않는 조리법 등을 연구하여 시민들에게 공원 등에서 보여주기도 하고 요리 대회도 열었습니다.

2007년 지구의날(왼쪽 두번째)
▲ 2007년 지구의날(왼쪽 두번째)

 먼저 서초법당 2층 사무실 전면에 빈그릇 100만 명 달성 구호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걸어 빈그릇 서약 운동을 퍼트려갔고, 전국의 총무들과 함께 각 지역의 서약자수를 목표로 잡고 먹물손도장을 찍어 결의를 약속했습니다. 그냥 서약을 받아도 백만이라는 숫자는 버거운데 천 원 서약기금을 받고 서약을 받으려니 서약자 수는 제자리 걸음이었습니다. 두세 명의 활동가들은 학생들보다도 먼저 학교 교문 앞에 서약판을 들고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서약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교사 활동가들이 결합했고, 학교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빈그릇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학교에 파견활동을 집중적으로 고민하면서 활동가들에게 빈그릇 강사교육을 시키고 학교에 파견했습니다. 밤새워 교육자료 CD를 굽고 활동가들이 교육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설 때면 모두 환호의 박수를 치면서 뿌듯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미리 만날 약속도 안 하고 관내 지도를 보면서 동그라미를 하나하나 쳐가며 이곳저곳을 무작정 찾아가 서약받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에는 빈그릇 운동 포트폴리오를 들고 학교 교무실을 찾아갔는데 저희를 보는 첫마디가 “우리 빈 그릇 안 사요!” 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빈그릇 운동 취지를 자세하게 설명하니 모두 반기면서 적극적으로 학생들이 서약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급식 때, 학생들이 다 먹은 식판을 보여주면 요구르트도 하나씩 나눠 주었습니다. 타 종교인 천주교나 기독교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정토회 공양간에 견학도 오고 발우공양을 체험하러 오는 단체도 있었습니다. 양천구 주민센터의 도움으로 관내 아파트 부녀회를 대상으로 교육할 수 있었고, 서약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안팎으로 모든 정토 행자들이 마음을 모았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도반은 음식을 남기지 않는 손님에게 500원을 되돌려 주는 행사도 했고 당시 재직했던 학교에 빈그릇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정말 멋지고 신나게 활동했습니다.

2007년 6월, 여주 신륵사. 학교 빈그릇 운동 교사 워크숍(앞줄 맨 오른쪽)
▲ 2007년 6월, 여주 신륵사. 학교 빈그릇 운동 교사 워크숍(앞줄 맨 오른쪽)

용산 국립박물관 개원할 때 그 앞에서도 서약운동을 했는데, 한 아이가 엄마 소맷자락을 끌며 “엄마, 나도 학교에서 했어. 엄마도 얼른 해!”라고 말할 때, ‘아, 우리가 정말 열심히 했구나’ 싶었습니다. 50만 명쯤 이르자 좀처럼 서명자가 늘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 “그동안 고생했다. 그만해도 된다.”고 하셨지만 손사래를 치며 “스님, 우리는 끝까지 해내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학교, 기업, 군대, 지자체, 종교계, 시민 사회단체, 정부 등이 함께해 목표 100만 명을 넘어 150만 명 서약을 이뤄냈습니다.

100만 명이 서약하는 것은 시민 운동사에서 흔치 않은 일입니다. 그것도 서명이 아니라 서약하고 다짐하는 의미에서 천 원씩 내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토회는 100만을 넘어 150만 명 서약을 받았습니다. 더없이 자랑스럽고 고맙고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양천구청 빈그릇 운동 협약 체결식
▲ 양천구청 빈그릇 운동 협약 체결식

부모가 적게 먹고 적게 쓰니 자식도 그러하다

빈그릇운동 100만명 서약 캠페인이 끝난 후, 집안 사정으로 저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시간제로 아파트 청소도 하고 아는 집 물건 배달도 하고 백화점과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적게 먹고 적게 쓰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한지를 알아보는 절호의 기회일 것이라고 마음을 바꿔보니 힘든 것은 뒷전이고 오히려 힘든 일상이 재미있었습니다. ‘내가 오늘 얼마를 썼지? 식구들이 얼마를 먹고 얼마를 쓰면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 마음이 어떻게 흘러갈까?’ 이런 것들을 알아보고 지켜볼 수 있는 참 좋은 정진시기였습니다. 제가 자발적인 가난을 체험할 수 있는 제 나름의 심오한 연구 기간이었습니다.

2007년 불교문화마당에서
▲ 2007년 불교문화마당에서

저는 부유하게 자라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또한 부족한 가정형편에 별로 불만이 없었습니다. 체육대회 때 하얀 티셔츠가 필요하면 저희 애들은 당연히 “엄마, 하얀 티셔츠 좀 어디서 얻어와” 하며 “하얀 티셔츠 사줘”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나가면서 재활용 물건을 보면 뭐 주워 올 게 없는지 늘 살폈습니다. 미국에서 지낼 때도 쓸 만한 물건을 다 주워 와 재활용해서 썼습니다. 집 지하창고를 개방해서 자기 물건을 내놓고 판매하는 가라지 세일(Garage Sale)이나 벼룩시장이 활성화된 미국에 살면서 처음에는 좋은 일이라 생각했지만, 결국은 많이 사서 쉽게 버리는 자본주의 속성과 닮아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깥세상도 수행터다

백화점 일을 하려니 화장과 염색도 하고, 유니폼도 입어야 해서 제게 너무 버거웠습니다. 직원 식당 반찬이 너무 짜서 물을 많이 먹고 몸이 쉽게 피로해져 저는 도시락을 싸서 다녔습니다. 직원들 대부분이 반찬과 밥을 남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순간부터 빈그릇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직원들과 빈그릇 운동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쉬는 시간에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누워 자고 있어서 이야기 꺼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토행자니까 휴지와 비닐봉지를 쓰지 않고, 쉬는 시간에는 식당에서 책을 보았습니다. 저와 생활 태도가 다른 직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몇몇은 저를 외면하거나 투명인간 취급하곤 했습니다.

백화점은 고객이 왕이라 투명 비닐을 고객이 원하는 만큼 쓸 수 있게 하니 어떤 사람은 카트 하나에 비닐봉지 삼사십 장도 쓰는 걸 보았습니다. 백화점은 쓰레기를 한 투입구에 넣고 한 곳에서 분리수거를 한다고 하지만, 큼직하게 손에 잡히는 것만 분리수거하고 모두 일반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리니 엄청난 낭비였습니다. 9개월간 일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쫓겨났습니다.

학교 급식실에서는 설거지하고 정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식판을 보고 든 결론은 ‘아이들은 무조건 남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먹는 양이 정말 적었습니다. 방울토마토도 열 알씩 식판에 담아주면 다 남겼습니다. 식판에 담았던 음식물은 모두 버려야 하는 게 원칙이라 남긴 음식을 설거지하려면 고속 수압의 물로 식판을 씻어야 합니다. 통에 쌓인 음식쓰레기는 바로 봉투에 담겨 나가는데 어마어마한 쓰레기양과 자원 낭비를 눈앞에서 보는 경험이었습니다. 각 구청에서 저희처럼 빈그릇 운동하는 단체를 활용해서 업체와 학교를 대상으로 빈그릇 운동 교육을 하고, 그것으로 절약되는 돈으로 교육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교통비와 활동비로 지원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이런 선순환의 직업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시민활동으로 건의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2007년 4월 22일 지구의 날에 참여한 어린이 회원들의 길거리 행진
▲ 2007년 4월 22일 지구의 날에 참여한 어린이 회원들의 길거리 행진

스스로를 지키는 또 하나의 새로운 길

어떤 곳을 가든 저를 스스로 지키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혼자라도 개인 컵과 손수건을 갖고 다니고, 밥도 싸가지고 다니면서 바깥세상에서 생활했습니다. 이런 능력이 쌓이니 다른 습관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좋고 나쁘고 분별이 없습니다. 그분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스트레스도 덜 받습니다. 바깥 생활을 두루 경험을 해보니 저에게는 좋은 수련장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근간은 정토회의 빈그릇 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을 통해 제가 학생운동 등 권력 집단에 대항하면서 늘 느꼈던 무력감이 말끔히 씻겨 내려갔습니다. 제 안에 숨어 있던 비열함, 왜소함 그리고 ‘내가 한다, 내가 했다!’ 하는 ‘나’라는 업장이 녹여지면서 삶이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지금도 저는 직원들과 식사할 때 먹고 싶은 것을 그냥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게 시킵니다. 만둣국을 시킬 때도 국물은 조금만 달라고 미리 말합니다. 짜장면을 시켜 먹을 때도 남은 소스는 통에 담아 넣고 단무지로 그릇을 깨끗이 닦아 먹습니다. 직원들이 그 모습을 고스란히 보면서 같이 실천하는 사람도 있고, 더러는 ‘뭐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에 상관없이 저와의 약속이니 한 생을 깔끔하게 살아 적어도 저만은 후손에게 폐가 되지 않게 살려고 합니다.

가끔 집 앞 동네 어귀를 비로 쓸고 있는 모습을 본 남편이 “지구 한편을 쓸고 계시네.” 합니다. 제가 하는 실천이 비록 작은 것 같지만, 그 작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적게 먹고 적게 입는 것이 모여, 보다 살 만한 지구를 만듭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삶을 바꾸는 실천이고, 삶이 바뀌는 수행입니다.


좋아하는 분홍색이 맺어준 정토회에서 울퉁불퉁하면서도 해야 할 일은 온 힘을 다하는 열정으로, 어려운 시기에 술 법사가 되고, 빈그릇 운동한 얘기를 옷깃 여미며 들었습니다. 아침 정진 덕분에, 봉사활동 덕분에, 도반들 덕분에 게으르고 남의 말 안 듣는 사람이 오늘 이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법사님. ‘반야선에서 내리지만 않으면 우리는 다 같이 성불할 것’이라는 유수 스님 말씀이 자주 떠오른다고 합니다. 듣는 시간 내내, 충만한 기운으로 가슴이 뛰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대중법사님 특집기사 발행일정표
▲ 대중법사님 특집기사 발행일정표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인터뷰 진행_김난희
인터뷰 지원(영상, 녹화)_김혜경
글, 편집_장준분, 박문구, 강현아
도움주신이_이정선, 백금록, 박우경, 김승희, 박정임, 전은정, 장은미, 권영숙, 김세영, 서지영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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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진

정말 대단하십니다.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2022-11-21 08:17:11

초심자

사람들의 시선에 상괸없이 한 생을 깔끔하게 살아
적어도 후손에게 폐가 되지않게 살려고 한다는 말씀에 공감하며 나도 되도록이면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2022-07-06 10:49:35

김선수

빈 그릇운동 꾸준히 실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6-06 18: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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