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문경공동체
나쁜 도반, 그냥 도반

오늘은 스님의 하루를 읽다 보면 종종 나오는 '농사담당 행자님' 한혜련 님의 수행담입니다. 한혜련 님은 평소 못마땅하게 생각한 도반과 하필 행자대학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성불하거나, 아니면 못 견디고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라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지요. 그 분별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갑니다.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도반

백일출가 때부터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 도반이 하나 있었습니다. 백일출가만 마치면 후다닥 속세로 도망갈 거란 저의 예상을 꺾고 그 도반은 예비 행자대학원에 지원을 했습니다. 다행히 백일출가와 예비행자대학원은 사람이 많아서 그 도반과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웬걸,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요! 예비행자대학원 12명 중에 저와 그 도반은 둘만 나란히 행자대학원 13기에 입재했습니다. 사이좋은 도반과 입재해도 힘들다던데, 처음부터 못마땅한 도반과 함께 하게 되다니. '내가 이곳에서 성불하거나, 아니면 못 견디고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라는 생각에 이를 꽉 다물고 행자대학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울력중인 주인공
▲ 울력중인 주인공

둘이서만 함께 산 지 어언 18개월이 지났습니다. 솔직히 사람 관계는 그냥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좋아지는 줄 알았습니다. 삐거덕 거리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면서 서로 더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24시간 둘이 붙어 같이 자고, 먹고, 일하고, 학습하고, 나누기하면서도 그 도반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계속 올라왔습니다.

공양을 하기위해 자리를 잡을 때면 순식간에 제 눈은 방 안을 스캔했습니다. 그리곤 그 도반과 가장 떨어진 곳에 발우를 펼쳤습니다. 정기 수련, 외부 일정 등 다른 공동체 구성원과 함께 하는 일정이 있기만 하면, 최대한 그 도반과는 떨어져서 지냈습니다. 마치 그 공간에 그 도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도반이 보여도 도반을 외면했습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무리에 너무도 편하게 섞여들었습니다. 서로에게 등을 돌린 체.

다른 사람들은 가볍고 농담도 잘하는 제 도반과 함께 있는 걸 재미있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반이 이야기하는 모습도, 농담하는 모습도, 심지어 웃는 모습도 보기 싫었습니다. 물론 머리로는 이런 제가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불편한 걸 아무리 돌이키려고 애써도 매순간이 불편함과 사로잡힘의 연속이었습니다.

둘이서 찰떡처럼 함께 있어보아요

도반과 제가 이렇게 서로 떨어지려고만 하는 걸 보고, 묘수법사님이 과제를 주었습니다. 둘이 꼭 붙어서 공양을 하고, 무슨 일이든 함께 논의하며 붙어서 생활해보라는 과제였습니다. 과제가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제발 이 불편함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둘이서 붙어서 지내다보니, 제 안에 불편함도 지속됐고, 도반과의 갈등도 더 표면에 드러나면서 제가 어디서 어떤 부분에서 걸려 넘어지는지 알 수 있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하루는 발우공양을 마치고, 행자대학원 13기와 14기가 함께 주례 회의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회의장소에 올라가보니 아직 아무도 없었습니다. 책상을 깔고, 방석을 깔고, 멀티탭을 설치해 주례회의를 세팅하고 기다렸습니다. 문이 열리며, 도반과 14기 행자님들이 웃으며 들어왔습니다. 도반이 들어오면서 저한테 하는 말인 듯, 아닌 듯, 툭 던지는 한 마디. ‘아니 이 정도나 필요한가?’. 그 말이 저에겐 ‘굳이 이렇게까지 세팅할 필요가 없는데, 너 너무 쓸데없이 오버해서 세팅 했어’라고 들렸습니다. 그 순간 기분이 상하면서 무시 받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한 번은, 8차 천일결사 회향식 점심 공양 시간, 공양물을 뜨고 돌아오는데 도반이 다른 도반들과 문경 수련원 선발대의 공양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가는 것 같아 무슨 일이냐고 도반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도반이 (제가 느끼기엔) 퉁명스럽게 ‘아무 일 없는데요!’라고 대화를 끊듯이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기분이 상하면서 무시 받은 느낌이 또 들었습니다.

인도 JTS 쁘리앙카지 박사 특강 중
▲ 인도 JTS 쁘리앙카지 박사 특강 중

제가 도반에게 불편했던 것은 이 두 가지 일로 대표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 일 모두, 저는 그 순간 놓쳤던 일들이었습니다. 기분이 순간적으로 확 상한 채 넘어가 버린 일들이라 그 이후에 기분이 나쁜 채로 있었으면서도 제가 언제 불편해졌는지 정확하게 잡아낼 수조차 없었습니다. 법사님과의 시간에 도반과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가 걸리는 지점이 보였습니다. ‘상대가 날 무시했다’라고 느껴지는 순간, 저는 이성을 잃고 기분이 한없이 상해버렸습니다.

한편, 수련원에 산 공덕으로 머리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그 누구도 저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 그런데 저는 자꾸 무시 받은 느낌을 받았고, 그 느낌은 알아차릴 새 없이 도반에 대한 미움, 짜증, 그리고 종종 폭발하는 화로 이어졌습니다. 전에 묘수법사님이 제가 저 자신을 무시하는지 잘 살펴봐야겠다고 말을 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제가 저 자신을 무시한다는 것을. 남의 표정과 말, 말투에 제 기분이 좌지우지될 정도로 저 자신을 내맡겨버린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그랬습니다. 실제로 살펴보니 제 불편함과 괴로움은 남이, 도반이, 나를 무시했는지 아닌지는 관계가 없는 문제였습니다. 제가 저 자신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이것도 자꾸 머리로 파고들었습니다. '왜 나는 나를 무시할까, 그 누구도 나를 무시할 수 없는데, 그럼 결국 나도 나를 무시할 수 없는 거 아닌가', ‘그 누구도’라는 표현에 나는 포함 안 되나 등등. 이렇게 머리 굴리는 저에게 보수법사님이 일침을 가했습니다. 괴롭고자 작정해서 온갖 머리를 쓴다고. 그냥 ‘아 누구도 나를 무시할 수 없는데, 내가 순간 착각했구나, 잠시 미쳤었구나’ 하고 탁 돌아오면 되지, 뭘 또 그걸 가지고 붙들고 늘어지고 있냐고.

보수법사님과 남산순례(왼쪽 네번째 글쓴이)
▲ 보수법사님과 남산순례(왼쪽 네번째 글쓴이)

아 내가 미쳤었네!

내가 나를 무시하면서 도반을 나쁜 사람이라고 미워했구나.

아무도 상처 준 사람은 없는데, 상처 받는 사람은 있다는 게 저의 경우입니다. 정진하면서 참회를 했습니다. '내가 어리석어서 나를 많이 무시했구나' 그러자 ‘나쁜 도반’이 아닌 그냥 도반이 보였습니다. 근데, ‘미쳤다!’ 하니 저한테 참회할 것도, 도반에게 미안해 할 것도 없었습니다. 도반이 저를 무시하는 나쁜 사람이라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있었는데 이건 다만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상대방이 상처를 준 사람이고, 저는 상처를 받은 사람으로, 실제와는 전혀 다른 괴로움의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행자대학원 수련중 봉화 청량사에서(왼쪽이 주인공)
▲ 행자대학원 수련중 봉화 청량사에서(왼쪽이 주인공)

'내가 미쳤다!'라고 알아채니 제 평생 이렇게 편안하고, 가벼운 나날들이 없습니다. 그 전에는 도반의 반응을 보면서 눈치를 보고, 불편해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도반이 보입니다. 도반이 언제 불편해 하는지, 언제 편안해하는지, 상태가 어떤지. 요즘 제정신 차리는 연습 중입니다. 순간순간 도반에게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해줘’, ‘내 말에 동의해줘’, ‘문제제기 하지마’라는 요구를 해서 도반이 안 보이고, 순간 미치지만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합니다. 이제는 제 불편함의 원인과 해결키가 바로 저에게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겠습니다.

도반이 불보살입니다. 도반이 있어서 제가 ‘무시 받는다’라는 느낌에 걸려 넘어진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어디서 어떻게 넘어지는지 제 사랑하는 도반 덕에 알게 되겠지요. 도반은 저를 연습할 수 있도록 경계를 비춰주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고맙습니다. 박은혜 행자님!


글_한혜련(문경공동체)
편집_서지영(행자의하루편집팀)

전체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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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명

24시간 붙어지낸다니….부부생활보다 더 힘든 수행이었네요. 참 귀한 공부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혜련 행자님()

2022-08-17 07:46:30

나는나

저도 저를 무시하고 살았나봐요~감사합니다 깨우쳐 주어서요~^^

2022-04-25 22:49:25

당당한사람

나누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남편이 날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을때 속이 확 뒤집어 진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상처 준사람도 받은 사람도 없다는 것. 내가 순간 착각한 것. 잠시 미친 것. 이 글로 제가 어디서 넘어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누어주신 공덕이 크기를 바랍니다.

2022-04-25 0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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