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수원지회
척하며 사는 게 내 모습이었구나

돌아보면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든 조용히 활동하고 있는 도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조용하지만 강한 모습이라고 할까요? 어떠한 활동이든 먼저 마음 내어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조용히 실천하는 도반입니다. 환경실천도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는 정토회 안성맞춤 도반, 퍼즐의 한 조각을 충실히 메우며 모자이크붓다를 일구어 가는 수원지회 이은경 님을 소개합니다.

즉문즉설 스텝-2019년 수원시청
▲ 즉문즉설 스텝-2019년 수원시청

강해져야 살 수 있어

“엄만 왜 살어? 숨쉬니까 살지. 사는 거 재밌어? 그냥 사는 거지” 사춘기시절 제가 엄마에게 자주 물었던 질문입니다. 엄마도 사는 게 힘들어 보이고, 저도 힘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밥상에 맛있는 반찬은 아버지와 오빠의 몫이였고, 도시락 반찬도 오빠와 저는 달랐습니다. 오빠는 멋진 태몽이 있는데 저는 태몽조차 없습니다. 또 오빠의 1등은 엄마를 기쁘게 하지만 저의 1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다니는 학교 남학생들은 치마를 들치고 화장실 문을 열어가며 장난을 쳤고, 학교통학 버스 안에서 남자들은 내 몸을 더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집안과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느꼈던 환경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기보다 알아서 눈치껏 행동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 쌓아 두었습니다. 같은 여자인 동생은 느끼지 못했다는데 유별나게도 저는 오빠와 저에 대한 엄마의 행동에 상처를 받았고, 반면 저를 아끼고 예뻐해주시는 아버지를 많이 좋아했습니다. 열두 살 되던 해에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로 저는 제 마음 의지할 곳이 없었고 집안 형편도 어려워졌습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친구든 가족 할 것 없이 이별에 대한 여러 경험을 사춘기 전에 겪어서인지 새로운 인연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먼저 겁을 내며 물러나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에 일정한 거리 유지와 무관심으로 의지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모든 것이 내 할 탓이고 나는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님이 말씀하시는 과대망상 환자, 그게 제 모습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말이 없는 성격이라 직장에서 저의 별명은 ‘말 없음표’입니다. 가족이나 여러 지인들에게 예전부터 지금까지도 많이 듣는 얘기는 ‘뭐 하니?’, ‘뭐 할거니?’ 식의 단답식의 대화입니다. 동생에게 행복학교1 과제로 ‘나한테 듣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물었더니, ‘아무 말이나 많이 했으면 좋겠다’ 라고 답해줍니다. 간섭으로 느껴지거나 별로 할 말이 없어서 그런것 뿐이고, 그렇다고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도 합니다.

정토사회문화회간 공양간 봉사(오른쪽 은경님)
▲ 정토사회문화회간 공양간 봉사(오른쪽 은경님)

위선과 오만함

많이 부끄러운 얘기지만 고등학교시절 모교 장학금으로 대학을 가라는 권유를 거절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기업 서무로 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이 회사 업체 직원으로 제가 근무하는 부서에 출장을 왔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공부도 못한 친구였는데, 2년제 대학을 졸업한 그 친구의 커피와 복사 심부름을 하고서는 퇴근하는 버스 맨 뒷좌석에서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집에서는 오빠가 먹었던 남겨진 반찬의 지저분한 밥상을 받으며 차마 숟가락을 들지 못했던 그 날, 저는 머리속에만 있던 죽고 싶다는 생각을 실행했습니다. 낡은 창틀에 줄을 맨 덕분으로 미수에 그쳤습니다만 그 순간에는 이런 현실에서 10년을 사나 20년을 사나 힘든 삶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 같은 절망감이 있었습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평소 있는 척, 없는 척, 밝은 척, 아는 척, 이해하는 척, 괜찮은 척, 잘하는 척, 착한 척, 의연한 척, 외롭지 않은 척, 모두 척, 척, 척은 다하는 위선적인 태도와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오만함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지난 이런 못난 모습들이 어리석음이었고 꿈이었다고 털어버릴 수 있게 되어 좋지만, 그런 마음으로 다닌 직장생활과 가족관계가 원만할 수 없었던 건 당연한 결과였던 거지요.

서른 일곱살이 되던 해에 관계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골로 이사를 했습니다. 시골은 살기 싫다 하시던 엄마와 동생도 따라와 주었습니다. 우울증, 불면증, 불안과 신경쇠약 증상으로 심리상담과 양약, 한약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시절 정신과 진료는 자신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큰 허물과 부끄러움이 되는 때였음에도 가족들은 이해해주었습니다.

도량 청정봉사(왼쪽에서 두 번째 은경님)
▲ 도량 청정봉사(왼쪽에서 두 번째 은경님)

시원한 직설화법에 이끌림

이즈음, 법륜스님이 방송에 나오시는 것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스님의 직설적인 가르침에 답답한 가슴이 시원함을 느꼈었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우침이 있어 법륜스님의 유튜브를 모두 찾아 보았습니다. <깨달음의 장2>을 알게 되어 신청해보았지만, 접수가 쉽지 않았습니다.〈명상수련〉 안내도 있어 신청해보았더니 다행히 접수가 되어 참여하였습니다. 명상 중에는 마음속으로 애국가를 부르기도 하고, 과거 생각에 사로 잡혀 힘들어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묵언이 좋았고 한 명도 뛰쳐나가지 않고 같이 하는 도반들 덕분으로 4박5일의 명상수련을 잘 마쳤습니다. 그 후로 5년이 지나고, 어머니만 보면 올라오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한 공간에서 함께 있기가 너무 힘이 들어 마음이 괴롭고, 몸도 아파지면서 다시 또, 자살 충동이 느껴졌습니다. 불현듯 <깨달음의 장>이 떠올랐는데 때마침 첫달 1일이었고 새벽 4시였습니다. 오전 9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기다려서 신청을 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신청접수가 되어 4박5일의 수련을 다녀왔습니다.

<깨달음의 장>으로 저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죽고 싶다는 마음에서 사는 게 재미없다 정도의 마음으로 나아졌고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다음 날부터 새벽 5시에 108배 기도를 시작했으며, 가을학기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며 정토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도반들과의 나누기에도 그리고 나눔의 장3을 가서도 내놓지 못했던 아버지와의 이별로 느꼈던 감정들, 아버지는 30년이 넘게 사우디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며 보내지 못하고 있던 것을 천도재가 있는 법회를 참석하고, 스님의 법문을 반복해 들으면서, 죽음과 애별리고에 대해 많이 담담해 졌습니다.

학사동기들과 JTS거리모금(왼쪽 첫 번째)
▲ 학사동기들과 JTS거리모금(왼쪽 첫 번째)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는 법

그렇게 마음 공부를 하면서 정토회 봉사활동으로 금요정기법회 꼭지, 교육연수 회원담당, 불교대학 돕는이, 진행자, 천일결사 꼭지, 지역실천 꼭지, 행복학교 돕는이 등의 소임을 하고 있습니다. 매번 새로운 소임을 맡게 되면 하기 싫다는 마음과 힘들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리고 최근엔 긴장되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야 된다는 마음에 쫓기게 되니 자율신경과민증상도 나타납니다. 그래도 일하면서 나도 행복하고 상대가 행복해 보일 때 보람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뭘 해도 재미를 못 느꼈고, 간혹 재밌거나 즐거우면 불안함을 느꼈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지 않고 정진을 할 때면 내 멋대로 하게 되고, 내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변화의 속도가 더뎠습니다.

봉사 소임을 하면서 스님의 법문을 듣고 도반들과 어울려 활동을 하다보니 일상의 모든 것이 수행임을 알게 됩니다. 수행적 관점이 뭘까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또 내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변화가 더 잘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집착이나 사로잡힘으로 오래 괴롭지 않고, 어렵지 않게 벗어날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들이 ‘너는 안 타는 계절이 없다’ 라고 말할 정도로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성향이어서 가족들을 눈치 보게 했다면 지금은 쉽고, 자연스럽게 얘기할수 있어 좋습니다.

직접 농사짓기
▲ 직접 농사짓기

오늘도 살아 있으니 고맙습니다

돌아보면 모두에게 참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아직 그런 성향은 있지만 우울하다거나 불안하다가도 하루나 이틀이면 괜찮아집니다. 조금씩 그런 내가 보일 때는 마음과 달리 거짓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있구나 알게 되어 속상하기도 하지만 탁! 놓아지기가 안되면 “나를 속이지 말자! 나를 불쌍하게 만들지 말자” 되뇌이며 애쓰기도 합니다. “그래도 모두의 덕분으로 오늘도 살아 있으니 고맙습니다” 라는 인생의 좌우명으로 새벽 4시 반에 예불을 하고 '스님의 하루'를 읽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요즘은 백일을 목표로 500배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농업회사법인 운영 일을 많이 줄이고, 정토회 활동을 늘렸습니다. 월요일은 전법활동가 법회를 참여하고 JTS 안산 다문화센터에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화요일은 2022년 3월 불교대학 진행을 맡았고, 수요일은 수행법회를, 목요일은 2022년 3월 불교대학 진행과 주례회의를 하고 금요일은 즉문즉설을 듣습니다. 토요일은 스님과 도반들과 함께 하는 천일결사기도를 합니다. 일요일은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공양간 봉사를 하고 명상으로 일주일을 정리합니다.

백중기도 죽림정사 등달기
▲ 백중기도 죽림정사 등달기

엄마의 답처럼

스님의 법문을 많이 듣고 정토회 전법활동과 봉사활동을 주로 하며 스무 살부터 꿈꿔왔던 귀촌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부처님 법이 제게는 참 좋던데요” 하면서 법을 전하다 보면 불교라는 기존의 종교 이미지로 인해 알려고도 하지 않을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일단 한번 해보고 아니면 말면 되는데~” 라며, 그래서 행복학교든 정토불교대학이든 “손해될 것 없으니 해보세요. 인생이 달라질 수 있어요”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귀촌해서도 그냥 계속 꾸준히 정진하며 정토회 안에서 봉사활동하며 살 계획입니다

‘척, 척, 척하며 사는 게 그게 내 모습이구나~’ 알아지면서 인생이 꿈과 같은 것이라고 하시니 다행이고 ‘이런 나는 어리석어서 그런 것이다’는 것을 알아 다행이라고, ‘잘 몰라서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게 당연한 거’라 다행입니다. 여전히 좋고 싫은 것,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편한 것 힘든 것에 끄달려도 다행이고 그래도 불행하지 않다는 걸 알아서 참 다행입니다. 끄달림이 덜하고 그로 인한 괴로운 마음은 생기지 않습니다.

일만불대 홍보(맨 왼쪽)
▲ 일만불대 홍보(맨 왼쪽)

예전에는 가족이 나보다 오래 살아 이별의 아픔이 없기를, 경제적으로 많이 갖기를, 겉모습이 예쁘기를, 남들에게 잘 보이기를 바라는, 언제 터질지 모를 풍선과 같은 바람을 쫒아 다녔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쫒아다닐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여전히 힘든 일이 있고 몸이 아플 때도 있지만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로 여기게 됩니다. 그 때 그 때마다 스님의 법문을 떠올리며 한 생각을 바꾸고 그렇게 알아차리는 힘이 생기니 마음은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랄까. 엄마의 답처럼 ‘숨쉬니까 그냥 사는 것’이 좋습니다. 계속 힘 빼는 연습 중입니다.


현수막을 들고 길거리 홍보활동 중이었는데 어디선가 바람을 가르며 나타나 홍보조끼를 전해주고 바람과 함께 다른 곳으로 가시는 은경 님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조용히 든든하게 함께 해주시는 이은경 님의 삶 속의 일부를 들을 수 있어 감사하며, 말씀 듣고 한 생각을 바꾸고 그렇게 알아차리는 힘을 저도 계속 키워가봅니다.

글_이서후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편집_이정선(경남지부 진주지회)


  1. 행복학교 법륜스님 행복학교는 온라인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진행자와 참가자가 행복을 배우고 연습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체험의 장'입니다. 행복학교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2.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3.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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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고맙습니다.....^^

2023-10-18 17:53:37

임은영

다행이고 다행이고 다행이다라는 말씀이 마음에 남습니다.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06-17 10:43:03

신수진

감사합니다.........

2022-04-22 14: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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