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향염 법사님 두 번째 이야기
껍데기 수행, 참기름 수련으로 벗겨내다

어린 시절부터 정토회 활동까지 남다른 봉사 정신이 있는 향염법사님. “와, 삶 자체가 봉사의 연속!”, “정말 DNA가 다르신 것 아닌가요?”라는 감탄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과연 향염법사님에게 꽃길만 있었을까?’라는 궁금증도 일어납니다. 그 궁금증,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저는 5남매의 셋째 딸입니다. 셋째 딸이 귀여움받는 이유는 눈치가 빠르기 때문일 겁니다. 언제 말을 참고, 목소리를 높여야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웠습니다. ‘어? 이렇게 해봤자 나한테 손해구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보다 나에게 좋은 결과 가져오는 것으로 선택해야지’라고 자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와 부딪히거나 싸우는 상황을 만들어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2011년 대전법당 개원법회 첫날 총무시절
▲ 2011년 대전법당 개원법회 첫날 총무시절

정토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선배 도반들 덕분에 제가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다고 생각하니 그저 존경스러웠습니다. 또한, 저에게 소임을 맡기고 함께 수행자의 길을 가는 선배 도반들에게 매우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스님 법문을 따라서 소임을 받으면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봉사했습니다.

정토회는 물론 수행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하는 개인적인 의견을 내본 적도 없이 그냥 받아들이며 순하게 따라갔습니다.

어디로 이사가지?

둔산 법회 책임자 소임을 시작으로 2011년 대전 정토회 총무를 할 무렵에는 굉장히 바빠졌습니다. 일요일에도 법당에 나가야 할 만큼 저의 모든 시간과 힘을 정토회 활동에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함께 활동하는 도반들이 정토회 봉사를 모두 자기 일로 여기고 서로 잘 맞춰나갔기 때문에, 몸은 피곤하지만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좋기만 했습니다. 총무로 선출되고 규모가 큰 대전법당 불사가 시작되자, 1년 동안은 뭐가 뭔지 모른 채 바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3년 동안의 총무 소임을 마치고 대전충청지부 국장(지금의 지부장)으로 임명받았습니다.

그런데, 대전법당의 활동가들과 저와 같이 사무국으로 배치된 지부활동가들 사이에서 불편함이 생겼습니다. 총무 시절부터 저와 함께 활동하던 분들인데 지부 업무는 처음이라 익숙지 않아 일 처리가 서투른 상황에서 부딪침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대표님은 "지부국장이 책임져야지.”라고 말했습니다. 머리로는 ‘그렇지. 책임자가 책임을 져야지.’라고 되뇌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인정이 안 되고, 모두 다 처음 하는 소임에서 오는 일인데 참 몰라준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수행자라는 사실을 잊고, 일로만 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표님과 잘 지내는 사람들이 저에게 하는 지적도 다 대표님의 말로 들리고, 예전에 했던 말들까지도 뜬금없이 떠올랐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올라오고, 불편함은 커져만 갔습니다. 딱히 해결책은 없고 그런 상황이 지속되니, ‘아! 이사 가고 싶다! 어디로 가지? 어디를 가더라도 정토회는 다녀야 하는데, 어디를 가면 안 만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면적으로 갈등을 드러내지 못했고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회의하러 자주 가던 서울 서초 법당에서 마주친 이기혜 대표님이 “할 만해요?”라고 저에게 가볍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아, 저 이사 가고 싶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오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서울남부터미널, 대전행 야간버스에서 도반들과 함께(앞에서 두번째)
▲ 서울남부터미널, 대전행 야간버스에서 도반들과 함께(앞에서 두번째)

껍데기 수행이었구나!

저는 비교적 마음속에 있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불편한 마음 한쪽에는 이런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대표님은 나보다 정토회에 온 지도 오래됐고, 그 분의 헌신과 능력을 봐서도 정토회에 훨씬 더 필요한 사람이야. 그러니, 내가 흠을 내면 안 돼! 무엇보다, 말해 봤자 달라질 게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갑갑한 마음을 참기만 했습니다.

그 무렵 정일사(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에서 도반들로부터 ‘마음속에 있는 말을 드러내지 않는다’라는 선물(개선점을 도반에게 물어본 후 얻은 대답)을 받았습니다. 정일사 회향 때 눈물을 흘리면서도 ‘대표님의 이런저런 언행으로 제가 많이 서운했어요' 라는 마음 속 얘기는 끝끝내 하지 못했습니다. 머리로는 제가 만들어 낸 시비분별인 줄 알지만 마음속에서는 훌훌 털어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 대표님과 함께 법사 교육을 받을 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이 펼쳐졌습니다. 더는 피할 수 없어서 그 당시 저의 밑 마음을 말했습니다. 이어서, ‘나는 후련해졌는데, 상대는 후련해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안이 아니라 밖으로 향하는 저의 시선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평생 늘 착하다고 이쁨과 칭찬받은 것이 자랑스러웠던 저는 대표님의 말들을 그저 저를 지적하고 설득하는 소리로 착각했습니다. 저의 틀린 관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시비와 질투심으로 일관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아, 나는 일만 열심히 하고 바른 관점이 무엇인지 모르는 껍데기 수행만 했구나!’를 느꼈습니다. 법사 교육 내내 시시때때로 제 자신의 참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저로 인해 불편했거나 억울했을 사람들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동안 저를 지켜봐 주고, 기다려준 도반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이 느껴졌습니다.

저의 껍데기 수행은 제가 너무 빨리 책임자, 총무, 지부국장이 되면서 수행에 중요한 과정들을 생략한 까닭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여러 어려움과 갈등을 겪으며 스님께 직접 질문해서 관점을 바로 잡고, 선배 도반들과 갈등을 해소해 나가는 과정들을 거쳤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 귀한 경험을 놓친 것은 저 자신에서 비롯했음을 깨닫고 참회했습니다.

청주, 충주 도반들과 문경수련원 감나무 아래에서(맨 오른쪽)
▲ 청주, 충주 도반들과 문경수련원 감나무 아래에서(맨 오른쪽)

참기름 수련

제가 받던 법사 교육 중 묘당법사님이 진행한 토론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어느 회사에서 100% 국산 참기름을 팔았는데, 알고 보니 외국산 참깨를 섞었습니다. “99%의 국내산 참깨에 1%의 외국산 참깨를 섞었다면, 그 참기름을 진짜 국산 참기름이라고 할 것인가, 가짜라고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했습니다.

그때, 제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뭐든지 100%일 때 진짜라고 하는구나! 100%가 아닌 것은 다 가짜라고 생각하는구나. 1% 부족한 것이 있을지라도 있는 그대로 진짜인데, 가짜라는 말이 붙으면 싹 다 가짜고 진짜라는 말이 붙으면 싹 다 진짜로, 세상을 구분해서 보는구나!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면 온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구나. 사람 또한 마찬가지로, 100%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대로 온전할 수 있는데, 이렇게 분별하며 살고 있었구나!

참기름 수련을 마치고 난 후, 또 다른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 당시의 저는 부정적인 것들은 버려야 할 것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두려움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정이었습니다. 그 부정적인 감정들을 알아차리고, 어떻게 처리하며 살아가는지가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긍정적인 감정만 괜찮고 부정적인 감정은 나쁘다는 생각을 놓으며 마음이 매우 편안해졌습니다. 예전에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출렁출렁했다면 지금은 찰랑거리는 정도입니다. 마음이 일어나기 전에 느낌에서 알아차리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번지지 않게 하는 힘이 조금 생겼습니다.

틀리다와 다르다

참기름 수련을 포함한 법사 교육을 받으며 세상을 골고루 볼 수 있는 눈이 생겼습니다. ‘그래! 다 일리가 있지, 틀린 말은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다 맞는다고 할 수도 없구나.’라며 뉴스를 보더라도 흥분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흥분하면, “저 얘기도 좀 들어보세요.”라고 말하면서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쪽, 저쪽 말을 다 듣고 ‘저 사람에겐 저렇게 보이는구나!’라고 생각하며, “틀리다”와 “다르다”를 구분할 수 있게 되고 이렇게 좀 더 열린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괴로움이 훨씬 줄었습니다. 또한, 그런 다양한 세상을 알아가는 안목과 재미가 새록새록 커져만 가니, 저 자신과 정토회, 그리고 세상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중법사님 특집기사 발행일정표
▲ 대중법사님 특집기사 발행일정표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인터뷰 진행_권영숙
인터뷰 지원(영상, 녹화)_김혜경
글, 편집_김세영, 성지연, 권영숙
도움주신이_이정선, 백금록, 박우경, 김승희, 박정임, 권영숙, 전은정

전체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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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순

100%가 아니어도 진짜 일 수 있다는 말씀이 다가옵니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이 모두 나쁜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들을 알아차리고, 어떻게 처리하며 살아가는지가 핵심이라는 것도 알게 되네요.
수행담이 이래서 필요한가 봅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_()_

2022-03-31 19:12:46

호롱불

감사합니다. 저도 100%일 때만 진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관점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2022-03-28 13:52:39

휘릭

저도 100%가 아니면 진짜가 아니라 가짜 라고 생각하며 분별 하고 있는지 잘 살피겠습니다. 부정적인 감정도 필요한 감정임을 알겠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퍼지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읽으니 또 다른 것들이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2022-03-26 17:4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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