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기광주지회
돌아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경기광주지회 유재학 님은 한 번도 얼굴을 붉히는 일 없이 늘 온화한 미소로 어떤 소임이든 해내어 진정한 ‘수행자’의 모범이 될만한 태전 모둠의 전법활동가입니다. 정토회를 만나 지난 9년 동안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어려움 속에서 더욱 굳건하게 수행자의 삶을 이어오고 있는 유재학 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받은 도움을 회향하는 마음으로

활짝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유재학 님
▲ 활짝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유재학 님

저는 마흔이 넘어 결혼했습니다. 베트남 출신의 아내와 다문화가정을 일구어 어느덧 세 딸을 두고 있는 가장입니다. 아내는 문화 차이로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큰 터울없이 세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육아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특히 힘들어 했습니다. 다문화 센터를 만나기 전, 한창 아이들을 키우느라 집에만 있던 아내는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힘들어했습니다.

그러다가 다문화 센터와 인연이 닿아 아내는 아이를 들쳐업고 다문화 센터에 한글을 배우러 다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은 아내가 저보다 한글도 잘 읽고 운전도 잘하며 잘 적응해서 지냅니다. 다문화 센터 봉사자분들의 도움으로 한글을 배우고 친구, 이웃을 사귀며 점차 아내는 한국에 적응했습니다. 그때 다문화 센터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은 것이 지금도 참 감사합니다. 이후 정토회 통일특별위원회 일을 할 때, 새터민들에게 그때 제가 받은 큰 도움을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더 정성껏 소임에 임합니다.

친구가 행복해진 비결

형이 일하고 있던 고물상을 인수받아 운영해보자는 아내의 제안으로 저는 11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우리 가족은 경기 광주에서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형의 생각과 제 생각이 많이 달랐습니다. 그때는 다름이 아니라 틀림으로 다가와서 형을 이해하지 못해서 힘들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주문진에서
▲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주문진에서

운전 중 고갯길에서 내려오는데 브레이크가 안 잡혀서 벽을 들이받는 사고가 났습니다. 차는 폐차를 할 정도로 망가졌는데 다행히 옆에 타고 있던 동료와 저는 많이 다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그때 많이 놀라고 힘들었는지 다시 경기 광주로 올라가자고 했고, 올라가지 않으면 이혼까지 불사하겠다 했습니다. 직장도 버리고 온 타지에서 일도 힘들고 교통사고도 나고 아내는 너무 힘들어하니 여러모로 저도 굉장히 힘들던 시기였습니다. 다시 경기도 광주로 올라와서 친구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구해 지하철역 내에서 노후 배전반을 철거하고 새 배전반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오후에 출근하면 새벽에 일이 끝나서 낮과 밤이 바뀌어 일을 해야 했습니다.

대전으로 내려가기전 다니던 직장의 동료가 제게 행복한 미소를 보이며 불교대학 입학을 권했습니다. 이 친구는 저와의 첫 만남에서 제가 웃는 모습을 보고 입사를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친구와 저 사이에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것이 많이 있었나 봅니다. 친구의 행복해진 모습을 보고 2013년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제게 정토회 인연을 이어준 친구는 지금도 통일특별위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내 삶을 채워주는 정토회와 도반들

처음 불교대학 수업이 끝나고 나누기를 하는데 어색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신앙으로써 불교와 정토회에서 말하는 불교에 차이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하철 배전 일을 할 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계속 틀어놓고 일을 했습니다. 계속 듣다보면 ‘이럴 때 이렇게 말씀하시는구나’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스님 법문이 하나씩 와 닿았습니다. 갈등이 있을 때 늘 ‘내가 옳다, 상대는 틀렸다.’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돌아보니 다 내 문제이지 상대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냥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니 점차 갈등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 문제라는 것을 깨달으니, 사이가 불편했던 형 부부와 지금은 문제없이 지냅니다. 그때는 불편한 마음에 딱 꽂혀서 말도 잘 안 하고 불편했는데 이제는 대화도 잘합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쟁반대 1인 시위를 하는 유재학 님
▲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쟁반대 1인 시위를 하는 유재학 님

돌아보면 도반들과 함께하는 힘으로 한 발씩 수행해 나갔습니다. JTS 모금 활동에 처음 참가 했을 때 쑥스러운 마음에 선뜻 나서지 못했는데 도반들과 함께하면 힘이 난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또 <깨달음의 장>에서도 함께하는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기도대문을 열어주는 <깨달음의 장> 반장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끌어 주는 도반들이 있어 저도 주춤하는 마음을 버리고 동참합니다.

8-3차 천일결사 입재식에서 우리를 환영해주던 선배 도반들의 기운을 잊을 수 없습니다. 끝나고 돌아올 때 차에서 나누기를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오던 일도 추억입니다. 통일축전에도 2번 참석했고 최근에는 온라인으로 하는 통일축전에 참석했습니다. 현장 통일축전에서는 새터민들과 제기차기 같은 전통놀이도 하고 스님 강연도 함께 들었습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 함께 더불어 생활하는 법을 배웁니다. 갈 때는 잘 모르지만 돌아올 때는 항상 배우고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정토회의 활동들을 통해 저 자신을 채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삶을 살아나갈 힘을 얻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정토회

광화문 전쟁 반대 평화 집회가 있었을 때, 세 아이 모두 데리고 참석했습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안 가려고 했지만 조카가 간다고 해서 꼬셔서 함께 갔습니다. 함께 찍은 사진은 그때의 기억을 나누는 가족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활동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평화와 통일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광화문 평화대회에 참여한 유재학 님과 세 딸들
▲ 광화문 평화대회에 참여한 유재학 님과 세 딸들

정토회를 만나기 전에는 가족을 대할 때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을 지켜봐 주는 역할만 합니다. 아이들이 물어봤을 때만 대답해주고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마음도 편해지고 아이들도 독립적으로 알아서 잘 자랐습니다. 코로나19 사태때문에 2020년에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자주 찾아뵐 수 없었습니다. 영상통화로 마주하는 바싹 마른 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딱 한 번 병문안으로 찾아뵙고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저에게 어머님의 자리가 굉장히 컸기에 더욱 상심이 컸습니다. 다행히 제가 정토회를 만나 어머니를 편안하게 보내드릴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처음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정토회 활동에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변화해 가는 저를 보면서 많이 이해해줍니다. 이제는 제일 많이 응원해주는 사람이 아내와 아이들입니다. ‘오늘은 수업 없어?’ 하고 물어보고 배려해줍니다.

한 알의 씨앗이 열매를 맺기까지

통일특별위원회에서 스님의 행복학교 강연을 지원했던 일도 잊을 수 없습니다. 과연 경기 광주 지역에서 이렇게 큰 행사를 잘 진행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도반들과 함께 현수막도 걸고 아침 7시에 일찍 일어나서 소책자를 돌리며 홍보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발로 뛴 보람이 있어 남한산성 아트홀 대극장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많은 인원인 1천 명이 모여 행복학교를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무사히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하는 힘이었습니다. 이때 행복학교 강연할 때 오셨던 분들이 지금은 행복시민학교 시민입니다. 작은 힘들이 모여 한 명 한 명의 귀한 인연을 맺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분당법당, 성남 행복한 대화 강연 발대식에서(아랫줄 맨 왼쪽이 유재학 님)
▲ 분당법당, 성남 행복한 대화 강연 발대식에서(아랫줄 맨 왼쪽이 유재학 님)

이후 행복학교 진행을 맡았는데 처음에는 수강생이 한 명이었습니다. 때론 카페에서, 도서관에서 수업했는데 한 명이 그렇게 귀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행복학교가 해를 거듭해서 지금은 온라인 행복시민모임으로 발전했습니다. 행복시민모임에서 JTS와 연계해서 노인복지사업을 했는데 이때 어르신들이 생활하시는 모습 직접 보고 쌀과 생활 물품을 지원하는 봉사를 했습니다. 누구를 지원할지 발굴하기 위해 상황이 어떤지 직접 가보고 어르신들이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어려운 분들이 많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같이 이야기할 사람이 없고 외로운 것이 어르신들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이런 봉사를 한 뒤 행복시민모임의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봉사로 인한 보람과 기쁨이 에너지가 되어 모임은 더욱 활기를 띠었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행복광장을 마치고 성남, 광주 모둠 통일특위 도반들과 함께(맨 오른쪽 유재학 님)
▲ 서대문 형무소에서 행복광장을 마치고 성남, 광주 모둠 통일특위 도반들과 함께(맨 오른쪽 유재학 님)

처음에는 통일의병 교육을 받고 통일특별위원회에 들어가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는데 지금은 그때 선택이 저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행복학교 참가자들의 나누기를 통해 알아가는 것은 봉사가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도움이 되고 내가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백지장도 마주 들면 가볍다’는 옛말을 떠올립니다. 함께하는 도반들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정토회 일은 언제나 돌아오는 발길이 가볍다는 것을 알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108배도 힘들었는데 천 배 정진에도 참여하면서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로 변화하는 저를 봅니다.


유재학 님은 인터뷰 내내 힘든 일도 마치 하나도 힘들지 않은 이야기인 것처럼 편안하고 솔직하게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온화한 말투와 표정처럼 내면까지 부드럽고 소탈한 유재학 님과의 인터뷰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전혀 무겁지 않고 즐거웠습니다. 일을 하면서 계속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삶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부분에서는 오늘은 바빠서, 내일은 힘들어서, 차일피일 수행을 미루고 실천하지 않던 저의 모습을 부끄럽게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타국에서 온 아내와 세 명의 아이들, 도반들과 행복시민들까지 넓고 편안한 넉넉한 품으로 보듬으며 하루하루 성실하고 꾸준하게 살아가는 유재학 님의 삶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웁니다. 한 방울의 땀방울이 모여 드넓은 밭을 일구듯이 그렇게 묵묵하게 수행자의 삶을 걸어가는 유재학 님의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글_유재학(강원경기동부지부 경기광주지회 태전모둠)
정리_신정아 희망리포터 (강원경기동부지부 경기광주지회)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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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

지금 현재 경전대학의 저희조 진행자님이시네요.
반가워서 글 씁니다~
언제나 웃으시는 모습에서, 묵묵히 정토회일들을 하시는 모습에서, 뭔가 단단하고 겹겹이 쌓인 내공이 느껴졌었습니다.
저를 되돌아볼수 있게 해주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2024-01-06 14:22:57

안선영

"그냥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니 점차 갈등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감동적인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2022-02-17 11:27:41

자재왕

거사님, 수행문을 읽고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많은 이들의 모범이 되실 것 같습니다. 성실하게 살아가시는 공덕으로 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드립니다.

2022-02-13 13:2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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