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천안지회
나에게 깨어있는 이 시간, 행복합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참 쉽지 않다는 말에 동의하시나요? 특별히 이야기할 것 없이 너무 평범하게 살았다고 웃는 이화영 님.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니 줄줄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냅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불법을 공부하며 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답니다. 평범한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값진 배움을 찾아가 봅니다.

법륜스님 즉문즉설 천안강연 봉사
▲ 법륜스님 즉문즉설 천안강연 봉사

문화센터 가는 마음으로 온 불교대학

제가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당시에 직장인이었던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경제적으로 좀 힘든 상황이긴 했지만, 그 일에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3년 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법륜스님을 처음 보고 ‘저 스님 되게 재미있다.’하고 말았는데, 지인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원서를 냈다며 같이 해보자고 했습니다. 저는 문화센터에 가듯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에 감동해

원래 종교도 없었고, 불교에 전혀 관심도 없어서 1년 동안 굉장히 어렵게 공부했습니다. 특히, 나누기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깨달음의 장1〉에 다녀와서도 감동은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특별하진 않았습니다. 계속 여기서 무엇을 얻어갈 것인지만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도반들은 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와서 인생에 큰 변화가 왔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가 않으니 오히려 그게 고민이었습니다.

불교대 홍보 중인 화영님
▲ 불교대 홍보 중인 화영님

다만, 부처님의 일생을 배울 때는 너무나 감동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삶을 조금이나마 따라 하고 배우고 싶다는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났습니다. 그 힘마저 없었다면 아마 불교대학 졸업도 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또 항상 ‘어렵다. 그만 둬야겠다.’ 하면서 다녔던 저에게 함께한 도반들이 자신들도 그런 경험을 했다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화요일만 되면 또 나가게 되고, 그렇게 1년을 하다보니 어느새 졸업을 하게 됐습니다.

이제 편히 놓아드린 아버지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크게 감사한 일은 바로 친정아버지를 편히 보내드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선생님이던 아버지는 굉장히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평소에도 자주 딸들을 안아주었고, 소풍가는 날이면 어머니가 재료를 준비해주면 아버지가 손수 김밥을 싸줄 정도로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또, 그 옛 시절에도 딸과 아들에 대한 차별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오히려 어머니가 굳이 아들을 낳겠다고 딸 다섯을 낳았고, 아버지는 명절만 되면 어머니에게 딸 다섯에게 똑같이 옷을 해서 입히라고 했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해서 빠듯하게 서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을 때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지금 건강하니 토방에 신발 두 켤레 있을 때(아이가 없을 때) 절약하고 살면 좋은 끝이 있단다.” 라는 편지를 써주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제 마음의 든든한 기둥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왼쪽 중학교 시절 화영님
▲ 아버지와 함께(왼쪽 중학교 시절 화영님

그런 아버지가 제가 큰 아들 출산을 한 달여 남겨 놓고 있을 때, 새벽에 일어나며 기분이 좋지않다며 쓰러졌습니다. 아버지는 그만 그길로 돌아가셨습니다. 연락을 받고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광주에 내려갔을 때는 이미 염과 입관 절차를 끝낸 상태였습니다. 만삭인 제가 충격 받을 것을 걱정했던 가족들의 배려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참 후에도 항상 아버지가 어디선가 나타날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제삿 날이면 여전히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불교대학에 와서 이치를 배우면서 이제는 아버지를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아버지가 편한 곳에서 잘 계시겠지'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완벽주의자, 트라우마를 남기다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졸업하고 나서 바로 봄불교대학 담당을 맡았습니다. 사실 제가 맡고 싶어라기보단, 원래 담당을 하기로 했던 도반이 갑자기 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어찌 됐든 제가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그것에 대한 보답을 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기에 담당을 맡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경험 없이 소임을 맡다 보니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통일 특강 후 현충사 답사(맨 왼쪽 화영님)
▲ 통일 특강 후 현충사 답사(맨 왼쪽 화영님)

당시에는 코로나 발생 초기여서 오프라인으로 시작은 했으나 중간에는 온,오프라인을 번갈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남산순례도 온라인으로 진행됐는데, 그 남산순례 사회를 맡게 됐습니다. 그런데 지도법사님이 남산을 가리키면서 설명하는데 갑자기 제 컴퓨터 화면이 이상해지면서 인터넷이 끊겼고, 제가 그만 그방에서 튕겨 나가고 말았습니다.

법당 총무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크롬 탭으로 발표해서 그렇다고 했는데 저는 당시 크롬이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우왕좌왕하다 부랴부랴 로그인 했더니 이미 지도법사님의 설명은 끝난 후였고, 진행은 불교대학 담당이 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어떤 일을 하든 먼저 물러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같은 학교에서 학생으로 다녔고, 무엇이든 잘하려 애쓰던 제 업식에 남산순례 같은 큰 행사에서의 실수는 두고 두고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튕겨 나가지만 말자

올해 봄, 6개월동안 경전대학 돕는이를 마치고, 가을학기에는 진행자를 하고 있습니다. 물러나는 마음이 들었음에도, “튕겨져 나가지 말고, 울타리 안에만 있어라. 있다보면 나중에는 조금씩 될 것이다”라는 법사님의 말씀을 늘 마음속에 간직했습니다. 그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저는 6개월 동안 경전대학 돕는 이를 맡으면서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다닐 때보다 수행도 더 열심히 했고, 공부가 더 됐던 것 같습니다.

남편과 나는 다른 사람임을

남편은 크게 흠잡을 곳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매우 성실한 직장인이었고, 결혼생활 동안 그다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으며, 아이들과도 관계가 좋습니다. 작은 아들이 고등학교시절 학원을 가기 싫어하고 공부를 소홀히 해서 저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때 남편은 ‘망아지를 끌고 물가에 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버려두라.’라며 너그러웠습니다. 그런 남편이어서 큰 문제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뒤 늦게 사업을 한다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만드니 남편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커졌습니다.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면서 그날 스트레스 받았던 일들을 쏟아내는 남편을 제가 잘 받아주지 못했습니다. 남자는 좀 묵직해야 한다는 상과 '당신이 선택한 일이니 당신이 감수해야지, 왜 나한테 와서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느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법당에서 저금통 개수봉사(오른쪽에서 두 번째 화영님
▲ 졸업을 앞두고 법당에서 저금통 개수봉사(오른쪽에서 두 번째 화영님

그런데 6개월동안 경전대학 돕는이를 하면서 법문을 듣고, 여러 도반들의 나누기를 들으며 저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한 도반은 남편이 사고로 오랫동안 병원에 있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데도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이해하는 마음을 내고 있었습니다. 도반들의 나누기를 저에게 적용해보고, 정일사 수련 기간동안 법사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이제는 남편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남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집에 와서 이야기하는 성격이구나. 또, 남편이 건강하게 살아있으니 저렇게 이야기라도 하는 것임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저와 다름을 인정하니 남편의 문제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졌습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6개월 동안 경전대학 돕는이를 하면서 많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법활동가 신청 설문지를 받았을 때는 또 선뜻 나서지 못했습니다. '지금 당장 전법활동가로 활동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서, ‘당장’이라는 단어에 꽂혀 전법활동가 신청을 포기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일단 물러나려고 하는 업식이 또 발동했습니다. 봄불교대학 담당을 하며 많은 실수를 했던 기억이 떠올라 저를 주춤하게 했습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전법활동가 신청을 포기했지만,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결국은 지회장과 모둠장과의 통화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는 서로 의논하면 되고, 다 상황에 맞게 대처할 준비를 해놓는다는 말을 듣고 전법활동가를 하기로 마음을 냈습니다.

10-6차 입재식 후 경전반 도반들과(아랫줄 맨 오른쪽 화영님)
▲ 10-6차 입재식 후 경전반 도반들과(아랫줄 맨 오른쪽 화영님)

원래 누구한테 전화해서 잘 물어보고 하지 못하고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힘들 때마다 함께 해주는 도반들 덕분에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가고 있습니다. 모든 활동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처음에는 컴퓨터를 다루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이전에 비해 지금은 컴퓨터 실력도 많이 늘었습니다.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면 바로 바로 응답해주는 도반이 있습니다. 다 기계로 하는 일이고, 본인도 그런 실수를 했었다고 위안을 준 덕분에 지금은 '실수하면 좀 어때'라는 유연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든든하고 고맙습니다.

지금, 나에게 깨어있는 시간이 행복

얼마전 경전반 70일 정진 명상 맛보기에서 역할을 나누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예전에는 실수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일단 물러섰는데, 이제는 가볍게 영상, 음원을 담당하겠다고 자원하고 나니 오히려 엄청 편안했습니다. 지금도 물론 실수에 대한 부담감은 가지고 있지만 이런 연습을 통해서 조금씩 개선이 되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좋습니다. 요즘 새벽 정진 덕분에 날마다 행복합니다. 지금은 상황에 만족스럽습니다. '나에게 깨어있지 못했던 날보다 지금, 나에게 깨어있는 시간이 행복입니다.'


괜찮은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괜찮은 삶을 사는 이화영 님의 모습을 보며 부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나에게 깨어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글_허지혜(희망리포터 천안지회)
편집_이정선(진주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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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재

두번 정독했습니다. ㅎ
번뇌 즉 보리라고, 작은 실수의 트라우마가 나중에 업식의 고리를 끊어내는 단초가 되었으니, 좋고 나쁨에서 벗어나는 가피를 받으셨네요~
늘 겸손하고 여유있는 모습뒤에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신것에 많은 배움이 되었습니다.
작은 아드님 이야기도 제가 가보지 않은 길을 안내해주시는 나침반이 되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01-14 18:28:01

정경식

트라우마를 이겨 내는 모습 감동적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2-23 16:57:45

이영수

도반님 수행담 잘 보았습니다. 수줍어하시지만 참 성실하고 끈기있으셨던 모습 떠오릅니다. 한발짝 한발짝 나아가시는 모습 응원합니다~~

2021-11-14 06: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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