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수성지회
지인 전법의 비결, 알려드릴까요?

정토회와 인연 맺은 지 5년 6개월 된 수성지회 전법활동가 송경희 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전법을 잘할지 고민합니다. 송경희 님은 지인 전법을 잘한다고 합니다. 과연 그 비결이 뭘까, 궁금합니다. 그 비결, 지금 바로 들어보겠습니다.

동생을 떠나보내고, 인연 맺은 정토회

어느 날 동생에게 "너 살이 많이 빠졌다."라고 했더니 동생은 운동을 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운동을 해서 빠진 살이 아닌 것 같으니 병원에 가라고 했습니다. 동생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 병원을 가지 않고 그냥 살았습니다. 저도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 정도 기다려야 하는데 동생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생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아팠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하는데, 아픈 것을 느끼고 병원에 가서 3일 지나 세상을 떠나니 큰 충격이었습니다. 보통 간암 판정을 받고도 3개월 정도는 산다는데 동생은 일주일도 안 돼서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둘밖에 없는데, 아들인 동생과 딸인 저를 심하게 차별했습니다. 오로지 아들밖에 모르던 아버지였는데 남동생이 세상을 떠나니 아버지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저도 누나로서 마음이 정말 아프고 슬펐습니다.

불교대학 문경수련원특강-뒷줄 왼쪽 두번째가 주인공
▲ 불교대학 문경수련원특강-뒷줄 왼쪽 두번째가 주인공

그러다 법륜스님을 알았습니다. 전에 힐링캠프에 나온 법륜스님을 봤을 때 ‘저 스님 정말 재미있네, 저런 스님이 계시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생 일이 있고 나서 영남대 네거리를 지나가는데 스님의 즉문즉설 현수막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즉문즉설을 들으러 갔습니다. 너무 허전하고 슬펐는데 스님 법문으로 위안을 받았습니다. 집에 와서 인터넷에 법륜스님을 검색하니 정토불교대학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만촌동에 있는 대구법당을 스스로 찾아갔습니다.

그전에는 불교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불교와 무당을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산신 이런 것 때문에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정토불교대학에서 들은 스님 말씀은 다 감동이었습니다. 동생의 일로 인해 저에게 스님 법문이 마음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후 '제가 왜 여태 정토회를 모르고 살았을까? 왜 스님 법문이 귀에 안 들어왔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생이 곁을 떠날 때는 슬펐지만 몇 년 후 ‘법문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동생이 주고 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동생을 생각할 때 슬픈 마음이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버지 덕분

법문은 들으면서 가족 관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왜 늘 자신감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동생에게는 칭찬과 지원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동생은 결혼하고도 집과 차도 사주고 지원을 많이 해주었지만, 저에게는 칭찬도 지원도 없었습니다. 저는 대학을 못 갔습니다. 아버지가 대학을 안 가면 대학 공부에 필요한 자금을 결혼비용으로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도 “네가 번 돈으로 해라”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아버지가 많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문경연수원 청소봉사후 도반들과-둘째줄 오른쪽 첫번째가 주인공
▲ 문경연수원 청소봉사후 도반들과-둘째줄 오른쪽 첫번째가 주인공

수행하면서 알았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나를 동생처럼 대해주고 지원해줬으면 지금 이렇게 살지 못했겠구나' 이 사실을 알고 나니 한방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해결됐습니다. 불법을 공부한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의 지원 없이도 제가 살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이 아버지 덕분입니다. 아버지는 스님의 법문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스님 법문처럼 제게는 스무살이 넘어서 지원을 하나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지난 때에는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지금은 제가 부모님의 의지처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제게 미안했는지 "내가 너를 의지해서 살 줄은 몰랐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때 가슴이 뭉클하고 아버지가 저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자식을 키우면서 아버지에게 아들이 어떤 존재였는지도 알게 되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자식과 싸우고 자식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때 저와 엄마의 관계를 대입해보면 엄마가 이해됩니다. '엄마도 나에게 엄청 섭섭했겠구나'라는 마음이 듭니다. 저는 딸과 치고받고 싸우는데 엄마는 제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줬습니다. 저보다 훨씬 훌륭한 엄마입니다.

도반들과 함께한 불대홍보-왼쪽 첫번째가 주인공
▲ 도반들과 함께한 불대홍보-왼쪽 첫번째가 주인공

〈나눔의 장1〉을 가서 보니 저는 정말 제 마음대로 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들은 자의든, 타의든, 남편에게 숙이고 살았던데 저는 제 맘대로 살았습니다. 그런 남편을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수행하면서 '이게 당연한 것이 아니구나, 남편이 순하니까 내가 내 고집대로 살았구나'를 알았습니다. 살면서 남편에게 조금의 불만도 없었는데 불만이 없었던 이유가 남편이 저에게 맞춰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즘은 제가 남편에게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니 남편이 정말 좋아합니다. 남편이 저랑 맞추고 사느라 엄청 힘들었을텐데 저랑 살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말뿐 아니라 진심으로 고마움, 감사함이 생겨서 자식들에게도 아빠가 엄마를 인정하고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직장의 연차와 반차는 정토회 활동에

제가 3교대 근무자라 오늘도 야간 근무하고 잠을 한숨도 안 잤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 야간 근무를 하고도 봉사가 힘들지 않은데 하기 싫은 일이면 야간 근무하고 와서 잔다는 핑계로 안 합니다. 법당 나가던 초기에는 스님의 법문만 듣고 봉사는 안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봉사하는 사람들의 나누기를 들어보니 봉사하면서 도반들이 분별심을 많이 일으켰습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갔습니다. ‘본인이 마음 내서 봉사하는데 왜 분별심을 일으키지? 그럼 안 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봉사하는 사람들은 봉사하면서 일으킨 분별심을 돌아보며 자기 수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제안하는 소임을 맡았습니다.

지난 6개월간 경전대학 진행자 소임을 했습니다. 경전대학을 진행하려면 정해진 시간에 수업 진행을 해야 하는데 그때 근무가 있으면 그 시간에 연차, 반차를 냈습니다. 일 년간 쓸 연차와 반차를 정토회 소임을 하는 데 다 썼습니다. 이전 같으면 시간이 아깝고, 놀러 가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토회 봉사하는데 연차와 반차를 다 쓰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요사이는 수요법회 그룹장을 하는데 수요일 저녁마다 시간을 내야 하니 근무를 해야 할 때 연차를 씁니다. 아도모례원 봉사 갈 때, 두북 수련원 봉사 갈 때도 씁니다.

경전졸업식-앞줄 세번째가 주인공
▲ 경전졸업식-앞줄 세번째가 주인공

제가 이 공부를 한 후 허한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전에는 사람들과 어울려 맛있는 것 먹으러 가고, 좋은 데 갔다 와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습니다. 지금은 아도모례원이나 두북 봉사를 갔다 오면 몸은 피곤한데 마음은 너무 편하고 가볍습니다. 이런 것이 제가 정토회에 남아있는 요인입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봉사하기 위해 연차를 낼 것이고, 또 다른 소임이 오면 그것을 해 보고 싶습니다.

봉사를 해보니 결국은 내 공부가 됩니다. 어디 가서 돈을 줘도 이런 공부를 할 곳이 없습니다. 이런 좋은 법문을 들을 곳도 없습니다. 제가 전법 했던 지인이 “이렇게 체계적으로 공부를 시키는 곳이 없어요. 나이 60 인생에 새로운 공부로 새로운 인생을 산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완전 동감입니다. 그래서 저는 스님에게 참으로 감사합니다. 스님이 정토회는 후불제라고 했는데 저는 수행하면서 정토회 활동에 참여하는 게 감사함을 갚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3년간 300배

경전대학 다닐 때 선배 도반의 수행담을 들었습니다. 수행담 마무리를 하면서 “여러분들은 안 해봤잖아요. 해 봐요 300배, 그러면 시비분별하는 마음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어요. 해보고 이야기해요. 안 해 보고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부터 하루도 안 빠지고 300배를 3년 했습니다. 300배를 하면 절하는 시간이 기니까 절하는 시간 내내 어릴 적 일부터 살면서 있었던 오만 생각들이 다 올라옵니다. 아버지, 엄마, 친인척 간에 있었던 섭섭했던 일. 친구, 남편과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절하는 그 시간에 다 올라옵니다. 그냥 묻고 지나갈 일인데 절을 할 때는 생각이 다 올라옵니다. 그 생각들을 스님 법문과 접목시키면 '그때는 내가 좋다고 했던 일들이 지나고 보니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전에는 제가 정말 옳았기 때문에 강하게 우겼던 일들도 돌이켜보니 제가 고집이 세고, 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는 계기가 300배였습니다.

경전대졸업식 동기들과 첫줄 왼쪽두번째가 주인공
▲ 경전대졸업식 동기들과 첫줄 왼쪽두번째가 주인공

300배를 하다 보니 남편이랑 싸우다가도 멈춰지는 연습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화가 나다가 알아지면 가만히 멈춰지는 겁니다. 순간 알아차리면 멈추는데, 알아차려도 이미 흥분이 되어 화를 계속 내는 저를 봤습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정말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 법문을 저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업식을 건드리는 딸

우리 가족 중 제 업식을 건드리는 것은 딸입니다. 제가 딸에게 말을 하면 저의 말 어떤 부분이 딸의 성질을 건드리나 봅니다. 저는 그렇게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데 딸이 한방 확 터트려도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몰랐습니다. 제가 기분이 나빠서 “나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라고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딸이 직설적으로 말을 해서 딸 앞에 가면 항상 긴장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좋게 말해도 딸이 저렇게 듣는데 저는 입을 다물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물으니까 답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말해야 딸이 성질을 안내나 하는 것이 늘 저의 숙제였습니다. 딸이 “엄마는 이게 문제야” 하면 “그게 왜 문제야” 하면서 다투었습니다. 딸이 “엄마는 엄마 표정 안 보이지?” 하면서 “엄마의 표정이 정말 굳어 있어”라고 했습니다.

딸이 저에게 “엄마 화났어?” 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저는 화가 안 났는데 딸이 화났냐고 왜 물어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 표정을 못 보니 제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었습니다. 딸의 말을 듣고 나서 스님이 말한 '상대가 나의 거울'이라는 말뜻을 이해했습니다. 제 표정이 굳어 있다는 것은 제 말이 부드럽지 않다는 것임을 알고 말을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딸의 반응이 ‘왜 그러는데?’ 였습니다. 제 까르마를 고치려면 연습밖에 없다는 생각에 연습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엄마, 나도 엄마 하는 공부해볼까?”라고 말했습니다. 안 그래도 권하고 싶었는데 딸이 하고 싶다고 하니 얼씨구나 좋다 했습니다. 그래서 딸도 경전대학 공부까지 마쳤습니다.

jts거리모금 뒷줄 왼쪽 첫번째가 주인공
▲ jts거리모금 뒷줄 왼쪽 첫번째가 주인공

다시 300배

300배를 3년 하고 회향했다가 얼마 전 다시 시작했습니다. 지금 300배의 목표는 소임을 맡으면 3년을 하라는 지도법사님의 말씀처럼 전법활동가 소임을 하면서 3년을 버티려고 합니다. 어떻게 버티든 버티기만 하면 좋아질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3년을 해 보고 정말 저와 안 맞으면 그 때 일반회원을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토회 활동가들이 다 대단해 보입니다. 사람마다 장점이 다 있고, 소임을 맡아서 가볍게 하고, 제가 보기에는 다 잘해 보입니다. 저도 선배 활동가들처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300배를 합니다. 그리고 제 까르마를 이겨보고 싶어서 다시 300배를 합니다.

제 까르마 중 야간 근무 후 집에 와서 기도를 제일 먼저 해야 하는데 일단 한숨 자고 기도를 합니다. 평소에는 5시에, 새벽 출근일 때는 출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4시에 합니다. 그런데 야간만 하고 오면 눕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듭니다. 이럴 때 ‘너 너무 피곤하다. 좀 자고 나서 기도해도 돼.’ 이렇게 합리화를 하는 저의 까르마를 이겨보고 싶습니다. 어떤 날은 퇴근하고 바로 기도를 하고 또 어떤 날은 힘들다고 미루다가 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제 맘대로 하는 까르마를 이겨보고 싶습니다. 마음이란 게 내 거지만 내 맘대로 안돼서 믿을 바가 못 되고, 몸도 내 거지만 내 맘대로 안돼는 업식을 300배를 통해 넘어보고 싶습니다.

지인 전법을 잘하는 이유

지인 전법을 잘하는 비결을 많이 묻는데 따로 없습니다. 저는 그냥 꾸준하게 안내합니다. 지난 학기에 지인 한 명이 동대구지회에 입학했습니다. 이번 학기에 시기를 놓쳐서 입학하지 못해 다음 학기에 입학할 사람이 또 한 명 있습니다. 저는 스님에 대해서 의심이 없습니다. 제가 해서 좋아진 게 확실해서 전법을 할 때 자신 있게 합니다. “진짜 좋아” 확신에 차서 말합니다.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싶잖아요. 그래서 자식에게 '나 이거 해보니까 정말 좋아', 남편에게는 '자기도 이제 올 때 됐어. 변하는 나를 봤잖아'” 이렇게 말합니다. 가족들은 저랑 같이 살면서 변하는 제 행동을 봤으니까 제가 하는 공부에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좋은 글귀들은 출력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는 책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럼 남편이 읽어봅니다. 가장 좋은 것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라고 해서 남편이 좋고 중요한 사람이라서 남편이 읽도록 합니다.

'이 사람에게 전법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나한테 좋으니까 그냥 보내줍니다. 제가 사람을 만날 때 열심히 스님과 마음공부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중에 반응이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계속 자료를 보내줍니다. 씨를 뿌려만 놓으면 그 사람이 시절 인연을 만나면 정토불교대학에 올 수 있다는 생각에 그냥 씨앗만 뿌립니다.

정토행자로서 내일

처음 정토회 왔을 때 세운 원이 ‘부처님, 전 죽을 때까지 이 공부를 하겠습니다. 이 공부를 하다가 죽어도 좋습니다.’ 였습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법문을 듣고 마음의 위로를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있는데 여태껏 내가 모르고 살았구나! 내가 이 법을 더 일찍 만났으면 애들도 잘 키울 수 있었을 텐데, 부모에 대한 원망을 안 해도 되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한 생각 바꿨습니다. '내가 이 법을 만난 게 어딘가? 내 나이 아직 50밖에 안 됐는데 80까지 하면 30년이잖아. 30년이면 스님께서 남한테 영향력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충분히 아직도 시간이 많다. 급할 것 없다. 내 원만 바뀌지 않는다면 된다.'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전법활동가로서 내일을 살고 싶습니다.


송경희님을 만나면서 특히 감동이었습니다. 송경희 님의 수행담을 들으면서 게으름 피우려는 제 마음을 돌아보았습니다. 3년간 300배를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는 이야기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진정으로 몸과 마음을 다해 수행하는 도반과 함께 가는 이 길이 너무 행복합니다.

글_안정미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수성지회)
편집_조미경(경남지부/김해지회)


  1.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8

0/200

윤정숙

300배를 하는 저력은 어디에서 올까? 법륜 스님이 궁금해 지는 시간입니다.

2022-02-23 16:56:43

이영준

마음에 와 닿는 수행담이네요.

2022-02-18 05:43:50

대거화박순천

송경희님, 넘 대단하십니다. 무척 감동했고 덕분에 다시 발심합니다. ^^

2022-01-18 07:52:22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수성지회’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